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종 친 학교는 (2)
벽체 뒤에 숨어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히죽거리는 남구의 모습을 은성과 예솔도 똑같이 멍하게 바라봤다.
아이들의 시선을 느낀 남구가 눈빛을 수습하고 둘을 번갈아 돌아보았다.
‘내가 지금 히죽이고 있었나? 이 위태로운 상황에 정신 놓고 멍했나? 하! 나사가 빠져 버렸군.’
강한 육체와 명품 스킬들을 얻고 나니 저도 모르게 자만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은성과 예솔은 남구의 믿기 힘든 투척 솜씨에 그저 놀랐을 뿐이었지만 남구는 획득한 스킬에 마냥 들떠서 주변 상황을 까맣게 잊었다.
‘내가 멍때리다니 믿을 수 없군. 뼈다귀만 주워 먹다 살코기를 보니 환장했구나!’
쥐뿔도 없었기에 언제나 궁핍하고 부족했다.
남들이 흘려주는 것조차 감지덕지해야만 했다.
애초부터 약했던 남구가 초반부터 온갖 스킬을 독점해 가는 강자를 따라잡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허기진 듯 채워지지 않던 공허함은 항상 남구를 따라다녔다.
비참하게 죽고 싶지 않았다.
힘을 얻고 싶었다.
‘보상 심리가 발동했나?’
이리저리 휘둘리며 살아왔기에 이번에는 은성을 비롯한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주도적인 입장이 되고자 했다.
스스로 원하는 길을 통해 원하는 종착지로 가고 싶었다.
그래서 더 힘을 갈구하고 탐했는지도 모른다.
놀라운 능력들이 쏟아져 내리자 언제나 냉철했던 남구도 평정심이 깨어졌다.
‘어차피 눈치 하나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이까짓 스킬 좀 얻었다고 들떠서야!’
쏟아지는 엄청난 스킬의 홍수에 눈이 멀어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렇게 눈먼 자들이 어떻게 죽어갔는지 옆에서 똑똑히 보아 왔던 남구였다.
‘정신 차리자! 힘을 탐하는 이유는 살아남기 위함이야. 힘에 도취해 정신 놓고 좋아라 하다 죽는다면 개가 웃을 일이야. 주객이 전도되면 안 되지.’
남구가 해이해진 마음을 다시금 다잡을 때 예솔의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 대단해!”
아주 작은 속삭임에도 불구하고 감정이 고스란히 실려 있었다.
은성도 주변을 경계하며 탄성을 조심스럽게 뱉어냈다.
“이야! 칼을 어떻게 그렇게 잘 던져?”
자기도 던져보고 싶은지 회칼을 만지작거렸다.
본연의 눈빛과 표정으로 돌아온 남구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둘에게 목소리를 낮춰 차분하게 작전 계획을 설명했다.
“창문에 보이지 않게 몸 낮추고 매점으로 통하는 길목까지 계속 갈 거야. 우선 첫 번째 교실부터 점령하자! 뒤를 당할 수 있으니까 하나하나 처리하면서 가자고. 후방 경계하고 일정 거리 떨어져서 쫓아와!”
예솔이 또 조용하게 속삭였다.
“응! 알았어.”
“예솔아, 그냥 고개만 끄덕여도 돼.”
“응! 알았어.”
무의식적으로 대답한 뒤 아차 싶었는지 뒤늦게 고개만 끄덕거렸다.
은성은 그런 예솔의 모습이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나는 세로로 하나는 가로로 고개를 저어대는 모습에 남구가 한숨을 내쉬었다.
“후유!”
호흡을 가다듬은 남구가 벽면에 등을 붙이고 복도를 빼꼼히 내다보았다.
복도 끝에 있는, 남구와 가장 가깝게 자리한 교실의 열려있는 앞문을 주시했다.
‘이 교실부터 차례차례 각개격파 해나간다면 한꺼번에 협공당할 위험은 줄겠지.’
살금살금 다가가 교실의 뒷문을 열어 보았지만 열리지 않았다.
대걸레 자루와 빗자루 등이 미닫이문에 잔뜩 끼워져 있었다.
그 뒤로는 온갖 책걸상을 다 동원하여 산처럼 쌓아 놓았다.
‘안에서 저항하던 아이들이 봉쇄해 놨군.’
