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곡멸살도鬼哭滅殺刀
도휘귀곡刀揮鬼哭
칼을 휘두르니 귀신이 울고
도지멸살刀止滅殺
칼이 멈추니 다 죽었다
"조공명의 일행은?"
"어제 점심부터 안 보였어."
오작은 날뛰는 기운을 천천히 안정시켰다. 무극을 깨닫고부터 법력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 일은 있어도 지금처럼 거칠게 흐르진 않았다.
'천리추흉 때문인가?'
어려운 법술을 펼친 까닭인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양측은 약 일각가량 아무 말 없이 대치했다.
갑자기 불어온 차가운 바람에 먼지가 자욱하게 일었다. 서산에 지기 싫은 해는 얼마 없는 구름을 불태워 초라한 저녁놀을 피웠다.
'뭔가 잘못됐다.'
기운을 겨우 가라앉힌 오작은 뒤늦게 공손부보와 청동랑의 보호를 받는 괴력양이 뭔가 시도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후두두둑.
하늘에서 느닷없이 둥그런 뭉치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미처 궁금해할 새도 없이 뭉치들이 풀리며 본모습을 드러냈다.
요수촌에서 일면식이 있던 요괴들이었다.
"아이고. 삭신이 쑤셔라."
펄럭거리는 귀와 뻐드렁니를 보아 멧돼지로 추정되는 요괴가 툴툴거리며 품에서 공손부보의 팔을 꺼냈다.
누가 이미 법술을 해제했는지 바로 몸에 붙었다.
"포위해."
공손부보는 다시 붙은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희운을 노려봤다. 요괴들은 오작 일행을 둥그렇게 포위했고, 흑호와 장치호는 머리를 한껏 낮춘 자세로 천천히 뒷걸음쳤다.
요괴는 서른셋이었다. 공손부보와 다섯 아들이 있었고, 다섯이 된 청동랑이 있다. 그리고 괴력양도 있었지만, 흑호와 장치호를 향해 눈알을 부라리느라 오작 일행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확실히 하세요. 당신 부친을 지킬 겁니까 아닙니까?"
오작의 질문에 희운은 눈을 파르르 떨었다.
"모친. 이대로 헌원검을 포기할 겁니까?"
희운은 대답하는 대신 공손부보한테 질문했다.
"유웅국을 내주면서까지 탐나는 건 아니다. 그리고 다른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고."
"우리 피가 아니면 제혈이 실패할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어차피 방금 너와 난 양립 불가의 사이라는 걸 다시금 확인했다. 헌원검을 빼앗아 내 것으로 만들면 좋고, 아니면 그냥 너희 부자를 없앤 걸로 만족해야지 뭐."
공손부보의 말이 끝나자마자 요괴들이 공격을 시작했다.
"부친 몸을 광주리에 넣으십시오. 무조건 지킵니다."
오작은 소전에게 꼭 들어야 할 말이 있다. 황룡도인을 찾는 길도 막혔으니 소전밖에 없다. 소전의 길까지 막히면 몇 년 갇힐 각오로 다시 축융이 사는 태일봉으로 가야 한다.
희운은 소전의 머리를 상자에 넣은 후, 둘로 분리하여 쌓았던 상자를 광주리에 차곡차곡 넣었다.
오작과 치우는 요괴들의 공격을 막으며 손으로 빠르게 상의했다.
- 빨리 처리하고 서부로 넘어가야 한다.
- 처리하긴 힘들어. 그냥 도망가자.
그때, 구렁이 한 마리가 입으로 시퍼런 불덩이를 뱉었다. 치우가 피하면 공손부보와 세 형의 협공을 힘겹게 막아내는 희운이 당할 가능성이 무척 크다.
치우는 천강도의 도면으로 불덩이를 힘껏 때렸다.
"흘렸어야지."
오작의 창이 허공에 꽃을 수 놓았다. 시퍼런 불덩이가 깨지며 피워올린 퍼런 독 안개가 오작이 피운 꽃에 빨려갔다.
오작은 창을 휙 털어 시퍼런 꽃을 공손부보 일행에 던졌다. 공손부보와 세 아들이 화들짝 놀라며 피했다.
"어떻게 했어?"
"벽암권."
