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크리처 (6)
남구의 신체가 순간 바람과 같이 사라진 듯 보였다.
앞발을 한껏 젖힌 크리처의 등 뒤 허공에서 남구의 모습이 느닷없이 드러났다.
입과 코를 비롯해 전신에서 핏줄기를 흩날리며 허공을 날아드는 남구의 팔은 이미 거세게 뿌려져 있었다.
휭휭휭휭휭휘이잉-
중력제어로 당겨와 움켜쥐었던 벌목용 쿠크리가 가공할 속도로 뻗어나갔다.
위험을 감지한 크리처가 순간 지면을 박찼다.
쩌적-
그러나 피하기에는 너무나 찰나의 시간.
낫처럼 역으로 굽어진 쿠크리의 칼날이 몸을 막 띄우려던 크리처의 머리 꼭대기에 일자로 틀어박혔다.
동시에 육중하게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이어졌다.
붕붕붕붕붕부우웅-
멀리뛰기 세계 신기록이라도 세우려는 듯 공중을 쇄도하는 남구의 반대 손도 어느새 휘둘러져 허리 밑으로 내려가 있었다.
빠각-
도끼날이 뒤통수 머리뼈를 쪼개며 박혀 들었다.
“크아아아아앙!”
크리처의 크고 세찬 울부짖음에도 묻히지 않는 맹렬한 바람개비 소리가 연속됐다.
휘리리리리리리릭-
남구가 양손을 한꺼번에 들어 올린 채 여전히 공중에 떠올라 있었다.
군용 대검 두 자루가 양쪽 허리에서 뽑히자마자 밑에서 위로 뿌려졌다.
중심이 앞으로 쏠려 쭉 빠진 크리처의 뒤통수에 돌연 칼자루가 모습을 드러냈다.
퍼벅-
깊게 파고든 쿠크리와 도낏자루 옆으로 두 자루의 군용 대검이 동시에 꽂혔다.
공중을 부유하던 남구가 크리처의 등짝으로 떨어져 내렸다.
쿠궁-
앞으로 쏠린 크리처의 대가리가 바닥에 처박혔고 고꾸라진 등짝 위로 올라탄 남구의 손아귀에 언제 뽑아 들었는지 투박하고 묵직한 해머가 번쩍 들려 있었다.
한껏 치켜든 해머가 공기층을 사정없이 짓누르며 떨어져 내렸다.
부우우웅- 쩡-
뒤통수 머리뼈에 박혀 든 도끼 뭉치가 해머에 맞고 더욱 깊숙하게 틀어박혔다.
“크아아아앙!”
울부짖어도 소용없었다.
남구의 내리꽂는 해머질은 멈추지 않았다.
쩡- 쩡쩡쩡- 쩌어엉-
무자비한 해머질에 도끼 뭉치는 두개골 속으로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도낏자루만이 뒤통수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군용 대검은 손잡이도 보이지 않았다.
못 박힌 듯 칼자루까지 몽땅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뒤통수에 꽂힌 두 자루의 대검뿐만이 아니었다.
이마와 미간에 박혀 있던 대검까지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쿠크리는 때려 박을 필요가 없었다.
애초에 날아와 박혔을 때 널찍한 도면이 전부 숨어버렸다.
대가리 속으로 쿠크리와 도끼 뭉치와 네 자루의 군용 대검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크리처는 엎어진 채 경련을 일으킬 뿐이었다.
턱을 괸 흥건한 피 웅덩이에 파문이 멈추지 않았다.
인정사정없이 내리꽂히는 해머의 위력에 바닥에 짓눌린 턱뼈부터 위아래로 맞물린 이빨까지 몽땅 부서져 나갔고 머리뼈 전체가 산산이 으스러졌다.
크리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가느다란 호흡이 이어졌다.
‘정말 징글징글하구나! 아직도 숨을 쉬네?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몸뚱이지?’
죽은 것과 다름없었지만 남구는 일말의 가능성도 허용하지 않았다.
뗑그렁-
해머를 옆으로 던져버리고 발목에서 픽스드 나이프를 꺼냈다.
15cm 길이에 비교적 넓은 폭의 날붙이가 크리처의 목덜미를 깊숙이 파고들었다.
푸욱- 서걱- 서걱-
절반쯤 도려냈을 때 크리처의 미약했던 움직임이 완전히 멈추었다.
[34 LP 획득]
[생명 포인트 : 698 LP]
사냥감에서 얻은 영양가(LP)를 바로 사용하지 않고 차곡차곡 모아둔 크리처가 꽤 있었다.
크리처와의 격전을 마무리한 지금 시점에서 얻은 생명 포인트가 무려 200 LP를 넘었다.
