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요득법술女妖得法術
탐피사탄貪被死呑
탐욕은 죽음에 삼켜지고
천구누설天狗漏洩
천구는 천기를 누설하다
검은 구름이 달빛을 삼키고 요란한 벌레 울음소리가 기척을 감춰준다. 구왕과 두 요괴는 오작 일행을 은밀하게 덮쳤다.
여자 요괴는 법력만 있고 법술을 모른다. 게다가 인간이 요괴로 된 거여서 육체도 형편없다. 형천은 힘이 세고 법력도 나이보다 많은 편이지만, 마찬가지로 강한 법술이나 무공을 모른다.
당연히 세 요괴는 소소와 오작 그리고 치우를 목표로 삼았다. 소소는 은신술로 숨으면 찾아낼 자신이 없고, 오작과 치우는 가면 때문에 사람인지 요괴인지 정체가 헷갈리기에 빨리 처리한다는 생각이었다.
벌레들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게 움직인 세 요괴가 각각 자기 목표를 덮치는 순간, 오작과 치우가 움직였다.
치우의 상대는 뒷다리 하나를 통째로 뜯긴 요괴였다. 소리도 없이 접근해 목을 물려던 요괴는 치우의 손에 목을 잡혔다.
황소 수십 마리와 줄다리기하며 단련된 강한 손아귀가 요괴의 목을 사정없이 조였다. 법력이 전혀 안 깃든 손인데도 요괴는 빠져나올 수 없었다.
치우는 의미 없는 발버둥으로 저항하는 요괴의 심장에 월영인으로 만든 송곳을 꽂았다. 그리고 오작이 가르친 대로 송곳을 터뜨렸다.
심장을 잃은 요괴는 버둥질을 멈췄다. 그러나 심장을 잃었다고 바로 죽는 게 아니다.
황무록荒茂綠 기고청목氣枯靑木.
치우는 요괴의 가슴에 난 상처로 손을 집어넣은 후 황고류를 펼쳤다. 오뢰굉을 펼칠 수 없는 치우를 위해 오작이 고심 끝에 생각해낸 방법이다.
생명은 오행의 기운을 골고루 품었고, 하나라도 부족하면 약해진다. 황고류에 당한 요괴는 털이 빠지고 가죽이 푸석해지더니 급격히 노화했다.
치우는 황고류로 약해진 요괴를 토막 내고 내단을 찾아 소매에 넣었다. 생기가 사라지고 내단도 사라지자 요괴도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죽어버렸다.
요괴를 해치운 치우는 숨을 가쁘게 헐떡였다. 풍백과 비견할 정도로 법력이 많은 치우지만, 황고류를 펼치느라 대부분을 소모했다. 오행의 기운은 서로 상부상조하기에 나무의 기운만 상대할 때보다 훨씬 많은 법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강한 위력의 공격용 법술을 배우기 전엔 어쩔 수 없이 합리적이지 않은 황고류에 의지해야 한다.
오작 역시 요괴를 쉽게 해치웠다. 앞다리 하나가 반쯤 잘리고 옆구리에 살이 한 뭉텅이 뜯긴 요괴는 오작의 반격을 피하지 못했다.
목덜미를 잡힌 요괴가 법력까지 동원하여 벗어나려 했지만, 오작은 옆구리의 상처에 손을 넣고 오뢰굉을 펼쳤다.
정정당당하게 붙었다면 이렇게 싱겁게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상대는 안 들키려고 강한 공격을 펼치지 않았다. 그리고 죽이기보단 생포하려는 마음이 강했다. 덕분에 은밀함에 치중하고 제압에 목적을 둔 공격을 했고, 미리 간파한 치우와 오작에게 역이용당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소소는 둘처럼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구왕의 입에 목덜미를 물려 축 처진 소소를 보며 오작은 가면 뒤에서 얼굴을 크게 찡그렸다.
"퉤."
구왕이 이빨을 뱉어냈다. 덕분에 소소는 여전히 구왕의 이빨에 물려 있지만, 구왕은 자유롭게 말할 수 있었다.
"속은 놈이 병신이지. 너희한테 딱히 유감은 없다."
