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이벤트
아침 댓바람부터 철창 사이에 사람들의 얼굴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부릅뜬 여러 쌍의 눈동자는 오직 1호실만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울대를 꿀렁이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의 손에는 돌덩이같이 딱딱한 빵이 쥐가 갉아 먹은 형상으로 들려 있을 뿐이었다.
남구와 팀원들은 아침 식사임에도 불구하고 과하게 차려진 진수성찬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철창 너머로 마냥 침을 뚝뚝 흘리며 넘겨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영 편치 않았다.
“커험!”
최남단이 부담스러운 눈길을 애써 헛기침으로 외면하며 커다란 쟁반에 덮여 있던 뚜껑을 열었다.
“이기 뭐꼬? 달구 아이가?”
정체를 알 수 없기는 매한가지인 박영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흐렸다.
“닭이라고 하기에는······. 칠면조보다 더 큰 거 같은데요?”
날개가 달린 새라는 것은 틀림없었다.
“억수로 크데이! 완저이 타조다.”
매끼 제공되는 산해진미에 조무모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일 인 일 닭 하기에는 터무니없이 크네! 아침이라 입맛도 없는데 다리 한쪽만 먹고 다 싸 들고 가면 되겠네요. 우리 오늘 단체전 들어가는 거 맞죠?”
남구는 꿀꺽꿀꺽 침을 삼키는 사람들이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거나 말거나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큼지막한 다리를 한껏 베어 물며 고개만 끄덕였다.
팽석수가 잠이 덜 깬 나른한 표정으로 쟁반에 올려진 정체 모를 음식을 살폈다.
“대가리를 자르지도 않았네! 부리에 이빨이 달려 있어요. 꽤 날카로운데? 분명히 닭은 아닙니다.”
이내 남구를 돌아보며 물었다.
“이게 대체 뭐에요?”
남구의 목소리가 볼이 빵빵하도록 꽉 들어찬 입 안을 힘겹게 통과했다.
“쩝쩝! 그냥 닭이라고 생각하고 먹어요. 닭처럼 흔해요. 새끼지만 성질 사나운 놈이니까 스테이지에서 만나면 조심하세요. 물리면 살점 뚝뚝 떨어져 나갑니다. 성체는 길이가 한 2, 3미터쯤 되려나?”
접시 위에서 노릇한 훈제 닭고기와 같은 자태를 뽐내는 음식이 3미터까지 자란다는 말에 나른한 표정이었던 팽석수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시큰둥했던 조무모도 입을 쩍 벌렸다.
최남단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박영호도 깜짝 놀라 큰 소리로 물었다.
“혹시 공룡이에요?”
“공룡은 아니고 가고일 새끼야.”
“가, 가고일이요?”
“뭐, 익룡하고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돼.”
삼식은 먹고 있는 음식이 닭이든 공룡이든 가고일이든 아무 관심 없이 오직 두툼한 입 안으로 밀어 넣는 데 집중했다.
토실토실한 새끼 가고일을 순식간에 뚝딱 해치운 삼식의 쟁반에는 앙상한 뼈만 수두룩했다.
디저트로 나온 포도를 뾰쪽한 뻐드렁니 사이로 쏙쏙 집어넣으며 만족의 미소를 피워올렸다.
박영호가 1호실 사람들을 쓱 둘러보며 피식 웃었다.
“헤헤! 대장이랑 데스 게임 같이 들어가니까 다들 긴장을 안 하네?”
조무모가 시계를 들여다보며 대꾸했다.
“그렇지도 않아. 또 대인전일까? 투입시간이 다가오니까 가슴이 죄어 오는 게 미치겠다.”
최남단이 조무모를 쓱 돌아봤다.
“맞나? 밥은 묵어가면서 미치라.”
“에이! 형님도 참!”
“바라바라, 이 바라, 무기도 있고 으잉! 방패도 있고 으잉! 갑옷도 있제이? 으잉! 고마 다 필요 읎다. 오야붕이 있다 아이가. 만다꼬 걱정해 쌌노? 복 나간 데이, 퍼뜩 묵으라.”
