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종 친 학교는 (3)
검붉은 핏물을 흠뻑 머금은 아가리를 찢어져라 벌려댔다.
“캬아아아!”
교실 안은 20마리가 넘는 좀비와 함께 있었으나 문밖과 비교하면 평화롭다고 할 수 있었다.
이미 몇몇은 중력제어로 벽면과 충돌해 두개골이 박살 났다.
벽체에 충돌한 여파로 성한 몸뚱이가 거의 없었다.
팔다리가 뒤틀리고 척추와 목이 부러진 상당수의 좀비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버둥거렸다.
뒤엉켜 버둥대는 그 찰나의 순간에 남구가 급히 숨을 골랐다.
호흡과 함께 핏물도 뿜어져 나왔다.
“푸확! 하아, 하아.”
입과 코에서 뿜어져 나오는 핏물은 멈출 기미가 없었다.
벽면에 얼기설기 엉긴 좀비들의 괴성 또한 마찬가지로 멈출 기미가 없었다.
“캬아악!”
“캬악! 캬악”
‘아무리 뼈가 으스러졌다 하더라도 금방 일어나 덤벼들겠지!’
“남, 남구야! 눈에서 피가 흘러! 어, 어떻게 해!”
예솔의 울먹이는 음성이 남구의 귓전에 윙윙 울렸다.
실핏줄이 터져나간 남구의 눈에서도 핏물 방울이 줄기줄기 흘러내렸다.
남구는 날아가려는 의식과 무너질 듯한 몸뚱어리를 의지만으로 지탱하기가 버거웠다.
한계를 뛰어넘는 과도한 능력 사용은 곧바로 죽음과 직결될 수 있었다.
모두가 경계하던 일이었다.
그러나 남구는 종종 그 한계를 뛰어넘어 왔다.
그 때문에 약골 중에서도 약골이었던 남구가 밤하늘에 떠 있는 별과 같이 손끝조차 닿을 수 없는 저 높은 곳으로 앞서 나가던 강자들의 꽁무니라도 따라잡을 수 있었다.
‘정신방벽!’
궁극에 오른 스킬 ‘정신방벽’이 남구의 뇌리에 발동했다.
순간 찬물을 뒤집어쓴 듯 청량감이 밀려들었다.
실핏줄이 가닥가닥 끊어져 붉게 물든 안구에 푸른 광채가 은은하게 퍼져나갔다.
곧 쓰러질 것같이 비틀거리던 남구가 꼿꼿하게 서서 망치 자루를 말아쥐었다.
예상대로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좀비들은 골절에도 불구하고 어기적어기적 일어서기 시작했다.
푸른 빛으로 물든 분주한 눈동자는 가장 먼저 일어나는 첫 번째 목표를 찾고 있었다.
유려하게 휘어진 부드러운 눈가의 곡선이 베어버릴 듯 날카롭게 좁혀졌다.
괴성을 질러대는 좀비들이 상체를 일으킴에 따라 좀비의 눈알만큼이나 붉게 물든 남구의 눈동자가 순간 푸른 빛을 강렬하게 발했다.
남구가 입과 코에서 핏물을 흩날리며 미쳐 날뛰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빡- 빠악- 빡- 퍽- 퍼억- 빠아악-
박 터지는 타격음과 남구의 거친 숨소리가 교실을 가득 메웠다.
“하아! 하아!”
절체절명의 순간이었기에 남구는 육체의 한계를 아득히 초월해 버렸다.
식은땀이 뚝뚝 떨어지는 새하얀 얼굴은 점점 더 창백해져 갔다.
쉴 새 없이 꾸역꾸역 울혈을 토해냈다.
그래서 더욱 호흡이 곤란했다.
심각한 내상을 입어 움직임이 갈수록 느려졌다.
그러나 눈빛만큼은 누그러들지 않았다.
사력을 다해 미친 듯이 움직였다.
예솔은 마치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성냥개비 같다는 생각이 들어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가윗날로 머리를 뚫어낼 자신은 없었지만 남구의 안타까운 몸부림에 큰 소리로 외쳤다.
“남구야! 내가 할게.”
남구는 일절 대답이 없었다.
당장에라도 쓰러져 버릴 것만 같은 몸으로 전력을 기울여 집중하느라 대답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이게 쉬워 보이니? 아서라, 아가야! 그러다 내가 네 머리를 깨는 일이 생긴다.’
