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육체 쟁탈전 (9)
곧 뛰쳐나가 무기를 휘두를 것만 같은 일촉즉발의 험악한 분위기가 조정됐다.
누군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악!”
순간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그, 근데 똥은 어디다 싸지? 악! 배 아파! 나올 것 같아!”
은성의 무리 중 하나인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젊은 남자가 엉덩이를 틀어막고 우거지상을 했다.
갈지자로 걸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최고조에 달했던 팽팽한 긴장감이 순식간에 해제됐다.
파란 넥타이의 남자가 잠시 멍해졌던 표정을 다잡으며 꽥 소리를 질렀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죄, 죄송······. 대장증후군이 있어서.”
뒤뚱뒤뚱 어기적거리며 몇 발짝 움직이지 못해 가까운 기둥에 등을 지고 섰다.
다급한 손놀림으로 사력을 다해 바지를 끌러 내렸다.
쪼그려 앉자마자 내용물이 쏟아졌다.
뿌우웅- 푸드드드드득-
입도 뻥끗할 수 없었다. 그 누구도.
고요한 지하실에 북 터지는 소리만이 요동쳤다.
창문 하나 없이 꽉 막힌 지하에 암모니아, 메탄, 유황, 질소 등의 성분을 포함한 악취가 진동했다.
노랑머리 남자는 민망한지 실없는 소리를 주절거렸다.
“사, 사과가 잘못됐나?”
모두 한결같은 표정으로 코를 막고 고개를 돌렸다.
한목소리로 원성을 터트렸다.
“저저, 쯧쯧!”
“대체 뭘 먹은 거야?”
“크악! 죽을 것 같아!”
“이게 사람 똥 냄새야?”
“아악! 냄새!”
편을 나누어 서로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대다가 일치단결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긴장이 풀렸는지 아니면 노랑머리 남자에게 자극을 받은 건지 몇몇 사람이 벽면으로 걸어갔다.
대변을 쏟아내는 자에게 거침없이 타박을 늘어놓던 사람들이 나란히 서서 소변을 보기 시작했다.
게중 허리띠를 끄르는 사람도 있었다.
쏴아아아- 졸졸졸-
못마땅하게 일그러졌던 그들의 표정이 황홀해졌다.
예솔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눈물을 찔끔거렸다.
‘헥! 숨이 쉬어지지 않아.’
삽시간에 퍼지는 각종 대소변 냄새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외간 남자의 훌러덩 깐 엉덩이를 이토록 적나라하게 보게 될 줄은 미처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대장증후군이 이렇게 무서운 병증이라는 것도 이전에는 알 수 없었다.
“하압!”
몰아 쉰 숨을 참으며 남구를 내려다보았다.
일정하게 호흡하며 편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이 정도 똥 냄새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야 하는 거 아니야?’
생각하던 속마음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넌 정말 대단하구나! 축농증이 있는 걸까?”
무표정하던 남구의 얼굴에 순간 미묘한 변화가 스치고 지났다.
‘후후, 승부가 안 나면 싸우는 중에도 변을 봐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 마련이지. 골머리가 아프지만 티 낼 정도는 아니란다, 아가야!’
상쾌하지는 않았으나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었다.
피곤하다고 신호를 보내는 몸뚱이의 회복을 위해 예솔의 은근한 음성에 깨어났던 의식을 다시금 잠재웠다.
감정이 듬뿍 담긴 예솔 특유의 음성이 은은하게 들려왔다.
“눈도 한 번 안 뜨고 잘 자네!”
남구는 명상의 시간에 배경 음악을 듣는 기분으로 까무룩 해졌다.
*
얼마나 잠을 잤을까?
예솔이 남구의 어깨를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남구는 그 자세 그대로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눈동자만 움직여 올려다봤다.
힘없이 축 처져 졸린 눈을 비비는 예솔이 눈 안에 들어왔다.
“저기, 자꾸 졸아서 망보기가······.”
“자.”
예솔의 말을 끊어 먹은 남구는 상체만 약간 세워 뒤통수를 벽에 기댔다.
‘그동안 상황이 어떻게 얼마나 진행됐으려나?’
