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수촌난전妖獸村亂戰
교상가교巧上加巧
공교로움에 공교로움을 더하니
일단난마壹團亂麻
마구 뒤엉켜 난마가 되었다
일반 마을과 여러모로 다르다.
보통 마을이라 하면 집 모양새가 비슷하다. 집 짓는 기술을 누구나 아는 게 아니기에 몇몇이 주도하여 만드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익숙하고 편한 것을 추구하기에 늘 상상력을 발휘하여 새로운 것을 만드는 걸 반기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무법리라는 정식 이름보다 요수촌으로 많이 알려진 이 마을은 참으로 특별하다. 거의 비슷한 모양의 집이 없고, 큰 왕국의 수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층을 나눈 집이 수두룩하다.
게다가 집집이 치는 울타리가 없고 굴뚝도 없다. 법력을 투자하여 지은 영지는 안에서 제멋대로 꾸밀 수 있기에 굳이 울타리를 치고 굴뚝을 세울 필요가 없다. 굳이 벽을 세우고 지붕을 얹은 건 누구도 엿보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집이라기보단 영지 안을 투시하는 걸 막는 보호 주문을 새긴 구조물이라고 여기는 게 맞는다.
심지어 인간들이 거주하는 집에도 굴뚝은 없다. 음식 솜씨가 뛰어난 요괴들이 연 주점에 가서 식사하는 게 습관이기 때문이다.
돈이 없으면 법력도 받기에 재주가 엔간히 낮지 않고선 요수촌에서 굶을 일은 절대 없다.
"주인장, 여기 요리 두 접시 더 줘."
치우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접시를 든 요괴가 달려왔다. 치우는 요괴의 긴 주둥이에 손을 올려놓고 법력을 주입했다.
음식값을 받은 요괴는 요리를 상에 내려놓고 빈 접시를 거둬갔다.
"괜찮습니까?"
희운은 너무 많은 법력을 뽑은 치우를 보며 걱정했다. 태극보인 덕분에 법력을 뽑혀도 빠르게 회복하는 치우의 비밀을 모르는 탓이다. 평범한 요괴나 술사라면 최소 보름은 수련해야 지금까지 뽑힌 법력을 회복할 수 있다.
"법력이 없어서 맞아 죽으나 배고파 죽으나 마찬가지야."
매일 두 시진 정도만 쉬면서 요수촌으로 최대한 빠르게 왔다.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면서도 흔적은 최대한 지웠고, 오작이 절대감으로 속을 수밖에 없는 가짜 흔적도 여럿 만들었다.
그간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하며 쌓인 몸과 마음의 피로를 풀려고 음식점을 찾았다. 단지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는 것만으로도 가득 쌓였던 부정적인 것들이 순식간에 씻겨 나갔다.
"주인장, 여기 소식이 가장 빠르고 확실한 데가 어딥니까?"
오작의 질문에 주둥이가 긴 요괴는 고민도 안 하고 대답했다.
"구구방이 사라진 후엔 적호방이 최고지. 여우들은 몽혼술夢昏術로 원하는 정보를 쉽게 알아내잖아. 구구방의 방해가 없으니 이젠 몽혼술도 마음껏 펼칠 수 있지."
같은 천구의 후손이지만, 미련하게 천구의 죄까지 물려받은 개들과 달리 여우는 재주만 물려받았다.
그러나 세상에 좋기만 한 일이 있을 리 없으니, 여우는 개가 많은 곳에서 법술을 마음껏 펼치지 못한다.
도행이 높은 여우라면 괜찮겠지만, 적호방은 방주인 적호가 꼬리 두 개 반밖에 안 된다. 일반 여우들은 물론 적호마저 몽혼술을 제대로 펼칠 수 없었다.
"고맙습니다."
오작이 몸을 일으키자 치우는 황급히 아껴 먹던 음식을 입에 쏟아부었다.
"고맙긴. 다음에 또 와."
"응. 여기가 젤 맛있어. 담에 또 올게."
