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단체전 (2)
남구는 이미 화살을 모두 소진하여 뼈 칼을 꺼내 들고 적의 수장과 치열하게 일기토를 벌이는 중이었다.
기다랗고 거대한 크기로 초승달처럼 휘어진 참룡도가 남구를 두 동강 낼 듯 거세게 휘둘러졌다.
중량감 있는 적의 강철 무기와 고작 뼈를 갈아 만든 날붙이가 부딪친다면 그야말로 남구의 뼈 칼은 산산이 조각날 것이 분명했다.
적의 몸에는 온통 고슴도치처럼 무수한 화살이 틀어박혔고 발목뼈가 훤히 드러나 절뚝절뚝 다리까지 절었지만 남구도 함부로 파고들 수는 없었다.
남구는 무기끼리의 접촉을 최대한 피하면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적의 주위를 빠른 몸놀림으로 돌며 후퇴와 전진을 거듭했다.
리웨이는 육중한 도를 나뭇잎처럼 가볍게 다루는 도법을 사용했다.
아직 검신에 발현시키지는 못했으나 상당한 내공까지 있어 보였다.
내공이 없었다면 벌써 빈사 상태에 이르고도 남았을 만한 상처를 안고 있었다.
리웨이가 한기 파동의 기력을 모을 기색만 보이면 득달같이 달려들거나 중력제어를 사용하여 툭툭 맥을 끊었다.
조금씩이라도 모아가는 참룡도의 한기 파동이 먼저일지 남구가 가하는 치명타가 먼저일지 1호실 사람들은 가슴을 졸이며 바라보았다.
남구와 리웨이의 엄청난 움직임에 홀린 듯 넋을 잃고 바라보던 이들의 정신을 최남단의 목소리가 번뜩 깨웠다.
“봐라! 퍼뜩 점마들부터 쥑이야 한데이!”
모두의 시선이 최남단을 거쳐 눈밭을 나뒹굴다 이제 막 일어선 중국인들에게 향했다.
뒤에 서 있던 팽석수가 최남단의 말에 이어 일행을 독려했다.
“자자, 전진합시다.”
중국인들에게 쥐구멍은 없었다.
도망치더라도 얼어 죽을 일밖에 남지 않은 그들은 배수진 앞에 선 심정으로 몽둥이를 들었다.
창과 방패를 앞세우고 서서히 조여오는 한국인들에게 엄청난 압박감을 느꼈지만, 누군가 부담을 떨쳐내려는 듯 악에 받친 고함을 질렀다.
“우리가 이길 수도 있어! 무조건 진다는 생각은 버려!”
곧바로 호응이 일었다.
“맞아! 도망치면 백 퍼센트 얼어 죽어. 차라리 싸우는 게 살 확률이 높을 거야!”
“그, 그래! 최소한 리웨이가 올 때까지 버티기라도 하자고.”
벼랑 끝에서 전의를 다진 중국인들도 서로 간격을 유지하며 맨발로 눈 위를 밟아 나갔다.
그때 섬뜩한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투웅- 쐐애애애액-
화살이 바람을 가르고 날아들었다.
퍼억- 으, 으아아악!
비록 방아쇠도 넓적한 나무판으로 만들어진 수제 석궁이었지만, 완벽히 적응을 마친 팽석수가 바로 코앞의 표적을 놓칠 리가 없었다.
원시적이고 조잡해 보이나 석궁 시위의 장력은 실로 대단했다.
발사된 짧은 화살은 어깨뼈를 관통하고 깊숙이 틀어박혀 피에 젖은 깃털만을 빼꼼히 들어냈다.
화살에 맞은 중국인이 목청껏 비명을 지르며 부르짖었다.
“으아아악! 그냥 뛰어!”
휘둥그레진 눈으로 화살에 맞은 동료를 돌아보던 이들도 황급히 외쳐댔다.
“장, 장전하기 전에 달려!”
“젠장! 돌격! 돌격해!”
“뛰어! 으아아아!”
양 진영은 바로 코앞에서 마주하고 있었기에 삽시간에 접전이 일어났다.
팽석수가 미련 없이 석궁을 돌려 메고 뼈 칼을 뽑아 들었다.
공교롭게도 화살을 맞은 자가 제일 먼저 뛰어들었다.
박영호가 가장 먼저 달려드는 중국인을 향해 기다란 뼈 창을 곧게 찔러넣었다.
푸욱- 끄아아악!
뼈 창이 가슴팍 정중앙에 깊숙이 틀어박혔다.
