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삼태극最强參太極
소음압귀簫音壓鬼
퉁소 소리가 귀신을 누르고
태극입단太極入丹
태극구가 단전에 들어가다
황량한 산에는 새 지저귀는 소리도 벌레 우는 소리도 없었다. 다행히 바람까지 외면한 건 아니어서 숨 막히는 정적이 계속 이어지진 않았다.
"제길. 살아야지 뭐 어쩌겠어."
소멸보다는 훨씬 낫다는 생각인지 태극구는 소오의 계획에 쉽게 동의했다.
"자, 다들 자기 역할을 잘 기억해. 나랑 현작은 태극구가 귀기를 이길 수 있도록 도울 거야. 삼태극을 이루려면 태극구의 힘이 귀기의 두 배는 되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한 배 반도 안 되거든."
"그럼 두 분의 기운 손실이 크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천명을 타고난 놈이 미쳐버리는 것보단 백 배 나아."
소오가 작게 탄식한 후 다시 본론으로 돌아갔다.
"오작 넌 구마소로 치우의 귀기를 눌러야 해. 명심해야 할 건, 소멸이 아닌 제압이야. 괜히 소멸하려다가 귀기가 반발하면 모든 게 엉망이 될 거야."
오작은 구마소보에서 귀기를 제압하는 곡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법력을 잘 제어하기만 하면 되는 거여서 틀릴 염려가 크지 않다.
"난 뭘 할까?"
치우가 순진한 얼굴로 질문했다.
"넌 아무것도 하지 마."
이 일에서 가장 큰 손해를 보는 건 소오와 현작이다. 태극구는 소멸을 피하는 거여서 오히려 이득이다. 그래서 소오의 대답은 무척이나 퉁명스러웠다.
"내일 오시에 해야겠죠?"
오시는 양기가 가장 강한 시각이다.
"아니야. 음양의 균형이 잡힌 새벽에 해야지. 황혼은 이미 놓쳤으니까."
치우와 오작은 꽤 먼 거리로 가서 장작을 구하고 사냥도 했다. 오행마는 일행이 숙영지로 잡은 곳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현작의 도움이 있었다지만, 북망산에서 십 년이나 되는 세월을 도망 다닌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기적으로 북망산의 위치를 옮겨야 해서 놈들이 법력을 아낀 게 아니라면 벌써 백 번도 잡혔을 것이다.
긴장이 풀리면서 배고픔보다는 졸음이 먼저 몰려왔다.
소오와 현작은 분주히 날면서 돌을 물어왔다. 물어온 돌은 정확한 위치에 두어 전송진傳送陣을 만들었다. 태극구가 치우의 단전으로 들어가면 직접 힘을 전달할 수 없기에 전송진에 의존해야 한다.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저녁까지 먹은 후 치우와 오작은 곧바로 곯아떨어졌다. 치우는 귀옥에 갇혀서, 오작은 무아지경에 빠져서 시간의 흐름을 몰라서 그렇지. 둘 다 며칠 못 자고 싸웠다.
태극구와 소오와 현작은 그간 겪은 일들을 얘기하고 힘을 주고받는 방법을 논의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초겨울의 동녘이 창백하게 밝아올 때, 오작과 치우는 소오와 현작의 깍 소리에 잠에서 깼다.
"넌 저기 가서 누워. 들어갈 때 돌멩이 건들지 말고."
치우는 고분고분 소오의 지시에 따랐다. 오작은 구마소를 들고 진혼곡鎭魂曲을 준비했다. 태극구는 날아서 바닥에 누운 치우의 단전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먼저 태극구가 들어가 귀기와 싸운다. 태극구가 어려움에 부닥치면 구마소로 돕는다. 만약 태극구가 귀기를 제압할 방법을 찾는다면 나와 현작이 기운으로 도움을 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방법은 포기해야 한다."
"귀기를 제압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오작의 질문에 소오가 대답했다.
"태극구는 아마 소멸하겠지. 치우는 귀기가 발작해 한동안 미친놈처럼 날뛸 거고."
