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석천층낭壹石仟層浪
인위재사人爲財死
사람은 재물을 탐하다 죽고
조위식망鳥爲食亡
새는 모이 때문에 죽는다
사기꾼을 쫓던 구왕은 냄새가 점점 가까워지자 흥분으로 들떴다. 거대한 탐욕에 삼켜져 총기를 잃은 바람에 자신의 뒤를 따르는 은밀한 기척들을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실수였다.
"대단하구나. 내 눈을 피하다니."
구왕은 냄새로 사기꾼이 현재 자신과 멀지 않은 곳에 숨었음을 확신했다. 그러나 귀신도 보는 구왕의 눈을 속일 정도로 상대는 은신술에 능했다.
"누군데 날 쫓는 거야?"
허공에서 들린 목소리는 의외로 앳되었다. 그러나 천 년 묵은 요괴도 갓 태어난 새끼 모습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구왕은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단, 모든 정신을 상대에게 집중하느라 자신을 쫓는 자들이 점점 가까워지는 건 알아채지 못했다.
"네가 도둑질한 물건을 내놓으면 이대로 돌아가마."
구왕은 뜨겁게 뿜어지는 콧김을 자제하며 최대한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 괜히 상대에게 지도를 애타게 원하는 느낌을 주면 일이 복잡해진다.
"설마, 그 멍청이들이 지도 얘기를 발설한 거야?"
"그럼. 요수촌에 소문이 다 났어."
허공에서 커다란 한숨이 터졌다.
"그냥 선수금이나 떼먹을 걸. 괜히 욕심부리다가 멍청한 놈들이랑 엮여서 이게 뭐야!"
상대가 원하던 반응을 보이자 구왕은 흐뭇한 마음을 숨기려 애썼다.
"잘 생각해. 그 지도는 요수촌에 영지를 만든 모든 요괴의 목숨을 노려. 예전엔 자기 영지에 금맥이 터지기를 애타게 바랐지만, 이제부턴 금맥이 생기는 걸 미리 안 누군가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불안에 떨게 돼. 지도를 지킬 힘이 없는 자라면 널 죽이고 지도도 없애려고 할 거야. 차라리 내게 주고 넌 몸 성히 여길 떠나는 게 훨씬 나은 결정일 거야."
"지도를 내놓는다고 날 살려둘까? 이미 다음에 금맥이 나오는 위치를 알고 있는데?"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너 말고 그 위치를 아는 놈이 셋이나 있잖아. 굳이 요수촌에서 도망친 널 끝까지 쫓을 멍청이는 없어."
구왕은 애써 침착하려 했지만, 흥분을 누르지 못했다. 그래서 말을 하며 자꾸 혀로 코를 핥았다.
"그럼 넌 왜 여기까지 쫓아왔는데."
구왕은 짜증이 확 치밀었지만, 꾹 참았다.
"지도가 어떤 물건인지 확인하려고. 너무 위험하면 없애야겠지. 황금도 소중하지만, 요수촌과 구구방도 내겐 무척 소중하거든."
상대는 구왕의 인내심이 바닥을 보이기 직전까지 고민했다.
"좋아. 대신 날 다신 안 쫓는다고 맹세해."
"그럼. 천구의 핏줄에 걸고 맹세한다. 셋에게서 훔친 금맥 지도를 내놓으면 다신 널 안 쫓겠다."
허공에 아지랑이가 아물거리더니 하얀 넓적뼈가 뚝 떨어졌다. 구왕은 날렵하게 움직여 뼈가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받아냈다.
"금의행진도金蟻行進圖야. 약속 꼭 지켜."
구왕은 냄새가 점점 멀어지는 걸 느끼면서도 쫓지 않았다. 원래는 끝까지 쫓아서 죽여 입막음하려고 했지만, 금의행진도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포기했다.
'이거면 요수촌에 매달릴 일이 없지.'
돌과 쇠를 먹는 개미가 있다. 금의로 불리는 이 개미들은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계속 돌아다닌다. 이들은 돌과 쇠를 먹고 똥을 싸는데, 그 똥이 바로 황금이다.
요수촌은 아마 자주 겹치는 금의 무리의 이동 경로일 가능성이 크다.
