51화 크리처 (2)
마트로 들어오는 크리처의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깨진 문짝을 유연하게 통과한 크리처가 사격 구역으로 지정한 너른 앞마당을 눈 깜짝할 새 지나쳐 높다랗게 쌓아 둔 진열장으로 덮쳐들었다.
꽈앙- 꽈자작-
진열장 틈새로 길쭉한 앞발을 쑤셔 넣고 헤집어댔다.
까가각- 까가각-
장애물 더미가 갈고리처럼 날카롭게 휘어진 발톱에 걸려 지진 난 듯 요동쳤다.
집기만 요동치는 것이 아니었다.
온몸으로 덮쳐든 크리처에 놀라 나자빠진 장애물 뒤편 사람들의 눈동자도 곧 부서져 버릴 것처럼 덜컹거리는 집기와 똑같이 흔들렸다.
든든하게 느껴졌던 전방의 장애물이 이제는 너무나 허술해 보였다.
철제 프레임과 철망으로 구성된 진열장에 들러붙은 크리처는 마치 밥 달라고 졸라대는 우리 안 맹수 같았다.
서로 안팎이 바뀐 처지였지만.
강력하고 예리한 발톱에 철제 집기는 종잇장처럼 구겨지고 줄기줄기 찢겨나가 이음새가 부서졌고 목제 집기는 쪼개진 나무조각들이 무수히 튀어 올랐다.
사람들은 미처 예상치 못한 크리처의 무지막지한 내구력과 속도와 괴력에 속절없이 비명을 질러댔다.
“꺅! 엄마!”
“으아아!”
“헉! 이것들은 대체 뭐야?”
하늘거리던 기다란 꼬리가 유연하게 휘어지며 송곳같이 뾰쪽한 끝을 총구가 겨눠진 장애물 틈바구니로 쑤셔 박았다.
“크아악!”
뜨끔한 통증에 외마디 비명을 외친 사람이 꼬리가 빠져나간 뻥 뚫린 가슴팍을 황망하게 내려다봤다.
크리처는 사람들이 생각했던 사자나 호랑이 같은 일반적인 맹수가 아니었다.
흉측한 생김새만큼이나 흉악한 사냥 능력을 가감 없이 발휘했다.
“으아아악!”
“꺄아악!”
일련의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들은 또다시 비명을 질러댔다.
사방에서 절규와 같은 비명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시뻘겋게 물든 꼬리를 회수한 크리처가 기다란 발가락을 뚫고 나온 날카로운 갈고리발톱으로 진열장을 꽉 움켜쥐고 들러붙어 장애물 너머 또 다른 먹잇감을 찾아 연신 안광을 뿜어냈다.
“크아아아앙!”
사납게 울부짖는 아가리가 마치 하마나 악어같이 한계를 모르고 커다랗게 벌어졌다.
통째로 삼키려는 듯 한껏 열어젖힌 아가리 속을 바로 코앞에서 생생히 목격한 사람이 교환하려던 탄창을 떨구고 절규했다.
“끄, 끄아아아!”
“저리 비켜!”
정신없이 고함을 지르던 사람은 쌍둥이에게 밀쳐져 가슴이 뻥 뚫려 쓰러진 사람 위로 넘어졌다.
“으, 으아아아!”
시체 위에 엎어져서 여전히 소리를 질러대는 사람을 쌍둥이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이곳 매장 안에서 소리치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서둘러 크리처의 쩍 벌어진 아가리 안으로 총구를 겨누었다.
타다다당- 타다당-
빠캉- 빠캉-
똑같이 생긴 형제는 합심하여 자동소총과 산탄총의 탄환을 목구멍 속으로 퍼부었다.
뾰쪽뾰쪽 촘촘하게 박힌 상어 같은 예리한 이빨이 유리 파편처럼 잘게 깨어져 뭉텅뭉텅 떨어져 나간 살점과 함께 허공에 비산했다.
아래턱 위로는 형체도 없이 날아가 버린 크리처가 뒤로 기울어지며 넘어갔다.
갈고리발톱에 걸린 엉망이 된 진열장도 같이 딸려갔다.
쿠웅- 와장창-
“이, 이런 젠장!”
높다랗던 장애물이 넘어가자 앞이 휑하게 뚫려버렸다.
쌍둥이의 부릅뜬 시선이 이 빠진 듯 뻥 뚫려버린 전방을 통해 펄럭이는 가림막으로 향했다.
크리처 무리는 날아오는 총탄에 아랑곳없이 유리가 깨져 나간 틈으로 유연하게 길쭉한 몸을 통과시키며 하나둘 차례차례 마트 내부로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넓게 흩어져 사람들이 숨어있는 장애물로 득달같이 덮쳐들었다.
박 부장이 강조했던 행동 수칙이 공허해졌다.