뒤를 이어 뛰어든 자가 틀어박힌 창 대를 양손으로 말아쥐고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어? 어어!”
박영호가 그대로 당겨져 끌려 나갔다.
끌려 나온 박영호의 정수리에 몽둥이가 내리꽂혔다.
터엉-
순간 방패를 들어 올려 간신히 튕겨냈다.
뼈 칼을 빼든 팽 석수가 영호가 빠져나간 자리로 득달같이 튀어 나갔다.
팽석수의 예리한 뼈 칼이 몽둥이를 휘두른 자의 목덜미를 바람처럼 스쳐 지났다.
휘이익- 촤아악-
하얀 눈밭에 붉은 피가 흐드러지게 뿌려졌다.
“끅! 끄윽!”
몽둥이를 놓치고 양손으로 베어진 목을 틀어막았다.
팽석수가 박영호의 뒷덜미를 붙잡고 힘껏 끌어당겼다.
박영호의 창대를 붙들고 늘어지던 중국인까지 휘청거리며 덩달아 달려왔다.
기회를 포착한 최남단이 악을 쓰며 창대를 쭉 뻗었다.
“띠지라! 이 문디 자슥아!”
송곳처럼 찔러든 뼈 창이 끌려온 자의 아랫배에 정확하게 쑤셔박혔다.
푸욱- 아악!
연이어 조무모의 창 날도 쏜살같이 옆구리에 틀어박혔다.
푹- 아아아악!
내장이 끊어지는 고통에 붙잡고 늘어지던 창대를 놓치고 말았다.
자유를 얻은 박영호의 뾰쪽한 창 날이 곧바로 가슴 정중앙을 파고들었다.
퍼억- 컥!
어깨에 화살을 맞고 영호의 창 날에 가슴을 꿰뚫린 자가 무너지듯 내려앉았다.
철퍼덕-
팽석수의 바람처럼 날아든 예리한 칼날에 목이 기다랗게 베인 자가 뒤통수부터 대자로 넘어갔다.
쿠웅-
길쭉한 창날에 아랫배와 옆구리와 가슴팍을 연달아 꿰뚫린 자가 고꾸라지며 얼굴을 눈 속에 파묻었다.
퍼서석-
거의 동시에 세 명이 하얀 눈바닥 위로 선명한 핏줄기를 흩날리며 널브러졌다.
접전은 한순간에 끝나 버렸다.
혼자 남아 몽둥이를 치켜들고 있던 중국인이 얼어붙은 듯 그 자세 그대로 굳어 있었다.
일말의 망설임 없이 세 개의 창날이 곧장 날아들었다.
푹- 푸욱- 퍽-
“끄아아아아악!”
팽석수가 눈바닥을 박차며 튀어 나갔다.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예리한 칼날이 정수리를 쪼개고 파고들었다.
쩍-
길게 이어지던 중국인의 절규가 전원이 나간 듯 뚝 끊겼다.
짧게 일었다가 곧바로 사라진 단말마의 절규에 파란 눈동자가 슬쩍 옆으로 돌았다.
까만 눈동자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남구의 살짝 비틀린 입꼬리가 열렸다.
“저쪽은 벌써 끝난 것 같은데? 그러게 지구에서처럼 혼자만 잘 먹고 잘살라고 그러면 안 돼. 여기는 상황이 좀 다르거든.”
리웨이도 남구처럼 입꼬리를 비틀고 있었다.
빨간 수염이 무성하게 자라난 비틀린 입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큭큭큭! 뭔 소린지 원! 설마 너희가 이겼다고 기고만장한 건가? 저 쓰레기들이 나한테 데미지를 줄 수 있을 거라 믿는 거야? 저런 벌레만도 못한 것들 한 트럭이 몰려와도 나한텐 어림도 없어!”
리웨이가 자신의 애도를 힐끔거리며 웃었다.
“큭큭! 네가 죽을 시간이 다가오고 있구나!”
남구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도신에 감돌기 시작한 광채를 보면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대강 짐작이 갔다.
널찍한 도면에 가득 새겨진 선상을 따라 푸른 빛줄기가 껌뻑껌뻑 맥동이라도 하는 듯 점멸하며 흐르고 있었다.
스킬의 충전이 거의 완료되어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쐐애애애애액-
전장을 마무리한 팽석수가 리웨이를 향해 석궁을 쏘았다.
카앙-
널찍한 도면으로 가볍게 막아낸 리웨이의 입가에 조소가 떠날 줄 몰랐다.
