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육체 쟁탈전 (3)
이제 건장한 젊은 남자는 저항도 못 하고 신음만을 힘겹게 뱉어내며 몸을 들썩였다.
곧 새우처럼 몸을 말아 힘없이 모로 쓰러졌다.
털썩-
바닥의 먼지가 뽀얗게 일어났다.
“꺄아악!”
“뭐, 뭐야!”
“헉!”
“엄마!”
“으아아아!”
뒤늦게서야 복부에 칼을 맞고 쓰러진 남자와 피를 흠뻑 뒤집어쓴 조폭을 발견한 사람들은 꼬리에 불붙은 개처럼 비명을 질러대며 뿔뿔이 흩어졌다.
이 와중에도 은성은 주먹을 불끈 쥐고 조폭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 자식은 진짜 뭐지?’
대단한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어린 나이에 처음 맞닥뜨리는 상황일 텐데도 다른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른 모습을 보였다.
‘아버지가 태권도장 관장이라 그런가?’
사람들은 손잡이에 붕대를 둘둘 감은 길쭉하고 날렵한 일식도를 가진 남자를 피해 최대한 멀어져 갔다.
‘이런 식이면 다들 각개격파 당하겠군.’
세 명의 조폭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짧은 머리의 조폭이 뱃속에 깊숙이 찔러넣은 회칼을 회수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일어섰다.
눈과 이마를 지나 피가 흠뻑 묻어 있는 짧은 머리를 쓸어올리며 구시렁거렸다.
거의 삭발에 가까운 짧은 머리카락의 탄력으로 인해 혈액이 방울방울 튀어 올랐다.
“으미, 오살할 넘! 지랄 염병을 허네잉. 칵, 퉤!”
붉어진 침을 바닥에 익숙하게 뱉어냈다.
저 짧은 머리 때문에 쓰러진 남자는 헛손질만 했었다.
‘가장 강해 보이는 사람을 첫 번째 표적으로 삼았군.’
휭-
회칼을 허공에 휘둘러 피를 뿌리는 모습이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보통 키였지만 운동을 많이 한 탄탄한 체격이 양복의 실루엣에서 고스란히 묻어났다.
그가 위풍당당하게 외쳤다.
“야들아! 셋이여. 딱 우덜 셋이란 말이여.”
똘마니로 보이는 두 명은 다소 놀란 표정으로 피를 털어내는 보스를 쳐다봤다.
키가 190cm는 되어 보이고 살이 피둥피둥 찐 거대한 덩치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형님, 괜찮으십니까? 형님!”
보스는 연신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투덜거렸다.
“암시롱 안여. 어찌야 쓸까잉! 옷 배려 부렸다.”
“형님, 그냥 싹 다 죽여버리면 되는 겁니까? 형님?”
“암만! 울덜이 뒈질 수는 읎잖여? 매음 오지게 묵어.”
“네, 형님!”
대답을 마친 거구가 양복 안쪽에서 보스의 것과 비슷하게 생긴 회칼을 꺼냈다.
와이셔츠의 목깃을 넘어 목까지 문신이 올라와 있는 나머지 남자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장난삼아 불빛에 들어와 봤는데 장난이 아닌 것 같습니다. 형님!”
“구신이 곡할 노릇이여. 불나방이 돼야 부린 거시여. 시방 우덜 목심이 젤로 중한 거 알어 몰러?”
“알고 있습니다, 형님!”
“느자구읎는 넘! 근디 시방 뭐허냐? 뽈딱 안 뽑고 뭐 혀? 니미, 뒀다가 국 끓여 묵을 겨? 회 떠 묵을 겨?”
“죄, 죄송합니다. 형님!”
문신의 남자도 마찬가지로 회칼을 꺼냈다.
들춰진 마이 안쪽에 경찰들이나 차고 다닐법한 가죽으로 된 칼집을 매고 있었다.
“우짜까잉, 다 뒈져야 쓰것네. 우덜 너무 원망 마소.”
짧은 머리의 조폭 보스가 다음 먹이를 찾아 쭉 째진 눈을 희번덕거렸다.
“아저씨, 망치 좀 주세요.”
어느새 목수에게 다가간 은성이 손을 내밀었다.
갑자기 다가온 은성에게 목수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는 저도 모르게 남구를 돌아봤다.
마치 예언을 들은 적이 있는 것만 같았다.
“허!”
은성에게 놀라 커졌던 목수의 눈이 남구를 돌아보고는 한층 크게 부릅떠졌다.
꿀꺽- 꿀꺽-
남구는 오렌지 주스를 마시고 있었다.
목수는 갑자기 다가와 다짜고짜 망치를 요구하는 은성보다 이 상황에 태연하게 주스 따위를 마시고 있는 남구에게 더 놀랐다.
“뭐 저런 놈이 다 있지?”
자기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목수의 부릅떠진 눈에 남구의 옆에 바짝 붙어있는 웬 뚱뚱한 여자아이가 같이 들어왔다.