"더 나은 방법은 없는 겁니까?"
"없어. 웬만하면 단전에 품은 귀기를 버리면 되는데, 저놈은 그게 안 돼."
오작은 소오가 채 말하지 않은 의미를 깨달았다. 이번에 실패하면 강제로 치우의 단전에 있는 삼태극을 뽑아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치우는 지금까지 모은 법력을 모두 잃을 것이고, 다시 수련해도 지금처럼 강해지는 건 불가능하다.
"반드시 해낼 겁니다."
오작은 다짐을 입 밖으로 내며 구마소를 잡은 손에 힘줬다.
해가 동산에서 머리를 작게 내밀 때, 태극구가 흐물흐물하게 변하며 치우의 입으로 갔다. 입을 통해 들어가는 건 몸에 더 쉽게 받아들여진다. 조금이라도 성공 가능성을 높이려고 태극구는 치우의 입을 통해 뱃속에 들어간 후 단전으로 침투했다.
삼태극의 하나로 만족하지 못하고 호시탐탐하던 귀기는 불쑥 찾아온 태극구를 반기지 않았다. 바로 단단히 뭉쳐 태극구를 단전에서 쫓아내려 했다.
그러나 태극구는 삼태극에 대한 이해가 귀기보다 월등하다. 귀기의 예봉銳鋒을 피한 태극구는 재빨리 삼태극의 음과 양의 자리를 차지했다.
동종의 기운이기에 삼태극의 둘도 태극구를 배척하지 않았다.
자리를 잡은 태극구는 조심스럽게 삼태극을 돌렸다. 치우가 돌리면 귀기를 우선으로 흡수할 것이기에 태극구가 직접 돌려야 한다.
처음엔 삼태극이 돌아가도 별 반응이 없던 귀기지만, 남은 두 기운이 조금씩 강해지자 뭔가 잘못되었음을 눈치챘다. 그리고 삼태극이 돌아가는 걸 방해했다.
"지금이야."
소오는 삼태극이 완전히 멈추기 직전에 외쳤다. 긴장을 늦추지 않고 대기하던 오작은 바로 법력을 움직여 진혼곡을 불렀다.
웅장하면서도 슬픈,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소리가 넓게 퍼졌다.
"소리를 모아. 퍼뜨리지 말고."
소오의 말에 따라 오작은 소리에 방향을 주어 치우한테로 가게 했다. 하고 나서 오작 자신도 움찔 놀랐다. 본인이 어떻게 해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오작의 도움으로 귀기의 기세가 한풀 꺾이자 태극구는 다시 힘내 삼태극을 돌렸다. 밤과 낮이 바뀌면서 음양이 균형을 이뤄가는 시간이기에 다른 때보다 기운이 잘 모였다.
그리고 진정한 전쟁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귀기는 삼태극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태극구가 기운을 모으는 걸 제지할 수 없음을 인정했다. 그래서 전략을 바꿔 회전을 방해하는 대신 음양이 차지한 구역으로 침투했다.
순수한 힘 싸움이 시작된 거다. 태극구가 하나만 차지하려고 했다면 귀기한테 밀리지 않았을 테지만, 둘 다 지켜내려니 역부족이었다.
"됐다."
소오와 현작은 부리로 전송진의 돌멩이를 톡톡 쪼면서 기운을 전달했다. 만약 오작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삼태극의 회전이 멈췄다면 소오와 현작은 태극구를 돕지 않았다. 회전하지 못하면 결국엔 삼태극이 파괴되는 결과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작은 치우와 태극구가 무사하기를 바라는 염원을 가득 담아 구마소를 연주했다. 소오와 현작은 적당한 기운을 전달해 균형을 이루도록 도왔다.
상대를 제압하는 게 아니라 음양과 귀기가 균형을 이루도록 해야기에 단순히 많은 기운을 전달하면 되는 일이 아니다.
