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크리처 (1)
모자란 시간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방비를 마친 박 부장이 초조한 눈동자를 매장 전면에 쳐놓은 가림막으로 돌렸다.
돌아본 박 부장의 눈동자가 요동쳤다.
사람들은 쌓아 놓은 진열장과 매대의 빈틈으로 총열을 거치하며 박 부장의 애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격 부심을 부렸다.
“아, 글쎄 맡겨 두라니까요. 사격으로 맨날 휴가 나왔다니까요.”
“저는 야간 사격에서도 휴가증 받았어요.”
“크흠, 특등 사수였습니다.”
“여기 어디 특등사수 아닌 사람 있나?”
박 부장이 총알 한두 발로는 죽일 수 없다고 누차 당부했지만, 사람들은 겁먹었던 처음과는 달리 자신만만해했다.
지시대로 따르다 보니 진행된 상황이 매우 유리해 보였다.
장애물을 짧은 시간 안에 급히 만드느라 고생은 했다지만 그 장애물이 자신들의 앞을 든든하게 지켜주었으며 이 많은 사람에도 불구하고 총도 각자 한 자루 이상씩 가지고 있었다.
총기뿐만 아니라 수류탄까지 소지했다.
턱끈을 제대로 조이지 못해 삐뚜름하게 방탄 헬멧을 눌러 쓴 자도 있었고 군용 대검을 들고 장난을 치는 사람도 있었으며 탄창을 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에 탄입대를 넘어 주머니까지 빵빵한 이도 있었다.
지하 매장 창고는 램프의 요정이 사는 보물창고가 아닐 수 없었다.
비록 장애물로 삼은 매장 집기들이 일반 가구보다는 가볍고 빈틈이 많은 구조였지만 높다랗게 겹겹이 쌓아 놓아 호랑이가 덮친다고 해도 쉽게 뚫지 못할 듯했다.
크리처는 사자나 호랑이보다는 훨씬 작은 덩치였다.
얼추 대형 견이나 늑대 정도 되어 보였다.
중무장을 하고 장애물 뒤편에서 안전하게 총만 쏘면 되었기에 점점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출입문의 좁은 틈으로 한 마리씩 들어오는 정도는 쌓아둔 장애물로 접근하기도 전에 다수가 한꺼번에 발사하는 일제 사격으로 가뿐하게 녹여낼 만했다.
좀비 떼가 총성에 이끌려 몰려올 것까지 철저히 대비하고 있었다.
크리처를 다 잡고 나면 더 이상 좀비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출입구의 깨진 유리를 막을 사람들도 따로 준비되어 있었다.
그 사람들은 좀비의 이빨에 대비해 커다란 방패와 방어 장구도 착용했다.
좀비와의 근접전에 투입되는 위험부담이 있었지만, 수량이 모자란 경찰 방패와 전신 보호 장구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지원자가 많았다.
생존은 하루 이틀에 끝날 일이 아니었고 이런 귀한 장비를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매장 전면 전체에 가림막이 처져 있었기에 작전을 마치고 난 후 조용하게 기다리기만 하면 매장으로 들어오지 못한 좀비는 또다시 물러날 것이다.
도무지 질 것 같지 않은 기분에 사람들의 사기는 드높았으며 일부 LP의 개념을 파악하고 있는 자들은 탐욕스러운 눈빛까지 내비쳤다.
남구는 1층 매장에 올라오자마자 복도와 만나는 벽면 모서리에 등을 기대고 팔짱까지 끼고서 묵묵하게 진행 상황을 관망했다.
‘자만이든 탐욕이든 어찌 됐든 사기가 높긴 하군. 얼마나 가려나?’
각종 집기로 구축된 진지와 그 뒤에서 사격 위치를 잡은 사람들을 쓱 훑어본 남구의 눈동자가 박 부장의 초조한 눈길을 따라 가림막으로 향했다.
박 부장이 다급하게 장애물 설치를 마무리한 이유가 있었다.
어기적거리던 마지막 좀비의 그림자가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다.
길쭉길쭉한 크리처들의 실루엣만이 가림막에 넘실거렸다.
또한 그 모습이 보다 부산스러워졌다.
남구가 느긋하게 발목을 교차해 꼬고는 박 부장을 불렸다.
“부장님!”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서도 멀찌감치서 부른 남구의 목소리는 화살처럼 고막에 꽂히는 듯했다.
가림막 뒤편 크리처의 동태를 살피던 박 부장이 부리나케 돌아봤다.
온통 하얗게 센 머리카락을 타고 흠뻑 젖은 땀방울이 후드득 튀어 나갔다.
박 부장의 긴장한 눈동자에 비친 남구의 모습은 한가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비스듬히 기대서서 팔다리를 꼬고 유유자적 매장을 휘휘 둘러보는 남구에게 긴장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허, 참!”
박 부장은 저도 모르게 탄식이 튀어나왔다.
크리처의 습격에 대비해 살 떨리는 심정으로 똥줄을 태워 가면서 부랴부랴 방비한 자신이 한심하게까지 느껴졌다.
저 한량 같은 모습의 남구를 보니 맥이 탁 풀려 버렸다.