하지만 어처구니없게도 앞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좀비 무리가 교실 안에서 서성이는 모습이 창 너머로 보였다.
상체를 수그리고 천천히 앞문을 향해 걸었다.
뒤쪽 계단 참에서 은성과 예솔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지켜 보고 있었다.
손바닥을 펴 보이며 따라오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고 슬금슬금 앞장서 나아갔다.
개개의 교실 안에 더 많은 숫자가 있었지만, 중앙 현관을 기준으로 양쪽 복도에도 좀비가 꽤 서성거렸다.
특히 반대편 복도에는 수를 세기 힘들 정도로 많았다.
하지만 근처에는 비교적 소수였다.
‘바로 앞에 열둘이라!’
피에 젖은 교복을 입은 좀비 열두 마리가 삼삼오오 짝을 이뤄 어슬렁댔다.
언제 교실 안에서 얼마나 많은 수의 좀비가 더 튀어나올지 알 수 없었다.
좀비들과의 거리가 어느 정도 떨어져 있다고는 하지만 고개만 돌리면 바로 볼 수 있는 일자로 쭉 이어진 복도 공간이었다.
워낙 소리를 죽여 사뿐사뿐 걸어가 아직 들키지 않았을 뿐이었다.
아무리 은밀하게 움직인다고 해도 끝까지 들키지 않기란 어려웠다.
곧 좀비 중 하나가 남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좀비의 광기 서린 눈이 부릅떠졌다.
“캬아악”
시야에 먹잇감이 들어오자 짐승처럼 입을 한껏 벌리고 울부짖었다.
꼭두각시 인형같이 양팔을 허우적거리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연쇄 반응이 곧바로 일어났다.
주변에 모여 있던 네 마리의 고개가 동시에 남구에게 향했다.
처음 남구를 발견한 좀비는 발이 무척 빨랐다.
‘뭐가 저렇게 빨라?’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졌다.
함께 모여 있던 네 마리도 남구를 향해 뜀박질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달리기 시작한 발 빠른 좀비를 향해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실전 사용은 처음이군!’
손바닥을 겨누고 머리에 자리 잡은 중력의 권능을 일으켰다.
‘중력제어!’
남구의 까만 눈동자가 순간 반뜩였다.
뻗어 낸 손에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부하가 걸린 오른손을 통해 곧장 중력이 발휘되었다.
어떤 기운도 어떤 기색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작용하는 힘은 실재했다.
쏜살같이 달려들던 빨 빠른 좀비는 그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다.
수백 배속의 슬로 모션이 걸린 듯 수 초가 지났으나 1m도 움직이지 못했다.
좀비의 발밑에서 작용하는 중력장에 권능을 퍼부었다.
“흐읍!”
꽈앙-
서 있다시피 했던 좀비가 그대로 바닥에 이마를 처박으며 꼬꾸라졌다.
뒤처졌던 좀비들이 바닥에 들러붙은 좀비의 옆을 스치며 계속 달려들었다.
중력장이 작용하는 범위가 그다지 넓지 못했다.
타다다다다닥-
좀비 떼의 숨 가쁜 발소리가 복도 가득 울려 퍼졌다.
‘자! 한 번 더!’
곧 들이닥칠 것만 같은 다급한 상황이었지만 침착하게 두뇌에 작용하는 기운을 느끼며 뻗은 손을 가장 앞선 좀비에게 겨누었다.
‘이번에는 구분 동작 없이 단 한 번에!’
처음이었지만 훈련된 육체 덕분에 꽤나 자연스럽게 발동했다.
꽝-
또 하나의 좀비가 똑같은 모습으로 바닥에 처박혔다.
그것도 눈 깜짝할 사이, 단번에.
처음 바닥으로 꼬꾸라졌던 발 빠른 좀비는 중력장이 해제된 덕분에 어기적어기적 다시 일어섰다.
중력제어가 타격을 주지 못했다.
단지 시간을 버는 용도 외에는 효과가 없었다.
‘출력을 더 높여야 하나?’
거의 코앞까지 다가온 좀비를 향해 가능한 몸이 버텨낼 수 있는 최대 한계까지 출력을 높였다.
남구의 반뜩이는 새까만 눈동자가 천장을 향해 있었다.
순간 좀비의 몸뚱이가 위로 솟구쳤다.
꽈아앙-
솟구친 좀비의 정수리가 천장을 강타했다.
