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아종 (1)
고급스럽게 생긴 좌대에서 멋들어지게 장식되어있었던 일본도 형식의 검을 들어 올려 검집에서 검신을 뽑아내었다.
스르르릉-
얄팍하고 날렵한 날붙이가 서서히 그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하자 우는 소리가 이어졌다.
상쾌할 정도로 청량하면서도 머리카락이 쭈뼛거릴 만큼 서늘했다.
60cm가량의 검신에서 아침 햇살을 반사하는 검광이 번뜩였다.
유려하게 휘어진 눈부신 검신에 얼굴을 비춰보며 엄지손가락으로 서슬 퍼런 칼날을 쓸었다.
‘음, 아주 예리하군. 날이 잘 서 있네! 칼자루까지 더하면 1m 정도 되겠군. 짧다고 만은 할 수 없겠는걸?’
“허, 허음······.”
배불뚝이 남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헛기침을 했다.
살짝 기가 질려 보였다.
칼집에 장식인 양 감겨있는 고풍스러운 매듭의 끈으로 벨트에 흔들리지 않게 단단히 묶어 고정했다.
신속한 발도를 위해 칼날이 위로 가도록 묶었다.
칼날 방향이 밑으로 가게 허리에 차면 뽑을 때 바닥을 칠 수 있었다.
‘그 순간 죽는 것이지.’
남구의 시선이 바닥으로 내려갔다.
그 눈빛에서 꿀이 뚝뚝 떨어졌다.
방금 묶어 맨 검과 쌍둥이처럼 똑같이 생긴 검을 곧바로 들어 올렸다.
조직 폭력배 사무실 상석 고급스러운 좌대에 한 쌍으로 놓여 있던 기다랗고 큰 검을 검집에서 뽑아냈다.
스르르르르릉-
남구는 언제나 적과의 거리를 가늠하며 살아왔고 그것이 곧 생활이었다.
오차가 발생하면 한순간에 목숨이 날아가 버릴 수도 있는 세월이었다.
무기의 길이 정도는 슬쩍 스치는 곁눈질로도 대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남구가 게슴츠레 눈을 좁히고 빠져나온 검을 훑었다.
검신만 80cm 이상, 전장으로 따지면 1m 20cm 정도의 커다란 장검이었다.
일본도 형식의 검으로써는 꽤 긴 편이었고 폭과 두께도 두툼했다.
검신에는 혈조와 함께 한자와 학이 고급스럽게 음각으로 수 놓여 있었고 친절하게도 날을 바짝 세워 놨다.
손을 보호하는 코등이도 학의 조형물로 섬세하게 세공되어 있었다.
검집에도 마찬가지로 학이 날아다녔다.
이것이 일본에서 만든 카타나인지 한국에서 제작된 검인지 알 수는 없었다.
건달들이 모두 좀비로 변해버려 물어볼 수도 없었다.
하지만 어디서 만들었든 대단한 기품이 느껴지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낸 제품은 아닐 것이다.
장인의 손길을 한땀 한땀 받은 고풍스러운 모양새가 곳곳에서 느껴졌다.
‘상당히 비쌀 것 같네? 너무 커! 몸에 착용하고 다니기에는 부담스럽군.’
마음에 든다고 한가하게 검만 구경할 수는 없었다.
경의와 감탄을 가득 담은 남구의 눈동자가 기다란 검에서 떨어졌다.
칼자루를 쥔 손이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재주를 넘듯 한 바퀴 휘돈 검의 칼등이 검집 모서리를 타고 스르르 미끄러졌다.
곧바로 뾰쪽한 칼끝이 검집의 구멍으로 쏙 들어갔다.
이내 검신은 검집 안으로 바람처럼 사라졌다.
스르르르릉- 탁-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칼 놀림에 사람들의 목젖이 군무를 추듯 하나같이 꿀렁꿀렁 상하운동을 반복했다.
숟가락이 입으로 들어가는 양 너무도 익숙한 움직임에서 오히려 비범함이 느껴졌다.
남구는 거침없는 손놀림으로 검집을 휴대용 정수 텀블러가 들어 있는 백팩 싸이드에 흔들리지 않게 고정했다.