적호방의 영지는 찾기 무척 쉬웠다. 불타는 여우를 붉게 그린 검은 바탕의 깃발이 높이 펄럭이고 있어 장님만 아니면 헷갈릴 일이 없었다.
"킁킁. 누군지 몰라도 처음 오는 손님은 아니군."
여우도 개 못지않게 코가 영민하다. 비록 오작과 치우의 정체까지 알아내진 못했지만, 요수촌에 들른 적 있는 사람인 건 알아챘다.
"정보 의뢰하겠다. 특급으로."
오작의 말에 여우 요괴는 토실토실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앞장섰다. 셋은 누구도 아닌 적호방 방주인 붉은 여우 앞으로 안내받았다.
"오랜만에 특급 손님이군. 금맥에 관한 정보를 제외하면 뭐든 물어봐."
적호가 의자에 앉아 으스대며 말했다. 일행은 모르지만, 적호가 앉은 의자는 원래 구왕이 쓰던 최하급 법보다.
"공손부보 무리의 규모와 구체적 인원 그리고 현재 행방을 알려달라."
눈알을 세 바퀴 굴린 적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금 일곱 근. 선불이다."
희운은 품에서 빛을 빨아들이는 묵옥墨玉에 눈을 반쯤 감은 용의 머리를 새긴 장신구를 꺼내 적호에게 던졌다. 상대는 조그마한 손으로 묵옥을 받아 감정하고 허공에서 황금 다섯 근 정도를 꺼내 희운에게 던졌다.
"뒤로 몇 발짝 물러나라."
셋은 적호의 분부대로 뒤로 물러났다. 일행이 물러난 걸 확인한 적호가 눈을 감았다.
적호의 꼬리에서 짙은 갈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짙은 연기가 조금씩 옅어지며 적호의 머리를 제외한 몸을 감쌌다.
연기가 몸을 다 감싸자 적호가 눈을 떴다. 옅은 붉은색의 눈동자가 어느새 사라지고 흰자만 남았다.
"공손부보 무리는 일곱 인간과 세 무리의 요괴로 구성됐다. 여섯 인간은 공손부보와 다섯 아들,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인간 여자로 구성됐다. 세 무리 요괴는 각각 청동랑과 명화접 그리고 괴력양怪力羊이다. 지금 여기로 오고 있어."
말을 마치자 적호를 감쌌던 연기가 꼬리로 빨려가고 붉은 눈동자가 슬며시 생겼다.
"여자 이름은 왜 모르지?"
"몽혼법으로도 알 수 없는 걸 보면 특별한 법보로 보호받는 거야. 가면 쓴 인간 너도 법보로 정체를 감췄잖아."
"의뢰 하나 더 하겠다. 황룡도인을 만나는 방법을 알려달라."
오작의 말을 들은 적호가 작은 손으로 손뼉을 연신 치며 깔깔 웃었다.
"너였구나. 허풍쟁이가 말한 손님이."
적호의 말에 오작은 정신을 바짝 차렸다.
"긴장하지 마. 허풍쟁이는 우리보다 천기를 잘 읽고 예언도 잘하는 놈이야. 얼마 전에 갑자기 찾아와서 자기 행방을 묻는 자가 있으면 이 말을 전해달라고 했어."
"날 찾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 해라. 그게 정도다."
'정도를 걷는 자에겐 바르지 않은 결과가 없다.'
오작은 황룡도인이 예전에 해줬던 말을 속으로 되뇌었다.
'내가 너무 조급했구나. 모든 상황을 인지認知 아래에 두려는 생각과 실패하면 안 된다는 두려움에 확실한 길에 너무 집착했어.'
확실한 게 좋긴 하다만, 뭐든 지나치면 독이 된다.
적호와 작별한 셋은 밖으로 나왔다. 오작과 희운은 물론이고, 치우마저 걱정이 컸다.
"우리가 지금 떠나면 안 된다는 얘기잖아."
치우의 말에 오작과 희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이 떠난 후 도착한 공손부보 일행이 적호에게 의뢰하면, 셋이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갈지 바로 알아낸다.