두개골이 함몰된 것이 눈에 보였다.
깨진 머리에서 터져 나온 혈액이 천장에 흩뿌려졌다.
쿠우웅-
곧바로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천장을 흠뻑 적신 혈액은 빗방울처럼 방울져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외관상 대가리가 함몰되기는 했는데, 뼛속에 뇌까지 으깨졌을까?’
다시 일어나지는 못했으나 움찔거리는 모습에서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새 달려드는 좀비 두 마리가 코앞까지 닥쳐왔다.
‘허억!’
가벼운 현기증이 일었다.
‘바닥보다는 천장에 중력제어를 사용하는 게 더 힘들군.’
콧속에 물기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코피? 썩을! 출력을 너무 높였나?’
한계까지 끌어올린 중력제어의 일격이 몸에 부담으로 다가왔다.
‘더 무리한다면 근접전에 대비할 수 없어!’
중력제어의 권능을 발휘하느라 뻗어 있던 손을 잽싸게 회수하여 다기능 목공 벨트에서 망치를 빼 들었다.
타다다닥-
뒤에서 은성이 쏜살같이 튀어나왔다.
옆을 스쳐 지나는 여파로 남구의 긴 머리카락이 올올이 흩어져 나부꼈다.
전력으로 돌진한 은성이 가장 앞서 달려오던 첫 번째 좀비의 목덜미를 쭉 뻗은 한 손으로 움켜쥐었다.
퍼억- 우드득-
가속력에 급격히 제동이 걸린 좀비의 목뼈가 그대로 부러져 나갔다.
바로 뒤를 이어 달려오던 좀비가 남구보다 튀어나온 은성으로 순식간에 목표를 바꾸었다.
남구도 망치를 치켜세우며 몸을 날렸다.
엉망으로 헝클어졌던 머리카락이 넘치는 속도에 한결같이 뒤를 향해 펄럭였다.
손에 들린 망치가 은성을 덮치려던 좀비의 대가리에 수직으로 떨어져 내렸다.
부우웅- 빠악-
망치에 정수리를 얻어맞은 좀비의 대가리가 수박처럼 깨져나갔다.
파바박-
파편이 온 사방을 뒤덮었다.
‘이런! 우라질!’
잘생긴 하얀 얼굴이 온통 검붉은 뇌수를 뒤집어썼다.
바로 옆에 있던 은성의 얼굴도 마찬가지다.
피와 살점 조각을 흠뻑 뒤집어쓴 은성이 눈살을 찌푸리며 남구를 돌아봤다.
얼굴에 불만이 가득했다.
‘이거, 힘 조절을 해야 하나?’
생각보다 힘이 너무 강했다.
더 힘이 좋은 은성의 손아귀에 목을 붙잡히고 축 늘어졌던 좀비가 팔을 움찔거렸다.
이내 광기가 흐르는 부릅뜬 눈으로 은성을 노려보며 찢어져라 입을 벌렸다.
“씨파!”
남구는 오랜 세월 은성과 같이했지만 욕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소스라치게 놀란 은성이 부리나케 회칼을 휘둘렀다.
푸욱-
회칼의 길쭉하고 날카로운 날붙이가 관자놀이를 단번에 꿰뚫었다.
은성은 축 처진 좀비의 몸뚱이를 징그럽다는 듯이 옆으로 던져 버렸다.
꽈광-
벽에 처박혔다가 바닥으로 떨어진 좀비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역시 은성의 힘은 대단하구나!’
과거, 이와 같은 위용의 은성을 처음 봤었던 때와 겹쳐 보였다.
복도 천장에 처박혀 대가리가 깨진 좀비는 움찔거림을 멈추었다.
‘뇌까지 파괴된 모양이네!’
덤벼들었던 다섯 중 이제 둘 남았다.
하지만 복도에 있던 모든 좀비가 남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예솔의 덜덜 떨리는 목소리가 뒤쪽에서 들려왔다.
“어, 어떻게! 다 몰려올 것 같아!”
은성이 쏜살같이 앞으로 뛰어들었다.
남구는 제자리에 서서 분리된 조경 가위를 뽑아 들고 신중하게 와인드업 자세를 취했다.
“흡!”
쒜애애애애애액-
창이 날아가듯 일직선으로 곧게 허공을 갈랐다.
퍼억-
이마 한 가운데를 그대로 꿰뚫었다.