“너희 단체전 안 나가!”
마티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남구를 제외한 모두가 철창으로 고개를 번개같이 휘돌렸다.
“아가씨! 제어구 여기 있습니다.”
마티나가 돌아보지도 않고 손바닥을 펼치자 염소수염이 내민 제어구를 그 위에 부리나케 올렸다.
[오늘 이벤트 떴어]
모두가 오물거리던 입을 헤 벌리고 메시지가 출력되고 있는 허공을 쳐다봤다.
[오호호호호! 딱 상위 50개 가문만 참가 자격이 부여되는데 우리 고트 가문도 선정됐어. 뭐 당연한 결과지! 고트족 대표로 남구가 출전한다]
허공을 바라보던 시선이 일제히 남구에게 쏠렸다.
남구는 시스템 메시지를 보지도 않고 먹고만 있었다.
[선정된 50개 가문에서 최강자만 참가하는 이벤트라 대중이 아주 환장할 거야! 우리 구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네가 최고라는 걸 증명할 기회지. 보상이 어마어마하니까 잘해야 해? 알았지?]
떠오르는 메시지에 일말의 관심도 없이 먹기만 하는 남구를 보며 마티나가 웃어 재꼈다.
[오호호호호! 우리 크리처(강아지) 너무 시크해!]
바로 뒤 돌아 나가면서도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오호호호호호! 이젠 전 세계에서 우리 고트족 채널을 볼 거야!”
마티나가 무심히 어깨 너머로 제어구를 냅다 던져 버렸다.
염소수염이 훌쩍 뛰어올라 허겁지겁 받아 들며 외쳤다.
“들어가십시오. 아가씨!”
메시지를 읽지는 않았지만, 이야기를 다 들은 남구가 5에어리어에 대비해서 주섬주섬 남은 음식을 포장하기 시작했다.
‘어떤 이벤트일까?’
삼식의 부리부리한 눈동자에 한가득 걱정이 들어찼다.
“보니까 실력자가 50명이나 출전하는 대단한 이벤트 같은데 조심하세요.”
‘그래, 가물에 콩 나듯 발생하는 이벤트는 아주 조심해야 하지!’
삼식의 걱정에 아무 말 없이 그저 고개만 끄덕거리며 탁상시계를 쳐다봤다.
‘슬슬 준비해야겠군.’
창고를 열고 들어가 온갖 종류의 옷이 빽빽하게 걸려 있는 행거를 손으로 쓱 훑었다.
상의는 지구에서도 주로 입고 다녔던 것과 같은 종류인 등산용 바람막이 검은색 재킷을 걸쳤다.
하의는 어느 나라 것인지는 모르지만 군복을 입었다.
이곳저곳에 주머니가 많이 달린 것은 물론이거니와 무릎보호대까지 장착된 디지털 무늬 전술용 바지였다.
평소와는 사뭇 다르게 비장한 태도로 등산화의 신발 끈을 꽉 졸라매는 남구의 뒷모습을 팀원들이 긴장한 눈빛으로 지켜보았다.
약체였던 남구는 이벤트에 참여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첫경험을 하는 셈인가?’
하지만 언제나 이벤트에 투입됐었던 은성에게 지나치듯 들은풍월은 있었다.
이벤트는 여러 타입이 있었지만 하나같이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로 힘들었었다고 들었다.
강자라고 무조건 생존할 수 없었던 여러 이유 중 간혹 발생하는 이런 이벤트도 톡톡히 한 부분을 차지했다.
남구가 오늘따라 꼼꼼하게 준비해나갔다.
‘어디 보자! 물통은 몇 개나 들고 가야 할까? 우선 활도 하나 가져가야겠지. 뼈 칼도 하나 넣고 표창도 챙기고 배낭은 크면 기동성이 떨어지니까 작은 걸로······.’
