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계산전투金鷄山戰鬪
독가치병毒可治病
독으로 병을 다스릴 수 있고
약가치명藥可致命
약으로 목숨을 앗을 수도 있다
모기 요괴가 시커멓게 질린 얼굴로 콜록거렸다.
"제기랄. 네놈 치료하다가 내가 뒈질 뻔했다."
금의의 행진 경로를 북망산 밑으로 바꿔준 것에 대한 감사 의미로 모기 요괴는 치우를 치료해주기로 했다.
비록 삼태극보인을 뽑아냈지만, 귀화가 치우의 몸에서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기운이 순수할수록 좋은 건 다루기 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초반에야 닥치는 대로 기운을 모으는 게 법력을 늘리는 지름길이지만, 일정 수준을 넘으면 기운이 순수한 게 훨씬 낫다.
잡다한 기운보다는 순수한 기운이 훨씬 잘 뭉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모기 요괴의 치료는 치우한테 정말 필요했다.
모기 요괴는 남의 법력을 훔치는 재주로 치우의 몸에 있는 잡스러운 기운을 모조리 없앴다. 그런데 치우의 기운이 독이나 마찬가지인 귀화의 잔재여서 그걸 흡수한 모기 요괴가 주화입마에 들 뻔했다.
"안 뒈졌으면 된 거지 뭐."
모기 요괴들은 내친김에 법력을 회복하는 음식을 만들어 치우한테 줬다. 며칠 배불리 먹지 못했던 치우는 맛도 좋고 법력 회복에도 도움이 되는 음식을 게 눈 감추듯 해치웠다.
"이후에도 서로 돕고 살자고."
치우가 요수촌에 끼친 폐해까지 계산하면 서로 빚진 게 없다 싶었다.
"형. 우리도 갈까?"
"그래."
법력을 꽤 회복한 치우는 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달렸다. 치료를 받고 달라진 기운에 적응해야 하기에 오작은 치우가 마음껏 달리게 놔뒀다.
"형. 금의들 다니는 경로 바꾸게 한 거 다른 목적 있지?"
성이 찰 때까지 전력으로 질주한 치우가 속도를 늦춰 오작한테 질문했다.
"왜 그랬을 거 같아?"
"요수촌 망하라고 그런 거지?"
치우의 추측은 정확했다. 오작이 그저 모기 요괴의 편의를 봐주자고 벌인 짓은 아니었다.
"희운의 가장 큰 힘은 뭐라 해도 요괴들이야. 네 손에 서른 정도 죽었는데도 수십 마리 요괴가 더 있었단 말이지. 요수촌을 점령하고 숫자를 더 불렸을 거야."
"효과가 바로 나타나진 않겠네?"
"그래. 몇 달씩 황금이 안 생기는 일이 꽤 있고 가끔은 반년씩 안 나타날 때도 있다고 했으니까. 금의가 많이 다녀서 똥 싸는 일이 자주 벌어질 뿐이지 금의들이 꼭 요수촌 밑에서만 싸는 건 아니잖아."
"요수촌에서 황금이 안 나오면 희운이 어떻게 할 것 같아?"
치우는 이미 희운을 적으로 가정했다. 소전과 백제가 소소와 희운의 혼인을 추진한 적 있다는 걸 알기에 적대감이 꽤 컸다.
"요수촌에 황금이 안 생긴다는 걸 희운이 먼저 알아채는지 요괴들이 먼저 알아채는지가 중요해. 그에 따라 행동이 달라질 거야."
둘은 강한 요괴나 마수는 피해 가고 약한 요괴의 영지는 은신술로 몰래 통과했다.
"형. 적이 너무 많아."
충분한 휴식으로 회복하며 달린 덕분에 금계산에 도착한 둘은 쌩쌩했다. 특히 치우는 시간이 흐를수록 법력이 깊어져 출발할 때보다 더 팔팔해졌다.
"조공명은 없는 것 같지?"
"못 찾았어."
둘은 이틀 동안 금계산을 살폈다. 별로 크지 않지만, 산세가 복잡해 몰래 숨으면 찾아내기 힘들다. 둘은 신중을 기해 서로 구역을 바꿔가며 몇 번이나 확인했다.
