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소환자들
‘오늘이 지나면 반 이상 죽어 나갈 테지!’
남구는 쳐다보지도 않고 포크와 나이프를 놀렸다.
연일 이정도 인원이 새로 소환될 것이다.
나뒹군 몸을 일으킨 사람들이 통증에 잔뜩 찌푸린 얼굴로 감금 시설의 내부와 남구를 번갈아 쳐다보며 하염없이 두리번거렸다.
턱에 칼자국이 있는 20대 남자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바닥에 깔린 생소한 무늬의 가죽을 보고는 떨려 나오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려 애를 썼다.
“여, 여긴 다른데 하고는 좀 다른 거 같은데요? 바닥에 깔린 건 짐승 가죽인가? 저, 저런 기괴한 무늬는 처음 봐요.”
찬기가 올라오는 바닥에는 다양한 종류의 모양과 무늬와 털 색을 가진 짐승 가죽이 포탈이 위치한 가운데와 소각장이 위치한 한쪽 구석만을 제외하고 촘촘히 깔려 있었다.
40대로 보이는 경상도 출신 남자가 팔짱 끼듯 스스로 부둥켜안고 1호실을 두리번거리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여, 여긴 와 이리 춥노? 이, 이기 다 뭐꼬? 이기 다 살림살이가?”
1호실을 샅샅이 둘러본 사람들의 경황없는 시선이 남구에게 향했다.
남구는 적당하게 잘라낸 피가 흥건한 스테이크 고기 조각을 이제 막 포크로 찍어 입안에 밀어 넣고 있었다.
속 알 머리가 일찌감치 한 가닥도 남지 않은 30대 대머리 남자가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다, 당신은······?”
동시에 10대 후반에 남자아이도 물어 왔다.
“저, 저기, 누구세요?”
새로 들어온 네 명은 엉거주춤 서서 멀거니 남구를 바라보기만 했다.
남구는 여러 시선을 받으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식사를 이어갔다.
에너지 보충과 컨디션 유지는 남구의 최우선 과제였다.
바로 어제 그 생고생을 하고 돌아왔지만 마티나는 남구를 절대로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다.
곧 데스 게임에 투입될 게 불을 보듯 뻔했다.
남구의 눈동자가 힐끗 사람들을 흘겼다.
‘너희도 마찬가지야.’
우두커니 바라보던 사람들이 서서히 대화를 시작하고 있었다.
희귀동물 보듯 남구를 보고 있던 경상도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쟈는 누꼬? 완전 아 아이가?”
10대 후반에 남자아이도 자기와 또래로 보이는 남구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대답했다.
“외국인이라 우리 말을 못하나 봐요.”
대머리 남자가 이어 말했다.
“간수는 아닌 거 같아요. 뿔도 없고 우리보다 먼저 온 사람 같은데요?”
턱에 자상이 있는 남자가 여전히 날카롭게 좁힌 눈으로 남구를 경계하며 말했다.
“굉장하군. 저 탄탄한 몸! 그리고 거기 새겨진 상흔들······. 보통 사람이 아니야!”
모두의 시선이 잠시 칼자국이 있는 남자에게 모였다가 다시 남구를 향했다.
칼자국이 난 남자의 말 때문인지 남구를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 달리했다.
비록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도 있는 꽃무늬가 들어간 파자마 바람이었지만 얇은 실크 옷감의 굴곡에서 큼지막하게 덩어리진 울퉁불퉁한 근육의 실루엣을 충분히 느끼고도 남음이 있었다.
고개 숙인 옆모습이라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왼쪽 눈두덩이와 왼쪽 뺨 전체를 온통 차지하고 있는 흉측하고 기다란 상흔들이 씹는 턱관절의 움직임에 따라 꿈지럭꿈지럭 기어가는 세 마리의 뱀 같았다.
대머리 남자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전에 다니던 헬스장 트레이너보다 몸이 더 좋은데?”
남구의 밥 먹는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던 남자아이가 불현듯 떠오른 생각을 얘기했다.
“아! 근데 여기 잡혀 온 사람들 전부 우리나라 사람들이었어요.”
경상도 남자도 이상한 듯 생각에 잠긴 눈빛으로 입을 뗐다.
“맞나? 내도 그리 봤다. 우째 한국인만 천지 삐까리다.”
소환된 사람들은 모두 한국인이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이곳에 오고 싶어도 올 수가 없었다.
고트족을 포함해 몇몇 족속에게 할당된 구역은 대한민국이었다.
저벅저벅-
수군거리던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발소리가 들려오는 철창 밖 복도를 향해 목이 부러져라 고개를 휘돌렸다.
