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무법리黃金無法里
이무회우以武會友
싸움으로 친해지고
치우석패蚩尤惜敗
치우는 안타깝게 졌다
"형, 나한테 걸어."
말을 마친 치우는 오작이 말릴 틈도 없이 내기판을 주도하는 노인에게 다가가서 덩치와 싸울 것을 천명했다.
"자넨 인간인가 요괸가?"
우마왕이 준 가면과 옷 덕분에 사람들은 헷갈렸다.
"그게 중요해?"
치우의 말에 노인은 그저 고개를 저었다.
"거기 덩치. 더 싸울 힘이 있는가?"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치우는 싸움터 가운데로 가서 자신보다 더 큰 덩치의 인간을 노려봤다. 가파른 산에서 굴러내리는 바위 같은 치우의 기세를 덩치 큰 사내는 담담하게 받아냈다.
소도류처럼 비켜 나게 한 게 아니라, 던진 돌을 품는 바다처럼 치우의 기세를 전부 수용했다.
"표두를 이긴 덩치 큰 인간은 하나 걸면 이 할 삼 푼. 소 가면을 쓴 놈은 하나 걸면 오 할."
의외로 치우에게 거는 사람이 다수였다. 방금 덩치 큰 인간이 표두를 이기는 작은 기적을 보여줘서 그런지 요행을 바라는 사람이 많았다.
"자. 더 거는 사람이 없으니 시작하겠소. 법보를 사용할 수 없고 독을 쓰지 못하오."
싸움을 시작하자마자 치우는 앞으로 튀어나가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다. 요행을 바라고 치우에게 돈을 건 사람 모두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가득했다.
"이 멍청한 놈아. 네 대가린 바위를 깎아 만들었냐?"
"저 소머리 가면을 뜯으면 안에 삶은 돼지 대가리가 있을 거야."
"못 이기기만 해. 내가 네놈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버릴 테다."
그러나 표범과 달리 치우는 체력이 강하다. 더구나 우마왕의 영지에서 수십 마리 소와 매일 줄다리기를 몇 번씩 하며 힘을 키우는 과정에 지구력도 엄청나게 늘었다.
그래서 공격하는 치우는 멀쩡한데 회피만 하는 덩치 입에서 헉헉 숨찬 소리가 나왔다.
"안 속아."
치우는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는 와중에도 공격을 전혀 늦추지 않았다.
"어떻게 알았어?"
덩치의 목소리는 꽤 듣기 좋았다. 굵직한데 맑은 묘한 소리였다.
"목과 가슴만 헐떡이잖아. 어깨랑 등은 그대로고."
"고맙다."
치우에게 고마움을 표현한 사내는 다시 입을 꾹 다물고 치우의 공격을 피했다.
"너 복수해야 하는구나."
치우의 말에 사내는 얼굴을 크게 찡그렸다.
"강한 적과 싸우는 연습을 하려는 거지? 충고하는데 그러지 않는 게 좋아. 그저 열심히 수련하고 열심히 싸워서 강해지는 게 답이야."
"넌 말로 상대를 흔드는 연습 하는 거지?"
덩치가 목적을 들춰내자 치우는 혀를 쑥 내밀었다. 뜻밖의 모습에 사내는 조금 당황했는지 회피 동작이 커졌다.
"강한 적을 만나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꺼내야 하니까. 진짜 강한 상대한텐 지금처럼 피하기만 하는 방법은 안 먹혀. 모든 걸 걸고 강하게 부딪치는 게 답이야."
피하기만 하던 사내가 드디어 맞공격을 시작했다. 치우도 사내도 수비는 거의 무시하고 공격에만 전념했다.
상대의 묵직한 주먹을 묵묵히 견디며 공격에만 몰두하는 모습에 구경꾼들이 크게 환호했다. 욕설이 섞인 응원이 여기저기서 제멋대로 튀어나왔다.
둘은 일각이 넘은 기간 제자리에서 때리고 맞으며 버텼다. 마치 한 발이라도 물러나면 지는 사람처럼.