뼈로 만든 각반과 상체 보호구까지 착용하고 후드가 달린 망토를 둘렀다.
마지막으로 커다란 크기의 참룡도를 등에 둘러멨다.
망토는 세리야 재고 물품이었지만 어느 귀족이 쓰던 물건인지 고풍스러운 멋이 있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진지한 태도로 바리바리 챙기는 남구의 모습에 팀원들의 안색이 굳어 갔다.
남구가 침대 모서리에다 배낭을 내려놓고 매트리스에 털썩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보상으로 나온 원래 남구의 것이었던 선글라스를 오뚝한 콧날 위에 척 걸쳐 썼다.
커다란 망토에 온몸이 휘감긴 이국적인 외모의 남구는 선글라스만 아니라면 어느 중세 시대에서 뚝 떨어진 사람 같았다.
파도처럼 일렁이는 팀원들의 눈빛에 남구가 한쪽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풋! 설마 죽기야 하겠어? 훈련 열심히 하고 있으라고. 후딱 다녀올 테니까. 혹시 나 빼고 데스 게임에 들어가게 된다면 삼식이 말 잘 들어요. 삼식아, 부탁한다.”
“네, 형님! 맡겨 주세요. 그래도 빨리 돌아오세요.”
비록 잠시라지만 삼식과는 보자마자 또다시 이별이었다.
뭐라 입을 열려던 남구가 철창 밖을 돌아보았다.
염소수염이 철창 밖에서 제어구를 들어 올렸다.
좌표가 찍힌 포탈이 서서히 빛무리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이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임무 수행을 준비해 주십시오. 남은 시간 10분]
[9분 59초··· 9분 58초······.]
남구의 눈동자 움직임을 알아챈 박영호가 다급하게 물었다.
“출발 메시지 떴어요?”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친 남구가 고개를 끄덕이자 너도나도 걱정 섞인 목소리를 감추지 못하고 응원과 격려를 보내왔다.
남구의 출발을 앞두고 분주한 1호실만큼 다른 호실들도 어수선했다.
1호실 인원들이 아침을 먹을 때보다 더욱 많은 사람이 철창 앞에 달라붙었다.
데스 게임에 투입될 시간이었음에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관리자의 행태에 이상함을 느낀 사람들이 오직 남구의 행동만을 눈이 빠지게 주시했다.
“오늘은 저 사람 혼자 투입되는 건가?”
“가서 콱 뒈졌으면 좋겠군.”
“좀 무섭기는 하지만 난 저 사람 좋아. 덕분에 아무거나 먹고 피똥 쌀 일은 줄었잖아.”
“나도, 그 벌레 같은 놈을 죽여 줘서 고마워 미칠 지경이야.”
관리자들도 모두 모여 남구를 동물원의 원숭이 보듯 쳐다봤다.
“돌아오겠지?”
“하아! 쟁쟁한 놈들 천지라 이거 불안한데?”
“이벤트는 안심할 수 없어!”
“저런 놈 흔치 않아! 항상 돌아왔잖아! 또 돌아오겠지.”
“그거야 현명하신 우리 아가씨께서 수준에 맞는 스테이지에 골라 넣었으니까 그렇지.”
“언제는 또 너무 무모하게 처넣는다더니?”
“큼! 크흠!”
팀원들은 물론이고 다른 호실 사람들을 비롯해 관리자들까지 입을 쉽게 닫지 못했다.
남구의 출전을 앞두고 고트족 수용소 전체가 들썩들썩 웅성거렸다.
남구가 5초를 남겨두고 빛무리 안으로 들어섰다.
곧 휘황찬란한 광휘와 함께 필사적으로 응원을 보내는 팀원들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멀어져갔다.
“형님! 믿습······.”
“대장! 꼭······.”
“반드시 돌······.”
“퍼뜩 댕기······.”
“무사 귀······.”
파악-
남구는 선글라스 덕에 포탈이 발동할 때 나타나는 특유의 광채에도 눈을 감지 않았다.
