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시방 우리는 수세가 아니라 공세야
곧장 날아온 활대가 손바닥에 달라붙었다.
‘으흐흐! 별 두 개짜리 명품 아이템은 처음 가져 보는군.’
딸깍-
분리된 활대를 돌려 끼웠다.
단궁처럼 그리 크지 않아 굳이 분리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휴대하기 용이했다.
합체한 활대에 풀린 시위를 걸고 활을 재듯 들어 보았다.
‘음! 스틸 재질인데도 생각보다 가볍네? 마치 현대 기술로 만들어진 합금 같구나! 푸르스름한 게 빛깔도 예쁘군.’
지그시 활을 잡고 가늠하고 있을 때 시스템이 친절하게도 텍스트를 출력했다.
[일렉트릭 리커브 보우 ★★ : 일정 시간 적의 움직임을 봉쇄하는 뇌전을 일으킨다. 차징 단계에 따라 상응하여 전력이 증가한다. 부록, 전도율 높은 와이어 내장]
‘활만 물고 빨고 할 수는 없지!’
시스템 메시지가 순식간에 지워졌다.
남구의 눈동자가 사방으로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손톱에 걸려 팔이 날아간 놈, 온몸을 긁혀 너덜너덜해진 놈, 목과 겨드랑이를 당한 라이칸, 등짝이 박도에 갈라진 라이칸, 되살아 난 라이칸. 총 다섯!’
아무도 멀쩡하지 못했다.
다들 치명적인 상처를 안고 있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어깨를 들썩였고 상당량의 출혈이 계속되었다.
언제나 추구해 왔던 대로 남구는 대단히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상황을 제 뜻에 따라 주도하려 했다.
‘이 정도면······.’
분주하게 주변을 훑던 까만 눈동자가 여자들이 모여있는 곳을 힐끗 돌아봤다.
‘···쟤들 안 상하고 처리할만하겠지!’
위험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최대의 생명 포인트를 획득할 딱 적당한 타이밍을 기다려 왔다.
‘지금이 공세야!’
남구가 아무도 없는 허공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예솔아! 시작해 볼까?”
퍼러럭-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오른편 망토 자락이 한차례 펄럭 휘날렸다.
허벅지에 장착한 화살집에서 살대가 한 움큼 들려 나왔다.
끼이익-
번개같이 시위에 걸려 팽팽하게 당겨진 한발의 화살에 뇌전이 일었다.
파지지지직-
차징을 오래 하지 않고 곧바로 날려 보냈다.
그거면 충분했다.
쒜에에에엑-
박도를 든 남자의 허벅지에 그대로 틀어박혔다.
퍽- 으아악!
푸른 스파크를 발하는 전류가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졌다.
감전된 몸뚱이는 딱딱하게 굳어 움직일 수 없었다.
설마 자신에게 쏘리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했던 남자가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삐거덕거리며 남구를 돌아봤다.
삐걱삐걱 틀어지는 목덜미에 느닷없이 맹수의 발톱처럼 굽어진 날붙이가 걸렸다.
촤아아아악-
“끅! 끄으으으!”
굵직한 목덜미를 낫이 훑고 지난 듯했다.
목이 잘린 남자의 뒤에서 흠뻑 젖은 카람빗 나이프와 함께 예솔의 모습이 등장했다.
순간 모두의 시선이 허공에서 갑자기 출몰한 예솔에게 쏠렸다.
쒜쒜쒜쒜에에엑-
빨리 감기를 한 듯한 남구의 손짓에 따라 연달아 발사되는 화살이 허공을 가득 수놓았다.
목이 덜렁거리는 남자와 되살아난 라이칸을 제외하고 나머지 셋에게 빛살과도 같은 엄청난 빠르기의 속사가 이어졌다.
활을 남구에게 빼앗긴 남자는 무기를 모두 잃었기에 몸을 날려 피하거나 하나뿐인 맨손으로 쳐내야만 하는 암담한 처지였다.
보조 무기를 꺼낼 틈조차 없었다.
쒜엑- 쒜에엑-
푸른 뇌전과 붉은 광채가 연신 스쳐 지났다.
색색으로 날아드는 화살을 특기인 빠른 발로 정신없이 석실을 누비며 피해냈다.
탁- 탁탁-
도저히 피할 수 없는 화살은 하나뿐인 유일한 손으로 쳐냈다.
하지만 그런 움직임은 순간에 불과했을 뿐.
최후의 발악이나 마찬가지였다.
쒜에에엑- 퍽-
쳐내던 손바닥에 붉은 광채를 띤 화살이 꽂혔다.
“크윽!”
‘점화!’
꽈아앙- 크아아악!
휘몰아친 폭발력에 터져나간 살점들이 사방팔방 흩뿌려졌다.