퍽 소리와 함께 덩치가 뒤로 넘어갔다. 치우는 주먹을 불끈 쥐고 양팔을 번쩍 쳐들었다.
"내가 이겼다!"
그때, 오작이 내기판 주인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속삭였다.
"황금 다섯 근 주면 판을 뒤집겠습니다."
내기판 주인은 깊이 고민하지 않고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치우한테 건 사람이 많아서 손해가 최소 황금 오십 근은 된다. 판을 뒤집어 덩치가 승리한 거로 하면 황금 다섯 근을 주고도 오히려 이득이다.
"이긴 놈이 법보를 체화體化했습니다. 규정을 어겼으니 판정패로 해야 합니다."
"잠깐. 확인할 게 있소. 혹시 수호계 법보를 체화했소?"
주인의 말에 치우는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방에서 욕설이 잔뜩 터졌고, 덩치한테 돈을 건 사람들이 환호했다.
"왜? 난 법보의 힘을 안 썼는데?"
치우는 동주철갑의 도움을 받지 않고 상대 주먹을 버텼다. 그러나 치우의 말을 믿는 사람이 없었다. 법보를 그 정도로 다루려면 웬만한 수준으론 어렵다.
결국, 덩치가 승리한 거로 결론이 났고 오작은 노인한테서 열한 근의 황금을 받았다. 보수로 받은 다섯 근과 덩치한테 건 원금 다섯 근에 한 근이 조금 넘은 승리 보상이었다.
주머니가 두둑해진 오작은 콧노래를 불렀고, 치우 역시 오작의 설명에 기분을 풀었다. 어차피 이긴 건 사실이다. 이긴 걸 이용해 돈까지 벌었으니 최고의 결과가 아니냐는 오작의 말에 홀라당 넘어갔다.
'다섯 근을 나한테 걸면 일곱 근 반이 된다. 근데 형은 열한 근으로 만들었어. 내가 법보의 힘을 안 빌렸고 정당하게 이긴 건 내가 알고 상대가 안다. 그럼 된 거지.'
억울함을 당한 당사자인 치우는 벌써 싸움과 내기에 관한 생각을 뇌리에서 지웠다. 그러나 가해자인 오작은 오히려 쉽게 떨칠 수 없었다.
'황금이 지나치게 흔하다.'
요수촌이 일반 마을과 다르다고 쳐도 방금 내기판에 오간 황금의 양은 너무 많다. 더 이상한 점은, 누구도 그걸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긴 황금이 많은 게 당연한 곳이다. 고대의 보물 창고가 있거나 금맥이 있는 게 확실하다.'
"여긴 객잔이 없을 거 같아."
오작이 불쑥 꺼낸 말에 치우는 머리를 긁적였다. 순서대로 차근차근 설명해도 가끔 상황을 이해 못 할 때가 있는데, 이렇게 머리꼬리 자르고 말하면 더 알아듣기 힘들다.
"이 마을에 요괴 영지가 너무 많다는 생각이 안 들어?"
"요수촌이니 당연한 거 아니야? 요괴는 자기 영지에서 더 강하니까 만드는 거겠지."
"영지를 만들 때 법력을 영구 상실한다는 건 알고?"
영지를 만드는 데 드는 법력은 영원히 상실한다. 그냥 법력을 쓰는 건 수련으로 회복할 수 있지만, 영지 만드는 데 들어가는 법력은 그대로 사라진다.
"다른 비밀이 있는 거야?"
치우의 질문에 대답한 건 다른 목소리였다.
"어차피 비밀도 아니오. 요수촌 밑으로 금맥이 지나오."
"야, 아깐 내가 이긴 거야. 법보 힘을 안 빌린 거 넌 알잖아."
"맞는 얘기요. 그러나 나는 두 번째 승리여서 당신보다 승리 수당을 반 근 더 받소. 그러니 반 근은 내가 갖고 이 한 근은 당신에게 주겠소."