도착한 스테이지를 광휘가 걷히기도 전에 파악했다.
‘대피소? 지하 벙커 같군.’
0.1초의 오차도 없이 50명이 동시다발로 꽉 막힌 한 공간에 모습을 드러냈다.
눈이 멀듯 한 광휘가 거치자마자 모두가 일시에 눈을 떴다.
어슴푸레한 어둠이 칙칙하게 깔려 있었다.
50명 중 그 누구도 신음을 뱉거나 비틀거리지 않았다.
당황하는 사람조차 단 한 명도 없었다.
벽에 박힌 희미한 야광석의 도움을 받아 모두가 침착한 눈동자를 팽팽 돌리며 같이 등장한 사람들과 주변 환경을 훑어 나갔다.
눅눅한 습기와 어둠만이 존재하는 갇힌 공간이었다.
옆에 있는 사람이 경쟁자가 될지 조력자가 될지 지금으로선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은성의 놀란 눈동자가 부릅떠졌다.
‘그래, 오랜만이구나!’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후드가 달린 망토를 뒤집어쓰고 선글라스까지 끼고 있었지만, 은성은 남구를 한눈에 알아봤다.
놀란 눈을 크게 뜨고 얼굴 가득 반가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남구처럼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
반갑다고 허허 웃으며 회포를 풀 수 있는 자리는 아니었다.
‘남들은 모르는 카드 한 장 고이 숨겨두자고.’
은성의 모습은 마치 중세 기사의 모습과도 흡사했다.
‘너도 나와 같은 시기에 소환됐구나! 세리야 물건을 많이 얻었네?’
판금 흉갑 안에 체인 메일까지 받쳐 입고 등에는 롱소드가 허리에는 롱소드보다 조금 짧은 아밍소드가 각각 메어 있었다.
‘과거와 같이 쌍수를 사용하는군. 근데 거기에 청바지는 너무 안 어울리는 거 아니니?’
비단 은성뿐만 아니라 남구를 비롯해 모두가 지구와 세리야와 마계의 물건으로 범벅이 되어 뒤죽박죽이었다.
“여어! 오랜만이야!”
‘눈치 없는 새끼!’
모두의 시선이 볼 빨간 남자에게 향했다.
뺨에 기다란 칼자국이 있는 볼 빨간 남자는 남들의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쿠웅-
가오리연 형태의 커다란 방패의 밑부분을 바닥에 찍어내렸다.
그리고는 방패에 기대서서 주위를 쓱 훑어보았다.
‘네 주인이 잘 키웠나 보구나! 아주 자신감이 넘쳐흐르는군.’
볼 빨간 남자는 두툼한 근육질의 가슴을 당당하게 펴고 입을 열었다.
“후후, 이런 곳에서 다 보고, 역시 한 수 있어 보이더라니! 여태 잘 살아 있었군.”
‘그래, 너도 용케 살아 있었구나!’
“Korean?”
영어를 쓰는 남자가 툭 한 마디를 뱉었다.
영어를 쓰는 남자에게 또 다른 남자가 영어로 말을 붙였다.
곧 스페인어가 튀어나왔고 같은 언어권으로 나뉘어 드문드문 이야기가 오갔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일본, 중국, 태국 등 각국의 언어들이 소곤소곤 들려왔다.
외모와 사용하는 언어가 대부분 서로 어울리지 않았다.
‘육체 전이자들이겠지? 거국적이군. 세계 각국에서 모였구만. 근데 모두 남자네?’
[참가자 여러분 환영합니다]
떠오른 메시지에 웅성거리던 소음이 일순간에 걷혔다.
[암컷의 수량이 너무나 적은 여러분의 안타까운 사정을 어여삐 여기사 마왕님께서 손수 특별히 제안하신 이벤트]
‘응? 그 자식이? 그런 적이 있었나?’
[그럼 이벤트 짝짓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짝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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