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누구냐, 넌 (2)
“헉!”
까무룩 해졌던 정신이 느닷없이 돌아왔다.
화들짝 놀랐지만 누운 자세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마감 처리도 하지 않은 천장에 노출된 철근과 시멘트가 껌뻑이는 눈에 들었다.
정신이 들자마자 어찌 된 영문인지 바로 인지했다.
‘살았구나!’
옆쪽에서 강렬한 빛이 느껴졌다.
저도 모르게 빛에 이끌린 남구는 누운 채 고개만 돌려 껌뻑임을 멈춘 눈으로 응시했다.
은성이 누워있는 진에서는 아직 강렬한 광원이 발하고 있었다.
‘난 끝난 건가? 성공한 거겠지?’
전에 봤던 시스템 메시지에 부가 설명이 불현듯 생각났다.
‘단 죽을 수 있다.’
왠지 모르게 조심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이 얼마나 소중한 몸뚱이던가.’
이 육신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죽고 죽이는 차마 눈 뜨고는 보지 못할 아비규환의 생지옥이 펼쳐졌었다.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될 것 같다는 노파심에 은성을 돌아보던 고개를 바로 하고 가만히 온몸의 감각을 느껴보았다.
‘눈만 감았다 뜬 것 같은데 마치 숙면을 한 듯 개운하군. 몸에서 느껴지는 이 활력은 대체······. 정신도 맑고 선명하구나! 남의 몸이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야!’
작고 바짝 말라 볼품없던 원래 몸이 떠올라 고개를 반대로 돌렸다.
그곳에는 남구 본인이 죽은 듯이 가만히 누워있었다.
‘저 몸보다 지금 이 몸이 더 내 몸같이 느껴지는 건 착각일까?’
며칠뿐이었으나 저 앙상한 몸은 정말이지 적응하기 힘들었었다.
‘저런 몸으로 여기까지 잘도 왔구나!’
한 발 떨어져서 보니 더 가련한 몸뚱이였다.
그 안타까운 몸은 얼굴이 창백했다.
가뜩이나 병자처럼 창백한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시체와 마찬가지로 보였다.
‘죽은 듯이 누워있는 게 아니라 죽었군. 시체와 마찬가지가 아니라 시체군.’
자기가 자기 죽은 모습을 보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마치 내가 죽은 걸 내가 보는 느낌인걸? 새로운 육체를 간절하게 원했지만, 저 모습을 보니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은데? 영 별로군.’
남구는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을 느끼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시신이 누워 있는 진에서 더는 광원이 발생하지 않았다.
지금 앉아 있는 곳도 광원이 꺼져 있었다.
진 자체가 사라졌으니 빛이 발생할 리가 없었다.
소명을 마치고 소멸한 듯 보였다.
다시 한번 은성을 돌아봤다.
‘저 녀석은 영혼 이식이 진행 중이고.’
정면을 바라보니 예솔이 벽에 기대앉아 곤히 잠들어 있었다.
‘결국, 보상으로 제공된 육체를 포기했구나!’
남구는 일어나서 가볍게 몸을 움직였다.
스트레칭을 하듯이 몸을 풀다가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하! 탄력이 굉장한데?’
주먹을 질러보고 발차기를 해 보았다.
‘이거 장난 아니네?’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알몸이었으나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용솟음치는 생명력을 만끽하기에도 모자랐다.
마약이라도 한 듯 황홀감에 빠져들었다.
‘이거이거, 관절이 이렇게 유연할 수가! 근질이 이렇게 부드러울 수도 있나?’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힘도 센 편인데? 그것도 상당히!’
시스템 창을 굳이 열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근력이 어느 정도 일지 대강 감이 왔다.
성장 과정을 한계까지 경험해본 남구로서는 굳이 시스템의 도움이 없어도 그만이었다.
‘정말 거지 같은 몸으로 고생고생 살다가 횡재했구나! 최상급 육체의 느낌은 이런 것인가?’
