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난전
“이제야 일어났구나! 죽여버려!”
머리 없는 라이칸은 박도를 든 남자의 반가운 외침에 부응이라도 하려는 듯 받아 안은 상대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꽝-
남구의 참룡도에 옆구리가 베여 갈비뼈와 내장이 훤히 드러났고 단칼에 목이 날아가 머리 또한 없는 상태였지만 내동댕이친 상대를 기민하게 덮쳐들었다.
‘오호라! 시체를 되살리는 스킬! 박도에 저런 기능이 있었군.’
박도는 도면에 얼기설기 엮인 기하학적인 선들로 인챈트가 되어있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야전에서 누구나 소지할 만한 장식 하나 없는 흔한 모양의 투박한 칼이었다.
남구가 60cm밖에 안 되는 짧은 길이의 박도에서 뿜어지는 검붉은 광채를 쳐다봤다.
박도를 든 남자는 라이칸의 머리가 떨어지자마자 스킬을 시전했을 것이다.
그때부터 박도의 도신에서는 인챈트 된 선상을 따라 검붉은 광채가 껌뻑껌뻑 흐르기 시작했었다.
이제는 점멸하지도 않고 흉흉한 광채를 온전히 발하고 있었다.
박도를 손에 쥔 남자가 날붙이에 흐르는 검붉은 광채를 잔뜩 찌푸린 눈으로 힐끔 들여다보고는 투덜거렸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려? 뒈질 뻔했네!”
남구가 바닥에 나뒹군 대가리를 내려다봤다.
잘려 나간 대가리가 눈을 부릅뜨고 제 몸뚱어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박도에서 발하는 광채와 똑같은 검붉은 빛이 부릅뜬 눈동자에서도 흉악망측하게 번뜩거렸다.
‘목이 잘렸는데도 스킬이 적용되는군. 흐음! 저거 쓸만한데?’
머리 없는 라이칸이 바닥에 내동댕이친 라이칸을 깔아뭉개고 목덜미를 움켜잡은 채 바짝 손톱을 세운 반대 손으로 뺨을 후려쳤다.
쫘아아악-
기다랗게 갈라진 얼굴에서 핏줄기가 튀어 오르며 비명과도 같은 괴성이 터져 나왔다.
“크아앙!”
줄기줄기 갈라진 틈으로 광대뼈가 여실히 드러났지만, 괴성을 내지르던 주둥이를 한껏 벌리고 머리 없는 어깨를 덥석 물어뜯었다.
또한, 기다랗게 베어진 옆구리에 갈고리 모양의 손톱을 바짝 세운 커다란 손을 쑤셔 넣고 마구마구 헤집어댔다.
머리 없는 라이칸은 내장이 줄줄이 뽑혀 나오는 상황에서도 움찔거림조차 없었다.
어떠한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지 일말의 망설임이나 주저함 없이 안위 따위 돌보지 않고 공격 일변도였다.
서로 날카로운 발톱과 뾰족한 송곳니를 상대의 몸뚱이에 박아넣으며 엎치락뒤치락 뒤엉켜 박빙으로 힘 싸움을 벌였다.
‘깔린 놈도 대단하구나!’
전투 종족이라는 위명이 무색하지 않았다.
공격을 가해도 일절 반응이 없는 머리 없는 라이칸에 질릴 만도 하건만 깔린 위치에서 벗어나기 위해 투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남구의 시선이 박도를 든 남자에게 향했다.
‘순식간에 일 대 일이 됐군.’
빠각- 빠각- 빠가각-
정신없이 할퀴어대는 굵고 단단한 손톱의 궤적에 따라 방패에서 떨어져 나간 나무 파편이 줄기차게 비산했다.
철로 짜여진 프레임까지 괴력에 우그러들었다.
박도를 든 남자는 너덜너덜해진 방패로 사력을 다해 막아내며 주춤주춤 물러섰다.
최선을 다해 공격을 흘려내며 간간이 반격을 도모했으나 칼끝이 닿지 않았다.
