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러브호텔에서 (1)
‘설마 했는데 이곳에 또 오게 됐군.’
남구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마치 스킬 ‘일소’에 당한 것처럼 앙상하게 말라비틀어진 남구의 원래 육체와 상처마다 굳은 혈액이 온몸을 뒤덮은 은성의 원래 육체가 어두컴컴한 지하실 싸늘한 바닥 위에 여전히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 적나라한 모습에 찌푸린 인상을 풀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두 구의 시체가 을씨년스럽게 놓여있는 모습과는 반대로 고개를 돌린 곳에는 휘황찬란한 빛무리가 떠다녔다.
박 부장이 그 빛무리를 침대 삼아 고요하게 누워있었다.
한쪽 팔을 잃은 채 창백한 얼굴로 진 위에 눕혀진 박 부장은 마치 사체처럼 보였지만 숨결에 따라 미약하게나마 가슴이 움직였다.
선상을 따라 맥동하듯 휘도는 광채는 박 부장이 누워 있는 진과 라이칸이 누워 있는 진을 분주하게 오고 가며 각각의 진을 하나의 진인 양 잇고 있었다.
글탄 마법진이 새겨져 있던 자리를 돌아봤다.
육체 쟁탈전에서 승리한 직후 손바닥을 베어내어 뚝뚝 떨어지는 핏물로 이곳 바닥에 미리 이동 마법진을 연습 삼아 그려 놓았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도착지로 설정해 두길 잘했네! 이렇게 써먹을 줄은 미처 몰랐지만.’
글탄 마법진을 익히느라 실습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요긴하게 쓰였다.
지금은 마법진이 있었다는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박 부장을 둘러메고 텔레포트를 마치자마자 마법진은 마치 불에 탄 듯 바싹 마른 재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허공에 나풀나풀 떠다니던 타다남은 혈액의 재마저 이제는 다 흩어지고 밑으로 가라앉아 눈에 보이지 않았다.
‘일회용인 게 좀 아쉽단 말이야! 숙련도가 낮으니 어쩔 수 없지.’
남구는 산더미 같이 쌓여 있는 그 많은 식량을 놔두고 육체 쟁탈전을 벌였던 장소로 또다시 오게 되어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마트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글탄 마법진은 일회용이었고 재사용 대기 시간이 한 달이나 되었다.
육체 쟁탈전을 벌인 이 건물이 어디에 위치했는지도 알지 못한다.
이곳이 마트에서 가까울지 멀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무작정 도보로 먼 거리를 이동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시절이었다.
게다가 목숨이 경각에 달린 박 부장이 죽기 전에 이동하느라 시간에 쫓겨 마트로 돌아갈 글탄 마법진을 그곳에 그려 놓지도 못하고 왔다.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도착지로 설정한 마법진을 마트에 남기고 왔을 것이다.
비록 한 달 후에나 이동할 수 있었을 테지만.
한 달 후에는 마트 사정이 어떻게 변해 있을지 알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마트에 남겨진 오수정 대리와 쌍둥이가 서로 몸에 난 상처를 소독해주고 통조림을 나누어 먹으며 정분이라도 나지 않을까 하는 쓰잘머리 없는 생각이 스쳤다.
‘둘이 사이좋게 지내고 있겠지? 너희는 맛있는 거 많이 있어서 좋겠다. 아우, 또 먹고 살 걱정을 해야겠구나!’
남구는 앞으로 어떤 식으로 살아가야 할지 골똘하게 생각하며 크리처의 대가리 속을 누볐던 각종 연장을 바닥에 수두룩하게 깔아놓고 차례차례 핏물을 제거해 갔다.
처참한 형상의 시체 두 구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어두컴컴한 지하실 한구석에서는 흉흉한 광채가 넘실거렸고 공간 가득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썩- 썩- 서걱-
기름기와 피를 제거한 칼날 면에 숫돌이 쭉쭉 미끄러졌다.
무뎌진 날붙이에 날이 다시 시퍼렇게 서기 시작했다.
방탄 플레이트에 박힌 납작해진 탄두도 플라이어로 하나하나 뽑아냈다.
툭- 툭툭- 툭-
‘에이, 플레이트가 다 깨지고 찌그러졌잖아! 미친년이 많이도 쏴댔네!’
겹겹이 압축 가공한 플레이트 판이 연속된 가공할 충격에 판판마다 떨어져 나왔다.
탄환이 박혔던 자리에서 수북이 부서진 가루를 쏟아냈다.
이제는 방탄 효과를 기대하기도 어려울 듯싶었다.
‘그냥 버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목숨은 하나뿐이니까.’
박 부장이 육체 전이를 마치고 깨어나기를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며 묵묵히 정비를 이어 나갔다.
‘죽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멀쩡하게 깨어날 수 있을까?’
부작용으로 죽을 수 있다는 시스템 문구가 떠올랐지만 더는 남구의 소관이 아니었다.
‘죽고 사는 건 이제 당신 운명이겠지!’