더는 배불뚝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힐끗 보니 휘둥그레진 눈으로 침을 흘릴 듯 입을 헤 벌리고는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직원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흰머리의 남자와 정장 맵시가 좋은 갈색 머리 여자를 포함하여 남구의 부지런하고 신속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구경하던 다른 동료 직원들도 모두 같은 표정으로 넋을 놓고 바라봤다.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무기와 생존용품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나 같은 차림을 한 사람이 수두룩해질 겁니다. 꼴을 보니 그때까지 살 수나 있으려나?’
한기를 느낀 남구가 교복 마이를 입었다.
쌀쌀한 날씨 탓에 등산용품점에서 챙긴 잿빛 밀리터리룩 바람막이 재킷을 교복 마이 위에 걸쳤다.
같은 곳에서 주워온 손가락이 뚫린 기능성 장갑도 착용했다.
피가 묻는 것이 지긋지긋했다.
그래서 구해온 마스크와 고글까지 끼고 벙거지 모자를 눌러 썼다.
플래시를 백팩의 어깨끈에 걸고 벨트의 파우치에도 여분으로 챙긴 또 하나를 넣었다.
마지막으로 등산화의 끈을 꽉 조였다.
등 뒤에서 애타게 말리는 흰머리 남자와 갈색 머리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신속하게 문을 열고 계단 밑으로 향했다.
새벽녘 옥상으로 진입할 때 싹 다 처리해 놓아서 좀비의 시체만이 계단과 복도에 깔려 있었다.
새로 들어온 개체는 보이지 않았다.
1층 현관문을 열며 오른쪽 엉덩이 쪽에서 해머를 꺼내 들었다.
모터를 달아 놓은 것같이 밖을 이리저리 살피던 눈동자에 몇몇 좀비가 들어왔다.
망설임 없이 사뿐거리는 발걸음으로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문을 통과해 곧장 좀비에게 접근했다.
좀비는 남구의 낮은 발소리에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빠악-
해머에 정통으로 얻어맞은 이마가 움푹 깨져 들어가며 곧바로 주저앉았다.
털썩-
두개골을 하도 많이 깨어서 이제는 무의식적으로 대충 휘둘러도 수박이 터져나가듯 산산조각 내지 않았다.
새벽에 구해와 처음 써보는 크고 육중한 해머로 내리쳤는데도 옷에 피가 튀지 않았다.
정교하게 힘을 안배하고 운용하는 기술이 점점 익숙해지며 응용력까지 몸에 붙었다.
‘수백을 잡았는데 이 정도는 해야지!’
바로 옆에 있던 좀비의 고개가 남구에게 향하며 살점이 덕지덕지 끼어있는 치아를 드러냈다.
2m를 한걸음에 좁혀 들어가 정수리를 내려쳤다.
빡-
아가리는 쩍 벌렸지만, 좀비의 괴성은 목구멍을 통과하지 못했다.
정수리를 깨버리고 좀비가 쓰러지기도 전에 남구는 옆 건물을 향해 사뿐거리며 걸어 나갔다.
털퍼덕-
뒤쪽에서 좀비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8 LP 획득]
“응?”
깜짝 놀라 육성이 터져 나왔다.
시스템이 방금 죽인 좀비에게서 8 LP를 획득했다는 텍스트를 띄웠다.
‘으음, 구울한테 직접 물린 놈이었군.’
좀비는 죽여봤자 한 마리에 딱 1 LP 씩 밖에 얻지 못한다.
물린 사람은 죽은 것이 아니라 변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좀비는 아무리 많은 사람을 물어도 목숨을 거두지 못한 셈이니 생명 에너지를 얻지 못한다.
생명 에너지를 얻지 못하니 당연히 생명 포인트인 LP 또한 올라가지 않는다.
마치 뇌사인 사람의 몸에 좀비의 의식이 새롭게 깨어나는 것과 같았다.
생명의 핵만이 시스템을 통해 날아간 인간의 영혼 값을 몽땅 차지하는 셈이다.
사람이 좀비로 변한 이후에 죽었을 때는 생명의 핵은 생명 에너지를 또 한 번 챙기는 꼴이었다.
이것이 초반에 구울을 투입하는 이유 중 또 하나의 이유였다.