라이칸의 팔이 훨씬 길었고 압도적인 속도로 숨 쉴 틈 없이 연타를 가해왔으며 힘에서도 우위였다.
공방이 계속될수록 더욱 위태로웠다.
거의 부서져 나간 방패나 그 방패를 든 남자나 얼마 버티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발톱이 방패를 할퀼 때마다 남자는 비산하는 나뭇조각과 함께 중심을 잃고 휘청휘청 휘둘렸다.
하지만 눈빛만은 꺾이지 않았다.
악착같이 버텨내며 집요하게 빈틈을 노렸다.
순간 뇌전을 띤 화살이 팔을 한껏 치켜올린 라이칸의 어깨에 틀어박혔다.
빠지지직-
푸른 전격이 라이칸의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바짝 손톱을 세운 솥뚜껑만 한 손바닥을 하늘 높이 들어 올린 채 감전된 몸을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화살을 발사한 남자가 몸을 내던지며 휘저은 발톱을 피했다.
두 마리에 쫓기느라 물러나기 급급했다.
감전된 라이칸은 날렵했던 움직임을 우뚝 멈추고 푸른 전류가 뒤덮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기회를 포착한 남자가 박도를 휘두르며 쇄도했다.
두텁고 짧은 박도가 순식간에 무릎을 베어냈다.
그대로 비껴 올라가 몸통을 사선으로 훑고 지났다.
연이어 수평으로 목을 쳐냈다.
퍽- 촤악- 촤아아악-
전광석화같이 역으로 제트자를 그리고는 훌쩍 물러났다.
박도를 든 남자가 물러나자마자 라이칸의 몸에 흐르던 전류가 사라졌다.
감전되어 부들부들 떨고 있던 시간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 치명타를 입은 커다란 덩치의 라이칸은 목을 부여잡고 무릎을 꿇었다.
쿠웅-
결정타였다는 것을 확신한 박도를 든 남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섰다.
활을 든 남자를 협공하는 라이칸에게 곧바로 뛰어들었다.
두 마리 중 한 마리의 등짝에 박도를 휘둘렀다.
촤아악-
기다랗게 등짝이 갈라졌지만 바로 돌아서며 바짝 세운 손톱으로 후려쳤다.
꽈앙- 빠가각-
순간적으로 막아낸 방패가 산산이 부서져 무수한 파편을 흩날리며 장착된 팔에서 날아갔다.
두 마리에게 정신없이 쫓기던 활을 든 남자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무 말이 없어도 호흡이 척척 맞았다.
여전히 활을 든 남자를 쫓던 라이칸이 갈가리 찢어버리겠다는 듯 얼굴을 후려쳤다.
부웅-
활을 든 남자가 급히 고개를 숙이고 허공을 찢어발기며 휘둘러지는 팔 밑으로 파고들었다.
딸깍-
비틀린 활대가 분리됐다.
분리된 양쪽 활대를 가는 와이어가 잇고 있었다.
파고든 남자가 와이어로 종아리를 휘감았다.
와이어에서 뇌전이 일었다.
빠지지직-
전류가 라이칸의 전신에 휘몰아쳤다.
뻣뻣하게 몸이 굳은 라이칸이 원심력을 이기지 못하고 앞으로 우당탕 고꾸라졌다.
와이어를 풀어내며 머리를 처박고 엎어진 라이칸의 등 뒤로 올라탔다.
와이어가 허공에 원을 그리며 휘리릭 목에 감겼다.
“크아아앙!”
감전된 몸은 순식간에 회복됐지만, 철제 와이어가 목덜미의 피부를 시시각각 파고들었다.
라이칸은 곧장 일어나 온몸을 휘돌리며 남자를 떼어내려 발버둥 쳤다.
양발과 와이어로 허리와 목을 단단히 감아 고정한 남자는 매미처럼 달라붙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떨어지지 않았다.
날뛰는 라이칸의 등 뒤에 매달린 남자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뭐해? 안 도울 거야?”
거대한 참룡도에 비딱하게 기대서서 여자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남구가 피식 비웃음을 날렸다.