"더구나 여기에서 북부와 서부 사이의 관문까지는 숨을 곳도 없는 황무지야. 따라잡히면 도망도 어렵다고 봐야 해."
희운은 치우와 오작의 대화에 끼지 않고 혼자 깊은 고민에 빠졌다.
"빨리 결정하자. 떠날 거면 빨리 떠나고, 그게 아니면 아까 거기 가서 밥 좀 더 먹자."
"여기서 그쪽 일행을 확실히 떨궈야겠습니다."
희운이 결심을 내리고 오작과 치우에게 말했다.
"방법이 있습니까?"
"토막 내서 신체 일부만 상자에 담은 후, 요괴한테 의뢰하여 먼 곳에 버리게 해야죠. 공손부보만 처리하면 남은 자들은 큰 우환이 아닙니다."
"죽일 각오가 서지 않은 겁니까?"
"아닙니다. 헌원검으로 잘린 토막을 훼손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어서입니다. 그리고 가능해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헌원검으로 잘린 토막이 훼손되면 헌원검의 위력이 떨어지니깐요."
'좋은 걸 배웠다.'
오작은 마찬가지로 피로 이어지는 법보인 구마소를 떠올렸다. 비록 등급은 낮지만, 풍백에게 강신한 풍신을 쫓아낸 것만 봐도 평범한 법보는 아니다.
'편의만 추구하면 결국엔 손해다.'
헌원검으로 토막 내고 심장이나 머리와 같은 중요한 부위를 훼손하면 상대를 쉽게 죽인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만만치 않고, 힘의 남용을 절대 좌시하지 않는다.
구마소의 위력을 봐선 원래 이렇게 낮은 등급이 아니어야 한다. 오작은 가문의 누군가가 구마소를 남용하는 바람에 등급이 떨어졌다고 추측했다.
"그럼 조용한 곳에 가서 계획을 짭시다."
오작과 치우는 자연스럽게 마을 뒷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치우는 음식점에 들러 술과 요리를 사는 걸 잊지 않았다.
한편.
조공명이 흑호를 타고 요수촌에 들어섰다. 조공명 곁에는 오작과 치우가 북망산에서 봤던 두 사내가 있었다.
요수촌의 인간과 요괴들은 흑호를 탄 조공명을 보면서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비록 영도력이 형편없어 여섯 무리 중 최약체로 꼽혔지만, 흑호의 싸움 실력은 거짓이 아니었다.
"천기를 읽기 점점 어려워."
조공명이 탄식했다.
오작이 무극을 깨달은 후, 세상엔 은밀한 변화가 일어났다. 오작이 제대로 깨달은 게 아니라 소 뒷걸음치다가 쥐 잡듯이 엉겁결에 무극에 닿은 거여서 변화가 격렬하진 않았다.
그러나 점괘술을 비롯한 미래를 점치는 법술 혹은 재주들이 전체적으로 약해졌고, 예전엔 꽤 선명하던 천기가 흐릿해졌다.
어느 정도 흐름이 정해졌던 미래가 조금씩 어긋나며 새로운 가능성을 품기 시작한 거였다.
"그래도 사부께선 오행마의 종적을 찾아내셨잖습니까."
검은 콧수염을 기른 진구공陳玖公이 아첨했다. 키가 십삼 척이나 되는 요소사姚少司가 아니꼬운 눈으로 진구공을 흘겼다.
"오행마와 연관된 인간이 여길 지난다는 것밖에 못 알아냈지. 이미 지났는지 아직 오는 길인지는 모르고."
"그 정도만 해도 대단한 겁니다. 천하에 점괘술로 사부께 미칠 자는 채 열도 안 될 겁니다."
요소사는 방금 진구공을 흘겼던 걸 잊은 듯, 잽싸게 아부했다. 요소사에게 선수를 빼앗긴 진구공이 입맛을 쩝 다셨다.
"내가 무공을 익히느라 법술에 늦게 입문한 잘못이지. 다보처럼 처음부터 법술만 익혔으면 겨우 다섯에 머물진 않았을 텐데."
