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령급화보元靈級火寶
점연성선點連成線
점이 이어져 선이 되고
선집성면線集成面
선이 모여 면이 된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희운이 전혀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말했다.
"봉천부 덕분입니다."
오작은 창을 화접검에 겨누면서 침착하게 대답했다.
"무슨 말이야?"
치우가 천강도를 방패처럼 가로 들고 화접검을 예의주시하며 질문했다.
"멍청이. 불나비가 검으로 합쳐진 게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거잖아. 얼음덩이는 봉천부로 작은 세상이 되었기에 가능하다고 말한 거고."
소소는 데굴데굴 굴러 희운이 지키는 광주리 뒤로 숨었다.
"원래 봉천부는 법보 만들 때 사용하는 부적이야. 법술로 배워서 쓰는 사람은 없고, 부적으로 만들어서 사용하는 법밖에 알려지지 않았어. 외부의 영향을 최소화하여 원하는 법보를 만드는 비결이지."
자세히 설명하자 치우도 알아들었다. 원래대로라면 불가능한 일이 봉천부 덕분에 가능성이 커지며 현실이 된 것이다.
"북망산의 바깥 결계가 봉천부로 펼친 법술과 비슷하다는 얘기도 있어. 모산파의 황금충들이 북망산 결계를 통과하는 도하주를 만들 줄 아는 것도 같은 맥락이고."
화접검은 바로 공격하지 않고 괴이한 소리만 질러댔다. 공손부보를 죽인 게 누군지 몰라 고민하는 거였다. 남은 사람도 용서해 줄 마음은 없지만, 공손부보를 해친 흉수는 반드시 죽여야 하기에 불타는 복수심을 꾹 눌렀다.
시간이 흐르며 화접검은 끝내 치우의 몸에서 공손부보를 죽인 기운을 발견했다. 치우가 귀기를 최대한 누른 이유도 있지만, 화접검이 고치에서 너무 빨리 나와 갖춘 힘에 비해 멍청한 탓이 더 컸다.
화접검은 넘치는 힘을 기세로 발산하며 치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조심."
오작은 치우를 공격하려는 화접검을 창끝으로 맞춰 제지했다. 같은 요마화보 등급인 홍영창을 오래 봐왔기에 화접검의 공격 경로가 얼추 예상되었다.
화첨창의 끝이 화접검의 검첨과 마주치며 상대를 밀어냈다. 화접검은 허공에서 빙글 돌아 다시 검첨을 치우로 향한 후 더 빠른 속도로 공격했다. 그러나 역시 중도에 화첨창의 제지를 받았다.
화접검은 치우를 찌르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했으나 모조리 실패했다. 오작은 절묘한 찌르기로 화접검의 경로를 비틀거나 아예 멈춰버렸다.
싸움이 길어지며 화접검도 점점 방향 전환이 영활해지고 공격도 매서워졌지만, 오작은 물샐틈없는 수비를 보여줬다.
화접검은 어느새 치우에게 복수하는 것도 잊고 오작과 벌이는 싸움에 집중했다. 비록 창과 검이라는 서로 다른 형태지만, 오작의 창술은 창술 이상의 그 무언가를 품고 있어 화접검도 배워가는 게 많았다.
단순한 찌르기만 하던 화접검이 작은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 가지처럼 표홀한 움직임을 보였다. 그에 따라 오작의 창도 선을 그렸다.
'점이 이어져 선이 된다.'
치우는 싸우는 중이라는 것도 잊고 입을 헤 벌린 채 오작의 창에만 집중했다.
치우는 처음에 오작의 찌르기가 화접검을 면밀히 막아내는 데 큰 의문을 품었다. 치우의 눈엔 화접검이 알아서 창끝과 충돌하는 듯한 느낌을 받은 탓이다.
그러나 싸움이 길어지며 오작이 예측하여 한 점을 공략한다는 걸 알아챘다.
화접검의 움직임을 완전히 예측했기에 적당한 시각에 원하는 점에 창끝을 들이대 화접검과 충돌을 이뤄낸 것이다.