작전 계획은 제일 처음 진입한 단 한 마리에게만 적용됐고 눈 깜짝할 사이에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다들 자기 앞으로 들이치는 크리처에게 대항하느라 화망이 흩어질 대로 흩어졌다.
이가 빠진 것처럼 뻥 뚫려버린 공간으로 크리처 한 마리가 거침없이 돌진해 왔다.
광폭한 안광을 번뜩이며 자기들 코앞으로 득달같이 덮쳐드는 크리처에게 화들짝 놀란 쌍둥이가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으아아아아! 갈겨!”
“으아아! 쏴버려 형!”
타다당- 철커덕- 타다다다당-
빠캉- 철컥- 빠캉-
쌍둥이는 당황한 모습과는 다르게 숙련된 동작으로 탄창을 신속하게 교환하며 연사를 퍼부었다.
급박한 상황에서도 목표에 탄착군을 형성했다.
무수한 탄환을 대가리로 받아 낸 크리처가 바닥에 뒤집혀 사방 천지에 핏물을 뿌려가며 펄떡펄떡 몸부림쳤다.
대가리가 반쯤 날아갔지만, 여전히 숨이 붙어 길쭉한 몸뚱어리를 뒤틀었다.
쌍둥이의 넋 나간 시선이 죽어가는 크리처에게서 유리가 쏟아져 내린 마트 전면부로 향했다.
총탄에 깨져 나간 전면 유리 뒤를 둘러싸고 있던 장애물이 들썩들썩 흔들흔들 앞뒤 좌우로 요동쳤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크리처 무리의 진입로가 하나 더 생기고 말았다.
꽈작- 꽈작- 꽈자작-
사람들이 경황없이 아무 데나 총을 갈겨댄 덕분에 너덜너덜해졌던 진열장이 크리처의 억센 발톱 앞에서 너무도 간단히 부서져 버렸다.
크리처가 뜯어낸 장애물 틈바구니로 몸을 밀어 넣고 있었다.
“형! 저쪽!”
이곳저곳에서 일촉즉발의 위험 상황이 동시다발로 펼쳐졌다.
쌍둥이의 시선이 집기들을 이용해 겹겹이 쌓아 진지처럼 구축한 장애물 더미로 향했다.
땀을 뻘뻘 흘려가며 고생 또 고생 만들어 놓았으나 무용지물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곳에서는 또 다른 크리처가 산발적으로 날아드는 탄환을 몸으로 버텨내며 높이 1m 80cm를 웃도는 진열장을 단번에 뛰어넘었다.
사람들이 몸을 숨긴 곳으로 떨어져 내린 크리처는 날카로운 갈고리발톱을 바짝 세우고 채찍처럼 기다란 앞발을 휘저었다.
“크아악!”
“아악!”
“꺄아악!”
날카롭고 억센 갈고리발톱이 스칠 때마다 연한 순두부가 썰리듯 사람의 몸뚱이 정도는 숭덩숭덩 발려 나갔다.
저며진 살덩이들이 핏줄기와 함께 허공에 부유하기 시작했다.
집기를 쌓아 구축한 진지로 단 한 마리가 넘어 들었을 뿐이었지만 돌이킬 수 없는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크아아아앙!”
크리처가 흉포하게 포효하며 탄이 떨어진 총에 탄창도 갈지 못하고 냅다 집어 던진 채 그대로 도주하던 여자의 어깨를 덥석 물었다.
“꺄아아악!”
울부짖는 여자를 입에 물고 사람들에게 다가가며 앞발을 휘둘렀다.
방패막이가 되어 질질 끌려다니는 여자 때문에 총을 쏘지 못하는 사람도 발생했다.
크리처의 저런 행태가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 사람들은 알 수 없었다.
크리처가 인파 속으로 뛰어들자 제대로 쏘아 맞히기 어려웠다.
탄환은 이곳저곳에서 산발적으로 발사됐고 크리처와 사람의 울부짖음이 한데 뒤섞여 난장판이 펼쳐졌다.
장애물 뒤편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총을 쏘아대던 두 남녀가 떨리는 눈빛을 교환했다.
지하 매장에서 식료품을 훔치던 연인은 둘 다 눈치가 무척 빨랐다.
이곳에 있는 사람 중 제일 먼저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했다.
그리고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눈빛을 교환하자마자 약속이나 한 듯 부리나케 내달리기 시작했다.
손을 꼭 맞잡고 남구를 향해 달려들었다.
남구의 눈치를 슬슬 살피던 남녀였지만 지금 그들의 눈에는 보이는 것이 없었다.
이제는 남구 따위 안중에도 없는 두 남녀가 남구의 곁을 바람처럼 스쳐 지나 복도 통로의 내리막길을 정신없이 달려 내려갔다.
남구의 치렁치렁한 까만 머리카락이 두 남녀가 일으킨 바람 탓에 올올히 흩어져 코끝을 간지럽혔다.
훅!