한 개체에서 영혼과 생명 에너지를 복리로 거둬들일 수 있으므로 초반 침공에는 언제나 구울을 상당히 선호했다.
예외적으로 구울에게 직접 물려 변한 좀비 중에는 걸신들린 듯 목표를 먹어 치우는 변종이 있었다.
그런 개체는 획득한 생명 에너지를 바탕으로 진화해 갔다.
뿌리는 같지만, 변종하여 아종의 좀비가 탄생하는 것이다.
8 LP를 헌납한 변종의 좀비를 돌아다보았다.
깨진 머리에서 왈칵왈칵 피를 쏟으며 고이 누워있었다.
‘죽지 않고 시간이 더 지났다면 분명 강력한 개체로 성장했겠지?’
죽은 변종을 내려다보던 시선을 들어 다가오는 좀비를 쳐다보았다.
‘바로 저놈처럼!’
정신없이 무작정 달려들지 않았다.
여타 좀비와는 다르게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아종이군!’
동굴에서 울리듯 윙윙거리는 굵은 저음의 목소리가 느릿느릿 고막을 자극했다.
“쓰읍, 흐으, 너는 맛있는 냄새가 나아······.”
남구의 팔뚝에 올록볼록 닭살이 올랐다.
두려움 탓이 아니었다.
혐오감 때문이었다.
눈앞의 아종은 생긴 것부터 시작해 보이는 행태 하나하나가 전부 혐오감 덩어리였다.
‘내 냄새를 맡는 거야? 기분 더럽네?’
건물 모퉁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아종은 비교적 정확한 발음으로 언어를 구사했다.
남구와 아종의 눈빛이 허공에서 마주 얽혔다.
‘눈동자가 아주 더럽게 생겼구나! 단춧구멍이니?’
눈동자에서 검은 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작았다.
눈동자는 사람일 때와는 매우 다르게 변해버렸지만, 사람처럼 충분한 이지를 담고 있었다.
좀비에서 변종하여 성장을 거듭하는 아종은 구울보다도 더 위험할 수 있었다.
‘머리가 정말 비상한 놈들을 종종 봤지!’
아종은 인간만을 노리는 대단히 훌륭한 사냥꾼으로 진화해 나갔다.
남구가 죽인 좀비는 괴성을 지르지도 못했다.
또한 해치울 때 큰 소리가 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곧장 모습을 드러냈다.
‘귀가 상당히 좋은 놈인가 보군.’
냄새 타령을 했던 것으로 보아 후각도 좋아 보였다.
‘LP를 감각에 전부 쏟아 부었나?’
“흐으, 너는 정말 영양가가 많구나아······.”
‘내 보유 LP가 보이는 건가? 그것참 편리한 스킬을 가지고 있군. 약탈자들의 잇템이지. 그나저나 목소리 한번 거지 같구만.’
대형 견이 말을 하는 것만 같았다.
고막을 자극하는 거북스러운 목소리에 남구의 미간이 일순 씰그러졌지만, 곧바로 평소의 표정으로 회복했다.
머리털을 쭈뼛 세우는 혐오감이 전신을 휩쓸었으나 냉철한 평상심으로 회복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영양가라······. 너는 LP를 영양가로 인식하는가 보구나!.’
아종이 흉측한 좁은 동공으로 남구를 유심히 훑어보았다.
남구도 그에 못지않게 아종을 세세히 탐색했다.
‘시스템은 너에게 인류와는 다른 방식으로 생명 에너지 획득을 독려하겠지?’
전능한 시스템은 각각의 종마다 본능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제공했다.
또한 인간과 마찬가지로 아종도 개체마다 구사하는 능력이 모두 다를 수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공격받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동공이 좁은 것 빼고는 모양새가 여타 좀비와 다르지 않군.’
눈동자의 생김새가 다른 것 말고는 외관상 보이는 형태가 다른 좀비와 똑같았지만, 능력은 매우 다를 것이다.
‘과거에 너 같은 눈을 가진 아종을 만나본 적이 있지.’
동체시력이 엄청나게 좋았었다.
‘너도 그러니? 감각에 LP를 마구 쏟아 부었니? 시각, 청각, 후각에 다 투자한 모양이지? 한번 확인해 보자꾸나.’