덩치가 내민 황금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치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오작 역시 치우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끅끅거리며 웃었다. 덩치는 영문도 모르고 둘을 따라 웃었다.
"우리 친구 하자. 난 치우, 올해 열네 살이야."
치우는 오작의 눈치를 보며 거짓말했다. 사실 열네 살이 되려면 아직 한 달 정도 더 남았다. 그러나 올해에 열네 살이 되는 건 변함없기에, 아주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래? 난 형천. 나도 열네 살이야."
치우와 형천은 반가움이 컸는지 상대를 안은 팔에 힘을 꽉 줬다.
"여긴 내 형이야. 두 달 지나면 서른넷이야."
형천이 공손하게 허리를 숙여 오작한테 인사했다.
"치우 형이니 저도 형님으로 부르겠습니다."
"이러지 말고 어디 가서 술 한잔하자."
치우의 말에 형천이 앞장섰다.
"내가 술맛이 좋은 주점을 알아."
그러나 주점엔 이미 인간과 요괴로 꽉 차서 자리가 없었다. 형천은 술과 안주를 사서 등에 메고 요수촌 뒤편의 작은 산으로 둘을 안내했다.
거기엔 보슬비나 막아줄 정도로 대충 지은 집이 하나 있었다.
"이 밑은 금맥이 안 지납니다. 그래서 집을 지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작은 형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가면을 벗었다. 치우까지 가면을 벗자 형천은 둘을 번갈아 보며 입을 열지 못했다.
"맞아. 형은 저주 때문에 어린 모습인 거야."
"그런 좋은 저주도 있어?"
열네 살에 벌써 어른티가 역력한 형천이 부러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좋은 거 하나 있으면 나쁜 거 열 개 있는 게 세상 이치 아니겠어?"
치우의 말에 형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오작에게 사과했다.
"사정도 모르고 함부로 말해서 죄송합니다."
형천은 묘하게 치우와 오작을 섞은 느낌이었다. 미숙한 티가 역력한데도 예의를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 치우와 오작이 크게 웃은 이유기도 했다.
"난 치우야. 구려국 출신이고. 사람을 찾는 중이야."
"난 오작이다. 북부 출신인데 동부에서 주로 생활했다."
"형천입니다. 남부 출신인데 사정이 있어 요수촌에 왔습니다."
서로 술을 권하는 거로 세 순배 돈 후 정식으로 자기소개를 했다. 그 과정에 형천은 적표노에게 멸문당하고 도망친 사실을 털어놓았다.
"여기로 온 건 다 목적이 있겠지?"
오작의 질문에 형천이 솔직하게 털어놨다.
"불사과不死果라고 들어본 적 있습니까?"
"나 알아. 그거 먹으면 힘이 엄청나게 세진다던데. 근데 난 체질에 안 맞아 못 먹는다고 그랬어."
치우의 말에 형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부 출신 중에서도 불의 기운을 강하게 타고나야 먹을 수 있어. 불사과의 소재를 알아냈는데 살 돈이 부족하여 요수촌으로 금맥 찾으러 온 거야."
"금맥? 지금까지 남아 있을까?"
요괴가 득실대는 요수촌이다. 그리고 여기에 사는 인간도 요괴 못지않게 재주 넘치고 탐욕스럽다. 요수촌에 금맥이 있다는 게 큰 비밀도 아닌 상황에 지금까지 남아있을 리 만무했다.
"여기 금맥은 움직여. 대부분 자기 영지 밑으로 깊이 파놓고 금맥이 지나기를 기다리는 거야. 운이 좋아 굵은 금맥이 걸리면 하룻밤에 횡재하는 거니까."
형천은 대충 엮은 나무 벽 틈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 구덩이들 잔뜩 보이지? 그런데 이 산 밑으론 금맥이 단 한 번도 나타난 적 없어. 그래서 모두 여길 버리고 떠난 거지."
"요괴들이 땅속까지 영지로 만든 거겠구나."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함부로 집을 짓고 땅을 파면 주변 요괴들이 합심하여 쫓아냅니다."
"만만한 놈 하나 골라."