"이렇게 하자. 네가 소란을 피우면 내가 몰래 금계동에 들어갈게."
"난 그냥 소란만 피우면 돼?"
"응. 그리고 우리 얼굴을 아는 저 두 놈을 먼저 죽여야 해."
오작은 마주 앉아서 술을 마시는 진구공과 요소사를 가리켰다. 일행 중 둘만 봉래도 사람이 아니어서 꽤 소외당했다.
다른 자들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한쪽 귀퉁이에 찌그러진 채 술로 울화를 달래는 중이었다.
경지가 높은 술사를 죽이는 건 요괴 죽이는 일만큼 어렵다. 심장이 터지고도 회복했던 금령성모의 제자 문중을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진구공과 요소사는 문중과 비교하는 게 미안할 정도로 약하고, 치우한테는 마환도가 있다.
"형이 좀 도와줘. 주의를 잠깐만 끌어주면 내가 한칼에 둘 다 벨게."
"알았어."
치우는 은신술을 펼치고 둘한테 접근했다. 오작은 치우가 은신술을 펼치기 전부터 주시했기에 치우의 존재감을 놓치지 않았다.
치우가 마환도를 뽑고 준비를 마친 걸 확인한 오작은 구마소를 잡고 법력을 움직였다.
구마소의 곡 중 시혼弑魂을 비롯한 몇몇은 산 사람한테도 영향을 끼친다. 오작은 소리를 둘한테 집중하여 시혼곡을 연주했다.
갑자기 몰려오는 출처 모를 살기에 진구공과 요소사는 급히 무기를 꺼냈다. 그리고 곧 소리를 타고 오작의 위치를 어슴푸레 짐작했다.
둘의 주의력이 전부 오작이 있는 쪽으로 집중된 틈을 타 치우가 움직였다. 진구공이 치우의 존재를 발견했을 땐 이미 요소사의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새끼. 대가리 잘리고도 나보다 더 크네.'
머리가 없는데도 자기보다 키가 더 큰 요소사의 몸통이 쓰러지는 걸 보며 진구공은 한가한 생각을 떠올렸다.
치우는 멍한 눈으로 가만히 있는 진구공의 목도 칼로 베었다. 술을 마셔 정신이 흐려진 상황에 시혼곡을 듣고 마음이 위축되었다. 거기에 치우와 마환도의 기세 그리고 요소사가 죽는 걸 보며 느낀 충격 등이 겹치며 심령이 제압당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현실을 외면하고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으며, 죽으면서도 비명 한 번 지르지 않았다.
자신들 얼굴을 아는 둘을 죽이는 데 성공했지만, 소란을 피워 다른 자들을 유인하려던 목적은 이루지 못했다.
- 수색해서 비싼 물건 챙겨.
오작은 재물을 탐내 둘을 죽인 것처럼 꾸미길 원했다.
- 알았어.
치우는 둘의 몸에서 비싸게 보이는 장신구들을 수거했다. 법보나 진짜 귀중한 물건은 수리건곤 법술로 만든 임시 공간에 뒀을 것이다. 안에 물건들은 이대로 사라지거나 일정 기간이 지난 다음 엉뚱한 곳에 나타날 것이다.
- 가서 다른 놈도 공격해.
치우는 은신술을 펼치고 움직였다. 금계산에 있는 자들은 전부 조공명을 따르는 외문제자들이지만, 이들 사이에도 파벌이 있었다.
치우는 홀로 떨어져서 다니는 놈을 목표로 잡고 움직였다.
혼자 다니는 놈은 금계동을 찾으려고 탐색주를 읊으며 땅만 보고 걸었다. 일정한 박자에 맞춰 고개를 끄덕거리며 노래 부르듯 주문을 외던 흰옷 청년은 갑자기 허리를 뒤로 꺾으며 고개를 크게 돌렸다.
깡 소리와 함께 치우가 물러났다. 치우의 칼을 막은 건 청년의 부리였다.
인간의 모습을 한 청년은 놀랍게도 학 요괴였다. 손이나 발도 아니고 부리로 칼을 막을 걸 예상치 못했던 치우는 의외의 상황에 공격도 채 못 펼치고 물러서야 했다.