요괴들은 감히 접근하지 못하고 멀찍이 서서 공격만 했다. 공손부보야 먼저 떠나서 못 봤지만, 요괴들은 오작이 조공명과 '대등'하게 싸우는 모습을 눈으로 직접 봤다.
게다가 조공명이 오작을 함부로 못 대하는 모습도 봤기에 간 크게 접근하는 요괴가 없었다.
"너희 뭐야?"
넷이서 희운을 어찌하지 못하자 공손부보는 화가 잔뜩 치밀었다.
"저놈이 조공명을 물리쳤다."
요괴 하나가 발톱으로 오작을 가리켰다. 그제야 공손부보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조공명의 손에서 살아났다는 건 친분이 있거나 조공명도 함부로 하기 힘든 상대라는 뜻이다.
조공명만큼 강하다면 여기 요괴들과 공손부보까지 진즉에 해치웠을 테니, 뒷배가 든든하다고 보는 게 맞는다.
"저놈이 헌원검을 준다고 했어? 아니면 돈? 헌원검만 아니면 내가 줄 테니 너희는 빠져. 그리고 그 여자도 깨워 주지."
공손부보가 협상을 시도하자 요괴들도 공격을 멈췄다. 욕심이 너무 커서 막 나가는 공손부보와 달리, 요괴들은 자기 목숨이 훨씬 귀하다.
치우는 갖춘 힘에 비해 경지가 낮아서 크게 걱정되지 않으나, 보이는 경지에 비해 힘을 아끼는 듯한 오작이 내심 찝찝했다.
"조공명이 왜 내 뒤를 쫓을까요?"
오작은 담담한 말투로 대답했다.
"지금 일엔 절교와 천교와 인도가 엮였습니다. 당신들이 계속 이 일에 끼어들어 화를 자초하겠다면 말리지 않겠습니다."
일행을 포위한 요괴들이 술렁였다.
"끝까지 말이 안 통하는구나."
공손부보는 입술을 짓씹으며 소매에서 부적 하나 꺼냈다.
"봉천부封天符다. 여기서 벌어진 일은 세상 누구도 모른다."
말을 마친 공손부보는 봉천부로 입술에 난 피를 닦았다. 피가 묻은 봉천부가 화르르 불타면서 회색 연기를 가득 내뿜었다.
연기는 그대로 흩어지지 않고 넓고 고르게 퍼져 오작 일행과 공손부보 일행을 감싸는 커다란 반구형 막을 형성했다.
"그럼 천교랑 절교 그리고 고고한 인도까지 탐내는 게 뭔지 알아볼까?"
공손부보의 말에 요괴들 기세가 바뀌었다. 오작의 정체가 불명하여 생겼던 걱정이 조공명이 탐내는 걸 뺏으려는 욕심으로 바뀌었다.
"형, 소소 좀 맡아줘."
치우는 밧줄을 풀고 등에 업은 소소를 오작에게 넘겼다.
"방법이 있어?"
"형이 벽암권을 창으로 펼쳤잖아. 나도 할 수 있어."
천강도를 가로로 세운 치우의 기세가 변했다. 뭔가 아련하면서도 무시무시한 기세를 풀풀 풍겼다.
'치우가 격충류를?'
멸천칠절공의 원본에도 음양을 설명하는 구결은 많았지만, 상대하는 구결은 하나씩밖에 없었다.
이는 오작과 치우가 양을 상대하는 격충류擊衝流와 음을 상대하는 고진류敲震流에 대한 믿음을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우는 격충류를 어려워했다. 고진류는 북망산에서도 성공적으로 펼쳐 귀옥을 부쉈을 정도지만, 격충류는 수련에서도 채 열 번 성공하지 못했다.
그 어려운 걸 치우는 지금 도를 통해 펼치고 있다. 기운을 뭉쳐서 진동하는 고진류는 오히려 도를 통해 펼치는 게 쉽지만, 기운을 널리 퍼뜨리는 격충류는 반대다.
"제길. 저놈은 우리가 상대할 수준이 아니야."
치우의 몸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귀기에 요괴들이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회색 연기로 얇게 이뤄진 막은 어떤 요괴도 밖으로 보내주지 않았다.
"엎드려."