일어나지 못하고 비스듬히 벽면에 머리만 기댄 남구는 상당히 피곤해 보였다.
예솔은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머쓱하게 사과했다.
“미, 미안!”
괜한 사과에도 남구는 반응이 없었다.
예솔이 고단한 몸을 옆으로 누이며 중얼거렸다.
“조금만 잘게.”
남구는 그저 가만히 뒤통수를 벽에 기댄 상태에서 분주하게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려 대며 사방을 훑고 있었다.
지친 사람들이 모두 잠든 듯 보였다.
바닥에 말라붙은 혈액과 모퉁이의 즐비한 배설물로 사방은 악취가 가득했다.
‘대체 얼마나 잔 거지?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거지? 하여간 잠은 푹 잔 것 같군.’
예솔은 자다가 칼을 맞고 싶으냐는 남구의 엄포에 걱정이 되어 오랜 시간 동안 뜬 눈으로 보초를 섰었다.
그런 노력에도 칭찬이나 격려는 못 해줄망정 대꾸도 없는 야속한 남구를 째려보며 말을 이었다.
“내가 얼마나 힘······. 후유, 말을 말자!”
어느 집 개가 짖는지.
담벼락에 말을 하는 것인지.
쇠귀에 경을 읽는 것만 같았다.
예솔은 너무 힘이 없어 더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이제는 그냥 그러려나 보다 하며 쪼그려 앉아 있던 노곤한 몸을 뉘었다.
예솔이 눕자 남구의 한쪽 입꼬리가 소리 없이 씩 비틀려 올라갔다.
예솔이 별일도 아닌 일에 골을 내는 것이 재미있었다.
장난이 아니었던 삶에서 왠지 장난 거리가 생긴 기분이다.
그저 가만히 목소리를 감상하는 것이 좋았다.
‘너무 오랫동안 음악을 듣지 못해서겠지.’
새우처럼 구부려 모로 누운 예솔을 돌아보았다.
‘바닥이 꽤 찰 텐데.’
교복 마이를 벗어 덮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평생 그렇게 해 본 적도, 그렇게 해 볼 기회도 없었다.
‘아직 초반이라 여유가 생긴 건가? 자만하면 죽는다.’
널브러진 시신들, 배설물 냄새와 피비린내, 앓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는 지옥 같은 곳에서 남구는 무의식중에 낭만을 찾는 것인지도 몰랐다.
예솔이 세상 모르게 잠들고 나서부터 또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창도 없는 공간에 시계마저 없으니 알 방도가 없었다.
그저 상당한 시간이 지난 듯한 느낌뿐이었다.
지칠 대로 지친 사람들은 수두룩한 시체의 틈바구니에서도 각자 자리를 잡고 죽은 듯이 자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 사이로 스르륵 소리 없이 조용하게 일어나 앉는 이가 눈에 들었다.
‘응? 빨간 머리 아줌마!’
예사롭지 않은 움직임이었다.
잠들었다가 깨어났다기보다는 지금껏 때를 기다려 은밀히 일어나는 모습이었다.
‘지금까지 계속 깨어 있었던 모양이네? 흐음, 뭔 일 나겠군.’
빨간 머리 아줌마는 낮은 자세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특히 실눈을 뜨고 자는 척하는 남구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남구를 오랫동안 주시하며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다.
한참을 그렇게 미동도 하지 않다가 잠들었다는 확신이 들었는지 옆 사람을 조심스럽게 흔들어 깨웠다.
틀림없이 사전에 모의 된 움직임이다.
‘내가 자는 동안 어느새 말을 맞춘 모양이지?’
나이 지긋한 노인이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속삭였다.
“으음, 다들 자는 거 맞아?”
빨간 머리 아줌마는 눈빛을 번들거리며 고개만 끄덕였다.
장바구니 아줌마도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앉았다.
잠에 취해 잔뜩 가라앉았지만, 긴장감이 물씬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조 사람들 깨우러 갈게.”
12명이 3명씩 4개 조로 움직였다.
빨간 머리 아줌마의 진두지휘 아래 일사불란한 낮은 자세로 은성의 무리에게 접근해 갔다.