남구가 왼손에 해머를 옮겨 잡으며 회칼 하나를 벨트에서 뽑아냈다.
‘시간을 끌어서 나한테 좋을 게 하나도 없지.’
적에 대한 탐색을 순식간에 마친 남구의 하체가 팽팽하게 긴장하며 굽어졌다.
상당수의 좀비가 포성이 난 곳으로 이동했다지만 이곳에는 여전히 많은 좀비가 남아 있었다.
상당수가 이동했다고 해도 애초에 워낙 많은 숫자였다.
‘신속하게 처리하고 아침 먹자! 배고프다.’
“흐으으, 널 아침으로 먹어 줄게에······.”
‘얼씨구! 시간 개념도 있으시네?’
좀비 따위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불쾌했다.
아종은 전혀 공격할 기세가 아니었다.
‘정말 특이한 놈이군. 신중한 건가?’
희번덕거리는 넓은 흰자위와 좁은 동공으로 탐욕스럽게 남구를 훑으며 천천히 다가올 뿐이었다.
남구가 왼발을 앞으로 내디디며 회칼을 힘껏 던졌다.
휘리리리리리릭-
팽이처럼 돌아 쏜살같이 날았다.
순간 아종의 고개가 옆으로 젖혀졌다.
휘익-
회칼은 머리에 스치지도 못하고 지나쳐 멀리 날아가 버렸다.
‘하! 피했어?’
남구의 표정이 더욱 냉랭해졌다.
‘반응 속도가 상당한데?’
아종은 표정 변화도 없었다.
이 정도는 자신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멈춤 없이 천천히 다가왔다.
“흐으으, 꿀꺽!”
아종이 군침을 크게 삼키며 웃는 표정을 지었다.
먹음직스러운 조각 케이크를 앞에 두고 있는 다이어트 중인 여학생의 표정인 것만 같았다.
‘아 거, 기분 뭣같이 만드는 놈이네?’
천진한 아종의 미소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섬뜩했다.
아종은 남구를 의심의 여지 없이 완전한 먹잇감으로 여기고 있었다.
자신이 먹잇감으로 인식된다는 것은 정말 더러운 기분이었다.
웬만한 사람은 고양이 앞에 생쥐처럼 공포심에 몸이 굳어 버렸을 것이다.
남구는 자신의 투검을 피한 좀비의 반응 속도를 인정하기 싫었다.
자신을 먹이로 인식했다는 것보다 자신의 투검이 빗나갔다는 것이 더 더러운 기분이었다.
자신은 명품 스킬인 글탄 투척술까지 익힌 몸이었다.
벨트에 찬 또 하나의 회칼을 뽑자마자 바로 집어 던졌다.
휘리리리리리릭-
신속하게 뽑힌 두 번째 회칼이 빛살처럼 날아갔다.
서걱-
“캬아악!”
아종의 입에서 처음으로 고통에 찬 괴성이 터져 나왔다.
고개를 젖혀 피하기는 했으나 귀가 잘려 회칼과 같이 허공을 날았다.
‘하, 인정할 건 인정해야겠군. 빠르네! 동체시력에 많이 투자했구나!’
최선을 다해 던진 투검이 연달아 빗나갔다.
반응 속도가 예상을 웃돌았다.
한쪽 귀가 날아간 아종은 상처를 틀어막고 비틀거리며 게걸음을 쳤다.
‘통증도 생생하게 느끼나 보구나!’
그 틈에 아종만을 주시하던 남구의 눈동자에 움직임이 일었다.
남구의 얼굴은 정면으로 아종을 향해 있었지만, 눈동자가 옆으로 쓱 돌았다.
매장 집기로 유리 벽 전면부를 막아놓은 할인 마트가 보였다.
그 할인 마트 유리 벽 너머 몇몇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이 상황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마트의 주변을 눈동자의 움직임만으로 쓱 둘러본 남구가 해머를 목공 벨트 허리춤에 다시 꽂아 넣었다.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어깨 뒤로 넘겼다.
백팩 사이드에 부착한 묵직하고 기다란 칼자루 끝을 잡았다.
팔을 높이 쳐들며 날이 시퍼런 검신을 뽑아냈다.
스르르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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