남구는 자기 손을 떠난 쓸데없는 걱정보다는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크리처가 등장했지만 좀비의 숫자에 비한다면 조족지혈이다.
아무리 막강한 크리처라하더라도 수치로만 놓고 본다면 좀비에게 당하는 사람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월등히 많을 것이다.
그런 좀비의 숫자가 군대에 의해 대거 줄었을 테고 시간도 이쯤 지났으니 생존한 사람들은 어느 정도 적응했을 시기였다.
생필품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세력을 이룬 사람들이 점거하고 있을 것이다.
아무도 없이 그대로 버려진 곳은 아주 드물 터.
‘그런 마트를 다시 소유하려면 무리를 이룬 세력과 전쟁이라도 해야 할 테지. 숨어 살아야 할까?’
박 부장이 육체 전이에 성공하여 살아난다면 사람이 아닌 형상을 한 그와 함께 과연 어떤 생존 방식을 취해 나가야 할지 생각을 더 해 갔다.
산더미 같은 식량을 포기한 아쉬움은 차치하고서라도 남구의 표정은 못마땅한 기색이 완연했다.
눈썹까지 연신 꿈틀거렸다.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남구의 얼굴이 오늘따라 유난히 변화무쌍했다.
어린아이처럼 작고 뼈만 남은 듯 앙상한 시신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원래 몸이었던 시체는 창백한 모습 그대로 여전히 그 자리에 누워 있었지만 남구의 눈동자는 외면하고 싶은 마음과는 다르게 연거푸 그쪽으로 돌아갔다.
“에잉!”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버렸으나 주변시로 애처로운 원래 몸뚱이가 훤히 비췄다.
너무나 뛰어난 감각 탓에 외면하고 싶어도 외면할 수가 없었다.
‘묻어줘야 할까?’
자기 몸을 자기가 묻는다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왔다.
‘쓸모없고 나약하기 짝이 없는 육체라고 구박해왔지만 그래도 나고 자란 몸이라고 정이 든 모양이군.’
정은 정이고 현실은 현실이었다.
‘하지만 너와 계속 함께 했다면 또다시 은성이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을 테지. 이렇게 혼자 주도적으로 행동하지도 못했을 거야. 그 몸으로 혼자 싸돌아 다녔다면 벌써 죽어도 골백번은 더 죽었을걸? 바뀔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도 없었겠지.’
단호해진 남구의 시선이 앙상한 시신에서 다 죽어가던 외팔이 박 부장과 회색 털이 무성한 라이칸에게 향했다.
라이칸은 인류처럼 원숭이가 아니라 마치 늑대에서 진화한 듯한 모습의 종족이었다.
크리처의 크고 기다란 갈고리발톱에는 비교 자체가 불가했지만 나름대로 꽤 단단하고 날카로운 손톱과 발톱이 자라나 있었다.
한 번 경동맥을 물린다면 즉사할 수도 있을 정도로 뾰쪽한 송곳니도 입술 밖으로 삐쭉 삐져나왔다.
육중하고 탄탄한 근육질의 육체에 갈회색 털까지 뒤덮여 그 덩치가 더욱더 거대해 보였다.
‘오히려 잘된 일일 수도 있답니다. 그 족속들이 꽤 엄선된 육체를 제공했거든요. 라이칸 중에서도 한가락 하던 놈일 겁니다. 숨어 살아야 하는 불편함은 감수해야겠지만.’
남구가 다 찢어져 피에 찌든 넝마가 되어버린 교복을 훌러덩훌러덩 벗어 던지고 여분으로 챙겨온 등산복을 백팩에서 꺼내 입었다.
구멍이 뚫리지는 않았지만 군데군데 움푹움푹 들어간 방탄복을 아쉬운 대로 걸쳤다.
정비를 마친 반짝반짝한 장비를 주섬주섬 챙겨 들고 착용하기 시작했다.
왼쪽 가슴 주머니에서 메모지를 꺼내 대충 휘갈겨 쓰고는 한 귀퉁이에 놓아둔 백팩 옆에 휙 집어 던지며 중얼거렸다.
“이곳이 어디인지 좀 보고 올게요. 깨어나도 너무 놀라지 마시고.”
두 구의 시체를 포개어 어깨에 얹었다.
“끄응!”
전에 이미 구석구석 샅샅이 살펴본 지하였지만 다시 한번 둘러 보고 지상으로 올라갔다.
그때와 다른 점이라고는 시체 오십 구의 부패상태 말고는 없었다.
지상으로 올라와 보니 이 건물은 정말 가관이었다.
창문틀도 설치되지 않아 벽체마다 구멍이 뻥뻥 뚫려 있었다.
각각의 내실에 문짝도 없었고 계단 난간마저 없었다.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철근 콘크리트 골조와 벽체만 앙상하게 서 있는 것이 짓다 만 폐건물이었다.
혹시나 관리자가 숨어 있을까 하여 눈에 불을 켜고 찾아보았지만 흔적도 없었다.
관리자들의 아지트도 아니었다.