화접검이 공격 방식을 바꿔 선을 그리자 오작도 똑같이 선을 그렸다. 화접검이 어떤 변화를 보여도 대응할 수 있는 점을 선점해가며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다.
화첨창과 화접검은 아까 빈번히 출동하던 것과 달리 이젠 간간이 부딪치기만 했다. 화접검도 의욕으로만 오작의 수비를 뚫을 수 없음을 인정하고 갈수록 신중해졌다.
화접검과 마찬가지로 치우 역시 오작의 창술에서 많은 걸 배웠다. 희운이나 소소와 달리 오작의 창술을 예전부터 봐왔기에 달라진 점들을 쉽게 알아챘다.
원래부터 창술이 훌륭하던 오작이다. 달라진 부분은 당연히 예전보다 나은 쪽으로 바뀌었다. 그렇기에 달라진 부분에 집중하면 오작의 창술을 더 쉽게 터득할 수 있었다.
'선이 모여 면이 되고, 면이 모여 세상이 된다.'
치우의 눈이 몽롱하게 풀리며 열오름에 들어갔다. 오작이 경지가 오르는 걸 보고 부러운 마음이 컸는데, 몸이 지친 상태에서 잡생각이 사라지며 그간 쌓아왔던 깨달음이 하나로 융합하여 경지의 상승을 이뤄낸 것이다.
그러나 희운도 소소도 오작과 화접검과 벌이는 대결에 푹 빠져 치우의 상태를 알아채지 못했다.
화접검은 태생의 한계와 여러 가지 이유로 선까지 깨닫고 면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요마화보답게 꽤 괜찮은 방법을 찾아냈다.
검신을 부르르 떨어 다섯으로 분리한 화접검은 다시 공세를 펼쳤다.
'미련하구나.'
오작은 선을 모아 면을 만들었다. 다섯 검이 한 면에 있는 순간을 노려 다섯 모두 막아냈다. 다섯 검이 같은 면에 안 있으면 다섯 점으로 인식하여 각개격파했다.
수십 차례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화접검도 문제점을 알아챘다. 분리하면 오히려 힘만 약해져서 더 쉽게 막힘을 깨달은 화접검은 다시 하나로 합친 후, 크기를 비녀 정도로 줄였다.
'네가 아무리 줄어도 점보다 더 줄겠느냐.'
오작은 크기를 줄인 화접검을 상대로 일말의 실수도 없이 잘 막아냈다. 그러나 화접검 역시 대결할수록 느껴지는 바가 있어 조급해하지 않았다.
체력이나 집중력 따위가 하락할 리 없는 법보이기에 싸움의 끝엔 자신의 승리가 있다고 확신했다.
병장기의 충돌음은 점점 줄지만, 상황은 조금씩 악화되었다. 물론, 점점 어려워지고 있음은 오작 자신만 알았다. 심지어 대결하는 화접검도 오작이 빠르게 지쳐간다는 사실을 몰랐다.
'아까 뭘 느꼈는데.'
오작은 팔을 대충 뻗어 화접검을 쳐내며 생각에 잠겼다. 아까 화접검이 몸을 줄일 때 뭔가 느끼는 바가 있었다.
오작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절묘하게 찔러오는 화접검을 창으로 쳐냈다. 창과 검이 충돌하는 순간, 오작의 몸이 찌르르 울렸다.
'점. 충돌할 점만 보는 게 아니라 창의 균형점과 검의 균형점도 봐야 한다.'
오작은 갑자기 얼음물을 맞은 사람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 화첨창, 검, 충돌점까지 네 점이다. 넷이 한 면에 놓이면 충돌이 커지고 선에 놓이면 더 커진다.'
고수가 하수보다 싸움에 유리한 점이 바로 이거다. 싸움에 참여한 여러 점이 같은 면에 놓일 때 충돌이 커지고 반동도 크다.
고수는 본능적으로 알고 미리 대비하여 충격을 최소화하나 하수는 예사롭게 생각하다 반동에 허둥댄다.
