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얻을 게 없으면 움직이지 않아
박 부장의 움직이는 귀를 신기한 듯 보고 있던 남구의 눈동자가 순간 날 선 칼날처럼 날카롭게 좁혀졌다.
‘으음, 이건?’
남구의 귀에도 들려왔다.
그다지 멀지 않았다.
숲이 끝나는 지점에 맞닿은 국도에서부터 발생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남구의 입이 열렸다.
“누군가 쫓기고 있군요.”
“자네도 들었나? 좀비는 아닌 것 같은데? 크리처도 아니야!”
혹시 모를 위협에 대비하느라 벼린 듯 날이 섰던 남구의 눈빛이 내려오는 눈꺼풀에 숨었다.
박 부장은 눈을 감는 남구의 모습이 마치 검이 검집에 들어가듯 느껴졌다.
남구가 지그시 눈을 감고 조금 더 청각에 집중해 상황을 파악해 갔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습관처럼 한쪽 입꼬리를 삐쭉 틀어 올렸다.
상황 파악이 끝나자 태연하게 눈을 뜨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사람들끼리 무슨 문제가 있는 모양이네요.”
박 부장이 추격전을 벌이는 사람들의 소리에 감정이라도 이입됐는지 숨이 찬 듯 다급하게 말했다.
“한 사람이 여러 사람한테 쫓기고 있네. 곧 잡힐 것 같아!”
‘어우야! 감각 죽이는데?’
“음! 그렇군요. 어서 식사하세요.”
“잡히면 살지 못할 것 같은데······. 안타깝게 가버린 우리 직원들이 생각나는군.”
“직원들하고는 아무 관계도 없는데요?”
국도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관심을 잃은 남구가 청설모의 앞다리와 한쪽 가슴살을 한꺼번에 찢어 뼈째 입에 넣었다.
와득- 와드득-
청설모의 앞다리를 와득와득 씹는 남구의 눈을 박 부장이 진중한 눈빛으로 직시했다.
심각한 얼굴로 목소리까지 가다듬으며 말을 꺼냈다.
“흠, 난 도울 수 있다면 돕고 싶네만!”
“네에?”
남구가 씹던 것을 멈추고 박 부장을 멀거니 쳐다봤다.
박 부장은 자신의 날카로운 손톱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참 나! 힘을 얻자마자 막 자신감이 샘솟고 그러시나? 선무당이 사람 잡겠네!’
안 그래도 사나운 박 부장의 인상이 들려오는 소리에 몰두하느라 미간을 구기며 눈꼬리를 치켜올리자 더욱더 사나워 보였다.
인상을 찌푸리고 귀를 쫑긋 세운 채 집중하던 박 부장이 입을 열었다.
“정말 사악한 사람들이군. 처음 마트를 차지했던 자들과 다를 게 없어.”
남구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그런 게 다 느껴져요?”
“다 들린다고 해야 할까?”
‘선악의 기준이 저와 다르시군요.’
엄밀히 따진다면 남구는 선과 악의 기준이 따로 없었다.
여태 옳고 그름에 따라 행동하지 않았다.
그저 살길이 보이는 방향으로 움직여왔다.
어떤 이데올로기를 지향한 적은 더더군다나 없었다.
화합하든 착취하든 죽이든 모두 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이해했다.
박 부장의 머릿속에는 아직 사회 관념이 뿌리뽑히지 않고 남아 있는 듯했다.
핵의 영향력 아래 있는 세상에서는 개인의 득실에 따라 또는 각자가 속한 리더의 성향에 따라 행동 양식이 다 제각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공통으로 통하는 것은 오직 한가지.
오로지 힘.
힘이 곧 정의이자 진리였다.
“돕고 싶으면 도와야지요.”
남구의 동의를 얻자 박 부장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래, 서둘러야 겠군!”
“전 토끼 마저 굽고 있을게요.”
박 부장의 표정이 순간 멍청해지며 선 채로 굳어 버렸다.
“응? 방금 돕자고······.”
“제가 왜··· 전 모르는 사람인데.”
“아니? 그게 무슨······.”
“······.”
남구는 토끼를 굽고 싶었다.
쉼 없이 달려왔지만, 몸이 힘든 건 익숙했다.
돌덩이같이 딱딱했던 마음이 정말 오랜만에 쓰렸기에 남구는 토끼를 굽고 싶었다.
박 부장도 남구도 잠시 말이 없었다.
남구는 자기 뜻을 다 전했기에 그러했고 박 부장은 남구를 이해할 수 없어 그러했다.
눈을 동그랗게 뜬 박 부장이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통 모르겠구만. 자네는 굶어 죽기 직전인 우릴 구해주지 않았나. 게다가 앞으로 살아갈 길까지 열어 주었고. 그런데 지금은 왜 이리 무심한지 이해가 잘 안 되는군.”
남구는 그저 한쪽 입꼬리를 비틀며 씁쓸하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박 부장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자네를 잘못 본 건가? 먼저 나설 줄 알았는데?”