박 부장이 계집아이처럼 곱고 앳된 남구의 얼굴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아직 어려서 철이 없는 건가?’
대단한 위용을 발휘하는 남구를 마냥 철없는 아이로 치부할 수가 없었다.
‘담대한 거겠지! 하긴, 지금까지 한결같은 모습이기는 하구만.’
남구가 활약하던 모습은 박 부장의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평생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남을 것이 분명했다.
남구가 퉁명스럽게 툭 말을 던졌다.
“이제 그만 내려가세요.”
비록 인사치레라 할지라도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가 없었다.
박 부장은 적지 않은 나이에 집채만 한 진열장을 이리저리 옮기고 쌓느라 진이 다 빠져버렸다.
저마다 자기가 잘났다고 개별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이끄는 일도 쉽지만은 않았다.
살짝 감정이 상한 박 부장의 걸걸한 목소리도 퉁명스러웠다.
“여기 지휘는 어떻게 하고?”
남구가 한쪽 입꼬리를 삐쭉 말아 올렸다.
‘저 사람들은 단지 미끼에 불과하답니다. 지휘 같은 거 필요도 없고 되지도 않을 겁니다.’
언제나 미끼 역할을 해오던 남구가 이제는 미끼를 던지는 자리에 있었다.
괄목할 만한 놀라운 변화였다.
절로 만족스러운 미소가 얼굴 가득 퍼져나갔다.
질문에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비릿한 미소만 짓는 까닭을 몰라 박 부장은 어리둥절해졌다.
그런 박 부장에게 남구가 내려가라고 재차 고갯짓을 했다.
한마디 말도 없이 썩 기분 좋지 않은 야릇한 미소를 머금고 턱짓만 까딱까딱해대는 싹퉁 머리에 박 부장은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하지만 박 부장은 현명하고 실리적인 사람이었다.
망해버린 세상에서 장유유서나 예의범절보다는 살아남는 것이 중요했다.
남구의 나이는 비록 자식뻘이었지만 독보적으로 탁월하고 유능했다.
그를 따른다면 생존할 가능성이 현저히 커지리란 것을 박 부장은 누구보다 잘 인지하고 있었다.
꼭 살아남아 아들을 찾고 싶었다.
박 부장이 남구의 턱짓대로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덫을 놓고 기다리는 사냥꾼처럼 짜릿한 흥분에 들떠 보이기까지 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남구에게 다가서서 물었다.
“여기 자네가 지휘할 텐가?”
“딱히 지휘가 필요 없을 겁니다. 내려가세요. 직원들 기다려요.”
“으흠, 그래 알겠네.”
지휘가 필요 없다는 남구의 말에 어쩐지 미심쩍고 불안했지만 가타부타 잔소리를 할 수는 없었다.
남구는 말이 길어지는 것을 싫어한다고 했었다.
겪어본 바로는 실제로도 그랬다.
웬만한 계집아이보다도 곱상하게 생겼으나 생긴 것과는 영 딴판으로 꼭 필요한 말만 하는 과묵한 애늙은이 같았다.
박 부장은 노파심이 들었지만, 꼰대처럼 보이기는 싫었다.
또한 이 모든 계획의 수립자는 다름 아닌 남구였다.
주제넘게 감 놔라 배 놔라 할 처지가 아닌 듯했다.
만약 남구가 옛날 왕족으로 태어났다면 분명 지독한 폭군이 됐을 거라는 섭섭함이 빚어낸 상상을 하며 박 부장은 이곳저곳으로 눈알을 굴리고 있는 남구를 그대로 지나쳐 복도를 내려갔다.
비교적 넓은 폭의 복도는 온갖 물품을 원활하게 나르기 위해 만들어진 용도이니만큼 계단도 없이 완만한 경사로 지하 매장을 향해 쭉 이어졌다.
장애물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직원들이 어서 오라는 듯 손을 흔들며 박 부장을 환영했다.
박 부장도 웃어 보이며 손을 흔들기 위해 팔을 들어 올렸다.
짜자자작- 차창-
날카로운 유리창 파열음이 높은음으로 매장 전체를 뒤흔들었다.
“헉!”
어정쩡하게 팔은 든 박 부장이 들숨을 뱉지도 못한 채 고개를 휘돌렸다.
“달리세요.”
상황에 맞지 않는 남구의 평탄한 목소리가 간단명료하게 의미를 전달했다.
박 부장은 무호흡 상태에서 대답도 하지 못하고 직원들이 숨어있는 곳을 향해 땀에 젖은 흰머리를 휘날리며 내달리기 시작했다.
출입구에 기다랗게 늘어져 있던 가림막이 박 부장의 머리카락만큼이나 펄럭 들쳐졌다.
그 안에서 소름 끼치도록 흉측한 생김새의 생명체가 대가리를 불쑥 들이밀었다.
대가리는 터럭도 하나 없이 두껍게 느껴지는 거죽으로 덮여 있었고 그 두꺼운 거죽은 자글자글 당겨 올려져 쫙 찢어진 주둥이를 들추었다.