“큭큭큭! 파리가 앵앵대는군.”
리웨이의 주변에는 전신에서 흘러나온 혈액으로 피범벅이 돼 있었다.
계속되는 출혈에 시간이 지날수록 남구가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참룡도라는 저 명품 아이템만 아니었다면 그렇다.
기력이 쇠하길 기다리던 남구가 칼자루를 고쳐 잡았다.
올올이 부서져 검은 파도처럼 흩날리는 머리카락 사이에서 남구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벼려졌다.
“몸을 좀 사렸는데 이젠 슬슬 들어가야겠어.”
‘중력제어!’
리웨이가 칼자루를 움켜쥐고 대기의 기운을 끌어모으자마자 도신이 바닥으로 푹 꺼졌다.
동시에 한쪽 무릎을 바닥에 찧었다.
쿠웅-
찍어 누르는 가공할 중력의 압력에 또 무릎이 꺾이고 도신이 언 땅에 처박혔다.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기를 쓰고 일어나 땅속 깊숙이 박혀 든 도신을 힘겹게 뽑아 들었다.
“으윽! 대체 아까부터 뭔 짓거리를 하는 거는 거야?”
쐐애애애애애액-
중력제어가 펼쳐지고 있는 상황에서 팽석수가 쏜 화살이 날아들었다.
촤아아악-
뾰쪽한 화살촉이 뺨을 기다랗게 가르고 지나갔다.
“크으으.”
전신을 구속하던 가공할 압력이 말끔히 해제됐다.
몸이 가뿐해짐을 느끼는 순간 복부에 통증이 밀려들었다.
푹-
나뭇잎 모양의 뼛조각이 명치를 뚫었다.
“크악!”
쉭- 쉭- 쉬시시식-
뼛조각들이 삽시간에 날아들었다.
캉- 캉- 카가가강-
남구가 허리에 착용한 표창들을 몽땅 안면을 향해 뿌리며 쇄도했다.
마지막 표창을 튕겨낸 리웨이가 코앞까지 닥쳐든 남구의 목을 향해 육중한 도신을 표창만큼이나 가볍게 휘둘렀다.
휘우우우웅-
남구의 뼈 칼이 밑에서 위로 치솟아 널찍한 도면 밑에 찰싹 달라붙었다.
채앵-
글탄 검술이 뼈 칼과 도신을 한 몸인 듯 붙여 버렸다.
두 병장기는 사이좋게 하늘 높이 솟구쳐올랐다.
곧 작용하는 힘의 이동 경로에 따라 파도를 타듯 넘실거리며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퍼억-
꽝꽝 얼어붙은 흙바닥에 도신이 깊게 박혀 들었다.
언제 붙어있었냐는 듯 뼈 칼만이 홀로 떨어져 나와 목덜미를 번개같이 스쳐 지났다.
핑-
붉은 수염이 반듯하게 잘려 나가 거친 바람을 타고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헉!”
남구가 목을 베어내며 기함한 리웨이의 곁을 멀찍이 스쳐 지났다.
목을 완전히 잘라내려는 의도였으나 순간적으로 상체를 젖히는 바람에 그나마 머리는 붙어있었다.
리웨이가 바닥에 꽂힌 도를 힘주어 뽑아냈다.
꾸드득-
동시에 베어진 목덜미에서 핏줄기가 솟구쳐 나왔다.
촤아아아아아악-
“끅!”
리웨이는 분수처럼 피를 뿌리면서도 한기 파동의 기운을 모았다.
그럴수록 핏줄기는 더욱더 세차게 뿜어졌다.
남구의 주변시에 단독행동을 하는 팽석구가 포착됐다.
남구의 까만 눈동자는 미동도 없이 리웨이만을 주시했다.
함부로 뒤룩뒤룩 굴렸다가는 적이 팽석구의 움직임을 눈치챌 수 있었다.
팽석구는 팀에서 떨어져 나와 몇 그루 없는 침엽수에 몸을 숨긴 채 가지 위로 석궁을 걸쳐 놓고 신중하게 조준했다.
퉁- 쐐애애애애액-
팽석구가 발사한 짧은 화살이 빛살처럼 날아들어 뺨에 꽂혔다.
퍽- 카아아아악!
화살을 매단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비명을 내질렀다.
찢어져라 벌어진 입을 통해 비명만 나온 것이 아니었다.
부서진 치아가 입 밖으로 후두두 튀어 나갔다.