남구의 한쪽 입꼬리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삐뚜름하게 비틀려 올라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새로운 육신으로 다시 태어났어도 사악하게까지 보이는 본연의 웃음은 조금도 변함없었다.
원래 육신에 가졌던 애련한 연민과 가련한 동정심은 언제 그랬냐는 듯 남구의 머릿속에서 씻은 듯이 사라졌다.
신체발부 수지부모 같은 개념은 부모를 기억도 못 하는 남구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어디, 네가 진짜 그 가문의 일원인지 알아보자꾸나!’
무형의 기운을 신체에 받아들일 때 그 특성과 성질에 따라 자리하는 곳이 각기 달랐다.
과거 남구가 사용했던 기운의 근간은 단전에 자리를 잡았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정신을 집중했다.
‘중력의 권능이 있다면 되도록 단전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과거에 사용했던 기운의 운용 감각은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했다.
스킬을 얻지 못해도 평생을 갈고 닦은 기운이기에 스스로 단전에 그 뿌리를 생성할 수 있었다.
단지 근간이 되는 기운은 한자리에 딱 하나만 생성할 수 있었다.
뿌리가 두 개일 수는 없었다.
만약 중력의 권능이 자리 잡는 곳이 단전이 아니라면 두 가지 초자연적인 각기 다른 힘을 모두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상당한 메리트가 아닐 수 없다.
중력의 권능이 뿌리내린 자리가 단전이 아니라 해도 전에 사용했던 기운은 새로 얻은 몸에 생성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 기운은 너무 허접해!’
친구들이 다 얻고 꺼리는 것을 취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지금에 와서 그런 싸구려 기운에 만족할 수는 없었다.
‘더 좋고 강력한 능력을 얻어 근간으로 삼아야지. 이제는 그럴 만한 충분한 힘이 있어.’
근간이 되는 기운은 한번 자리를 잡고 나면 끝이었다.
몸을 바꾸기 전까지는 돌이킬 수 없었다.
새로운 육체를 얻는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앉아 새로운 육체를 관조하고 자기 몸으로 완전하게 체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정신이 들고 눈을 뜬 처음 그 순간부터 몸에 어떠한 어색함도 없었다.
‘전혀 이질적이지 않아. 처음부터 내 몸보다 더 내 몸 같았어.’
근육과 신경과 감각과 감정에 이르기까지, 세포 하나하나에 모두 이르기까지 수용하고 받아들였다.
오래지 않아 몸속을 잔잔하게 유영하는 중력의 기운을 포착했다.
‘하! 대박! 일명 마족이라 불리는 족속이었군. 그 수장의 혈족이 맞았어! 대견하게도 내 눈썰미가 한 건 제대로 해버렸구나!’
최강이었던 은성의 육체가 절대 부럽지 않았다.
눈을 감고 있는 남구의 한쪽 입꼬리가 평소처럼 비스듬히 비틀려 올라가지 않았다.
이례적으로 양쪽이 모두 올라가 있었다.
어린아이 같은 천진한 함박웃음이 얼굴에 한가득 들어찼다.
남구는 평생 이렇게 해맑게 웃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터져 나오려는 환희를 참아내고 다시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혔다.
냇물을 따라가면 결국 바다에 이르듯이 신체에 흐르는 중력의 기운을 따라 끝없이 돌아다녔다.
‘머리군!’
기운은 처음 느끼기가 어렵지 한번 느끼고 나면 그때부터는 무의식의 영역이었다.
게다가 새로이 개척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미 이 육체에 존재하는 기운이었다.
절로 중력의 권능이 발휘되었다.
남구의 몸이 앉아 있던 자리에서 서서히 떠올랐다.
그리고는 사뿐하게 다시 내려앉았다.
[중력제어]
시스템 메시지가 새로운 스킬의 등록을 알려왔다.
‘일심동체!’
말뜻 그대로였다.
마음과 몸이 모두 굳게 하나가 되었다.
새로운 몸이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어울리지 않았다.