예솔은 사방을 휘젓는 망치의 궤적에 함부로 끼어들 수도 없었다.
몸은 미쳐 날뛰는데 눈빛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서늘했다.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며 두더지 잡기 게임을 하듯이 먼저 일어나는 개체부터 정수리에 정확하게 망치를 선물했다.
흥분할 만도 하건만 남구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당연히 할 일을 한다는 듯 거친 호흡을 뿜어내며 묵묵하게 대가리를 깨어 나아갈 뿐이었다.
남구가 한꺼번에 숨을 몰아쉬었다.
“흐흡!”
몸을 크게 회전하며 마지막 좀비의 무릎 관절을 향해 정강이를 휘돌렸다.
뻐억-
하단 발차기가 막 일어선 좀비의 무릎을 역으로 꺾어 버렸다.
좀비는 다리를 흐느적거리며 공중에 붕 떠서 옆으로 떨어졌다.
쿠웅-
커다란 충격을 입고 바닥에 떨어졌지만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
이성과 지성을 모두 상실한 좀비는 자기 몸이 어찌 되건 안중에 없었다.
오로지 눈앞에 남구의 살덩이를 뜯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괴성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졌다.
오히려 더 커졌다.
“캬아아악!”
한쪽 무릎이 부서졌지만, 여전히 버둥버둥 일어나려 했다.
남구의 무릎이 힘겹게 들렸다.
빠각-
엉거주춤 일어나는 좀비의 반대쪽 무릎을 마저 밟아 꺾어버렸다.
두 다리를 모두 잃었으나 개의치 않고 남은 양팔로 남구를 향해 기었다.
남구의 안구에 서렸던 푸른 빛이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코와 입에서는 여전히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점점 그 양을 더해 갔다.
쓰러질 듯 창백한 얼굴로 휘청거렸다.
“남구야!”
모습을 드러낸 예솔이 걱정스럽게 불렀다.
남구는 비틀거리며 허리를 굽힐 힘도 없는지 바닥에 뒹구는 걸상을 발등으로 일으켜 세우고는 그 위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털썩-
“훅! 훅!”
어깨를 들썩이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우웨엑! 촤아악-
입에서 뿜어진 핏줄기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예솔이 급히 달려와 기울어지려는 남구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리고는 손에 들려있는 망치를 가로챘다.
“남구야! 하나 정도는 내가 마무리할게. 넌 앉아서 쉬어야겠어. 상태가 너무 안 좋아.”
남구가 어깨를 잡은 예솔을 핏기 없는 창백한 얼굴로 돌아보며 한쪽 입꼬리를 쓱 비틀어 올렸다.
‘풋! 뼈를 단숨에 부수려면 꽤 힘이 필요하단다. 한 번에 못 보내면 죽는 거야!’
마지막 남은 좀비는 두 다리를 모두 잃고도 남구를 향해 뻐그적거리며 양손으로 기어 점점 가까이 접근했다.
남구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훅훅, 잠깐 비켜봐!”
힘없는 손길로 예솔을 밀어냈다.
“그, 그래!”
울상인 예솔은 남구의 고집에 어쩔 수 없이 곁에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양팔을 번갈아 짚어가며 바닥을 기어 오는 교복 입은 앳된 좀비를 향해 남구는 부들부들 떨어대는 팔을 뻗었다.
‘일소!’
그러나 부들거리는 손에서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변화는 다른 곳에서 발생하고 있었다.
기어 오던 좀비의 흉측한 몸뚱이에서 어울리지 않게도 아름답기까지 한 눈부신 백색 광채가 실처럼 가닥가닥 허공으로 뽑혀 나왔다.
허공으로 하늘하늘 빠져나온 무수한 빛의 실 가닥은 뒤틀린 실타래처럼 길쭉하게 서로 엉기고 꼬여갔다.
“캬아아아아악!”
좀비는 고통스럽다는 듯 찢어져라 괴성을 질러댔다.
이내 남구의 뻗어진 손아귀로 엉기고 성긴 빛의 실타래가 줄기줄기 빨려들었다.
눈이 부시도록 빛나는 백색 실타래의 굵기가 차차 굵어졌다.