목덜미에서 뿜어져 나오는 핏줄기를 손바닥으로 틀어막고 공포에 잠식된 파란 눈동자를 정신없이 떨어댔다.
또 충전이 끊어져 버린 참룡도의 칼자루를 사력을 다해 움켜쥐고 후들거리는 팔을 악착같이 들어 올렸다.
리웨이는 전신에 무수한 화살이 꽂혀 고슴도치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으며 표창까지 뱃속에 품어 안고 뺨을 볼트에 꿰뚫린 채 목이 기다랗게 베였는데도 참룡도에 대기의 기운을 모으고 있었다.
암담해진 상황에 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그것뿐이었다.
‘하! 아무리 내공이 받쳐준다고 해도 대단한 놈이기는 하군.’
널따란 도신에 휘돌던 빛줄기가 점멸을 멈추고 푸른빛을 환하게 밝혔다.
남구의 쭉 뻗어낸 팔에서 손바닥이 펼쳐졌다.
‘중력제어!’
퍽-
푸른 광채를 발하는 도신이 또다시 흙바닥에 깊숙이 박혀 들었다.
눈알이 빠질 듯한 중력의 압력에 양쪽 무릎을 모두 접고 꿇어앉은 리웨이가 부르르 떨면서도 끝까지 칼자루를 쥔 손을 놓지 않았다.
‘죽을 때 죽더라도 한 방 먹이고 가겠다는 건가? 자식, 심보 한번 고약하군.’
확실한 마무리가 필요했다.
‘일소!’
피투성이 몸에서 빛의 실타래가 줄줄이 뽑혀 나왔다.
중력이 해제된 덕분에 바닥에 틀어박힌 도신을 반쯤 뽑아내던 리웨이는 그대로 멈춘 채 눈깔을 까뒤집고 절규했다.
“크아아아아악!”
우우우우우우웅-
남구와 리웨이를 연결한 백색 빛줄기가 출렁출렁 꿈틀꿈틀 요동쳤다.
생명 에너지가 남구에게 고스란히 빨려듦에 따라 리웨이의 몰골은 미라처럼 쭈글쭈글하게 쪼그라들었다.
푸석하게 갈라지다 못해 이미 반쯤 잘려 나간 목덜미가 뚝 끊어졌다.
머리통이 무릎 꿇은 몸을 타고 데구루루 굴러내렸다.
빛줄기의 마지막 꼬랑지가 손바닥으로 종적을 감추자마자 벅차오르는 숨결을 토해냈다.
“하아아아아아!”
백색 기운이 입김에 섞여 뿜어지다 휘몰아치는 바람에 산산이 흩어졌다.
[2516 LP 획득]
[생명 포인트 : 4785 LP]
‘호오! 이게 웬 떡이야?’
1호실 사람들은 일소가 발휘되는 일련의 신비로운 과정을 그저 얼이 빠진 모습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너무 놀라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
남구는 그런 그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미라가 되어버린 리웨이를 향해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등 뒤에 착용한 도집을 들어 올리자 리웨이의 상체가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언 땅에 깊이 박혀있던 참룡도를 뽑아 들었다.
‘묵직하구만! 그동안 전장에서 쓸만한 아이템이 한 번도 안 나왔는데 여기서 얻는군. 풋, 대인전이 좋은 게 이런 거지!’
남구가 부서져 내리는 미라 앞에서 서슬 퍼런 커다란 도를 들어 올린 채 번득번득 까만 눈동자를 빛내며 비열하기 짝이 없는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그 섬뜩한 모습을 접한 1호실 사람들은 또 한 번 몸을 떨었다.
자기들의 리더라 하더라도 주체하기 어려운 공포가 밀려들었다.
남구의 제어에 도신에서 선상을 따라 휘돌던 푸른 광채가 서서히 누그러들었다.
발광하던 빛이 모두 사라진 도신을 부피도 커다란 가죽 도집에 밀어 넣었다.
스르르르릉- 턱-
냉기를 풀풀 날리던 흉흉한 도신이 숨어들자마자 시스템 메시지가 곧바로 떠올랐다.
[임무 달성을 축하합니다]
[50 LP와 아이템 룰렛 이용권 1매가 지급되었습니다]
[MVP 강남구에게 황금 룰렛 이용권 1매가 지급되었습니다]
[소환을 진행 중입니다. 충격에 대비하세요]
[남은 시간 30초··· 20초··· 10초······.]
선작, 추천은 작가의 우울증을 예방할 수 있답니다. 볼만 하셨다면 꾹~ 눌러주세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