‘내 몸이다. 내 몸이야. 나일 뿐이다. 내 꺼야!’
육체에 대한 감각적인 부분까지 깔끔하게 정리를 마치고 시스템 창을 불러냈다.
‘느낀 것을 눈으로 확인은 한번 해봐야겠지. 신체 능력부터 확인해 볼까?’
눈앞에 텍스트가 주르륵 떠올랐다.
[근력 20]
[지구력 22]
[회복력 23]
[내구력 23]
[감각 25]
[반사신경 25]
[동체시력 26]
.
.
.
‘역시, 예상대로다. 원래 내 육체와 같은 또래인데 인종의 차이 때문일까? 수련의 결과일까? 엄청난 차이로군. 단순 수치로만 봐도 정말 기가 막힌 육체로구나!’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고 게다가 모두 균등하게 발달해 있었다.
신체 능력 중 하나가 한참 뒤떨어져 다른 능력의 효율을 모두 저하하는 경우가 없었다.
또한 한가지 능력만 유독 특출나서 다른 능력이 받쳐주지 못해 제대로 기능이 발휘되지 못하는 경우도 아니었다.
‘밸런스가 아주 잘 맞는구나!’
미세한 차이지만 스타일이 원래 남구의 스타일과 비슷했다.
빠름과 감각적인 부분을 활용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신체 능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근력에 시선을 두었다.
근력이라 출력된 텍스트에 정신을 집중해 시선을 두자 바로 하부 카테고리로 넘어갔다.
[탄력 52%]
[인장력 48%]
‘느낀 대로구나! 근질이 파워보다는 스피드를 내기 더 좋은 근육이야. 하지만 균형을 아주 잘 갖추고 있군.’
단련하거나 LP를 근력에 투자하면 퍼센트는 자동으로 결정됐다.
‘전의 몸뚱이는 저 인장력의 퍼센트를 올리기 위해 죽을 똥을 쌌었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군.’
몸으로 느꼈던 신체 능력을 수치로 변환된 시스템의 출력 메시지로 다시 한번 확인한 뒤 다른 쪽을 살펴보았다.
보유 스킬 카테고리로 들어갔다.
시스템에 ‘중력제어’가 새로 생겼다.
시스템이 제공한 스킬은 아니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초감각적 능력은 스킬로써 시스템에 등록이 가능했고 또한 제어까지 할 수 있었다.
시스템은 중력제어의 권능을 어느 정도 등급으로 판별하는지 궁금해졌다.
가치판단을 요구하면 시스템은 대상 스킬의 좋고 나쁨에 대한 우위를 감정한다.
마치 미슐랭 가이드 같이 감정한 스킬에 대한 가치는 별의 개수로 구분했다.
대부분의 스킬이나 아이템에는 별이 붙지 않았었다.
그만큼 별이 붙어있는 아이템이나 스킬은 희귀했고 일반적인 사람들이 접하기 힘들었다.
사람들의 인식은 별의 개수와는 무관하게 별만 표시되어있다면 명품으로 간주했다.
가방이나 옷가지 등의 물품을 분류하듯 지구에서 생활했던 습성대로 일반 스킬과 명품 스킬 두 가지로 나누었었다.
시스템에 등록된 중력제어의 등급이 출력됐다.
[중력제어 ★★★★★ : 질량을 가진 모든 물체에 작용하는 힘을 제어할 수 있다]
‘명품 중에서도 최고 등급인 파이브 스타!’
중력제어는 시스템도 최상급으로 판단하는 권능이었다.
남구의 냉철했던 눈빛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파이브 스타가 눈앞에 낙인찍힌 듯 어른거렸다.
별 다섯 개는 생전 처음 봤고 따라서 당연히 생전 처음 가져보는 스킬이었다.
흥분할 때면 바로 냉정해지던 특유의 기질이 발휘되지 않았다.
저도 모르게 들뜬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로, 로또 맞았다! 심, 심 봤다!”
눈을 꽉 감아 버렸다.