가윗날이 뒤통수까지 삐져나온 좀비의 고개가 한껏 뒤로 젖혀졌다.
달려오던 속력을 못 이기고 공중에 떠올라 대자로 떨어졌다.
꽈당-
은성의 쭉 뻗은 칼끝이 마지막 남은 좀비의 턱밑에 정확하게 틀어박혔다.
푸욱-
마찬가지로 뒤통수까지 뚫어버린 회칼을 곧바로 뽑아냈다.
좀비는 무너지듯 내려앉았다.
털썩-
은성의 힘과 움직임은 놀라웠다.
자기도 그렇게 느끼는지 놀란 눈으로 피가 뚝뚝 떨어지는 회칼을 쥔 손을 이리저리 뒤척여 봤다.
“카아아악!”
“크아아아!”
한순간에 복도 통로는 괴성으로 가득 차올랐다.
시야가 닿는 곳의 모든 좀비가 일제히 고개를 돌려 남구와 은성을 쳐다봤다.
곧 떼거리로 바닥을 박차기 시작했다.
은성이 질린 듯 흔들리는 눈빛으로 남구를 돌아다봤다.
예솔은 본능적으로 은둔을 시전했다.
조용히 첫 번째 교실로 들어가는 작전은 커다란 난관에 봉착했다.
‘이런, 제기랄! 중과부적이군!’
남구가 재빨리 벨트에 망치를 꽂아 넣었다.
일 초가 급한 상황에 생뚱맞게도 차분하게 숨을 골랐다.
“후우우우우우우우!”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은성의 표정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아무리 강력한 육체를 얻었다 해도 저 많은 수에 둘러싸인다면 살아남을 방법이 없었다.
한 번이라도 물리는 날에는 모든 것이 끝장이었다.
교실에 남아있던 좀비들까지 열려있는 앞문을 향해 앞다투어 몰려들었다.
남구는 은성과 예솔의 절망적인 표정에 아랑곳없이 다시 깊게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고는 앞문을 통해 교실 안쪽으로 온몸의 근육을 쥐어짜며 양손을 내뻗었다.
“흐으으으읍!”
[중력제어 숙련도 2%]
교실 앞문의 좁은 출구에서 문전성시를 이루던 좀비 무리가 뒤로 당겨지듯 순식간에 날아갔다.
꽈과과과과과과과광-
책걸상과 함께 팔다리가 뒤엉킨 20마리 이상의 좀비 떼가 중력장이 작용한 반대쪽 벽면에 모조리 처박혔다.
푸학-
남구가 입과 코에서 피를 뿜었다.
“크으윽!”
벌어진 입에서 굵은 핏줄기와 함께 신음이 터져 나왔다.
뒤쪽에서 예솔의 높은 목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남구야! 괜찮아?”
은성은 말을 잇지 못하고 휘둥그레진 눈을 껌뻑댈 뿐이다.
남구가 곧 쓰러질 듯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휑해진 앞문을 통과하며 외쳤다.
“뭐해? 어서 들어와!”
예솔이 후다닥 교실로 뛰어들었다.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스치는 바람으로 알 수 있었다.
은성도 그정도는 느끼는지 뒤를 이어 잽싸게 들어왔다.
이어 교실 벽면에 떼로 처박힌 좀비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은성아, 넌 앞문 막아!”
남구의 외침에 회칼을 앞세우고 뛰어들려던 은성이 뒤돌아봤다.
남구가 은성을 지나치며 다시 망치를 뽑아 들었다.
“힘이 없어서 앞문 못 막겠어. 차라리 저놈들 대가리를 깨는 게 쉬울 것 같아.”
은성은 널브러진 좀비 떼를 힐끔 쳐다보고는 지체 없이 몸을 돌려 교실의 앞문을 세차게 닫았다.
드르르륵- 꽝
미닫이문이 열리지 않게 벽을 등지고 팔다리로 문을 밀며 지탱했다.
곧 좀비 떼거리가 도착한 순서대로 문짝에 몸뚱이를 들이박았다.
꽈아앙- 꽝- 꽝-
앞문이 부서질 듯 요란하게 진동했다.
빠가가각-
손톱이 빠지도록 문짝을 박박 긁었다.
검붉은 핏물을 흠뻑 머금은 아가리를 찢어져라 벌려댔다.
“캬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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