들쳐 올라간 아가리 안에 촘촘하게 맞물린 예리한 이빨이 훤히 보였다.
날카롭게 날이 선 뾰쪽뾰쪽한 이빨을 타고 흘러내린 진득한 타액이 먹고 싶어서 못 참겠다는 듯 대롱대롱 매달려 기다랗게 늘어졌다.
살기를 품은 큼지막한 안구가 적당한 먹이를 찾아 분주하게 좌우를 휘적대며 희번덕거렸다.
사람들은 크리처의 모습을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자신은 먹잇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히익!”
“허어어억!”
“으, 으으으!”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멎을 것 같은 흉악한 생김새의 크리처를 발견한 몇몇 사람이 저도 모르게 방아쇠를 당겼다.
타다다다당-
총성에 놀라 돌아본 모든 사람이 크리처라는 괴수를 같은 공간에서 생생히 목도하였다.
공포와 죽음의 기운이 삽시간에 매장 전체를 잠식해 버렸다.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처절한 몸부림이 봇물 터지듯 일었다.
“쏴! 쏴! 모두 쏴!”
“죽어라! 이 더러운 새끼들아!”
타다다당- 타다당- 타다다다당-
빠캉- 철컥- 빠캉- 철컥-
타앙- 탕탕탕- 탕탕- 탕탕탕-
소음에 이끌릴 좀비를 염려하던 사람들이 목청껏 비명과 고성을 내질렀다.
동시에 온갖 종류의 화기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쏘아대는 탄환이 진입하는 크리처에게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창졸간 크리처의 몸뚱이는 구멍이 숭숭 뚫리며 사방으로 피를 뿌렸다.
그런데도 늘씬하고 날렵한 형태의 크리처는 미꾸라지 같은 몸짓으로 좁은 입구를 잽싸게 통과했다.
소나기처럼 퍼부어지는 탄환에 살덩이가 뭉텅이로 패이다가 길쭉한 앞발 한쪽이 떨어져 나갔다.
“크아아아앙!”
크리처는 포효를 내지르며 비척비척 몇 걸음 더 내디뎠으나 벌집이 된 채 뭉그러진 대가리를 바닥에 처박고 고꾸라졌다.
하지만 격정적으로 날아드는 탄환은 멈출 기미가 없었다.
모두가 목표에 집중 사격을 가할만한 실력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
또한 모두가 침착할 수도 없었다.
사람들은 생전 처음으로 마주하는 크리처의 흉측한 모습을 바로 코앞에서 볼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새로운 종의 맹수였다.
포식자의 살기등등한 기세를 먹잇감의 처지에서 직접 피부로 느꼈다.
침착함을 유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당황하고 놀란 사람은 개중 양반이었다.
공황에 빠져 자지러진 몇몇 사람이 덮어놓고 아무렇게나 마구 쏘아대는 탄환에 가림막이 춤을 추듯 펄럭였다.
타당- 타당- 타다다당-
짜작- 짜작- 짜자자작- 차자자장-
전면 유리가 난사된 탄환에 연달아 구멍이 나며 와장창 깨져 나갔다.
쏟아져 내린 날카로운 유리 파편이 가림막이 처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광범위하게 흩뿌려졌다.
“우라질, 누구야?”
“제기랄, 어떤 새끼야?”
“장애물에 막혀 있어서 괜찮아! 일단 들어오는 놈들만 쏴!”
“그냥 입구에 집중해!”
탄환에 깨어진 유리 뒤로는 촘촘하게 각종 집기로 장애물이 설치되어 있어서 비록 유리가 깨졌다 하더라도 매장 안으로 쉽게 들어올 수는 없었다.
타다다당- 타다다다다당-
하지만 장애물 역할을 하는 집기는 엉뚱하게 날아오는 탄환에 계속 맞아 그 파편을 무수하게 흩날렸다.
타다다다당- 철커덕-
빠캉- 철컥- 철컥- 철컥-
탕탕- 딸깍- 딸깍-
사방에 빈 공이 소리가 연속해서 울려 퍼졌다.
그와 함께 가림막이 들쳐지며 크리처의 대가리가 또다시 튀어나왔다.
“탄창 교환해!”
“예비조, 안 쏘고 뭐 해?”
“이런, 쏴, 쏴버렸는데.”
“모, 모두 쏘라며!”
혼비백산한 사람이 수두룩한 와중에도 신속하게 탄을 갈고 정확하게 조준하여 방아쇠를 당기는 사람도 있었다.
타다당- 타다다당-
타앙- 탕탕-
하지만 처음보다 집중되는 화망이 현저하게 옅어졌다.
입구를 빠져나온 크리처가 날아드는 탄환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움찔움찔 전진했다.
그동안 또 다른 크리처가 순식간에 진입했다.
들어오자마자 쌓아 놓은 장애물로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그 뒤를 따라 또다시 새로운 크리처가 깨진 유리 문짝의 틈바구니를 마치 헤엄치듯 부드럽게 통과했다.
마트로 들어오는 크리처의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선작, 추천은 작가의 우울증을 예방할 수 있답니다. 볼만 하셨다면 꾹~ 눌러주세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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