구왕의 모습 역시 마지막에 본 것과 많이 달라졌다. 윤기가 자르르하던 털이 대부분 빠졌고 몇 달 굶은 것처럼 가죽과 뼈가 찰싹 달라붙었다.
"금의행진도의 법보 혹은 법술을 내놔라. 그럼 누구도 다치지 않고 우리 사이의 원한도 말끔하게 사라진다."
"우선 나한테 믿음을 줘야 합니다."
오작이 입을 열자 구왕의 눈에 광기가 번쩍하고 나타났다 사라졌다.
"지금 당신과 저자가 일부러 짜고 우리 법술을 얻어내려는 게 아닌지 의심됩니다. 사실 나는 당신들의 미행을 발견했고 실패할 리 없는 계획을 짰습니다. 보시다시피 당신의 두 동행은 우리에게 순식간에 제압당했고 죽었습니다. 저자가 일부러 당신한테 잡혔다는 의혹을 떨칠 수 없군요."
구왕은 원기를 절반 잃는 대가를 치르고 도망쳤다. 영지의 금맥이 사라진 것까지 확인하고 오작 일행을 쫓는 내내 평정심을 잃지 말자고 홀로 수없이 다짐했다.
두 형제를 잃는 대가로 이들의 중추로 추측되는 사기꾼을 인질로 잡았는데, 오작이 자신과 사기꾼의 사이를 의심하는 발언을 하자 오장육부가 불에 타서 재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뭐지? 한패가 아니었던 건가?'
구왕의 머리가 복잡하게 굴러갔다. 그러나 금의행진도를 얻고 싶은 욕심과 영지의 금맥을 도둑맞은 원한이 겹쳐 차분히 생각을 이어갈 수 없었다.
'그래. 저놈들은 내 금맥을 노린 거였어.'
그러다 보니 엉뚱한 결론을 얻었다. 저들은 금맥이 자기 영지에 나타날 걸 알고 일부러 자신을 밖으로 유인했다. 그사이 자기 영지에 나타난 금맥에서 황금을 얻고 도망친 거다.
즉, 이 사기꾼들은 한편이다.
구왕은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사태를 해석했다. 소소가 오작과 같은 편이어야 인질로서 가치가 있기에 억지로 그쪽으로 생각했다.
진실은 구왕의 추측과 다르다. 오작과 치우의 목적은 황금이 아닌 홍영창의 행방을 아는 요괴를 확보하는 거였다.
금의행진도는 치우가 귀종술로 영리귀를 불러 뼈에 새기게 했다. 일회용이어서 오작과 치우는 금맥이 언제 어디서 나타나는지 몰랐다.
소소는 재미로 일에 끼어들었고 형천은 의리로 참여했다.
구왕의 영지에 금맥이 나타난 건 그저 우연이었다. 여자 요괴를 구하는 과정에 의도치 않게 얻은 부수적인 수확이다. 부수적이라고 하기엔 너무 크긴 하지만.
소소의 안위는 사실 오작이나 치우한테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러나 구왕은 소소가 아주 가치 있는 인질이라고 굳게 믿었다.
- 형, 버리면 안 돼.
꼭 죽여야 할 놈은 살려두지 말고, 살려야 할 자를 귀찮다고 죽이지 말자고 약속한 적 있다. 치우는 비록 소소를 싫어하지만,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두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작 역시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매정하게 소소를 무시할 수 있지만, 그러면 평생 마음에 걸릴 것 같았다.
"이거 원. 인질을 잡은 내가 해명해야 하는 건가? 뭐, 굳이 비밀도 아니니 말해주마. 여기 금색과 은색 이빨이 보이지? 이거 법보야. 은색은 법보를 무력화하고 금색은 법력을 동결해. 내가 이 사기꾼을 노려서 그렇지, 너희 둘 중 하나를 노렸어도 똑같은 결과였을 거야."
소소의 목을 문 두 줄의 이빨은 구왕이 체화한 법보였다. 소소는 수호계 법보의 보호를 받았지만, 은색 이빨에 무력화되었다. 법보가 무력화되며 금색 이빨에 물리는 바람에 법력도 굳어서 저항할 힘을 완전히 잃은 것이다.
"괜찮은 해석입니다. 믿어드리죠."