오작의 말에 형천은 말을 잇지 못했다. 요수촌에서 영지를 만든 요괴 중에 만만한 놈이 어디 있단 말인가.
"형은 말을 너무 간단하게 해서 탈이야. 우리가 죽이고 영지를 빼앗아도 나설 세력이 없는 외톨이를 고르란 뜻이야."
"나도 아직 여기 세력 구조를 다 파악하진 못했어."
그제야 오작과 치우도 형천이 자신들보다 아주 먼저 여기 자리 잡은 건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마음이 급했다. 이제부터 천천히 알아보자."
"그건 내가 아는데."
형천과 치우는 동시에 소매에 손을 넣었다. 그러나 상대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한 탓에 무기를 섣불리 꺼내진 않았다.
"모습 드러낼 테니 공격하지 마. 난 재주가 많아도 무력은 별로니까."
말이 끝나자 하얀 장포를 입고 머리에 네모난 모자를 쓴 소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본의 아니게 대화를 엿들어서 미안해. 난 서부 출신이고 이름은 소소야. 그리고 여기에 온 지 석 달 되었어. 특기는 은밀한 대화를 엿듣는 거야."
"음. 형이랑 닮았는데?"
치우의 말에 오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얀 얼굴과 까만 눈동자 그리고 모자 밑으로 삐쭉 보이는 까만 머리카락까지.
그리고 분위기가 매우 흡사했다.
"아니야. 오작 형님이 훨씬 잘생겼어."
형천의 말에 치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소소는 이름부터 마음에 안 들었고 얼굴도 어딘가 거슬렸다.
"혹시 처음부터 다 들었어?"
오작의 질문에 소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안 해도 돼. 청제와 적제 따위가 뭐야. 난 백제랑 철천지원수야."
다섯 제 중에서 흑제는 실종된 지 삼십 년 정도 되었다. 황제 함추뉴는 백 개가 넘은 국가를 중재하며 위망은 높지만, 강하지 않다. 청제는 왕 출신이 아니어서 위신이 부족하고, 적제는 같은 남부 출신인 신농이 인황인 바람에 세력을 키우지 못했다.
오직 백제 백초거만 상황이 다르다. 서부는 단일 국가로 왕인 백초거가 백제다. 경내에 벽력문을 비롯한 강한 문파가 많으나, 원시천존이 교주로 있는 천교와 사이가 좋아 누구도 왕과 적대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목적이 뭔데?"
"나? 목적 따위가 없어. 그냥 도망치다가 여기에 자리를 잡은 거야."
치우는 오작과 눈을 마주쳤다. 오작은 거짓말을 잘 가려낸다. 최소 치우가 한 거짓말은 지금까지 대부분 들켰다. 귀갑어 내단을 비롯한 몇 개만 빼고.
- 거짓말은 없어. 그렇다고 곧이곧대로 믿기 힘들어.
오작이 손으로 대답했다.
"좋아. 그럼 네가 생각한 요괴가 누군지 들어나 보자."
"구왕玖王. 구구방의 방주야."
소소의 말은 다소 의외였다.
"구왕은 요수촌에서 가장 강한 여섯 세력 중 하나잖아."
"그러니까 구왕을 해치우면 누구도 우리한테 못 덤벼들 거야."
오작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너 다른 목적이 있구나. 솔직하게 말하면 생각해 볼게.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합리적인 결론이라고 해도 우린 거들떠보지도 않을 거야."
소소는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구왕이 어떤 요괴를 감금했는데, 그 요괴가 홍영창의 행방을 안다고 들었어."
"홍영창이 목적인가?"
"아니. 홍영창의 주인이 목적이야. 백초거 죽여달라고 의뢰하려고."
- 작가의말
요수촌 밑에는 유동 금맥이 있습니다. 주식 정보처럼 알 만한 사람은 알지만, 관심이 없는 사람은 아예 모르는 정보죠.
오작 일행은 할 일이 있으니까 장기 투자는 어렵고, 단타 하나 뛰게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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