실 같이 하늘하늘 가느다랗던 빛줄기는 너울너울 서로 배배 꼬여 길쭉한 실타래가 됐고 점차 굵다란 빛의 동아줄이 되어 좀비의 몸뚱이에서부터 남구의 뻗어진 손아귀로 끊임없이 빨려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손아귀로 빨려드는 빛줄기가 그 속도를 시나브로 더해갔다.
빛줄기의 흐름이 가속될수록 허공에 진동이 일었다.
우우우우웅-
‘콸콸 쏟아져 들어오는구나!’
옆에서 남구를 지켜보고 있던 예솔이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밀려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허억!”
예솔은 실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힘을 느끼고는 헛숨을 뱉어냈다.
주변에 마치 전자기가 발생하는 듯했다.
남구와 좀비를 잇는 기다란 백색 빛줄기는 꿈틀꿈틀 출렁출렁 허공에서 요동쳤다.
뒤로 밀려난 예솔이 넋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 이건 대체······. 하아, 예뻐!”
예솔은 이런 현상이 몸서리치게 끔찍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좀비와 남구를 잇는 강렬하게 일렁이는 빛줄기는 찬란하기 그지없었다.
아름답도록 괴이한 현상을 떨리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예솔의 입술이 다시 한번 달싹거렸다.
“저, 저저저저, 저것 봐!”
떠나가라 괴성을 지르는 좀비의 몸뚱어리가 미라처럼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남구의 혈색이 점점 회복해 갔다.
코와 입에서 쉴 새 없이 쏟아지던 출혈의 양이 점차 줄어들더니 어느새 멎어 있었다.
아가리를 한껏 벌리고 고통에 겨워하던 좀비는 더는 괴성을 지르지도 몸부림치며 팔을 휘저을 수도 없었다.
그저 엎드려 꼼짝도 못 한 채 속절없이 말라갈 뿐이었다.
파삭-
수분을 모두 잃은 듯 바싹 마른 좀비의 피부가 가뭄의 논두렁처럼 갈라지고 부서져 편편이 떨어져 나갔다.
쩌저적-
전신에 거미줄 같은 금이 쩍쩍 퍼져나갔다.
결국 무거운 머리를 지탱하던 목이 뚝 끊어져 내렸다.
몸뚱어리에서 떨어져 나온 숯덩이 같은 대가리가 바닥을 몇 바퀴 데구루루 구르고는 멈추었다.
동시에 빛줄기의 마지막 꼬리가 남구의 손아귀로 빨려들어 자취를 감추었다.
‘이런 거였군!’
일소의 스킬 전개가 모두 마무리되었다.
온몸에 봄비를 맞은 새싹처럼 생동감이 넘쳐흐르며 기운이 뻗쳤다.
단순히 내상만을 회복한 게 아닌 듯했다.
‘생명의 핵은 매 순간 이런 기분을 만끽하는 건가? 아니면 그저 현상에 불과한 것인가?’
대단한 충만감이 느껴졌다.
한계를 넘어선 중력제어의 무리한 사용으로 진탕 난 오장육부를 비롯해 사지육체가 완벽하게 회복되었다.
‘죽기 일보 직전이었어!’
남구가 상대의 생명력을 고스란히 갈취하는 섬뜩하고도 괴이한 스킬에 그동안 모아놓은 LP를 하나하나 찍어나가기 시작했다.
‘정말 끝내주는 스킬이구나! 이런 능력은 처음 보는군. LP를 마구 퍼부어주마!’
생존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남구에게는 전에도 앞으로도 다시 없을 맞춤형 스킬이었다.
‘마치 생명 에너지를 끊임없이 흡수하는 핵의 능력을 고스란히 복제한 것만 같은 스킬이 아닌가!’
어느 순간 ‘일소’의 스킬 트리가 활성화됐다.
앞으로 진화해 나갈 몇몇 스킬 트리가 개방됐다.
[사정거리 증가]
[일정 LP 당 10cm 증가]
‘사정거리가 2m라······. 더 멀리서 사용할 수 있으면 접전 중에도 쓸 수 있을까?’
10 LP를 투자해 봤더니 사정거리가 10cm 늘었다.
사정거리가 늘어날수록 더 많은 LP를 요구할 것이다.
[재사용 대기 시간 단축]
[일정 LP 당 10초 단축]
사용한 후 5분 이내에는 다시 쓸 수 없었다.