오작이 입을 열자 구왕은 또 화가 치솟았다. 그러나 목적을 위해 꾹 참았다. 금의행진도만 얻으면 원한도 싹 잊고 이들에게 보복하지 않기로 굳게 다짐했다.
황금을 가득 얻어서 강해질 미래를 생각하며 '사소한' 원한은 잊기로 했다. 괜히 복수한답시고 설치다가 목숨을 잃으면 자기만 손해다.
이렇게 피해자인 구왕이 관대한 결정을 내렸는데 상대가 오히려 의심하니 화가 안 나고 배길 도리가 없었다. 정신 수양이 어마어마하게 높은 사람한테도 원수를 용서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솔직히 우린 안 지 얼마 안 되는 사입니다. 황금을 목적으로 뭉쳤습니다. 저자가 자기 몫에서 절반을 우리한테 준다면 법술을 양도하겠습니다."
구왕은 물론, 인질로 잡힌 소소도 입을 헤 벌리고 오작의 웃는 소얼굴 가면을 멍하니 쳐다봤다.
"괜찮은 놈이어서 계속 데리고 다니고 싶어서요. 그렇다고 법술을 내주면서까지 욕심나는 건 아닙니다. 저자가 황금 천 근을 자기 몫으로 가져갔습니다. 절반을 내놓으면 나도 손해 보는 거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작은 구왕의 머리를 어지럽히는 게 목적이다. 귀령성모를 상대할 때도 자단을 언급하며 머리를 어지럽게 만드니 상대는 오판하고 지장술을 펼쳐 숨었다.
접인은 처음부터 오작의 계책이었다고 여겼지만, 사실은 그저 써먹을 수 있는 모든 걸 동원해 발악하다가 얻어걸린 셈이었다.
지금 역시 확실한 계책이 있는 게 아니라 법술이나 황금 등 구왕의 욕심을 자극하는 것들을 언급하며 기회를 엿봤다.
'법술만 얻어내면 된다. 그럼 난 천구의 뒤를 잇는 진정한 왕이 될 수 있다.'
구왕은 치솟는 화를 억지로 눌렀다. 마음의 평온을 겨우 찾고 소소에게 말했다.
"사기꾼. 너도 목숨이 귀하겠지? 황금 절반을 내놔."
"법력이 묶였는데 어떻게 황금을 꺼내? 이 멍청하고 비루한 개새끼야."
소소 역시 오작의 말에 기분이 상했다. 그래서 애꿎은 구왕한테 분풀이했다.
구왕은 목울대를 울렁이다가 송곳 하나를 뱉어냈다.
"일회용 법보다. 금의행진도의 법술을 여기에 담아. 그럼 내가 법력 동결을 풀고 황금을 꺼내게 할게. 그다음 송곳을 내게 넘기면 난 이 여자를 풀어주고 떠나겠다."
오작은 구왕이 던진 송곳을 팔뚝에 꽂았다. 거무칙칙하던 송곳이 빨갛게 변했다. 법술 하나가 담겼다는 의미다.
구왕은 소소의 목덜미를 문 이빨을 도로 회수하고 회색 혓바닥으로 상처를 쓱쓱 핥았다. 소소의 목에 난 이빨 자국이 사라졌다.
"가져. 이 나쁜 놈아."
소소는 홧김에 소매에서 주머니 다섯 개를 전부 꺼내 오작한테 던졌다.
"나도 그렇게 양심이 없는 사람은 아닙니다. 약조대로 절반만 받겠습니다."
오작은 주머니 두 개를 챙긴 후, 하나를 풀었다. 안에 든 이백 근의 황금이 허공에 나타나 바닥으로 쏟아졌다.
백 근 정도를 수습해 소매에 넣은 오작은 남은 주머니 두 개와 송곳 그리고 백 근이 되는 황금 덩이들을 구왕에게 던졌다.
구왕은 원래 송곳만 챙기려고 했지만, 싯누런 황금과 수백 근 황금을 담은 주머니가 가까워져 오자 그만 자제력을 잃고 두 앞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은신. 결승법."
소소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구왕은 뱀을 닮은 밧줄에 감겼다.
"나쁜 놈. 일찍 알려주지."
소소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오작 곁에 나타났다. 황금을 챙기는 과정에 오작은 은밀하게 손가락으로 기회를 봐서 은신술을 펼치라고 말했다.