각자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나름대로 온 힘을 다해 조심스럽게 움직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남구의 눈과 귀에는 무척 어수선하게 느껴졌다.
망치를 소지한 파란 넥타이의 양복 입은 남자에게 장바구니 아줌마를 포함한 3명이 접근해 자리를 잡았다.
조폭 보스의 회칼을 획득한 오렌지색 추리닝을 입은 남자에게는 3개월 남았다는 시한부 암 환자의 조가 자리했다.
나이 지긋한 노인이 이끄는 조는 깊은 잠에 빠졌는지 미동조차 없는 은성에게 접근했다.
은성의 허리춤에는 거구가 쓰던 회칼이 붉게 물든 손잡이를 들어내고 있었다.
빨간 머리 아줌마는 두 명을 이끌고 대장증후군이 있는 노랑머리 남자에게 다가갔다.
노랑머리 남자는 목수에게 얻은 시원찮은 공구를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남구와 예솔은 제거할 표적에서 제외된 듯했다.
‘동시에 치려면 인원수가 부족하겠지. 아니면 나와 예솔은 후일 자기들끼리 싸울 때 포섭이 가능한 인원이라 생각한 건가?’
욕설을 퍼붓지 않은 사람은 남구와 예솔밖에 없었다.
빨간 머리 아줌마는 품에서 문신의 조폭이 사용하던 회칼을 끄집어냈다.
소환 진의 불빛에 반사된 예리한 날붙이가 번쩍거렸다.
빨간 머리 아줌마가 회칼만큼이나 희번덕거리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곤히 잠들어 있는 은성의 무리를 12명이 일시에 덮쳐들었다.
빨간 머리 아줌마는 노랑머리 남자의 목에 회칼을 쑤셔 박았다.
푸욱-
“크윽!”
노랑머리 남자의 답답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비명은 그리 크지 않았다.
조원들이 입을 막고 팔다리를 붙잡았다.
이 정도의 신음은 사방에 누워있는 부상자들에게서 지속해 흘러나오는 일상적인 소음이었다.
추리닝을 입은 남자의 회칼을 슬그머니 손에 넣은 시한부 암 환자가 마찬가지로 목에 칼끝을 찔러 넣었다.
푹-
“카악!”
입이 막히고 팔다리를 붙잡힌 추리닝 차림의 남자는 도마 위에 오른 횟감처럼 팔딱거릴 뿐이었다.
“크아아아아악!”
고요했던 지하 공간에 쩌렁쩌렁한 절규가 터져 나왔다.
뾰쪽한 회칼이 노인의 하복부를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회칼을 훔치려 은성의 허리춤으로 향하던 노인의 손은 교복의 등짝만을 정신없이 쥐어뜯었다.
설 잠이 들었던 은성은 부스럭거리는 소음에 눈을 뜬 후 반격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찢어지는 비명에 번뜩 깨어난 파란 넥타이의 남자와 망치를 훔치려던 장바구니 아줌마의 시선이 서로 허공에서 마주쳤다.
“이런 썅!”
“꺄악!”
넥타이를 맨 남자는 벌떡 일어나 망치를 뽑아 들었다.
그 모습에 놀란 장바구니 아줌마는 뒤로 나자빠졌다.
같이 조를 짰던 사람들도 정신없이 뒤로 물러났다.
숨이 붙어 있는 사람은 모두 깨어나 욕지거리와 비명을 질러 댔다.
한순간에 지하실은 또다시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개 썅년이! 토할 때 내가 등도 두드려 줬는데 그런 나를 죽이려고 해?”
“으으, 나, 나도 살고 싶어. 니가 먼저 죽이려고 했잖아!”
넥타이의 남자가 혼비백산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외쳤다.
“씨발, 우리 편이 두 명이나 당했어.”
은성도 노인의 배에서 회칼을 뽑아내고 일어나 말없이 주변을 둘러봤다.
그저 묵묵하게 상황을 파악하는 은성의 침착함에 남구는 헛웃음이 나왔다.
“하!”
‘어린놈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남구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처음 이 사태와 마주했을 때가 떠올랐다.