“흐흐, 완전히 잘 못 보셨네요.”
은퇴를 앞두고 있던 박 부장은 사회생활에 이골이 나 척 보면 한 눈에 사람을 알아보는 편이라 자신했었지만 남구가 대체 어떤 유형의 인간인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궁금증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자네는 대체 왜 위험을 감수하고 우리를 구해줬나? 죽어가는 내게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한 건가?”
남구의 비틀린 입꼬리가 조금 더 올라갔다.
“제가 좋은 놈이라 그런 거란 오해는 풀어 주세요. 딱히 무슨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닙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 전 그냥 김수정 대리랑 부장님이 마음에 들었을 뿐이에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럴 만한 힘이 있다고 믿었었고.”
“허어!”
‘마음이 가는 몇명쯤은 내가 건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답니다. 평생을 겉돌아서 그냥 외로웠던 건지도 모르죠. 힘만 믿다가 코가 깨졌다고나 할까?’
입을 떡 벌린 박 부장의 얼굴은 더욱더 어리둥절해졌고 비틀린 남구의 입꼬리는 씁쓸함을 더했다.
남구가 씁쓸함이 배어있는 입술을 열었다.
“둘 빼고 다 죽었는데 제가 구했다는 말은 어폐가 있네요.”
박 부장의 표정도 다시 침울해졌다.
“으음, 자네가 최선을 다한 거 내가 잘 아네!”
‘죽은 사람 처지에선 그것처럼 무의미한 말도 또 없겠죠.’
남구가 빨갛게 타오르는 장작더미 속을 헤집던 나뭇가지를 그곳에 툭 던져 넣었다.
“에이! 까짓거, 구하러 가요. 몇 명 목을 치고 나면 더러운 기분이 좀 나아지겠죠. 기분 전환 좀 하러 갑시다.”
“허! 허어!”
박 부장의 눈과 입이 커다랗게 벌어졌다.
남구가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 터벅터벅 걸어 나갔다.
박 부장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남구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남구가 석궁을 어깨에 척 걸치고는 중얼거렸다.
“아우! 활을 잃은 게 아쉽네! 이노무 석궁은 연사 속도가 거지 같은데.”
박 부장이 눈을 끔뻑거리며 가만히 서 있자 남구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부장님도 들었죠? 바람을 가르는 그 소리가 활 소린지 석궁 소린지 잘 모르겠지만 잘하면 다시 쓸만한 활을 구할지도 모르죠.”
“허어!”
“그리고 저렇게 도로를 질주하는 자신감은 총을 가지고 있으니까 나오겠죠? 좀 쉴까 했는데 득템이나 하러 갑시다.”
‘게다가 총은 그 족속들도 명품으로 간주한답니다. 시스템이 별까지 붙여 주더군요.’
박 부장은 입을 다물지 못하다가 좋지 못한 표정으로 물었다.
“설마 활 때문에 가는 건가?”
“얻을 게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습니까? 저 그렇게 특별한 놈 아니라니까요. 금방 어두워져요. 갈 거면 빨리 가요.”
“으음, 그, 그래! 알겠네!”
박 부장은 남구가 속마음과는 다르게 얘기하는 허세를 가졌다고 느끼며 생각했다.
‘진짜 말 대로였다면 옥상으로 구하러 오지도 않았을 테지!’
“토끼가 다 타기 전에는 와야지요.”
걸어 나가는 남구의 뒤통수에 대고 박 부장이 말했다.
“그건 무리야! 숯덩이가 될 것 같은데?”
뒤쪽에서 바스락거리는 박 부장의 발 소리가 들리자 남구가 뛰기 시작했다.
숲은 크고 작고 굵고 가는 나무가 제멋대로 뒤섞여 우후죽순으로 자라나 있었다.
남구가 길도 없이 우거진 나무 기둥 사이사이를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며 비탈진 숲속을 엄청난 속도로 달려 나갔다.
박 부장도 뒤처지지 않았다.
‘잘 달리시네요.’
박 부장은 거친 숨소리를 뿜으며 남구가 지난 비좁은 나무 기둥 사이를 커다란 덩치에도 불구하고 쏙쏙 빠져나가며 뒤쫓았다.
박 부장은 달릴수록 희열에 차올랐다.
자신의 육체에서 느껴지는 주체하기 힘든 활력에 남구를 앞지를 것만 같았다.
다리에 힘을 너무 주어 흙바닥이 뭉텅이로 푹푹 파여나갔다.
달려 나가는 남구의 얼굴에 희미한 웃음이 걸렸다.
남구는 굳이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박 부장이 뿜어내는 거친 호흡에서 감격에 겨워 벅차오르는 감정이 그대로 전해졌다.
육체전이의 선배로서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다.
심산유곡을 누비는 한 마리 비호같던 남구가 급속하게 속도를 줄이며 전경이 훤히 내다 보이는 자리를 찾아 나뭇가지를 헤치고 들어섰다.