"가진 거 다 내놓으면 목숨은 살려준다."
"끼욱?"
학 요괴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도 두려워하기는커녕 협박하는 치우 때문에 혼란에 빠졌다. 대부분 인간은 인간의 얼굴에 부리가 달리면 겁에 질려 도망가기 일쑤다. 그런데 이 덩치가 인간 같지 않은 놈은 오히려 기세등등하여 협박했다.
"재물만 주면 안 죽인다고. 너 내 말이 우스워?"
치우는 칼을 붕붕 휘두르며 학 요괴를 협박했다.
"너 실수하는 거야."
의외의 상황에 살짝 당황하긴 했지만, 학 요괴는 빠르게 이성을 회복하고 본 모습을 드러냈다.
전체적으로 하얀색 깃털로 덮였고 볏이 빨갛고 부리가 까만 학이었다. 그리고 특이하게 다리가 하나였다.
진신을 드러낸 학 요괴의 목이 줄어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목이 쭉 길어지며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는 치우의 목을 노렸다.
치우는 마환도의 옆면으로 부리를 막았다. 저 부리에 동주철갑이 뚫릴 것 같은 예감 때문이었다.
'뭐지? 목이 내 약점인가?'
치우는 그 뒤로도 집요하게 목을 노리는 학 요괴 때문에 의문이 생겼다.
"끼욱!"
꽤 정성 들여 펼친 공격들이 일일이 막히자 학 요괴는 동료들을 불렀다. 가까이 있던 봉래도 외문제자 몇이 달려왔다.
"뭐야? 고작 한 놈 때문에 우릴 불렀어?"
"약점이 목밖에 없는 놈이야. 혼자서는 못 뚫겠어."
'동주와 철갑의 이어진 부분.'
동주는 투구이고 철갑은 전신 갑옷이다. 치우가 불안을 느꼈던 건 학 요괴가 정확히 동주와 철갑의 이음새를 노렸기 때문이다.
'형한테 말해서 둘을 합치든지 해야지.'
이들은 큰 공을 세울 걸 기대하며 조공명한테 아부도 하고 재물도 바치며 금계산 탐색대의 일원이 되었다. 뭔가를 찾는 데 특화한 재능을 타고난 요괴가 대부분이고 인간은 삼 할도 안 되었다.
인간보다 개인주의가 훨씬 심한 놈들이어서 원래대로라면 학 요괴가 도움을 청해도 모른척했을 것이다. 그러나 작은 단서 하나 못 찾으며 쌓인 화가 터지기 일보 직전이어서 침입자가 있다는 학 요괴의 말에 여럿이 달려온 것이었다.
탐색대에 참을성이 약한 요괴가 많고 대부분이 화가 잔뜩 치민 상황이라는 게 오작과 치우한테 호재로 작용했다.
치우가 목의 약점을 조심하며 여러 요괴 상대로도 선전하자 점점 많은 사람이 몰려왔다.
"돈 주면 안 죽인다니까. 왜 이리 죽지 못해서 안달이야?"
치우는 강도 행세를 하며 봉래도 외문제자들의 기를 채웠다. 이런 상황에도 침착하게 자기 할 일을 하는 인간이나 요괴도 있었지만, 점점 많은 자가 치우를 죽여 분풀이하려고 몰려들었다.
멀리서 상황을 살피던 오작은 가까이에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아 삼매진화의 부적에 피를 묻혔다.
부적에서 고요한 불길이 생기더니 허공에 큼직한 문 하나 만들었다. 오작은 누구한테 들킬세라 재빨리 문으로 들어갔다.
오작이 들어가자 문이 사라졌다.
검은 채찍이 다리를 감으려 했다. 치우는 모른 척 있다가 마지막 순간에 몸을 움직여 채찍을 피했다. 치우가 채찍에 감길 거로 예상하고 덮치던 요괴들은 자리를 옮긴 치우의 주먹에 맞아 허공을 날아야 했다.
"이런 수전노들. 돈이 그렇게 좋아?"