“풋, 잘 싸우네! 재미있군. 마족이 왜 데스 게임에 환장하는지 알겠어. 잘해 보라고.”
“이런 개자식!”
매미처럼 등짝에 달라붙은 남자가 이를 바득바득 갈다가 비명을 내질렀다.
“크아아악!”
허벅다리 살점이 뭉텅이로 떨어져 나갔다.
발버둥 치던 라이칸이 허리를 휘감은 다리를 쥐어뜯었다.
활대를 놓치고 떨어져 나와 절뚝이며 멀찍이 물러났다.
라이칸이 와이어를 풀어내고 분리된 활대를 저 멀리 집어 던졌다.
“그르르르르!”
와이어가 파고들었던 목덜미에서는 핏물이 꿀렁꿀렁 배어 나왔다.
멀찍이 물러난 남자가 악에 받쳐 외쳤다.
“썩을! 목이 떨어지지 않아.”
‘와이어로 금방 목을 잘라낼 수 있을 거로 생각했겠지. 하지만 쟤네 근질이 장난 아니란다. 너 빠르긴 한데 근력이 좀 달려. 아무나 목을 뎅겅뎅겅 쳐낼 수는 없지.’
머리 없는 라이칸이 깔아뭉갠 상대를 갈기갈기 찢어발기고 꺼낸 심장을 움켜쥔 채 서서히 일어났다.
퍼억-
움켜쥔 아귀힘을 버티지 못하고 심장이 터져 나갔다.
“좋아! 이쪽으로.”
박도를 든 남자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짓뭉갠 심장을 팽개치고 튀어 나갔다.
방패를 산산조각으로 날려버린 라이칸에게 훌쩍 날아 덮쳐들었다.
날아드는 궤적에 핏줄기와 함께 빠져나온 내장이 기다란 줄을 이었다.
박도를 든 남자를 끈질기게 따라붙던 라이칸이 같이 뛰어올랐다.
꽈앙-
공중에서 충돌한 둘은 서로 날아왔던 방향으로 제각각 튕겨 나가 나뒹굴었다.
남구가 바닥에 덩그러니 놓인 잘린 대가리를 내려다봤다.
‘넌 왜 그렇게 눈깔을 부릅뜨고 있니?’
참룡도로 대가리를 슬쩍 굴렸다.
검붉은 안광을 번득이며 제 몸뚱이를 부릅뜬 눈으로 쳐다보던 대가리가 반대편으로 대굴 굴렀다.
나뒹굴다가 벌떡 일어난 머리 없는 몸뚱이가 마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우적댔다.
검붉은 안광을 번득이던 눈동자가 제 몸뚱이를 찾아 좌우로 뒤룩뒤룩 굴렀으나 보이는 건 석벽뿐이었다.
‘내장이 죄다 빠져나와도 살아 움직이는 몸뚱이지만 약점이 있었구만. 어디 확인 한번 해 볼까?’
남구가 확인차 기대고 있던 육중한 참룡도를 그대로 들어 올려 대가리에 떨구었다.
퍽-
머리통이 꼬치처럼 꿰뚫리자 앞이 보이지 않는 듯 허우적거리던 몸뚱이가 힘을 잃고 곧바로 주저앉았다.
‘역시 뇌였군.’
머리통을 밟고 참룡도를 뽑아냈다.
그 모습을 박도를 든 남자가 휘둥그레 뜬 눈으로 바라보았다.
기가 막혀 말을 못 하고 입술만 달싹거렸다.
박도에서 발하던 검불은 광채가 사라지고 없었다.
박도를 든 남자는 너무나 황당하여 입술만 달싹거리고 있었지만, 활을 잃고 단검을 뽑아 든 남자는 열불이 나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무슨 짓이야?”
“아니, 난 눈을 부릅뜨고 있길래.”
“그게 무슨 개소리야!”
“거기 조심해.”
라이칸이 갈라진 목에서 피를 흩뿌리며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갈퀴 같은 손톱이 황급하게 빠져나가는 가슴팍을 스쳐 지나 팔에 걸렸다.
쫙-
“아아악!”
잠시 한눈을 판 대가는 치명적이었다.