흙먼지를 휘날리며 달려온 박 부장도 멈춰 선 남구 옆에 곧장 자리를 잡았다.
남구가 목을 빼고 내다 보며 붙어 앉은 박 부장에게 말했다.
“쫓는 사람이 아홉이네요.”
박 부장이 이미 짐작했다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거친 호흡을 가다듬었다.
남구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다.
“설마 숫자까지 알고 있었어요?”
“으음, 그렇게 들리더군.”
남구가 박 부장을 대견스럽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역시 제공된 몸뚱이는 하나같이 대단하네요. 감각이 대체 얼마나 좋은 거야?”
잠시 박 부장의 늑대스러운 얼굴을 훑어보다 다시 앞을 바라본 남구가 깜짝 놀랐다.
“으응?”
곧이어 박 부장도 화들짝 놀랐다.
“헉! 아, 아니?”
산의 굴곡을 따라 휘도는 국도 옆으로 큰 강줄기가 굽이굽이 연이어져 흘렀다.
필사적으로 도로 위를 달리는 속도와 불어오는 거센 강바람이 더해져 도망자의 후드티에 달린 후드가 훌러덩 벗겨져 버렸다.
깊숙하게 눌러쓴 후드가 뒤집어지는 바람에 추하고 흉한 얼굴이 낱낱이 드러났다.
험상궂게 툭 튀어나온 눈두덩이 속 깊숙이 박힌 부리부리한 눈과 뭉개진 듯 낮고 짧은 코, 그리고 커다란 입.
쭉 찢어진 그 입 안에서 고르지 못한 치아 중 유독 길쭉한 이빨 두 개가 불퉁한 입술을 비집고 아래서 위로 뾰쪽하게 솟아 있었다.
각진 얼굴에 이 모든 것이 우악스럽게 들어찼다.
박 부장이 죽을 힘을 다해 도주하는 거구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물었다.
“허어! 저, 저건 또 무슨 괴물인가? 정말 추악하게 생겼군.”
“오크라는 놈입니다. 좀 못생겼죠?”
“못생긴 정도가 아니네! 꿈에 볼까 무서워. 자네가 전에 말한 오크란 것이 저것이었군. 저놈에 비하면 나는 양반이구만. 입에 발린 위로 인줄 알았는데 사실이었어.”
쫓기는 오크는 2m 50cm에 달하는 장신에 체형이 정사각형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엄청난 덩치였다.
온몸이 울퉁불퉁한 근육 덩어리였고 그 근육을 둘러싼 녹색 피부 위에 빨랫줄 같은 힘줄이 툭툭 불거져 꿈틀거렸다.
아기 옷을 입은 듯 팽팽하게 당겨진 후드티 때문에 피도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저 후드티는 또 어디서 주워 입었대? 저런 건 오버핏으로 좀 헐렁하게 입어야 제맛인데.’
박 부장이 커다란 오크에 눈을 떼지 못하고 탄성을 발했다.
“어이구! 저 괴물은 덩치가 정말 어마어마하구만. 키가 뭐 저렇게 크지?”
“보통은 저렇게 크지 않아요. 저놈이 특별히 큰 겁니다.”
설명하던 남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근데 좀 이상한데?”
“응? 뭐가? 왜? 어떻길래?”
신기한 듯 연신 물어오는 박 부장을 외면하고 남구가 눈꺼풀을 가느다랗게 좁히며 도주하는 오크를 자세하게 살폈다.
“분홍색 곰돌이 후드티도 그렇고 밑에는 농사지을 때 입는 꽃무늬 몸빼바지를 입었네요. 우리 할머니께서 즐겨 입으시던 건데? 어디 시골 농가 빨랫줄에 걸린거 그냥 훔쳐 입은 모양인데요?”
“그게 뭐 이상한가? 사람들 눈을 피해서 훔쳐 입었겠지!”
“저런 건 폼에 살고 폼에 죽는 오크들 취향이 전혀 아니거든요.”
“아무리 폼생폼사라지만 일단 살고 봐야하지 않겠나? 어어! 거의 맞을 뻔 했는데 살짝 빗나갔군.”
도주하는 오크를 사람들이 열심히 쫓으며 간간이 화살을 날렸다.
벌써 한 발은 등짝에 틀어박혀 있었다.
남구가 개구진 표정으로 박 부장을 돌아보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부장님, 아직도 구하고 싶어요?”
“큼, 크흠! 이, 이만 돌아갈까? 토끼가 타기 전에 갈 수 있겠어.”
“아뇨, 여기까지 왔는데 피는 좀 보고 가야지요.”
“허어! 자네는 그런 끔찍한 소리를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군.”
“어디 보자! 어떤 놈부터 없애야 할까?”
석궁을 들어 올리는 남구를 보고 박 부장이 기겁했다.
“이, 이보게! 괴물을 구하겠다고?”
“저놈 아니, 놈인지 년인지 모르겠지만 괴물은 아니에요. 부장님처럼 몬스터의 탈을 쓴 사람입니다.”
“뭐라? 진,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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