귀령성모가 죽으며 조공명이 다섯 번째 자리로 올랐다. 외문제자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아 세력으론 다보도인이나 금령성모를 능가하지만, 정작 칼부림하면 목숨 걸고 조공명을 지지할 자가 많지 않아 여전히 다섯 번째로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공손부보 일행이 희운과 오작의 예측보다 빠르게 요수촌에 도착했다. 이는 적호가 심술을 부린 탓이었다. 사실 공손부보 일행은 요수촌에 아주 근접했는데 그저 오고 있다고만 알려줬다.
"오오. 황금 냄새. 난 황금이 좋아."
청동랑이나 명화접과 달리 괴력양은 인간의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인간들이 마수와 요괴를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는 이유기도 하다. 일부 마수는 그저 강한 맹수로 오해할 법한 외관과 능력을 갖췄고, 일부 마수는 청동랑이나 명화접처럼 누가 봐도 특이하다. 그러나 절반 이상 마수는 괴력양처럼 요괴로 오해하기 딱 좋게 행동한다.
"헌원검이 우선이다."
공손부보는 차가운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고 괴력양에게 말했다. 먹이만 잘 주면 고분고분한 청동랑과 명화접과 달리 괴력양은 너무 제멋대로였다.
그때, 한 무리 금의가 요수촌 밑을 지나며 똥을 쌌다. 황금을 주 먹이로 하는 괴력양은 진하게 풍기는 황금 냄새에 눈이 돌아버렸다.
"하지 마!"
공손부보의 애원에 가까운 외침에도 괴력양은 멈추지 않았다. 몸집을 네 배 정도로 키운 후 뿔도 훨씬 길게 뽑았다. 암갈색 눈동자와 흰자가 모두 새까맣게 변하더니 수십 장 밖에 있는 어떤 건물로 빠르게 돌진했다.
쾅 소리와 함께 건물이 무너지고 영지가 깨졌다.
영지를 깨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주인이 있는 영지를 깨는 건 몇 배나 어렵다. 그러나 괴력양은 법칙을 비트는 마수답게 돌진 한 번으로 영지를 부숴버렸다.
"저 하찮은 새끼가."
공교롭게도 괴력양이 부순 영지는 흑호의 옛 부하 것이었다. 안 그래도 요수촌 주민들이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아 은근히 속에 열불이 일던 차에 누군가 건드리자 흑호도 폭발했다.
등에 앉은 조공명을 뿌리친 흑호가 괴력양을 덮쳤다. 일반 양이라면 범을 보는 즉시 부들부들 떨며 도망도 못 치겠지만, 괴력양은 달랐다.
흑호가 자기 황금을 뺏으려는 것으로 오해한 괴력양은 상대가 다가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마주 달렸다.
"사부. 제가 나설까요?"
흑호가 몰래 도망친 것만으로도 진구공과 요소사는 사부의 신임을 많이 잃었다고 생각했다. 이대로는 둘을 봉래도로 부를 것 같지 않아 안달이 나던 차에 흑호가 조공명을 뿌리치는 사고를 치자 눈앞이 캄캄해졌다.
"아니다. 저 양의 일행이 오행마와 연관이 있다. 일단 지켜보자."
조공명의 목적은 둘이다. 하나는 자단의 행방을 찾는 것이고 하나는 무극을 깨달은 자가 누군지 알아내는 것이다.
조공명은 둘 중에서 자단을 찾는 게 더 중요하다고 여겼다. 무극을 깨달은 자는 사부도 정체를 모를 정도로 대단하다. 그자를 찾는 것보다는 보상으로 최소 법보 몇 개는 확실한 자단을 찾는 게 낫다.
"외지인이 황금을 뺏으려 한다."
누군지 모를 요괴의 외침으로 요수촌 요괴들도 움직였다. 외지인이 황금을 뺏어가는 선례를 만들면 이후 아무나 요수촌을 넘볼 것이다.
"놈의 일행을 죽여라!"
불똥은 공손부보와 조공명 일행에게도 튀었다.
- 작가의말
앞에 50여 화로 밑밥은 비슷하게 깐 것 같습니다. 슬슬 본 이야기를 펼쳐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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