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잡초 제거
남구의 삐뚜름한 입술에서 배실배실 웃음이 샜다.
“흐흐, 앞으로 매끼 따끈따끈한 고기랑 신선한 채소 먹을 사람은 모이라고 하세요. 그럼 금방 모이지 않을까요?”
모두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남구를 바라봤다.
‘눈빛들이 왜 이래? 삼식이가 팀에 낀 거 보면 모르나?’
남구가 당황스러워하는 눈빛들을 마주 보며 이어 말했다.
“쓸만한 사람 영입한다고 해요.”
박영호가 깜짝 놀라 물었다.
“그게 가능해요?”
“가능해! 지금은 사람이 모자라서 다섯 명씩 짝지었을 뿐이야. 데스 게임에 투입되는 팀이 많아야 그만큼 생명 에너지를 많이 벌잖아. 원래는 방 하나당 최대 인원이 10명이거든.”
최남단이 바로 수긍했다.
“맞나? 점마들 환장해가 달려들 끼다. 발바닥이라도 핥을라고 할 끼야.”
조무모가 궁금증 가득한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이방, 한 20명은 들어올 것 같은데? 그럼 한 팀에 20명도 가능한 건가?”
“팀당 10명이 최대 인원이에요. 얘네들도 자기들 나름대로 다 규칙이 있어요. 그거 어기면 전쟁 납니다.”
“아! 그렇구나!”
남구는 계속되는 질문이 귀찮았다.
‘반나절 동안 얘기했으면 됐잖아?’
언제까지 수다나 떨며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
남구가 파자마를 벗고 트레이닝복을 꺼내 입으며 스킬 갈파를 사용해 지시를 이어 나갔다.
“호실별로 오와 열 맞추어서 전원 대기하라고 전하세요. 거동이 불편한 인원이 있으면 업고, 죽었으면 시체라도 들고나오라고 해요.”
부상자는 그렇다 치더라도 시체는 왜 끌고 나오라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으나 스킬 갈파가 섞여 든 남구의 목소리를 팀원들은 도저히 거부할 수 없었다.
계속 질문을 해대고 싶은 입을 꾹 닫았다.
방금 남구의 지시에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추상과도 같은 절대적 권위가 느껴졌다.
“네!”
“오케이!”
“자, 어서 갑시다.”
최남단은 다른 이들과 다르게 연륜만큼이나 정신력이 강했다.
바닥에서 엉거주춤 엉덩이를 떼며 그다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물었다.
“내 사 마 가마이 보니까네, 짐승 같은 노무 쒜리들 천지삐까리다. 저 봐라! 같은 팀원 아를 걍 때리 쥑이삤다. 저 아 보상받은 LP 지가 다 처묵었다. 점마들 참말로 받을 끼가?”
남구가 한쪽 입꼬리를 삐쭉 비틀어 올렸다.
스킬 갈파의 쓸모없음에 자조 섞인 미소가 절로 나왔다.
비틀린 입술에서 잔잔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후후후, 이런 걸 떡밥이라고 하죠? 서로 몸 비비고 살 사람을 그냥 막 뽑을 수야 있나요. 앞으로 쭉 지켜볼 겁니다.”
“글나? 큭큭, 대포 까는 기가? 하모! 오야붕 성격 억수로 신중하데이, 내 진작 알았꾸마.”
팽석수가 공터로 나가며 재촉했다.
“형님! 수다 좀 그만 떨고 나와요.”
“알았다. 퍼뜩 가제이.”
근심을 던 얼굴로 낯빛이 환해져 나가는 최남단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남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미 지난 과거지만 남들이 패스하는 스킬을 너무 많이 주워 먹었어.’
삼식이 가죽옷으로 갈아입고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보며 입을 열었다.
“이 옷, 생각보다 편한데요? 치수가 딱 맞네?”
“죄수복보다는 나을 거야.”
“이 뼈다귀들 방어력은 어때요?”
“내가 칼질하면 다 부서져. 총 맞으면 작살나겠지? 밋밋해서 붙여 놓은 거야. 그래도 없는 거보다는 낫지 않니?”
“푸헤헤! 뼈가 붙어 있으니까 더 멋있는데요?”
“그래도 한방 견디는 게 어디냐. 승부는 종이 한 장 차이로 나기도 하지!”
“그럼요. 잘 입을게요.”
싱글벙글한 삼식이 팀원들이 나간 공터로 시선을 돌렸다.
“사람들이 다 괜찮던데요? 형님 갈파에도 소신 있게 충고를 다 하는 사람도 있고.”
“난 성격 상관 안 해! 변 과장 같은 똥 덩어리만 아니면 돼! 아 참! 넌 변 과장 모르지?”
“푸헤헤! 저야 모르죠.”
“근데 네 말 대로 괜찮은 사람들인 건 맞아. LP 효율도 높고 쓸 만해! 잘 키워 봐야지!”