'큰 금의 무리 하나만 따라다니면 요수촌에서 내 영지 밑으로 금맥이 생기기만 기다리는 것보다 훨씬 많은 황금을 얻을 수 있다.'
생각을 마친 구왕은 뼈를 꿀꺽 삼켰다. 달이나 해도 삼키는 천구의 피가 흐르기에 고작 지름 삼 척 정도의 뼈를 배에 넣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 구왕의 뒤를 쫓던 무리가 몸을 드러냈다.
"막내야. 잘한다 잘한다 추어줬더니 하늘 높은 줄 모르는구나."
구왕의 뒤를 쫓은 건 구구방의 남은 여덟 개 요괴였다. 비록 구왕이 머리도 제일 똑똑하고 힘도 가장 세지만, 남은 여덟이 손잡으면 이길 가망이 없다.
그리고 상대가 여덟이면 요행으로라도 도망치는 게 불가능하다. 수백 년 된 개 요괴 여덟의 추적을 뿌리치는 건 승천하는 용의 수염을 잡고 함께 천계로 가기만큼 어려운 일이다.
"오해하지 마. 이게 진짜 지도가 맞는지 확인하는 거야. 진짜라면 당연히 구구방의 물건으로 해서 너희와 함께 쓰려고 했지."
"개소리. 네가 지금 지도를 체화하려는 걸 모르는 줄 알았어?"
천구의 탄현황呑玄黃 법술은 해와 달도 삼킬 정도로 대단하다. 비록 피가 옅어서 그만한 위력은 없지만, 구왕은 법보를 삼켜 체화하는 능력을 타고났다.
위치가 좋아 금맥을 꽤 발견한 구왕이 몸에 법보 하나 안 지닌 이유다. 혹여나 도둑맞을까 봐 법보를 얻는 즉시 체화했다.
'체화만 끝나면 저들은 내 말을 따라야 한다.'
구왕과 남은 팔왕 모두 현재 시간 싸움임을 안다. 구왕이 체화를 끝내면 남은 팔왕은 구왕에게 머리를 숙여야 한다. 체화한 보물은 주인의 죽음과 함께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구왕은 평소 형님 동생 하면서 지내던 여덟 개 요괴와 개털을 날리며 개싸움을 벌였다.
한편.
구왕이 떠나자 치우는 바로 귀종술을 펼쳤다. 그리고 지하 감옥에 갇힌 요괴를 찾아냈다.
푸른 옷을 입은 요괴는 꽤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이었다. 비록 귀령성모의 미모에 견줄 바는 아니지만, 인간 중에는 드문 미색이었다.
"너 묻는 말에 대답하면 구해줄게."
치우의 말에 여자 요괴가 콧방귀를 뀌었다.
"나 원래 인간이었어. 인간이 얼마나 간사한지 너보다 잘 아니까 빈말로 속이려고 하지 마."
인간에 대한 불신이 가득한 요괴였다.
"우리가 인간이라고 확신합니까?"
오작은 남들이 다 헷갈리는데도 치우를 인간이라고 확신하는 요괴가 신기했다.
"요괴는 인간 말을 너희처럼 자연스럽게 못 하거든. 그리고 요괴라면 먼저 요괴 말을 했어야지. 요괴는 자기들 말에 자부심을 느끼잖아."
오작은 굳이 모든 요괴가 그런 건 아니라고 입씨름하지 않았다.
"당신이 홍영창의 행방을 알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걸 알려줄 겁니까?"
"날 여기서 꺼내고 치료해. 스스로 거동할 정도가 되면 홍영창이 있는 곳까지 데려다줄게."
"그냥 얘기해주는 건 안 됩니까?"
"산 이름을 몰라. 길은 아는데."
자신이 살던 동네의 산이나 태산처럼 유명한 산이 아니면 이름을 알기 힘들다. 그리고 산 하나에 이름이 여럿인 경우도 있고, 이름 하나에 산이 여럿인 경우도 있다.
홍영창이 있는 곳은 말만 하면 아는 그런 유명한 데가 아닌 듯했다.
오작과 치우는 바로 요괴를 감옥에서 꺼냈다. 그러나 치료에 문제가 생겼다. 약초와 질병에 관해 아는 게 많은 편인 오작도 속수무책인 상처였다.