다시 눈을 감고 냉철해지기 위해 호흡을 가다듬었다.
감정의 기복이 생길 때면 곧바로 머리가 차가워지던 생존 본능이 다시 발휘되었다.
‘휴우, 너무 좋아서 머리가 고장 난 줄 알았네!’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중력제어’를 세부적으로 살펴보았다.
[숙련도 1%]
1%거나 그보다 작은 운용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으음, 1%도 안 되는 수준인데 몸을 띄울 수가 있네? 대단하군. 엄청나구나!’
다음으로 스킬 카테고리로 넘어갔다.
[글탄 기마술]
[글탄 병법]
[글탄 마법진]
[글탄 맨손 살상술]
[글탄 투척술]
[글탄 둔기술]
[글탄 창술]
.
.
.
‘마족 중 글탄이라는 가문이었나?’
글탄 가문은 전쟁하는 것이 존재 이유인 무가인 듯 보였다.
육체에 배어 있는 모든 것이 온통 전쟁과 전투에 관련된 것뿐이었다.
‘오로지 쟁투를 위해 살아왔군.’
스킬 카테고리에 글탄 가문의 온갖 비급이 총망라하여 등록돼 있었다.
같은 말로 남구의 육체는 글탄 가문의 전투 기술을 비록 숙련도가 낮을지라도 모조리 익히고 있다는 뜻이었다.
반투명의 회색 텍스트로 출력됐다.
‘비활성화? 지금 당장은 활성화되지 않았군.’
육체가 익혔던 기술이었을 뿐 아직 남구의 스킬은 아니었다.
‘이 육신은 글탄 가문의 후계자였을까? 어쨌거나 가문의 직계인 것은 분명해! 영혼 소멸과 육체 이양의 형벌을 받을 정도면 그 세계에서 꽤 영향력 있는 가문의 핏줄이라는 뜻이겠지.’
남구와는 극과 극의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던 인물이었다.
가문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훌륭한 교육을 받고 자란 귀한 몸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앞으로 몸에 체화된 각종 기술과 권능을 경험을 통해서 깨달으면 온전히 내 것이 되려나?’
중력제어를 발휘할 때처럼 육체를 통해서는 글탄 가문의 스킬들을, 정신을 통해서는 남구가 써왔던 스킬들을 LP의 소모 없이 얻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정신에 아로새겨진 제 몸처럼 익숙하게 써왔던 남구의 기술들은 완벽하게 가져다 쓸 수 있었다.
‘바로 이렇게!’
남구가 잠시 앉아서 정신을 집중했다.
그다지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스템 메시지 창에 새로운 스킬이 등록됐다.
[정신방벽]
남구가 처음 익힌 능력이었고 가장 애착이 있던 스킬이었으며 지금의 남구를 있게 한 원천이 바로 방금 등록된 ‘정신방벽’이었다.
‘으흐흐, LP가 상당히 굳었네?’
LP를 소모해서 따로 새로운 스킬을 얻을 필요가 없었다.
스킬을 얻기 위해 쓸 LP를 신체 능력을 증폭시키는 데 쓰던가, 스킬을 진화시키거나, 특별히 강력한 스킬을 얻는 데 쓰면 될 것이다.
꼭 얻고 싶었던 몇 가지 스킬이 있었다.
접하기 어렵기도 했거니와 접하게 되더라도 당시에는 LP가 턱없이 모자라 익힐 수 없던 스킬들이었다.
‘이젠 그런 스킬들을 꽤 수월하게 챙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남구가 밀려드는 잡생각을 떨쳐버리고 다시 가만히 눈을 감은 채 깊은 심연으로 빠져들었다.
얼마간 미동 없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던 남구의 눈꺼풀이 천천히 들렸다.
시신의 허리에 채워진 목공 벨트에서 갑자기 회칼을 뽑아 들었다.
칼날을 말아 쥐고는 손바닥을 베어냈다.
혈서를 쓰듯 주르륵 흘러내리는 핏물로 바닥에 무엇인가를 그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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