“저처럼요?”
“풋! 그래, 너처럼.”
“이 몸으로 1년간 살아 봤지만 정말 형님같이 저를 하나의 인간으로 봐주는 사람이 드물더라고요. 아니, 딱 두 명밖에 없었어요. 부장님하고 형님요.”
남구가 이죽거리며 삼식을 쳐다봤다.
“부장님은 늑대잖아! 너랑 같은 처지 아니니?”
“아, 그렇군요.”
“그럼 나밖에 없는 거네?”
“아! 그, 그렇군요.”
“삼식아! 앞으로 잘해!”
“우헤헤! 네, 형님!”
얼마 지나지 않아 박영호가 공터로 통하는 문으로 얼굴을 쏙 들이밀었다.
“대장! 벌써 다 모였어요.”
고개를 끄덕인 남구가 1호실을 나섰다.
삼식도 남구의 뒤를 따랐다.
사람들은 오와 열까지 맞추지는 않았지만 각각의 호실별로 단 한 명의 열외 없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룹이 14개라! 70명 정도 되겠군.’
태연하게 터벅터벅 걸어 나오는 남구를 모두의 눈동자가 주시했다.
남구가 모여든 사람들의 앞에 자리하자 삼식과 팀원들도 남구의 뒤에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의 시선은 당당히 앞에 서서 굽어보는 남구에게서 한순간도 떨어질 줄 몰랐다.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애초부터 이곳에서 홀로 지내던 자였고 끼니마다 특식이 제공되는 자였으며 차고 넘치는 물품의 소유자임과 동시에 유일한 외국인이기도 했다.
또한 수하에 팀원들은 아무도 죽지 않았다.
유일무이한 자를 마주하는 사람들의 눈동자는 호기심과 경외심과 두려움이 복합적으로 혼재했다.
다양한 감정이 혼재한 눈동자에 가장 두드러진 감정은 욕망이었다.
사람들은 이가 부러질 듯한 빵만 뜯어 먹다가 영양실조로 곧 죽어버릴 것만 같아 두려웠다.
먹는 것이 곧 생존인 이곳에서 어떻게 해서라도 1호실의 팀원이 되고 싶었다.
남구가 같은 문양의 낙인이 찍힌 사람들과 마주 서서 좌에서 우로 고개를 돌리며 한 바퀴 쓱 훑어봤다.
오늘 소환된 사람들은 잔뜩 겁에 질려 휘둥그레 뜬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후들후들 떨고만 있었다.
사람이 아닌 형상의 지적생명체가 버젓이 활보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공간에서 의지할 사람 하나 없이 난생처음 보는 사람들과 뒤섞여 있는 자체를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상처 입지 않은 자가 거의 없었고 목숨이 위태로울 지경으로 치명상을 입은 자도 적지 않았다.
바닥에는 아이템을 뺏기지 않기 위해 버티다가 맞아죽은 시체까지 몇 구 널브러져 있었다.
비록 1주일 차이라지만 데스 게임을 경험한 자들은 눈빛부터가 달라져 있었다.
이곳에 모인 사람 중에는 단지 LP를 강탈하기 위해 거리낌 없이 동료를 죽인 사람도 존재했다.
남구의 눈동자가 시체를 들고나온 그룹으로 이동했다.
눈여겨봤던 한 명을 불러냈다.
“너! 이리 나와!”
갑자기 지목된 험상궂게 생긴 40대 중반의 남자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제 손가락으로 자신의 우람한 가슴 근육을 가리켰다.
“나?”
기껏해야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이가 다짜고짜 반말을 내뱉었으나 지목된 남자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험상궂은 얼굴이 활짝 피었다.
종종걸음을 치며 무리에서 이탈해 삼식을 대동하고 서 있는 남구의 앞으로 다가왔다.
흉측한 뼈다귀와 북실거리는 털가죽을 걸친 거대한 몬스터가 너무나 두려워 가까이 다가설 수는 없었다.
멀찍이 떨어져 선 남자가 벅차오르는 목소리를 발했다.
“정말 고마워! 눈썰미가 있네! 사람 잘 본 거야! 내가 힘 좀 쓰거든. 여기 끌려오기 전까지만 해도 100명도 넘게 거느리고 있던 사람이야! 내가!”
남구의 시선이 신이 나서 수다를 떠는 남자를 지나쳤다.
험상궂은 남자의 그룹에 속한 사람들은 새로 맞이한 두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멀쩡하지 못했다.
얻어맞은 얼굴이 알록달록 팅팅 부어올랐다.
‘아주 혼자서 다 해쳐 드셨구만!’
바닥에는 맞아 죽은 여자의 시체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데스 게임에서 살아남았는데 돌아와서 맞아 죽다니! 모두가 다 내 손발이 될 인재들인데 큰 손실이 아닐 수 없군.’