치우가 무뚝뚝하게 한 마디 뱉었다. 오작과 희운은 고분고분 바닥에 엎드렸다. 둘이 엎드리자 치우는 검은 기운이 넘실대는 천강도를 휙 휘둘렀다.
검은 기운이 원을 이뤘다가 구슬픈 소리를 내며 넓게 퍼졌다. 기운은 봉천부로 만든 막과 부딪친 후, 단말마의 비명으로 막을 거세게 흔들고 사라졌다.
쿨럭. 치우가 기침하며 무릎을 꿇었다. 오작은 황급히 구마소의 구멍 여섯 개를 손가락으로 막고 진혼곡을 연주했다.
웅장하면서도 슬픈 진혼곡이 치우가 약해진 틈을 타 날뛰는 귀기를 눌렀다. 태극구 역시 날뛰는 귀기에 자기 구역을 뺏기지 않으려고 모든 힘을 끌어냈다.
희운은 몸이 토막 난 채 바닥에서 버둥거리는 공손부보와 눈이 마주쳤다. 공손부보의 눈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았다. 희운은 차가운 눈빛으로 거절한 후, 몸을 일으켜 주변을 살폈다.
공손부보와 다섯 형은 물론, 봉천막 안의 요괴와 마수도 몸이 토막 났다. 아직 꿈틀거리는 인간들과 달리, 요괴와 마수들은 작은 버둥거림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이들의 정체는 도대체 뭐지? 조공명까지 엮인 걸 보면 평범한 존재는 절대 아니야.'
희운은 당장 상자를 열어 부친에게 묻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알면 위험한 일이니 부친이 숨기는 거다. 희운의 꿈은 유웅국의 왕이 되고 황제가 되는 것이므로 해당 목적에 위배되는 모든 일은 삼가야 한다.
'격충류를 지금까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봉천막으로 일행이 있는 곳은 바깥과 격리되었다. 덕분에 치우는 기운을 세밀하게 움직여 일정 공간에 잡아둘 필요가 없었다.
그저 기운을 풀어내는 거로 격리된 공간을 장악했고, 고진류를 연상케 하는 충격파로 적을 모조리 주살했다.
'격충류와 고진류는 따로가 아니다. 어차피 음양은 늘 함께 있다. 양만 상대하는 격충류나 음만 상대하는 고진류는 실질적인 의미가 없다.'
오작의 깨달음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무극은 음과 양을 서로 연관 짓지 않는다. 대부분 사람에겐 둘을 따로 수련하는 게 의미가 없지만, 무극을 깨달은 내겐 의미 있다.'
북망산에서도 그렇고 방금도 그렇고. 치우는 천재적인 재능으로 격충류와 고진류를 제대로 이해하고 적절히 섞어서 써먹었다.
덕분에 오작은 틀을 과감히 깨고 인식을 넓혔으며, 치우의 깨달음을 단순히 흡수하는 게 아니라 더 큰 것도 깨달았다.
오작은 무극보인으로 법력을 빠르게 보충하며 진혼곡을 반나절 연주했다.
"그만 가자."
귀기를 억누른 치우가 몸을 일으키며 갈린 목소리로 말했다. 오작은 소소를 등에 업고 밧줄로 묶은 다음 치우의 뒤를 따랐다. 희운 역시 상자를 담은 광주리를 메고 묵묵히 달렸다.
한편.
오작이 걱정해 마지않던 조공명은 엉뚱한 곳에 있었다.
"그게 무슨 꼴이냐?"
통천교주는 제자가 무척 많다. 직접 받은 제자는 대부분 자질이 출중하여 이름을 기억하지만, 외문제자는 조공명을 비롯해 몇 명만 이름을 안다.
외문제자의 주축이 된 조공명을 특히 아꼈는데, 밧줄에 꽁꽁 묶인 채 도행이 어중간한 두 남자한테 들려서 벽유궁에 도착한 모습을 보니 기가 찼다.
"교주께 제 몸을 묶은 밧줄을 봐주시길 청합니다."
통천교주는 조공명을 묶은 밧줄을 봤다. 결승법은 수인씨의 법술이라는 점에서 통천교주도 안다. 수인씨가 죽은 건 확실하기에 통천교주는 법술보다 밧줄을 구성한 법력에 집중했다.