'선을 면에 감추어 난 알고 상대는 모르게 하면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오작은 새로이 깨달은 걸 바로 써먹지 않았다. 화접검에게 최대한 큰 타격을 줄 요량으로 전과 똑같이 대응하며 기회만 엿봤다.
'공간을 면으로 압축하고, 면을 선으로 모은 후, 선이 점이 되면 최강의 공격이 되겠구나.'
오작이라는 점, 화첨창이라는 점, 화접검이라는 점을 충돌점에 모아버리면 최강의 공격이 된다. 그러나 화첨창은 몰라도 오작은 그 반동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그러니까 난 있으면서 없어야 한다. 내가 받아야 할 반동을 화첨창이 아닌 저 검이 받게 하는 게 최고의 방법이다.'
여전히 숨을 고르게 쉬고 있지만, 오작은 자신이 오래 지탱할 수 없음을 알았다. 오작의 몸은 법력으로도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쳐 있었다.
'남은 건 치우한테 맡겨야지.'
결심을 내린 오작은 허공으로 훌쩍 뛰어 공격했다. 지금까지 수비만 했기에 화접검은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덕분에 화접검이 예상했던 충돌점이 아닌 다른 점에서 충돌했다.
오작은 충돌하는 순간에 창 자루를 비틀며 놨다. 타점을 교묘하게 비틀어 충돌의 반동을 대부분 화접검에게 떠넘겼고, 창 자루를 놓는 것으로 자신한테 오는 반동을 미리 차단했다.
"치우, 지금이야."
열오름에 정신이 없던 치우는 오작의 외침에 저도 모르게 움직였다. 몸을 높이 날린 치우는 화첨창과 충돌한 후 자신을 주체 못 하는 화접검을 천강도로 힘껏 내리쳤다.
귀기를 비롯한 기운들이 한꺼번에 천강도를 통해 쏟아져 나왔고, 화접검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부서졌다.
쿨럭, 쿨럭.
오작과 치우가 동시에 쓰러져 기침했다.
오작은 마지막 공격에 힘과 법력 그리고 모든 정신력까지 쏟아부어 탈진했고, 치우는 열오름을 채 마무리하지 않은 상태에서 강한 기운을 쏟는 바람에 내상이 도졌고 귀기가 다시 날뛰었다.
"두 분 움직일 수 있습니까?"
희운의 질문에 오작이 쿨럭이며 대답했다.
"당장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잠깐 고민한 희운은 소전의 머리가 든 상자를 열었다.
"부친. 대협이 더는 의뢰를 수행하기 힘듭니다. 대협이 찾는 분이 어디 계신지 어서 알려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염환국에 금계산金鷄山이라고 있소."
황금알을 낳는 닭이 산다고 하여 이름이 금계산이다.
"금계산에 금계동이라는 동굴이 있는데, 안이 미궁이오."
황금알을 낳는 닭은 누구도 못 봤지만, 금계동에서 황금알이 자주 발견되어 소문에 큰 신빙성을 더해줬다.
"협객은 그 안에 있소. 황금알을 주우려고 금계동에 들어간 사람 열 중에 아홉은 다시 나오지 못했소. 신중하게 결정하기를 바라오."
희운은 상자를 닫아 광주리에 넣었다.
"두 분의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한 희운은 광주리를 메고 혼자 출발했다.
"우릴 버리고 그냥 간다고? 너희는 저것도 이해 해?"
희운이 사라지고 한참 지나서야 잠시 가출했던 소소의 정신이 돌아왔다.
"약속은 지켰으니깐요. 그리고 부친을 구해야 한다는 명분도 있잖습니까."
오작의 평이한 말투에 소소는 바닥을 뒹굴며 분한 마음을 표출했다.
"이상해. 너희 다 이상해."
"저런 사람이구나 하고 다음부터 상종 안 하면 되지. 뭘 또 그리 화내고 그래."