남구가 입김을 위로 불어 코끝에 머물렀던 머리카락을 치워버렸다.
꽁지 빠지게 도망치는 두 남녀를 발견한 쌍둥이도 서로 눈을 맞췄다.
쌍둥이 형제 역시 눈빛만 교환해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둘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정신없이 총을 쏘고 있는 가족에게 눈을 돌렸다.
“엄마! 선화야!”
“빨리 뛰어!”
쌍둥이는 각자 모친과 여동생의 손을 잡아끌고 두 남녀의 뒤를 이어 지하 매장으로 달음박질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4인 가족이 남구의 옆을 후다닥 스쳐 지났다.
남구의 머리카락이 조금 전보다 심하게 나부끼며 코끝을 간지럽혔다.
훅! 훅!
입김을 두 번이나 불었지만, 엉망으로 헝클어진 숱 많은 머리카락을 바로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남구가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어 산산이 흩어진 머리칼을 바로잡았다.
치렁치렁 늘어진 머리카락을 가닥가닥 쓸어 올려 매점에서 주워온 고무줄을 이용해 뒤로 잡아맸다.
그래도 길게 늘어진 앞머리가 여전히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상황 판단이 빠른 사람들이군.’
죽음의 공포에 잠식당하면 도망치는 것조차 못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머리를 다 묶은 남구가 턱을 들고 전방을 바라봤다.
눈앞에 어른거리는 밤하늘만큼이나 까만 머리카락 사이에서 정면을 노려보는 머리 색만큼이나 까만 눈동자가 은은한 안광을 뿜어냈다.
그 희번덕거리는 까만 눈동자로 크리처가 활개 치는 꼴을 주시하며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연속 동작이 이어졌다.
어깨에 단단히 매어둔 K1A 기관단총의 멜빵끈을 늘렸다.
끌어내린 총기를 양손에 파지한 후 장전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철컥-
탄이 물리는 것을 느끼며 조정간을 연발로 바꾸었다.
딸깍-
“아우! 이놈의 거추장스러운 머리 잘라버려야 하는데.”
퉁명스럽게 투덜거린 남구가 조용히 눈빛을 빛냈다.
‘우선 저놈들 머리부터 잘라 버려야겠군.’
출입구의 깨진 유리 문짝과 난사된 탄에 박살이 난 외벽 유리를 통해 크리처 10마리가 모두 매장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그중 단 세 마리만 벌집이 된 채 쓰러졌다.
그 세 마리의 대가리는 떨어뜨린 수박처럼 엉망진창으로 뭉그러져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널브러진 바닥에서 움찔거렸다.
비록 신경 반응뿐일지라도 끈질긴 생명력이 참으로 경이로웠다.
제 세상을 만난 듯 크리처 일곱 마리가 매장 안을 날뛰기 시작하자 눈 깜짝할 사이 전멸에 가까운 참혹한 결과를 맞게 되었다.
조각조각 잘려 나간 사람들의 일부가 이곳저곳 나뒹굴었다.
반듯했던 진영은 한순간에 쑥대밭이 되었다.
겨우 크리처 일곱 마리가 치밀하게 짜인 작전 계획하에 참호를 구축하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던 사람들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
‘쯧! 세 마리밖에 해치우지 못했군. 생각보다 더 형편없네.’
이렇게까지 중무장하고 완벽하다 할 정도의 작전으로 함정과 다름없는 매복지에서 크리처를 맞이했음에도 풍비박산이 난 현 상황에 절로 혀가 차졌다.
아무리 크리처를 처음 맞이해 보는 사람들이라지만 적어도 절반 이상은 해치우고 대부분의 크리처에게 거동이 불편할 정도의 중상을 입힐 거로 예상했다.
사람들의 눈에는 날개 돋친 듯 날뛰는 저 크리처들이 저승사자 같아 보이겠지만 남구가 후반기에 상대했던 것들에 비하면 성견도 안 된 하룻강아지와 다름없었다.
‘고작 진화도 하지 못한 것들에게 이 꼴이라니! 하긴, 그때 나에 비한다면 지금의 나 역시 어린아이에 불과하겠군. 기준을 그때로 잡으면 안 되지. 그러다가 큰코다친다. 현실을 정확하게 봐야 해!’
라떼를 찾던 어른들을 십분 이해하면서 걸음을 떼었다.
‘치명상을 입고 비실거리는 크리처의 LP를 손쉽게 쏙쏙 뽑아 먹을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젠장! 고생깨나 하게 생겼군.’
“헉!”
투덜거리며 걸어 나가던 남구가 헛바람을 일으켰다.
날카롭게 좁혀 뜨고 있던 남구의 눈이 별안간 휘둥그레졌다.
이별을 통보하고 돌아서는 여자 친구의 옷깃이라도 붙잡으려는 듯 다급하게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안 돼! 그러지 마!”
꽈아아앙-
수류탄이 터졌다.
꽉 막힌 실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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