"으흠."
통천교주가 고개를 갸웃하자 마침 벽유궁에 있던 제자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자세히 설명하거라."
조공명은 몸을 살짝 떨어 뱀을 닮은 밧줄을 없앴다. 통천교주에게 보여주느라 지금껏 저항을 안 하고 벽유궁까지 진구공과 요소사에게 들려서 왔다.
"교주의 분부대로 자단의 뒤를 쫓다가 오행마의 행적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신분이 불분명한 자가 자단의 천리추흉 법술을 펼치는 걸 확인했습니다."
통천교주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놀랍게도 천리추흉을 펼친 자의 법술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고, 지체 없이 달려왔습니다. 재주가 일천하여 감히 장담하진 못하겠지만, 아무래도 얼마 전에 나타난 무극의 기운인 것 같습니다."
"무극을 깨달은 자라고 하기엔 힘도 수준도 일천하구나."
"감히 무극을 깨달은 게 자단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그게 아니면 재주가 하늘에 닿은 교주께서 자단의 행방을 못 찾는다는 게 말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자단은 오래전에 무극을 깨달았지만, 얼마 전에 들켰다는 말이냐?"
"그저 추측일 뿐입니다. 제자의 재주로는 감히 결론을 내리지 못하겠습니다."
"네가 만난 자에 관해 말해 보아라."
조공명은 할 말을 속으로 한 번 되뇌며 자세히 가다듬었다. 오는 내내 준비한 내용이지만, 말 한마디에 법보 몇 개가 오갈 수 있다.
"처음 만난 건 북망산이었습니다. 경지에 비해 기운이 너무 약했습니다. 그때 제자는 자단의 흔적을 쫓다가 환혼노조의 죽음을 감지하고 귀옥을 수습하러 가던 길이었습니다. 상대는 법보로 정체를 숨겼지만, 제자는 요괴가 아닌 인간이라는 걸 알아냈습니다."
통천교주는 조공명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같은 말을 들어도 사람마다 다르게 이해한다. 상대의 말을 오해 없이 받아들이려면 최대한 집중해야 한다.
"놀랍게도 상대는 귀옥을 자신들이 깨뜨렸다고 시인했고, 저는 그걸 확인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북망산에서 오행마의 흔적을 발견해 추적하다가 흔적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제자가 부득이하게 점괘술을 펼쳤는데, 요수촌에 가면 된다는 점괘가 나왔습니다."
점괘술을 펼치는 데 쓰는 법력은 단기간에 회복하기 어렵다. 그래서 큰 싸움을 앞두거나 할 땐 쉽게 펼치지 않는다.
풍백이 오작과 치우를 찾겠다고 점괘술을 연신 펼친 게 얼마나 미친 짓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거기에서 그자와 재회했고,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천리추흉의 법술 그리고 무극의 기운까지 확인했습니다. 계속 쫓을까 하다가 이게 진짜 무극이 맞는지 교주께 확인받아야겠다는 생각에 벽유궁으로 돌아왔습니다."
통천교주는 조공명의 일 처리가 마음에 들었다.
"이제부터 교주 말고 사부라 부르거라. 그리고 장보각藏寶閣에 가서 마음에 드는 법보를 마음껏 고르거라."
마음껏 고르라고 했다고 욕심나는 대로 챙기는 멍청이는 없다.
"그리고 원하는 자를 재량껏 차출해 자단을 찾는 데 써라."
- 작가의말
어제 감상적으로 쓰다 보니 전달되지 않은 부분이 많았습니다. 우선 남은 분량은 최소 60화가 넘습니다. 급하게 마무리한다는 게 아니고, 탁록대전에서 1부를 끊겠다는 얘깁니다.
2부는 외전 형식으로 짧게 쓰는 걸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건 단위로 끊어 빠르게 끝낼 생각입니다. 설정에 대한 설명은 부족할 수 있겠지만, 필요한 스토리는 다 포함할 예정입니다.
내일부터 아침, 점심, 저녁으로 한 편씩 올리겠습니다. 그래도 최소 20일은 연재해야 본편이 끝납니다. 외전은 하루 한 편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건 단위로 끊기에 글자 수가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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