팔꿈치 아래로 몽땅 날아가 버려 더는 화살을 막아낼 재간이 없었다.
퍽- 퍼버벅- 퍽퍽-
순식간에 고스란히 화살이 틀어박혔다.
“끄으으으!”
머리와 심장 부분에 수두룩하게 화살을 맞고 서서히 뒤로 넘어갔다.
털썩-
[3148 LP 획득]
[생명 포인트 : 8467 LP]
즉사였다.
‘하! 이 자식은 더 많이 보유하고 있었구나! 하긴, 이곳에 들어와서 많이 벌었겠지.’
양팔을 잃은 남자가 넘어가는 순간 박도를 든 남자도 흥건한 피 웅덩이에 쓰러져 잠겨 들었다.
목뼈까지 잘려 나간 탓에 머리가 훌러덩 뒤집어졌다.
쨍그랑-
손에서 벗어난 박도의 도면에서 줄기차게 발하던 붉은 광채가 흔적도 없이 사그라들었다.
그에 따라 검붉게 번뜩거리던 되살아난 라이칸의 눈동자도 빛을 잃고 허옇게 돌아갔다.
안구를 까뒤집은 되살아난 라이칸이 순리에 따라 바닥으로 넘어갔다.
쿠웅-
목과 겨드랑이에서 피를 철철 흘리는 라이칸과 등짝이 크게 베이고 전신에 손톱자국이 무수한 라이칸이 양팔로 얼굴을 가린 채 무릎을 꿇어앉아 숨을 헐떡거렸다.
둘 다 똑같은 모습이었다.
그들의 몸뚱이에는 붉은 광채를 발하는 화살이 곳곳에 틀어박혔다.
빛을 발하지 않는 화살은 더욱 많이 꽂혀 있었다.
남구는 더 이상 화살을 날리지 않았다.
준비해온 화살 40발을 삽시간에 모두 소모했다.
고슴도치가 된 그들이 동시에 일어났다.
양팔로 보호한 머리만 빼고 전신에 화살이 수두룩하게 박혀 들었지만 둘은 남구에게 발맞추어 접근해 왔다.
‘하!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군.’
남구가 손을 뻗었다.
일어난 라이칸의 몸에 박혀있던 화살이 부르르 떨리다가 곧 뽑혀 나왔다.
“크아아앙!”
뽑혀 나온 화살이 남구의 손아귀로 날아들었다.
착-
낚아채자마자 시위에 걸었다.
파지지지직-
푸른 광채가 요란한 소음을 내며 빠져나온 자리로 다시 틀어박혔다.
쒜에에엑- 퍽-
온몸에 휘몰아친 푸른 뇌전에 한 마리가 그대로 걸음을 멈추었다.
‘점화!’
꽈앙-
여전히 발걸음을 내딛던 라이칸의 가슴에서 불꽃이 터져 나왔다.
“크아아앙!”
심장이 녹아내린 라이칸이 마지막 울부짖음을 남긴 채 뒤로 넘어갔다.
가슴에서는 여전히 화염이 치솟고 있었다.
[2 LP 획득]
[생명 포인트 : 8469 LP]
쩌억-
감전되어 부르르 떨고 있던 라이칸의 머리가 세로로 쪼개졌다.
정수리부터 미간까지 한방에 갈라버린 마체테가 곧 뽑혀 나왔다.
꽈드득-
날붙이가 뽑혀 나오자마자 앞으로 고꾸라졌다.
커다란 덩치에 가려져 있던 예솔의 모습이 곧바로 드러났다.
이런 곳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예솔의 청아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끝난 거 같아!”
남구가 주변을 훑어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쿠구구구궁-
어김없이 석벽이 밀려나기 시작했다.
살아남은 모두의 시선이 먼지를 풀풀 날리는 그곳으로 향했다.
맷돌 가는 소리가 끝을 맺자 석벽이 활짝 열렸다.
“우, 우리 살았어.”
“진짜 대단해!”
“저 여자는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걸까?”
“저 남자 신궁이야!”
긴장이 풀린 여자들이 후들거리는 다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으며 두서없이 떠들어댔다.
“어서 정비하고 여기 뜨자!”
남구의 말에 예솔이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또 그 지네들 몰려올지도 몰라.”
생각만 해도 끔찍한지 그 반듯한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남구가 화살을 수거하며 말했다.
“저 박도는 너 써! 한 놈만 죽이면 아예 몸을 드러내지 않고 싸울 수도 있겠어.”
“정말 그게 될까?”
“모르지, 저런 건 나도 처음 보거든.”
남구가 양팔이 날아간 시체로 다가가 유심히 내려다봤다.
곧 한쪽 귓속에서 손톱만 한 기기를 꺼냈다.
‘이거였군.’