복도를 지나가던 염소수염이 철창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염소수염에 화들짝 놀란 사람들이 부리나케 한쪽 구석으로 몰려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염소수염의 일자 동공이 자기를 쳐다보지도 않고 오직 먹는데 열중하는 남구를 향했다.
남구를 째려보던 염소수염의 입에서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자비로우신 아가씨께서 여긴 쓸만해 보이는 놈들로 채우라고 명하셨어. 그래서 건강해 보이는 놈들로 내가 특별히 골랐지. 영광으로 생각하고 영예에 보답하도록.”
남구의 망막에는 메시지 텍스트가 떠올랐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사람들은 놀라고 당황스러운 눈동자를 떼굴떼굴 굴릴 뿐이었다.
고마운 마음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 남구를 못마땅한 눈으로 째려보던 염소수염이 바쁜 몸을 돌렸다.
마티나의 총애를 듬뿍 받는 애완견을 마음에 안 든다고 여느 인간들같이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타르와 같은 꼴을 당할 수도 있었다.
저벅저벅-
갑자기 알 수 없는 말을 지나치듯 훌쩍 던지고 유유히 복도를 걸어 멀어져 가는 염소수염의 뒷모습을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염소수염이 멀찍이 사라지자 한쪽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 오들오들 몸을 떨던 사람들이 약간이나마 긴장을 풀어내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경상도 남자가 멀어진 염소수염의 동태를 조심스럽게 살피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 저 문디같이 생긴 기 뭐, 뭐라카노? 뭐라 씨부리샀는지 아나?”
알 턱이 없는 사람들은 대답 없이 고개만 저었다.
대머리 남자가 낙인이 찍혀 쓰라린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유!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남자아이가 남구를 힐끔힐끔 살피며 혹시나 남구가 듣기라도 할까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저기 밥 먹고 있는 애, 쟤도 못 알아듣는 거 같은데요? 그냥 밥만 먹고 있어요.”
칼자국의 남자가 좁힌 눈으로 남구를 유심히 살피며 감탄했다.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이 상황에 저리 의연한 모습이라니! 저런 강심장은 처음 보는군. 아니면······. 정신이 온전치 못한 건가?”
도르르르르르-
복도에서부터 조그마한 바퀴 구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남구를 제외한 모두의 시선이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는 철창 밖으로 향했다.
푸석한 빨간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바쁘게 카트를 밀고 다니는 여자아이를 남자아이가 목을 길게 빼고 넘겨다 봤다.
“밥 주는 거 같은데요? 근데 저건? 대형 마트에나 있는 카트를 밀고 다니네요?”
여자아이가 밀고 다니는 것은 남구에게 배식할 때 쓰는 식기 운반 전용 카트가 아니라 대형마트에나 있는 물품 운반용 카트였다.
지구에서 공수해 온 카트에는 멀건 수프가 든 양철 바스켓과 벽돌과도 같은 마른 빵이 가득 들어 차 있었다.
대머리 남자가 펑퍼짐한 바지 안에 손을 집어넣어 중요 부위를 거친 천으로부터 필사적으로 보호하며 애잔한 목소리를 내었다.
“난 너무 긴장해서 배가 고픈지도 잘 모르겠어. 그나저나 여기가 너무 아프네! 으으윽! 옷이 너무 거칠어.”
턱에 칼자국이 있는 남자가 그 통증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고통스러워하는 대머리 남자를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심심한 위로를 전했다.
“염증이라도 생기면 큰일인데, 이럴 때일수록 잘 먹고 기운 차려야 해요.”
이중에서는 가장 연장자인 경상도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모, 묵어야 산다 카이. 바지 내 바까 주까? 내 끼 더 크다. 그쟈?”
대머리 남자가 울상으로 고개를 저었다.
“통은 이것도 커요. 통이 커서 더 쓸리는 거 같아요.”
“우야꼬! 쯧쯧!”
남자아이가 풀리지 않는 의문을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대체 왜 잡아 온 걸까?”
경상도 남자가 대뜸 되물었다.
“궁금하나?”
“네, 당연하죠. 혹시, 아저씨는 아세요? 낙인까지 찍어 놓은 걸 보면 노예로 데려온 것 같기는 한데.”
“만다꼬 델꼬 왔는지 그기 중한 게 아닌 기라. 우째 살지 그기 중한 기라. 맴 단디 하래이!”
모두가 수긍하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찰나 바퀴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끄덕거리던 고개가 일시에 바퀴 소리를 향해 획 돌았다.
도르르르르-
곧 카트의 요란한 바퀴 소리가 1호실 철창 앞에서 우뚝 멈추었다.
페이는 철창에 다다르자마자 나무 국자로 퍼 올린 멀건 수프를 나무 대접에 담아 배식구에 밀어 넣었다.
사람들은 당황하여 머뭇거리고 있었다.