치우는 칼을 휘두르는 걸 자제했다. 주먹이나 발길질은 잘 안 피하지만, 칼은 대부분 피했고 극히 일부는 무기로 막았다.
"너 우리가 누군지 알아?"
"알지. 돈 많은 놈들."
치우한테 다행인 점은 봉래도에서 온 자들이 자존심 때문에 법술을 펼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상대가 고작 치우 하나인 것도 있고, 처음부터 돈돈 거리는 바람에 진짜 돈을 목적으로 습격한 거로 여겼다.
치우가 법술을 전혀 안 펼치고 무공으로만 싸웠기에 이들도 무공으로만 치우를 상대했다.
슉 소리와 함께 창 하나가 찔러왔다. 치우는 가볍게 피하며 반격했다. 창의 속도나 실린 힘 등은 오작보다 강했지만, 창법에 대한 이해는 오작한테 한참 못 미쳤다.
오작이 펼치는 봉래도 창법을 오래 봐온 치우는 어렵지 않게 상대 변초를 모조리 대비하며 피했고 반격까지 해냈다.
"주먹이 돌이야."
창을 든 자가 휘청거리며 말했다. 주먹을 피하면 반대편 손에 들린 마환도를 못 피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주먹을 맞아줬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아팠다.
"사람당 황금 한 근씩 주면 안 괴롭힐게."
"팔 하나 다리 하나 두고 가면 우리도 죽이진 않을게."
치우는 진심을 담은 자신의 협상이 거부당한 것에 화가 났다.
"이제부턴 두 근이야."
그때, 학 요괴의 목이 쭉 늘어나며 치우의 목을 뒤에서 노렸다. 상대가 많아 반응이 조금 느려진 치우는 하마터면 부리에 당할 뻔했다.
'이만큼이면 되었겠지?'
치우는 더 버티다간 자신이 위험하다는 생각에 이만 도망치기로 했다.
"수전노들아, 밤길 조심해."
말을 마친 치우는 허공에서 초혼번을 꺼냈다. 초혼번은 치우의 마음을 읽고 수많은 귀신을 소환했다.
여기저기에서 갑자기 소환된 귀신들은 낯선 환경에 대한 불만을 토하며 날뛰었다. 개중에는 강한 귀신도 꽤 있어 순식간에 난장판이 벌어졌다.
요괴들의 방해를 떨친 치우는 허공으로 몸을 솟구쳤다. 위로 뛰는 과정에 은신술을 펼친 후 공중제비를 몇 번 돌아 방향을 바꿔 엉뚱한 곳에 내렸다.
봉래도 제자들은 자신한테 들러붙는 귀신들을 뜯어내느라 대부분 정신이 없었다. 몇몇 강한 자들이 치우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 곳에 공격을 퍼부었지만, 아무 효과도 없었다.
치우는 조심스럽게 움직여 밖으로 나온 다음 오작과 약속한 곳으로 갔다.
'성공한 거겠지?'
그때. 은신술로 모습을 숨긴 치우를 마찬가지로 은신술을 펼친 자가 공격했다. 다행히 놈의 공격은 철갑에 막혔다.
공격자는 은색 뱀이었다. 길이는 채 일 장도 안 되는 작고 가는 놈인데, 치우를 공격하며 모습을 드러냈다가 순식간에 뿌연 안개를 뿜고 사라졌다.
'나 별로 강한 게 아니구나.'
복희와 여와가 천라지망으로 하늘과 땅 사이를 막은 후 요괴들이 강해졌다. 모든 요괴가 그런 건 아니지만, 뱀이나 늑대처럼 조상이 되는 마수가 천계에 남은 자들은 짧은 기간에 현저히 강해졌다.
은색 뱀의 은신술 역시 원래는 치우보다 못했는데 지금은 비등한 수준이 되었다.
다행히 강해진 건 은신술뿐이어서 치우한테 큰 위협이 되지는 않았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
여기에 표식을 남기고 떠나려면 은색 뱀을 죽여야 한다. 치우는 숨은 상대를 먼저 찾으려고 애썼다.
- 작가의말
거머리로 치료하는 의술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모기 요괴도 같은 도리로 치우의 법력을 깨끗하게 해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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