‘상대와 접전 중일 때 한 번 이상은 사용하기 힘들겠군.’
[생명 에너지 갈취 속도 증가]
[일정 LP 당 생명력 흡수 효율 증폭]
‘방금 한 30초 걸렸나? 너무 오래 걸리기는 했지.’
재사용 대기 시간 단축과 같이 찍으면 괜찮을 듯싶었다.
그렇게 되면 이른 시간에 여러 번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멀티 타겟팅]
[일정 LP 당 생명 에너지를 갈취할 생명체의 개체 수 증가]
‘동시에 여러 놈에게서 한꺼번에 생명력을 갈취할 수도 있겠구나!’
남구는 이미 10 LP를 투자한 사정거리 증가에 지금까지 확보한 LP를 듬뿍 쏟아부었다.
‘무슨 LP가 이렇게나 많이 들지?’
육체 쟁탈전에서 싹쓸이한 50 LP, 생존 보상으로 받은 10 LP, 이곳 좀비들에게서 방금 거둬들인 LP 중 대부분을 더해 80 LP를 아낌없이 들이부었다.
그래도 3m에 이르기에는 살짝 부족했다.
일보만 내디디면 3m 정도는 한칼 거리다.
조금 더 안전거리를 확보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80 LP를 욱여넣었는데도 1m를 못 넘기네? 빌어먹을 생명의 핵 같으니라고.’
80인분의 목숨을 끊었다는 말이었다.
과거 자신의 몸으로 이만한 생명 에너지를 모으려면 년 단위로 걸렸을 것이다.
극악의 효율을 보여주는 핵의 시스템이었다.
높은 등급으로 평가받는 스킬은 그에 걸맞게 많은 LP를 요구했다.
‘이래서 별이 많이 붙어 있다고 다 좋은 게 아니지! 높은 등급의 스킬을 줬으니 그만큼 많은 생명 에너지를 가져다 바치라는 의미군. 고리대금 업자랑 다를 게 없네!’
지금까지 이런 명품 스킬을 사용해 본 적이 없었던 남구로서는 몹시 당황스러웠다.
‘이 스킬 하나를 완성하려면 얼마나 많은 목숨이 필요한 거야? 꼴에 명품이라 이건가?’
그나마 ‘중력제어’는 시스템이 창조한 스킬이 아니라 굳이 LP를 투자하지 않아도 수련으로 숙련도를 높일 수 있어 다행이었다.
스킬 ‘일소’에 대한 텍스트로 가득했던 허공에서 눈을 떼고 고리를 왕창 뜯긴 빚쟁이처럼 못마땅하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교실 내부를 훑어봤다.
바싹 말라 쩍쩍 갈라진 머리 없는 좀비의 몸뚱어리 한 구와 스무 구가 넘는 좀비의 주검이 한구석에 서로 뒤엉켜 쥐 죽은 듯 조용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말을 잃고 남구를 빤히 바라볼 뿐인 은성과 예솔은 경악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덕분에 앞문이 부서져라 울려대는 소음만이 교실 안을 가득 채웠다.
남구가 예솔의 손에서 다시 망치를 가져왔다.
예솔은 그저 망부석이 되어 있었다.
망치가 손에서 빠져나가는데도 전혀 반응하지 못했다.
커다랗게 뜬 눈망울에는 걱정과 안도와 놀라움이 복합적으로 휘몰아쳤다.
남구의 활기를 되찾은 목소리가 은성에게 향했다.
“은성아! 문을 조금만 열어서 한 놈씩 차근차근 처리하자! 젠장, 많기도 하다. 시간이 꽤 걸리겠네. 내 말 듣고 있어?”
은성은 남구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머릿속은 온통 다른 생각뿐이었다.
경황없는 와중에도 부러움 가득한 눈빛으로 남구에게 동문서답을 했다.
“괜찮은 거야? 정말 엄청난 스킬인데? 그것도 새로 얻은 육체가 간직했던 능력인 건가? 이야! 넌 보기보다 엄청난 육체를 얻었나 보다.”
부러움을 가득 함유한 격앙된 은성의 목소리에 남구가 한쪽 입꼬리를 씰룩대며 비틀었다.
선작, 추천은 작가의 우울증을 예방할 수 있답니다. 볼만 하셨다면 꾹~ 눌러주세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 '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