“받아요.”
아무도 세리야어를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여자아이는 곧바로 철창을 두드렸다.
캉캉-
그제야 칼자국이 난 남자가 후다닥 뛰어나가 대접을 받아들였다.
나무 대접 4그릇을 전부 옮겨 바닥에 내려놓자 여자아이는 차례차례 마른 빵을 배식구로 휙휙 던져 넣고는 홀연히 카트를 밀고 사라졌다.
도르르르르-
칼자국의 남자가 바닥에 떨어진 빵을 주워 한 명씩 나누어 주었다.
“자, 받아요.”
“고맙데이.”
“감사합니다.”
“아! 다음부터는 제가 받을게요.”
한 손에는 빵 한 덩이와 다른 손에는 나무 대접을 들고 각자 벽 쪽에 붙어 앉아 먹기 시작했다.
경상도 남자가 맹물과 다름없는 수프를 한 모금 넘기자마자 불만을 터트렸다.
“뭐꼬 이기? 저 아는 스테끼 묵꼬 울덜은 이기 뭐꼬?”
투덜거리던 경상도 남자가 밥 먹는 남구의 모습을 연신 힐끔거리며 속삭였다.
“쟈는 사람이 맞긴 맞나? 저 얼라 정체가 억수로 궁금하데이?”
칼자국의 남자가 말을 받았다.
“고급스러운 식사도 그렇고 아까 뿔 달린 놈이 대하는 걸 봐서는 이곳에 귀족 같은 게 아닐까요? 무슨 죄를 짓고 여기 온 듯한데?”
이도 잘 들어가지 않는 딱딱한 빵을 힘겹게 씹던 대머리 남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이건 도저히 먹을 수가 없겠는데요.”
목이 말랐는지 수프를 한꺼번에 들이켠 남자아이가 이도 저도 아닌 밍밍한 맛에 입맛이 떨어져 한쪽 옆에다가 딱딱한 빵을 내려놓았다.
“여기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쟤 외계인인가 봐요. 아무래도 이곳 사람 같아요. 뭔가 익숙해 보이는 것이 분위기가 우리랑은 완전히 달라요.”
남자아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한쪽 볼이 볼록하게 부푼 남구가 나이프와 포크를 탁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소스와 핏물만 남은 접시에서 고개를 들어 사람들을 쳐다봤다.
순간 사람들은 떠들던 입을 닫고 불안한 눈빛으로 남구를 마주 보았다.
남구가 우물거림을 멈추지 않고 입을 열었다.
“쩝, 어서 오세요. 쩝쩝, 잘 지내보자고요.”
말을 마친 남구가 잠시 씹는 것을 멈추고 볼록 튀어나온 볼을 끌어 올리며 친절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드디어 단체전에 참가할 수 있겠어. 이제야 좀 쓸만한 아이템이 나오겠군.’
남구의 가식적인 미소에 사람들은 따라 웃지 못했다.
여전히 경황없는 표정에 흔들리는 눈빛으로 남구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고 있었다.
경상도 남자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바, 밥 다 묵나? 우, 우리 말 억수로 잘 한데이? 와 말이 없었노?”
대머리 남자도 불안함을 가득 담은 눈동자를 춤을 추듯 흔들어대며 남구를 향해 어렵게 입을 뗐다.
“다, 당신도 우리처럼 여기 끌려온 건가요?”
동시에 1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대머리 남자와 한 치도 다르지 않은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여기 분이세요? 옷이······.”
꽃무늬 파란색 실크 파자마를 입고 있는 남구의 모습에 사람들은 적응이 쉽지 않았다.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담한 상황과 남구의 모습은 도저히 어울리지 않았다.
남구의 편안한 태도와 표정에서 한시름을 던 대머리 남자가 한결 풀린 목소리로 물었다.
“저기, 이곳에서 받은 건가요? 그 잠옷?”
남구가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대머리 남자가 불쌍한 표정을 한껏 지어 보이며 이어 말했다.
“그렇다면 저도 좀 주세요. 지금 입고 있는 이 옷은 너무 거칠어서 여기가 좀 아프네요. 자꾸만 쓸려요.”
대머리 남가가 지급된 바지의 가운데를 잡아당겨 중요 부위에서 최대한 멀어지게 하고 있었다.
남구가 친절하게 웃는 얼굴로 남의 심정은 일절 고려하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딱지 몇 번 앉았다 떨어지면 괜찮아집니다.”
“네?”
모두가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친절한 미소를 짓고 있던 남구의 표정도 순간 굳었다.
“헉!”
이례적으로 남구가 헛숨을 들이켰다.
씹던 음식물이 다 보일 정도로 입을 헤벌리고 한 사람을 휘둥그레진 눈으로 뚫어지게 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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