잔뜩 인상을 쓰고 남구를 째려보고 있었다.
“넌 지금 그런 게 목구멍으로 넘어가니?”
남구는 예솔의 핀잔에 들쳐 올려 입에 댄 1.5L 주스 통을 내리지도 않은 채 눈동자만 움직여 쳐다봤다.
‘풍만한 아가야, 나는 잠깐의 휴식도 못 취하고 여기까지 달려왔단다. 조금 전까지 온몸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어. 나도 숨 좀 돌리자.’
예솔은 남구를 가자미 눈으로 흘겨보며 한층 더 인상을 찡그렸다.
“아저씨, 망치 좀 달라고요.”
은성의 재촉에 화들짝 목수의 상념이 깨졌다.
목수는 느릿느릿 꺼림직하게 망치를 꺼내 들었다.
“그, 그런데 이거는······.”
내키지 않는 듯 느리게 들어 올려지는 망치를 은성은 잽싸게 받아 들었다.
그리고는 성큼성큼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허, 이것 참!”
목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남구와 은성을 번갈아 돌아봤다.
‘요즘 아이들은 다 저런가? 당돌하구만! 어떻게 저렇게 겁이 없지?’
어린 학생이지만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키가 크고 체격이 건장하긴 했다.
목공 벨트에서 나머지 여러 공구를 손으로 훑었다.
뭐가 좋을지 고민을 거듭했다.
그중 가장 기다란 드라이버를 빼 들었다.
언제나 능숙하게 사용했던 연장이지만 지금은 드라이버를 든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어쩌다 이런 일이······.”
은성을 따라 앞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리가 바닥에 뿌리라도 내린 듯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목수는 이제 습관이 된 듯 남구를 돌아봤다.
어이없게도 지금은 초콜릿을 까먹고 있었다.
‘말로만 들어봤던 사이코패스인가?’
남구의 표정은 한없이 태연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았다.
이제는 더 도망칠 곳을 찾지 못하고 벽 쪽에 달라붙어서 벌벌 떨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섬 같았다.
“헉!”
목수는 벼락에 맞은 듯 어떤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목수의 시선이 걸어 나가는 은성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가능성은 없어 보이지만 만약······.”
‘만약 저 망치를 든 아이가 조폭 세 명을 모두 죽이면 어떻게 될까?’
공황에 빠진 사람들을 봤을 때 더욱 가능성이 없어 보였지만 혹시 모를 생각이 들었다.
‘저 망치를 든 아이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뭉치면 어떻게 될까?’
목수는 홀린 듯 중얼거렸다.
“세 명을 죽일 수 있을까?”
목수의 부릅뜬 시선이 은성의 뒷모습에서 남구로 향했다.
‘저 사이코패스 같은 아이는 조폭들이 죽고 난 다음을 준비하는 것 같은데?’
지하 공간에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야아아아아!”
어쩔 줄 몰라 하던 목수가 깜짝 놀라 돌아봤다.
목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망치를 들고 고함을 지른 은성을 주목했다.
심지어 3명의 조폭도 제자리에 멈춰 앞을 막아선 은성을 바라봤다.
“모두 그냥 죽을 거예요?”
은성은 가슴을 부풀리며 큰 소리로 계속 외쳤다.
“저놈들은 세 명이 전부야!”
남구가 장바구니에서 초콜릿 자유공간을 하나 더 꺼내 한입에 쑤셔 넣고 깐 비닐 껍질을 뒤로 휙 던졌다.
“아야!”
예솔의 얼굴에 맞았지만, 남구는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는 50명이야!”
‘49명이란다, 은성아! 한 명 죽었잖아. 숫자는 똑바로 세야지.’
남구의 풍선처럼 부푼 볼이 힘겹게 움직였다.
예솔은 여전히 심각한 표정으로 남구를 째려보고 있었다.
은성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그냥 죽을 거야? 나를 도와 바지 끄덩이라도 붙잡아. 내가 저놈들을 모두 죽여 주마!”
은성의 모습을 보고는 목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중얼거렸다.
“만화를 너무 본 거 아니야?”
은성의 우렁찬 목소리는 계속됐다.
“안 그러면 차례대로 죽을 뿐이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남구도 똑같이 고개를 절레절레 휘젓고 있었다.
‘나대지 않으면 은성이가 아니지!’
그러면서 은근슬쩍 사람들의 뒤로 자연스럽게 숨어다니며 앞으로 조금씩 나아갔다.
‘하여간 알아줘야 한다니까. 아주 슈퍼히어로 나셨어요.’
아직도 입 안에 있는 초콜릿을 다 삼키지 못했다.
사실 입안에서 조금씩 음미하며 먹고 있었다.
비닐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날까 봐 그냥 한입에 털어 넣은 것이다.
빨리 먹기는 아까웠다.
‘아! 너무 맛있어. 이게 얼마 만에 먹어보는 천상의 맛이냐?’