날뛰는 귀기를 겨우 달랜 치우가 힘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소소는 치우한테 화내려다 억지로 참았다. 지금도 이름을 모르는 산에서 치우가 감옥에 갇혔을 때 소소는 사과하라고 강요했었다.
그때 치우는 소소한테 거세게 화냈다. 그러나 공손부보에게 잡힌 소소를 구해줬고 책망의 말 한마디 없었다.
'그래.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지. 내 입맛에 안 맞는다고 백날 불평해봐야 달라지는 것도 없어.'
신기하게도 잔뜩 치밀었던 화가 스르르 풀렸다. 아직도 바닥에 사라지지 않고 끈질기게 남은 화가 여전히 버럭거리고 있지만, 마음은 이미 진정되었다.
"그럼 이제 어쩔 생각이야?"
소소의 질문에 오작이 대답했다.
"우리가 회복할 때까지 어떤 위험도 벌어지지 않길 바라야겠죠. 나랑 치우가 회복하면 당신을 욕수가 있는 진일곡까지 데려다주고 작별할 겁니다."
"그냥 같이 다니면 안 될까? 나 투정도 안 부리고 열심히 도울게. 너희가 하는 게 나쁜 일이어도 군말 안 하고 돕겠다니까. 아까 미궁 어쩌고 하는데, 나 길 잘 찾아."
"압니다. 풍괴의 미궁에서 우리랑 다르게 전혀 안 헤맸다고 들었습니다."
오작의 말에 소소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미궁에서 헤매다가 강제명과 희운을 풀어주는 바람에 오작과 치우에게 큰 훼방을 놓았다.
"그땐 미궁이라는 걸 몰라서 발 가는 대로 걸었으니까. 미궁이라는 걸 알면 달라질 거야."
소소의 항변에 오작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가는 코골이로 더는 말을 걸지 말라는 뜻을 확실히 표현했다.
치우 역시 채 마무리하지 못한 열오름으로 이마가 펄펄 끓어 소소와 대화할 정신이 없었다.
'응? 저게 뭐지?'
심심해서 두리번거리던 소소의 눈에 이상한 게 들어왔다. 달궈진 숯덩이처럼 빨간데 곁에 눈이 전혀 녹지 않았다.
소소는 데굴데굴 굴러서 숯덩이가 있는 곳으로 갔다. 가까이 가니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그러나 얼굴을 화끈거리게 하는 열기에도 주변의 눈은 그대로였다.
소소는 굴러서 분지 가장자리로 가서 누가 오나 살피기도 하고, 눈을 안 녹이는 숯덩이를 관찰하기도 하고, 잠자는 치우와 오작의 얼굴에 눈을 뿌리기도 하면서 심심함을 달랬다.
그러다 밤이 깊어 오작이 먼저 깨어나자 기쁜 마음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와. 얼음덩이가 이렇게 반갑긴 처음이네. 저기 저거 뭔지 알아?"
오작은 멍한 눈으로 숯덩이를 한참 바라봤다.
"원령급 화보 같습니다. 저걸 수습하려면 치우가 깨야겠군요. 눈 좀 붙이십시오. 망은 제가 보겠습니다."
오작은 손가락으로 구마소의 구멍을 막고 진혼곡을 연주했다. 진혼곡으로 귀기가 조금 사그라든 덕분에 치우는 방해를 덜 받고 열오름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얜 진짜 양심이 없네. 형 어서 자. 망은 내가 볼게."
열이 내려 몸을 일으킨 치우는 사지를 쩍 벌리고 편하게 자는 소소를 욕했다.
"나 방금 깼어. 지금까지 쟤가 망본 거야."
치우는 무안함에 뒤통수를 세게 긁었다.
"저기 화보 수습해. 몸에 지니고 다니면 귀기를 제압하는 데도 도움이 될 거야."
치우는 봉인술을 펼쳐 화보를 제압한 후 주문을 새긴 가죽 주머니에 넣었다. 소매에 넣으니 여전히 등등하던 귀기의 기세가 한풀 꺾인 게 느껴졌다.
- 작가의말
치우가 순수한 불 원소로 구성된 알(구슬)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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