"구왕에게 물렸다고요?"
"응. 그래서 법력을 못 움직여. 원래 인간이어서 육체도 부실한데 법력까지 잃었어."
'구왕 이놈은 재주도 참 많아.'
그간 계책을 꾸미면서 구왕에 관해 꽤 많이 알아냈다고 자부했는데, 모르는 재주가 또 있었다.
"구왕도 이런데 천구는 얼마나 대단할까?"
오작은 치우의 감탄을 예사로 흘리며 고민에 빠졌다. 그때, 사락사락 거친 천끼리 스치는 소리가 귀에 들렸다.
"이게 무슨 소리지?"
오작의 말에 치우와 형천은 숨소리를 죽이며 귀를 세웠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소리 없는데."
"아니야. 먼 데서 나는 소리 같은 게 계속 들려."
"소리 아니다. 감각이야. 너 성감聲感을 타고났구나."
성감은 진동이나 냄새 등을 소리로 인식하는 걸 말한다. 오작은 여태 없었던 일이 벌어지자 속으로 꽤 당황했다.
오작처럼 머리를 즐겨 쓰는 사람에겐 통제가 어려운 강한 힘보다는 결과가 확실한 약한 힘이 낫다. 헛소문처럼 여기던 성감이 실제로 존재하고, 본인이 당사자라고 하니 복잡한 마음이 쉬이 정리되지 않았다.
"참 부럽구나. 세상을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인식하는 재능을 타고났다니. 난 요괴가 된 지 백 년이 넘었는데 법술 하나 제대로 익힌 거 없어."
사락사락 소리는 계속 오작을 괴롭히다가 반 시진은 지나서야 사라졌다.
"일단 여길 떠나야겠습니다. 구왕이 돌아오기 전에 말입니다."
"이걸 치료하기 전에 난 이 영지를 못 떠나. 나가면 죽거든."
그때, 형천이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발을 동동 굴렀다. 다급한 손가락질을 따라 걸음을 옮겨 확인하니, 구왕의 영지 밑에 누런색이 가득했다.
쇠와 돌을 먹고 황금을 누는 금의 무리가 방금 지난 것이다.
"우선 황금부터 챙기자. 금의 뒤를 쫓으며 황금을 주워 먹는 떨거지들이 오기 전에 말이야."
황금을 주워 먹는 놈으로는 황금충도 있고 금金의 기운을 수련하는 뱀도 있고 붉은 지렁이도 있다. 놈들이 황금 냄새를 맡고 몰려오기 전에 얼른 수습해야 한다.
오작과 치우와 형천은 깊은 구덩이로 서슴없이 몸을 던졌다. 황금은 인간의 이성을 앗아가는 묘한 마력이 있는 것 같았다.
"치우, 쇄전류로 부숴. 형천은 나랑 함께 부스러기를 줍고."
치우가 부수면 오작과 형천이 소매 안으로 황금을 집어넣었다. 수리건곤袖里乾坤 법술은 법력만 있으면 세 살배기도 펼칠 수 있을 만큼 쉽다. 단, 경지에 따라 크기가 달라진다.
"형님, 전 한계입니다."
채 반의반 각도 안 되어 형천이 소매가 찼다고 말했다.
"그럼 황금을 네가 부숴. 황금 밀도가 다른 부위를 울리는 힘으로 때리면 돼."
형천도 어마어마한 재능을 타고났는지 오작의 말을 듣고 쇄전류를 어렵지 않게 펼쳤다. 기운 낭비가 좀 있고 힘 조절이 조금 미숙하긴 하지만, 처음 펼치는 것치곤 꽤 준수한 모습을 보였다.
오작 역시 소매 한가득 황금으로 채운 후 형천을 대신해 황금을 부쉈다. 형천은 영지 위로 올라가서 소매의 황금을 꺼내놓고 다시 내려왔다.
그렇게 세 남자는 황금을 먹는 떨거지들이 몰려올 때까지 열심히 황금을 위로 날랐다.
한편.
"멈춰. 멈추라고. 우리 속았어."
여덟 개 요괴의 협공에 구왕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구왕을 협공한 여덟 개 역시 만만치 않게 당했다.