팔꿈치 위에서부터 뜯겨나간 한쪽 팔이 분수처럼 핏줄기를 뿌리며 공중에 떠올랐다.
양 훅을 날리듯 반대 손도 연달아 날아왔다.
주저앉아 손톱을 머리 위로 흘려냈다.
남은 한쪽 팔을 쭉 뻗어 겨드랑이 밑에 단검을 꽂아 넣으며 빠져나왔다.
푸욱- 크아아앙!
라이칸이 상처 입은 울대에도 불구하고 거칠게 울부짖으며 깊숙이 박힌 단검을 뽑아냈다.
결코 상처가 얕지 않았다.
와이어에 갈라진 목과 깊게 찔린 겨드랑이에서 엄청난 출혈이 이어졌다.
“그르르르르!”
어깨를 들썩이며 팔이 날아간 남자를 쏘아봤다.
멀찍이 물러난 남자가 급히 옷을 찢어 너덜너덜 떨어져 나간 팔을 남은 한 손과 이로 물어가며 동여맸다.
팔을 잃은 남자는 참기 힘든 통증과 암담해진 미래에 온통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남구를 향해 악다문 어금니 사이로 욕지거리를 뱉어냈다.
“으윽! 이런 제기랄! 이 개새끼야 좀 도와!”
남구는 두 남자가 팔을 잃건 활을 잃건 방패를 잃건 일말의 관심도 두지 않고 이제 막 뒤로 넘어가는 라이칸을 보고 있었다.
쿠웅-
무릎과 상반신과 목이 베인 라이칸이 결국 그 질긴 숨을 거뒀다.
“징글징글하게 끈질기구나!”
이제나저제나 숨이 끊어지기만을 기다려 오던 박도를 든 남자가 부리나케 스킬을 시전했다.
박도의 널찍한 도면에서 검불은 광채가 껌뻑껌뻑 흐르기 시작했다.
박도를 든 남자를 상대하던 라이칸도 저 광채가 의미하는 바를 알고 있었다.
등짝이 길게 베어졌지만 검붉은 광채가 껌뻑껌뻑 빛을 발하자마자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쫙- 쫙- 쫘아악-
“크악! 으으윽!”
박도를 든 남자는 활을 들었던 남자보다 힘은 강할지 모르나 빠르지 못했다.
방패를 잃은 후에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전신이 이곳저곳 긁혀나갔다.
‘방패 관련 스킬이라도 익히고 있었던 모양이군.’
박도를 휘두르며 대항했지만 엄청난 반응 속도를 자랑하는 라이칸에게는 얕은 생채기만 남길 뿐이었다.
온몸에 깊은 손톱자국이 하나둘 늘어 갈 때 라이칸 시체가 부릅뜬 눈동자에 검불은 안광을 번쩍이며 일어섰다.
“크아악! 빠, 빨리 막아!”
다급한 남자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듯 바람처럼 몸을 날렸다.
퍼억-
머리통을 후려치고서는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꽈드득-
“크아아아앙!”
목을 물린 라이칸이 울부짖으며 상대의 등짝을 양손으로 후벼팠다.
등이 줄기줄기 갈라져 나갔지만, 송곳니를 틀어박은 목덜미를 놓지 않았다.
좌우로 고갯짓하며 목을 끊어버릴 듯 흔들어댔다.
“으윽! 그래! 잘한다. 모가지를 뜯어버려!”
박도를 든 남자는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고통에 일그러진 표정이었으나 간발의 차로 목숨을 건진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남구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여태 놓지 않고 꼭 쥐고 있던 참룡도를 등 뒤 가죽 도집에 밀어 넣었다.
스르르릉- 탁-
멀찍이 떨어진 구석을 향해 손을 뻗었다.
휘이이익- 착-
곧장 날아온 활대가 손바닥에 달라붙었다.
‘으흐흐! 별 두 개짜리 명품 아이템은 처음 가져 보는군.’
선작, 추천은 작가의 우울증을 예방할 수 있답니다. 볼만 하셨다면 꾹~ 눌러주세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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