오로지 육체 쟁탈전을 위해 마련된 전장이었다.
건물 밖에다 두 구의 시신을 던져두고 12층 건물 꼭대기까지 각각의 층마다 일일이 살펴보며 올라왔다.
옥상에 올라 건물 끝자락에 붙어 서서 전경을 바라보았다.
크리처의 날카로운 발톱 덕분에 앞머리는 쥐가 뜯어 먹은 것처럼 듬성듬성 짧아졌지만, 여전히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이 불어오는 드센 바람에 정신없이 휘날렸다.
‘젠장! 여기가 대체 어디야?’
이 건물은 도심 외곽지역 한적한 산 중턱에 푹 파묻힌 러브호텔이었다.
아니, 러브호텔 용도로 지어지던 건물이었다.
건물이 들어선 부지는 프라이버시를 중시한 까닭인지 완전히 동떨어져 있었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동네 마트로 다시 가긴 영 글렀구만.’
앞을 지나는 국도의 도로 표지판을 읽으려 눈을 좁히고 집중해서 쳐다봤다.
‘양평?’
국도 위에 중간중간 차들이 멈춰있었지만, 사람은 물론이고 좀비 또한 보이지 않았다.
인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한적한 것이 시체 묻기에는 참 좋은 곳이로구나!’
전후좌우 사방의 전경을 둘러보던 남구가 발밑을 내려다봤다.
까마득한 높이였다.
어느 히어로 영화의 주인공처럼 옥상 끝자락에 꼿꼿하게 서 있던 남구가 한점 망설임 없이 허공에 발을 내디뎠다.
12층 꼭대기에서부터 옷자락과 머리카락을 하늘 위로 펄럭펄럭 휘날리며 곧장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휘이이이이이-
남구의 눈동자가 여지없이 반득였고 엄청난 속도로 떨어져 내리던 몸뚱이가 지면에 닿기 직전 급감했다.
끝도 없이 추락하던 남구의 몸이 질량을 잃은 듯 순간 부유했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펄럭이던 옷자락과 머리카락이 살포시 내려앉았다.
착-
발밑에 약간의 흙먼지가 날릴 뿐이었다.
나비처럼 안착한 남구가 두 구의 시체를 어깨에 다시 이고 산속으로 들어갔다.
멀리 갈 필요도 없었다.
이미 건물 자체가 깊은 산중에 들어서 있었다.
적당한 곳에 야전삽으로 구덩이를 팠다.
왠지 은성과 한데 뒤엉키기는 싫었다.
약간의 수고는 들었지만 두 개의 구덩이를 파고 각각 그 안에 묻었다.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명복을 빌기가 애매했다.
막 구덩이에 들어간 몸에서 빠져나온 영혼이 지금 야전삽을 들고 있는 이 몸에 버젓이 살아 있었다.
애매모호한 기분을 느끼며 남구의 눈동자가 옆으로 스르륵 돌았다.
‘으음!’
봉분을 토닥이던 야전삽을 그대로 던졌다.
쐐애애애애액- 텅-
나무 기둥에 깊숙이 꽂힌 야전삽의 손잡이가 부르르 떨렸다.
박혀 든 야전삽 위로 청설모의 대가리가 제사상에 돼지머리처럼 반듯하게 놓여 있었다.
몸뚱이는 잘려 나가 밑으로 떨어졌다.
‘돼지머리 대신 다람쥐 머리로 제사라도 지내야 할까?’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니니 돼지머리는 과하고 다람쥐 머리 정도가 딱 적당할 것이다.
꼬르륵-
배에서는 어김없이 신호가 왔다.
짧아진 해가 높고 맑은 하늘에 장엄한 노을을 만들며 벌써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하늘에 펼쳐진 풍부한 색감처럼 다사다난했던 하루였다.
오늘도 많은 목숨이 저 기우는 해와 같이 덧없이 지고 말았다.
그중에는 정겹게 말을 붙이던 이도 있었기에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가 마음 한구석 끈질기게 끈적끈적 달라붙었다.
하지만 산 몸뚱이에서는 염치없이 밥 달라고 보채 오고 있었다.
‘오늘 저녁은 다람쥐 고기로군. 둘이 먹기는 좀 작은데? 산도 깊은데 멧돼지는 안 나오나?’
잠시 그대로 서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인적없는 깊은 산속일지라도 고요하지만은 않았다.
온갖 잡소리 중 필요한 소리만을 골라냈다.
부스럭-
바짝 마른 나뭇잎 더미를 밟는 소리가 가벼웠다.
‘토끼?’
소리의 방향으로 남구의 새까만 눈동자가 스르륵 돌아갔다.
그리 멀리 않은 곳에서 간간이 나뭇잎을 바스락거리며 산토끼가 웅크리고 있었다.
‘흐흐, 토끼 고기 좋지!’
손바닥을 펴 조심스럽게 팔을 치켜들었다.
-으아아악! 이게 뭐야?
목청껏 외치는 고성에 놀란 토끼가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으음! 인제 일어나셨군요. 박 부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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