구왕의 이빨에 물려 자국이 나면 법력이 동결되기에 여덟 모두 몸을 적당히 사리다 보니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싸움이 일방적이지 않았다.
"이거 가짜 법보야. 주문을 새긴 일회용 법보란 말이야."
사기꾼이 건넨 건 확실히 금의행진도가 맞았다. 그러나 일정 기한이 지나거나 한 번 사용하면 효과를 잃는 일회용이었다.
"맹세해."
"천구의 핏줄을 걸고 맹세한다."
그제야 여덟 개 요괴는 공격을 멈췄다. 어색한 분위기에서 아홉 요괴는 혀로 상처를 핥으며 눈치를 주고받았다.
"막내 넌 돌아가서 구구방을 수습해라. 우리 여덟이 놈을 쫓겠다."
"놈의 냄새를 확실히 기억한 건 나밖에 없다. 너흰 냄새를 지우거나 바꾸면 놈을 놓칠 거야."
"하지만 넌 아까 맹세했잖아. 놈을 다시 안 쫓는다고."
"셋에게서 훔친 지도를 주면 안 쫓는다고 단서를 달았어. 놈이 내게 준 건 지도가 아니라 일회용 법보야."
"우리 모두 맹세하자. 사기꾼을 잡아 금의행진도를 얻으면 구구방 소유로 하고, 얻은 이익을 아홉이 균등하게 분배하기로."
그렇게 구구방의 아홉 개 요괴가 의기투합하려는 순간, 방해꾼이 나타났다.
"비루한 개새끼들이 지랄 떠네."
요수촌의 여섯 세력 중 구구방 다음으로 머릿수가 많은 적호赤狐의 무리가 등장했다. 우두머리는 엉덩이에 달린 세 개의 꼬리 중 하나가 반 토막 잘린 사정 있는 붉은 여우였다.
"핏줄만 잇고 죄는 버린 배신자 주제에."
여우 역시 개와 마찬가지로 천구의 후손이다. 그러나 천구의 모든 걸 물려받아 승천이 어려운 개와 달리 여우는 도행만 어느 정도 수준으로 쌓으면 승천할 수 있다. 핏줄에서 오는 재능만 이어받고 천구의 죄는 개들에게 싹 밀어버린 덕분이다.
"잠깐 졸았더니 구구방이 많이 컸어."
곰들이 모인 밀웅蜜熊파였다. 이들은 황금을 얻으면 공평하게 나누는 거로 유명하다. 수면이 길어서 서로 지켜줘야 하는 신세여서 여타 요괴들과 달리 아주 끈끈하다.
"범이 숲을 떠나면 개들이 그렇게 유세라지?"
예전에 태산을 차지하려다가 태산노도의 결승법에 당했던 흑호도 등장했다. 흑호는 조공명이 타고 다니던 놈인데, 조공명이 오랜 기간 봉래도에 기거하자 담이 커져서 도망친 것이다.
그러나 태산노도한테 당한 후 다시 간이 작아져 요수촌에서 범 요괴들 우두머리 노릇을 하며 소심하게 지냈다.
"너희는 여기 웬일이야?"
"요수촌의 금맥 정보를 구구방이 미리 안다며?"
위기에 처하자 구왕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누군가 정성 들여 짠 정교한 함정에 자신이 빠졌고, 함정에 빠진 자신이 미끼가 되어 다른 자들까지 함정으로 끌어온 것이다.
'제길. 사실대로 말해봤자 안 믿을 거고.'
당할 때는 몰랐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너무 쉽게 속았다. 아마 곧이곧대로 탄백해도 저들은 구왕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좋아. 금맥이 어디로 갔는지 알려주면 되는 거지? 금의행진도."
법술을 펼친 구왕의 눈에 자기 영지 밑을 지나는 굵은 금맥이 보였다.
- 작가의말
일석천층낭 - 돌 하나 던졌는데 천 겹 물결이 일다
큰 파문을 불러왔다는 뜻이죠.
영약을 먹어 단전에 내공이 엄청난데 혈도가 굳어 정작 쓰지 못하는 놈이 사기꾼이 되어 무림을 털어먹는 이야기도 꽤 재밌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은 재물을 탐내 벌인 사기 행각에 무림 전체가 움직이는 착각계로, 가벼운 신무협 스타일로 하면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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