보청기같이 생긴 그 작은 기기에도 인챈트된 가는 선들이 무수히 새겨져 있었다.
‘뭐? K-pop 열성 팬? 원어민 강사? 웃기고 앉았네!’
[지구용 멀티 통역기 : 식민지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언어를 번역하여 듣고 말할 수 있게 하는 보조 장치]
곧바로 귀에 꽂고 여자들을 돌아다봤다.
“그 징그러운 벌레들이 또 나올지도 몰라.”
“빨리 여기서 벗어나야 할 것 같은데.”
“네가 저 남자한테 서두르자고 한번 말해봐!”
“내가? 나 한국말 못 하는데?”
“저 여자한테 말하면 되잖아.”
“그럼 네가 말하든지. 왜 나한테 시켜?”
“저 언니 정체가 대체 뭘까?”
영어가 자동으로 번역되어 들려왔다.
영어뿐만 아니라 지구의 모든 언어가 그렇게 들려올 것이다.
‘흐흐, 성능은 여전하구만. 이런 획기적인 아이템이야말로 명품 중의 명품인데 말이야. 별도 하나 안 붙어 있네!’
마족은 오직 전투에서의 효용성으로 모든 가치를 판단했다.
남구의 동공에 설정 메시지가 떠올랐다.
[구사할 언어를 선택하여 주십시오]
남구가 여자들을 향해 유창한 영어로 말했다.
“이제 갑시다.”
모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남구를 바라봤다.
“뭐야? 영어 잘하잖아?”
“왜 못하는 척했지?”
“우리를 떠본 거야.”
“뭐 때문에?”
“그, 그건 나도 잘······.”
중동 여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아유! 이 바보들! 저런 간단한 영어는 누구나 하지! 저런 말 한마디 못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 그런가?”
여자들은 모두 영어를 할 줄 알았다.
알 수 없는 미지의 공간에 떨어져 목숨이 위태로울 지경에 놓인 여자들은 말이 통하자 급속도로 친해져 있었다.
남구가 배낭 두 개를 들고 쑥덕거리는 여자들에게 다가가 떠안기며 말했다.
“일일이 소지품을 확인할 시간이 없어. 저 열린 문으로 또 뭐가 출몰할지 알 수가 없으니까 일단 통으로 들고 따라와!”
모두의 귀에 정확한 발음의 영어가 들려 왔다.
특히 중동 여자는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어 휘둥그레 뜬 눈으로 남구를 바라봤다.
남구가 유창한 영어를 구사한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먼저 석실을 나섰다.
입구에서 예솔이 여자들에게 손짓했다.
배낭을 하나씩 둘러멘 여자들이 부리나케 예솔의 뒤를 따라붙었다.
석실을 빠져나와 지하터널을 지나면서도 운명 공동체를 이룬 여자들은 저들끼리 목소리를 낮추어 소곤거렸다.
“우린 두 명한테 보호받는 셈이야.”
“그러네? 저 언니 아까 봤어? 목 확 베어버리는 거?”
“무시무시하더라.”
“좀 무서워도 난 든든하던데?”
이제는 화살이 날아와도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제 몸에 스치지도 못할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화살은 전에도 그랬듯이 수두룩하게 날아왔지만 모두 힘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상태가 좋은 화살을 솎아냈다.
바닥에 떨어진 화살을 중력 제어로 당기거나 날아오는 그대로 낚아채 화살집에 꽂아 넣었다.
그때마다 바닥에는 뼈로 만든 촉의 화살이 떨어져 내렸다.
화살집 안은 점점 쇠로 만든 촉의 화살로 교체되어갔다.
쒜에에에엑- 착-
‘요놈도 쓸 만하군.’
여자들은 그렇게 화살을 잡아 낼 때에만 그 모습을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너무나 안정적인 호위에 처음보다 많이 안심한 여자들이 저들끼리 소곤소곤 속삭임을 이어 나갔다.
“화살을 그냥 맨손으로 척척 잡아내!”
“우리 어쩌면 이 지옥 같은 곳에서 살아나갈 수 있을지도 몰라.”
“저 남자 진짜 강해!”
“저렇게 강한 남자들, 짐승 아닌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우리 동네도 그랬어. 우리를 지배하던 그 남자는 정말 짐승 같은 놈이었지.”
“우리 고향에서 군림하던 남자들은 저 남자 발끝에도 못 미쳐.”
“맞아! 맞아! 그리고 보기보다 친절한 거 같아.”
“얼굴은 왜 빨개지는데?”
“내가 낳을 아이도 저렇게 강해질까?”
“벌써 출산할 작정이니? 일단 살 생각부터 해!”
충고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뾰쪽했다.
선작, 추천은 작가의 우울증을 예방할 수 있답니다. 볼만 하셨다면 꾹~ 눌러주세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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