너무도 그리웠던 맛이었다.
‘딱딱한 빵 한 덩이로 며칠을 버틸 때는 얼마나 서러웠던가!’
눈물 젖은 빵을 많이도 먹었었다.
생각 같아서는 앉아서 장바구니에 든 것을 이것저것 다 먹어 치우고 싶었다.
“야, 강남구!”
남구가 한껏 목소리를 낮춰 부르는 예솔을 향해 검지를 세워 입술에 붙였다.
예솔이 발을 동동 굴렀다.
마치 혼자가 된 기분이었다.
“아이, 쟤는 대체 뭐 하는 거야?”
자신의 키와 비슷했고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만 같이 삐쩍 말라비틀어진 남구였지만 그마저 옆에 없으니 덜컥 겁을 집어먹었다.
은성으로 인해 주위는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은성의 외침에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던 몇몇 사람이 근처로 쭈뼛쭈뼛 모여들었다.
“마, 맞아! 이대로면 다 칼 맞아 죽는다고.”
“그, 그래, 다들 모여요.”
다가오는 사람들을 보며 은성은 환영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분위기에 이끌린 탓일까?
목수도 드라이버를 고쳐잡고 은성의 근처로 발걸음을 내디디며 소리쳤다.
“자, 하나씩 받아요.”
자신의 공구를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참여하기를 유도했다.
“오! 고맙습니다.”
“헉! 저도 하나 주세요.”
“저, 저는 이걸로.”
“아, 밀지 마세요.”
목수의 목공 공구가 기폭제가 되어 점점 더 모여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구만 챙기고 다시 슬그머니 물러나는 사람도 있었다.
‘저 아저씨,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구만.’
지금의 동료가 언제 적으로 돌변할지 모르는 시스템이다.
어차피 3명밖에 살아남지 못한다.
자신이 쥐여준 공구에 자신이 죽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남구는 은성에게 모여드는 사람들을 싸늘한 눈으로 훑어봤다.
‘모두 저 사시미를 얻어 최후의 생존자가 되고 싶겠지!’
아무리 처음이라지만 목수는 너무 순진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도 믿을 수 없는데 말이야!’
저런 선한 사람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대부분 죽어버릴 게 분명했다.
목수 같은 사람이 많을수록 남구의 생존확률은 더욱 올라갈 것이다.
천성인지, 따돌림을 받고 외톨이로 지낸 경험 때문인지, 사지를 넘나들던 세월 때문인지 남구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최후까지 은성마저 완전히 믿지 않았다.
단지 은성보다 더 나은 대안이 없었을 뿐이었다.
“아야, 뭔 지랄염병하고 자빠 잤냐?”
피로 얼룩진 짧은 머리의 보스는 티가 나지 않았지만 두 똘마니는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49명 중 절반 정도는 은성의 뒤에 옹기종기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목수의 공구가 큰 힘을 발휘했다.
남구의 눈에는 망치 말고는 치명적인 무기로 쓸 만한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저런 것들로 사람을 죽이려면 하세월이겠군.’
은성의 무리가 총인원의 절반을 넘어서자 나머지 사람들도 급격하게 모여들었다.
처음에는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은성의 뒤에 섰지만, 지금은 엄마 손을 놓친 아이처럼 달음박질치고 있었다.
‘건달 아저씨,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렸어.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이 딱 맞구만. 아무리 칼을 들고 있다지만 처음부터 너무 설치셨어요.’
은성의 무리를 모두 죽인다고 해도 멀쩡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이길 수 있어요. 저 쓰레기들을 해치웁시다."
은성은 자신의 주위로 모여든 사람들을 격려했다.
눈을 맞춰가며 자신감을 불러일으켰다.
“큭큭큭큭큭큭!”
짧은 머리의 보스가 실성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아야, 니 시방 뭐라고 혔냐? 쓰레기? 니 죽고 잪어 환장혔냐? 아가리를 확 찢어 뿔라!”
덕지덕지 피를 묻히고 희번덕거리는 눈빛으로 목청을 높이는 조폭 보스를 보고 기세가 오르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움츠러들었다.
그러나 은성은 은성이었다.
“닥쳐! 대가리를 으깨주마! 쓰레기 새끼!”
당당하게 서서 결코 밀리지 않았다.
“왐마? 아이고, 그려 니 똥 굵다. 니 똥 칼라여!”
조폭 보스는 양옆의 똘마니들에게 눈짓을 했다.
보스의 신호를 받은 똘마니 둘은 몸을 긴장시키며 앞으로 튀어 나갈 태세를 갖췄다.
보스는 희번덕거리는 눈빛을 은성에게 보냈다.
“니는 나가 필히 조사버릴 거시여.”
피에 젖은 회칼을 길게 빼낸 혀로 핥았다.
그 모습에 사람들이 기겁하며 몸을 떨었다.
시뻘겋게 물든 입술을 열고 날카롭게 외쳤다.
“야들아, 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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