험상궂은 인상의 남자가 남구의 시선을 쫓아 뒤를 돌아다봤다.
“아! 쟤들? 신경 쓸 필요 없어. 약해 빠진 놈들이야.”
남구의 시선이 죽은 여자에게 향하자 험상궂은 남자가 변명을 늘어놓았다.
“저 여자는 아주 약하더군. 꽥꽥 소리나 지르고 질질 짜기나 하고 말이야. 같이 하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컸어. 저 여자 때문에 우리 모두 목숨이 위태로울 수는 없잖아? 안 그래? 사람 새로 받는 게 모두를 위해 더 좋은 일이지!”
기도차지 않는 얘기에 불현듯 예솔이 떠올랐다.
‘뭐가 저렇게 당당하지? 인간이란 참 빨리도 환경에 적응하는군. 벌써 이런 게 상식이 된 걸까? 예솔이는 은성이가 잘 데리고 있겠지? 그래도 입으로는 정의를 부르짖는 놈이니까 또 그만한 힘도 있고.’
두툼한 고깃덩이를 뜯을 생각으로 만면에 웃음꽃을 피우고 변명을 늘어놓던 남자를 향해 남구가 가타부타 일언반구도 없이 손바닥을 펼쳐 들었다.
중력제어가 곧바로 남자의 몸뚱이에 적용됐다.
허억! 꽈당-
함박웃음을 짓던 남자가 납작하게 엎어져 험상궂은 얼굴을 온통 일그러뜨리며 사지를 부들부들 떨어댔다.
공터에 모인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 주춤주춤 물러서며 동요했다.
남구의 담담한 목소리가 잔잔하게 흘러나왔다.
“거짓말이 그냥 입에 붙었구만. 아이템이랑 LP가 갖고 싶은 것뿐이잖아! 뭔 주절주절 말이 많아?”
갑자기 눈이 팅팅 부은 남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맞아요! 저놈이 몰래 기습해서 죽인 사람도 있어요. 우리 방에서 제일 센 사람이었는데.”
똑같이 눈이 팅팅 부은 같은 방 사람이 동조하고 나섰다.
“우리가 다 죽을 뻔한 건 정작 저놈 때문이라고. 몬스터를 다 잡지도 않았는데 열심히 싸우는 사람 뒤를 쳤다니까!”
남구의 무자비한 짓거리에 놀란 사람들의 소요가 두 사람의 발고 덕분인지 서서히 가라앉았다.
바닥에 찌그러진 남자는 가공할 압력에 단 한마디 변명도 하지 못한 채 가는 신음만을 줄기차게 뱉어냈다.
“으으, 으으으!”
남구의 뻗은 팔이 점점 밑으로 내려갔다.
그에 따라 더욱더 격한 신음이 토해졌다.
“컥! 끄으으으!”
눈동자로 중력제어를 펼쳐도 충분했지만, 사람들 앞에서 눈에 띄는 퍼포먼스를 선보여야 했다.
‘내 말 한마디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최강의 정예 병력이 필요해!’
험상궂은 남자가 빼앗은 마법서로 익힌 스킬을 사용했다.
무영창 기법을 깨닫지 못해 붕어처럼 입을 벙끗거리다 간신히 스킬명을 발했다.
“끄윽! 흐으으, 그, 근력 증폭!”
과거 수철이 즐겨 쓰던 꽤 활용도 높은 스킬이 펼쳐졌다.
온몸의 근육이 꿈틀거렸다.
곧 펑퍼짐하던 옷이 부피를 늘린 근육으로 꽉 들어차 팽팽하게 당겨졌다.
그러나 옴짝달싹 못 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숙련도 1%도 안 되는 게 내 중력제어를 이겨보겠다고?’
남구가 펼친 손바닥을 지그시 내리눌렀다.
우드드득- 퍼억-
뼈가 으스러지며 살갗을 비집고 부러진 뼈마디가 튀어나왔다.
“끄아아아!”
퍽- 퍽- 퍼억-
연쇄적으로 피부가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퍼버버버벅- 촤아아아악-
결국 풍선 터지듯 터져나간 몸뚱이에서 핏줄기가 사방 천지로 흩뿌려졌다.
쥐포처럼 바닥에 납작 들러붙은 시체를 보고 질겁한 사람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꺄아아악!”
“으아아악!”
“헉! 세상에!”
“어억! 이, 이럴 수가!”
남구가 짝다리를 짚고 우두커니 서서 사람들의 동요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비명을 내지르던 사람들이 남구의 훑어대는 안광에 기가 질린 듯 점차 목소리를 낮췄다.
공포에 질린 눈동자들이 모조리 남구에게 쏠려 풍랑을 만난 듯 일렁거렸다.
순간 벽력같은 외침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삼계명을 반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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