얼마나 당황하고 두려워했었는지, 그 때문에 어떤 허튼짓을 해왔었는지,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은성이의 꽁무니를 놓칠까 봐 애간장이 녹았었지!’
은성이 다른 모습으로 창문을 통해 교실로 들어왔을 때 구세주가 온 것 같았다.
은성은 근본부터 다른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긴, 그러니까 친구들을 다 이끌고 생명의 핵까지 다가갈 수 있었겠지. 막판에 개판을 쳐버렸지만. 개자식!’
은성의 시선이 남구와 예솔로 향했다.
“남구야! 예솔아! 일어났어? 안 다쳤지?”
예솔은 사과가 든 장바구니를 꼭 끌어 앉고 남구의 옆에 바짝 붙어 은성에게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구는 여전히 머리만 벽에 기댄 채 비스듬히 누워 멀뚱멀뚱하게 은성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침 먹자! 아침인지 저녁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수라장에서 울려 퍼진 남구의 어처구니없는 말에 찬물이 끼얹어진 듯 순간 적막이 찾아왔다.
하나같이 넋이 나간 얼굴로 남구를 쳐다봤다.
“예솔아, 너 이거 하나 다 먹어. 좀 있으면 밖에 나갈 것 같은데 밖에도 만만치 않을 거야. 이거라도 먹어둬야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당황하는 예솔의 손에 사과 한 개를 쥐여 주고서는 은성에게 손짓했다.
못 이기는 척 다가온 은성에게 또 한 개를 넘기고 남구도 꺼내 먹기 시작했다.
아삭- 쩝쩝!
“어? 한 개가 남네?”
과장되게 말한 후 사람들이 모여있는 근처에 남은 사과 한 개를 냅다 던졌다.
사과는 짙은 자줏빛의 시반이 형성된 시신에 맞고 피가 굳어 눌어붙은 시멘트 바닥을 굴렀다.
“죄송하지만 하나밖에 안 남아서요.”
다들 당황스러운 눈으로 남구를 쳐다봤지만 이내 바닥을 구르는 사과로 시선을 빠르게 옮겼다.
구르는 사과를 따라 눈동자도 굴렀다.
며칠이 지났는지 알 수도 없었고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다.
현기증이 일어나고 입술이 쩍쩍 갈라졌다.
회칼을 피해 살아보겠다고 사방팔방 뛰어다니고 목숨을 건 격전을 치르느라 혈액도 많이 잃었다.
몸에 자상을 입지 않은 자가 몇 없었다.
몸도 마음도 지치고 피폐해진 이때 사과의 수분을 갈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후경직이 일어난 시신을 뜯어먹을 자신이 없다면 다들 사과를 외면하지 못할 테지.’
수분과 영양분이 지금 당장 필요치 않은 사람은 남구 하나밖에 없었다.
11명 중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사과, 열두 쪽으로 나눠야 하나?”
모두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을 꺼낸 사람을 돌아봤다.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는 여자가 기계적인 음성을 발했다.
“한 명 죽었어. 나누려면 이제 열한 쪽이야.”
흰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노인이 버럭 화를 냈다.
“장난해? 그래서 누구 코에 붙이려고.”
처음 나누자는 이야기를 꺼냈던 사람이 사과에 눈을 떼지 못하고 물었다.
“그, 그럼 누가 먹어?”
장바구니 아줌마는 여전히 한결같이 소유권을 주장했다.
“내가, 내가 사과 주인인데?”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카락이 제멋대로 흩어져 있는 대머리 노인이 가자미눈으로 장바구니 아줌마를 노려봤다.
“자네, 인제 와서 그게 말이야 막걸리야?”
전신에 자상을 입은 한 남자가 장바구니 아줌마에게 원성을 쏟아냈다.
“난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 아줌마는 멀쩡하잖아!”
다들 배어 나오는 군침을 삼키느라 목젖을 꿀렁대며 절실한 눈빛으로 떨어진 사과를 쳐다보는 와중에 빨간 머리 아줌마만이 난처한 기색 속에서도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면서 살길을 모색했다.
‘작전은 훌륭했어요.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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