그리고 소소와 마찬가지로 잽싸게 움직인 사람이 또 있었다. 바로 인간이었다가 요괴가 된 여자였다.
여자는 오작의 법술이 담긴 송곳을 황급히 주워 자기 심장에 찔렀다.
"그거 금의행진도 아닙니다."
오작의 말에 여자 요괴는 처연하게 웃었다.
"그래도 상관없어. 법술 하나도 모르는 요괴라고 얼마나 업신여김을 당했는지 몰라. 어둠을 밝히는 작은 빛덩이라도 소환할 수 있으면 만족이야."
오작은 황고류의 법술을 송곳에 담았다. 어차피 익히기만 했고 펼칠 수 없는 거여서 크게 아쉬움이 없었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법술이 다시 생기기에 굳이 요괴를 저지하지 않았다.
"대단해."
구왕의 눈엔 원망도 원한도 담기지 않았다.
"다음 생엔 여우로 태어나고 싶다."
말을 마치기 바쁘게 구왕의 눈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바다를 엎고 산을 밀어버릴 것 같은 강대한 기운이 구왕 몸에 피어올랐다.
"형, 어떻게 된 거야?"
결승법에 묶인 구왕은 법술을 펼칠 수 없어야 한다. 펼치더라도 오작 법력의 열 배에 해당하는 법력이 묶였고 기운의 움직임도 원활치 않아 간단한 법술만 가능하다.
"천구를 강신했어. 피에 있는 천구를 불러낸 거여서 결승법의 영향을 안 받아."
요괴는 송곳을 가슴에 꽂은 채 황금을 수습해 물러났다. 소소는 요괴가 건넨 황금을 소매에 넣었다.
"어떻게 도망칠 수 있었는지 궁금했는데, 천구를 강신했구나."
소소의 추측대로 구왕은 천구를 강신해 세 강력한 요괴를 겁먹고 물러나게 했다. 요괴들은 굳이 원기를 희생하여 천구를 부른 구왕을 양패구상의 각오까지 해가며 죽일 생각은 없었다.
"같이 죽자는 거네."
치우도 중얼거렸다. 구왕의 도행과 법력으로 며칠 사이에 천구를 두 번이나 강신했으니 이젠 죽음 목숨이라고 봐야 한다.
"엥? 또 이놈이군."
풍백에게 강신하여 말도 제대로 못 하던 풍신과 달리, 천구는 구왕의 몸에 바로 적응했다. 피로 이어졌기에 청룡과 구망보다 더 가까운 관계다.
"우릴 공격할 겁니까?"
오작은 짐짓 태연한 척 질문했다. 사실은 누구보다 천구의 힘을 느끼고 두려워하던 차였다.
다섯을 쭉 둘러보던 천구가 코를 킁킁댔다.
"뭐야? 너희한테서 약속의 아이 냄새가 나는구나. 그럼 못 죽이지."
천구의 말에 오작은 치우의 운명 그리고 귀왕 구묘가 떠올랐다.
"어떤 약속이길래 당신까지 아는 겁니까?"
대단한 존재면 뭐든 알 것 같지만, 대단한 존재는 대단한 일만 안다.
"지금 천계랑 삼계가 분리되었잖아. 천계로 올라가는 건 육체를 버리고 영혼만 승천하는 거랑 봉신책封神冊을 통해 육신까지 함께 올라가는 두 가지밖에 없어."
두 번째 방법은 그나마 괜찮지만, 첫 방법은 백이 시도하여 아흔아홉이 실패한다. 그나마 여우와 용이 있어 하나는 성공하는 것이다.
"약속의 아이가 나타나면 변화가 일어난다. 어떻게 변할지는 나도 모르지."
- 작가의말
여요득법술 - 여자 요괴가 법술을 얻다.
구왕은 욕심으로 복수심까지 눌렀으나, 결국 욕심으로 죽게 됩니다. 안분지족安分知足이라는 말이 생각나네요.
자기 분수를 알고 만족할 줄 알아라.
말은 쉬워도 실천은 어렵죠. 구왕은 괴이한 법술을 다량 보유한 다재다능한 요괴인데 안타깝게도 욕심을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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