‘진화할 속셈으로 안 쓰고 잔뜩 모아 놨군.’
크리처의 죽음을 분명하게 확인했지만, 목덜미에 파고든 나이프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남구에게 내재한 집요하고도 악랄한 면모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서억-
몸통에서 뎅겅 떨어져 나온 큼지막한 대가리를 새빨갛게 물든 손으로 들어 올려 눈을 맞췄다.
항상 느껴 오던 것이지만 크리처는 정말 대단한 종이었다.
‘이렇게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생명체가 또 있을까?’
전능한 생명의 핵이 자리한 공동.
핵이 뿌려대는 가공할 기운에 어떠한 생명체도 살아갈 수 없는 장소였다.
단 하나의 종만이 그 압도적인 기운을 견뎌내며 버틸 수 있었다.
크리처는 생명의 핵을 지키는 파수꾼의 면모를 지금 이곳에서도 유감없이 보여줬다.
잘라낸 대가리를 보고 있자니 크리처와 사활을 걸고 최후까지 치열하게 맞섰던 과거가 불현듯 떠올랐다.
이제는 존재하지도 않는 과거가 되어버렸다.
남구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과거.
어쩌면 변함없이 그대로 미래가 될지도 모르는 과거.
끔찍한 과거의 기억이 스치자 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과거인 듯 과거 아닌 과거 같은 과거가 떠오른 남구는 엉망진창이 된 크리처의 대가리를 징글징글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쳐다봤다.
남구처럼 눈과 코와 입에서 핏줄기를 주룩주룩 흘리고 있었다.
크리처같이 머리뼈가 조각조각 박살이나 목이 잘리지는 않았지만 남구의 몸도 엉망이었다.
뚫리고 파이고 뜯기고 긁히고 베여 유혈이 낭자한 몸에 중력제어를 과도하게 사용해 내상까지 심각했다.
마주 본 크리처의 얼굴이 서너 개로 보였다.
들어 올린 너덜너덜한 대가리를 아무렇게나 던져 버리고 올라탔던 등짝에서 비틀비틀 일어섰다.
깔끔하게 잘려 나간 흉측한 대가리는 데구루루 지하매장으로 굴러 내렸다.
타다다다다다닥-
“크아아아아아!”
“캬아아아아아!”
1층 매장을 향해 팽이처럼 돌아가는 남구의 고갯짓에 붉은 땀방울이 방울방울 흩날렸다.
옴짝달싹 못 하던 부상자들을 뜯고 씹던 좀비 떼가 절규하듯 내지르는 특유의 괴성을 발하며 복도 통로로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옴짝달싹 못 하고 꼼짝없이 물어뜯긴 부상자들도 이제는 자신들을 물어뜯던 수많은 좀비와 같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내달렸다.
“아악! 팔, 팔이!”
“으으, 으으으.”
“흐으으윽! 내 다리!”
“크으윽! 사, 살려줘!”
무너진 복도 진지에 널브러져 간신히 목숨줄만 붙어 있는 사람들은 비명과 신음을 끊임없이 뱉어냈고 그와 같은 처절한 목소리는 매장으로 들이친 좀비 떼에게 더없이 달콤한 유혹이었다.
달콤한 유혹에 이끌린 좀비 떼거리가 복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남구는 몰려들기 시작한 좀비 떼거리를 힐끔 쳐다보고는 다시 쓰러져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 사람들을 또 미끼로 써야 하나?’
“크으으윽!”
“으윽! 으으윽!”
“하아! 하아!”
“남, 남구야!”
사람들이 몸을 숨긴 복도 진지에 크리처가 들이쳐 활개 친 시간은 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단 한 마리였다.
더군다나 그 한 마리는 죽기 일보 직전인 상태였다.
더더군다나 남구는 즉시 날다시피 튀어 왔다.
한계를 초과하여 무리하게 이동한 탓에 안구는 실핏줄이 다 터져 나갔고 입과 코에서는 하염없이 핏물이 흘렀으며 현기증에 물체는 두세 개로 보였다.
이런 최악의 몸 상태가 될 것을 알고 있었다.
온전치 못한 몸으로 크리처와의 격전을 감수하면서까지 먼 거리를 최대한 빠르게 이동하는 것을 선택했다.
과거의 남구였다면 어림도 없는 짓을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짧은 순간에 멀쩡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대부분이 미동도 하지 않았다.
팔다리가 날아가고 얼굴과 머리가 줄기줄기 갈라진 사람들이 미약하게 꿈틀거리며 고통에 겨운 비명과 신음만을 내뱉었다.
전멸이었다.
‘하! 반 친구들이 크리처를 처음 마주쳤을 때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다 죽어가는 한 마리를 못 막는구나!’
굳이 지금 몰려오는 좀비 떼가 아니더라도 이들은 곧 과다 출혈로 모두 죽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
살 방법이 딱 하나 있었다.
남구에게 선택받은 단 한 사람은 살 수도 있었다.
“이, 이봐! 나, 나 좀 살려줘!”
변 과장이 뚫린 배를 틀어막고 죽음의 공포에 질린 눈으로 남구를 바라보며 애걸했다.
이 사람들이 이렇게 속절없이 전멸당한 데에는 이들이 나약했던 탓도 있겠지만 저 벽면에 기대앉아 팔을 휘적거리며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는 변 과장이 한 몫 단단히 했기 때문이다.
아군의 등 뒤에다가 총질을 해버려 사람들의 멘탈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크리처에게만 집중하기도 빠듯한 상황에서 등 뒤로 날아드는 눈먼 총알에 맞아 죽거나 상처 입는 사람이 속출했다.
변 과장 같은 암적인 존재가 속한 팀은 저런 암적인 존재만 살아남던가 모두 죽는 경우가 허다했다.
공교롭게도 저런 사람은 의외로 많았고 어디에나 존재했다.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다가 결정적이거나 극한 순간에 본색을 드러내기 때문에 매우 성가신 존재였다.
사람은 단순한 짐승이 아니기에 암적인 존재라는 것을 인지했다 하더라도 상황이 발생하기 전에는 가능성만으로 도려내지 못한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지레짐작으로 미리 솎아내는 데에는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다.
평화로울 때는 무시하고 못 본 척해도 그만이겠지만 생과 사를 넘나들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만 하는 이런 시국에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치명적으로 다가오기 전에 미리미리 대비해 놓는 것이 좋았다.
보통은 제거해 두는 편이 여러모로 깔끔했다.
하지만 잔혹하다거나 악마라거나 사람이 아니라는 등의 욕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특히나 극한 상황에서 무리에게 따돌림을 받는다면 목숨을 보전하기 매우 어려워진다.
총대를 메게 되면 남구처럼 사냥개라던가 하는 좋지 못한 별명이 붙는다.
“···남구야.”
남구의 붉은 눈동자가 끊임없이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변 과장을 지나쳐 들릴 듯 말 듯 애처로운 목소리로 이름을 부른 김수정 대리에게 향했다.
김수정 대리는 싸늘하게 식어버린 이성우 대리 옆에서 조용히 누워 가느다랗게 숨을 쉬었다.
어깨부터 반대쪽 옆구리까지 깊은 고랑이 줄기줄기 파여 몸통이 통째로 떨어져 나갈 지경이었다.
전신에 착용한 시위 진압용 보호구 덕분에 떨어져 나가지는 않았다.
방호 장구는 정통으로 들이친 크리처의 날카롭고 단단한 갈고리발톱 앞에서 딱 그 정도 역할밖에는 하지 못했다.
김수정 대리의 눈동자는 생기가 빠져나가 남구에게 시선을 맞추기에 무리가 있었다.
그저 힘겨운 숨결로 근처에 있다고 인식한 남구의 이름을 한번 불러본 듯싶었다.
박 부장이 어금니를 짓씹으며 이 사이로 힘겹게 말을 뱉었다.
“크으, 어서 피해! 좀비가 몰려 와!”
남구는 아무 말 없이 눈동자만 박 부장을 향해 스르륵 돌렸다.
왼쪽 어깨 밑으로 팔이 보이지 않았다.
비록 참기 힘든 통증에 인상은 잔뜩 찌푸렸으나 죽음을 각오한 듯 의연했다.
박 부장의 꿋꿋한 목소리가 대답 없이 우뚝 서서 눈동자만 돌려가며 폐허가 된 전장에 생존자를 파악해 나가는 남구에게 이어졌다.
“큭! 우리는 끝났어. 그렇게 서 있지만 말고 너라도 어서 몸을 피해!”
박 부장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출혈도 내버려 둔 채 어떻게 할 도리 없이 밀려드는 고통을 그대로 견디며 때때로 경련을 일으킬 뿐이었다.
인제 와서 절단된 부위의 출혈을 막는다고 살 수 있을 만큼 가벼운 상처가 아니었다.
그러나 남구는 신속하게 움직였다.
탄띠에 달아 놓은 파라코드(낙하산 줄, 생존 끈)를 풀어 절단된 박 부장의 팔을 지혈해 나갔다.
“으으윽! 뭐 하는 거야? 어, 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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