태극구는 오작과 소오 그리고 현작의 도움으로 삼태극을 계속 돌리며 두 구역을 힘겹게 지켜냈다. 물론, 치우 역시 아무것도 안 하는 거로 열심히 협조했다.
귀기와 벌인 싸움은 황혼까지 이어졌다. 차라리 음양이나 오행에 속한 강한 힘이라면 쉽게 수습했을 것이다. 그러나 막무가내인 귀기여서 어르고 달래고 밀고 당기는 것을 무수히 반복한 후에야 공존을 이뤄냈다.
"여전히 귀기가 우세야. 수련 열심히 해."
현작은 어느새 지쳐 곯아떨어졌다. 소오 역시 치우한테 짧게 당부한 후 나뭇가지에 올라 잠이 들었다.
부족한 법력으로 진혼곡을 여섯 시진이나 연주한 오작 역시 피곤으로 축 늘어졌다.
"형, 푹 쉬어. 저녁은 내가 준비할게."
치우는 물도 긷고 사냥도 하고 장작도 주우며 열심히 뛰어다녔다. 오작의 곁을 떠나려 하지 않는 오행마를 위해 마른 풀도 한가득 구해왔다.
시작 전에는 몰랐지만, 단전에서 벌어지는 일을 관조하며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깨닫고 고마움을 크게 느낀 것이었다.
하루 내내 긴장한 치우를 마지막으로 일행 모두 깊은 잠에 곯아떨어졌다.
"우린 잠시 정양靜養(조용히 휴식)해야겠어."
얼굴을 비추는 아침 햇살에 힘겹게 눈을 뜬 오작에게 소오가 말했다.
"무슨 일입니까?"
"생각보다 기운 손실이 커. 빨리 보충하지 않으면 격이 한 단계 떨어질지도 몰라."
한 경지에 오래 머무는 것보다 떨어지는 게 훨씬 안 좋은 상황이다. 높은 경지만 바라고 과도하게 수련하는 자들이 자주 낭패를 보는 부분이기도 하다. 높은 경지를 탐내 빠르게 오르다가 경지가 외려 떨어지면 수련에 어마어마한 지장을 준다.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풍령에 가서 쉬면서 기운을 보충할 거야. 우린 수련이 아니라 먹어서 보충하는 거니까 얼마 걸릴지 확답을 주긴 힘들어. 진짜 위험한 상황이면 우릴 소환해. 최소 둘 중 하나는 영지에 남을 테니까. 회복이 끝나면 너희한테 편익조를 날릴게."
내친김에 오작은 소오한테서 편익조를 날리는 법술을 배웠다. 경지가 낮은 술사들도 쉽게 익히는 법술인데, 오작과 치우는 지금까지 배울 기회가 없었다.
"그럼 나와 현작은 풍령으로 바로 간다. 너흰 오행마를 따라 자단이 마지막으로 있었던 곳으로 가거라. 자단이 없더라도 단서는 반드시 있을 것이다."
소오와 현작은 몇 번의 날갯짓으로 둘의 시야를 벗어났다. 오작과 치우도 바로 정신을 수습하고 출발했다. 오작은 오행마를 타고 치우는 곁에서 나란히 달렸다.
오행마가 치우를 거부하진 않았지만, 치우의 덩치가 큰 것도 있고 갑자기 강해진 몸에 적응해야 하는 것도 있어서 경공으로 달리는 선택을 했다.
"형, 우리 지금 남부로 가는 거 맞지?"
북망산의 일이 있고 한 달이 지난 지금. 오작과 치우는 오행마의 인도에 따라 중부에서 서남쪽으로 움직였다.
"미리 생각하지 말자. 그럼 선입견 때문에 중요한 걸 놓칠 수도 있어."
부지런히 달리던 오행마가 갑자기 방향을 꺾었다. 오행마가 몸을 부르르 떨자 오작은 말 등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오작을 부린 오행마는 벌판에 가서 땅을 헤집으며 맛있는 뿌리들을 먹어 치웠다.
오작과 치우는 근처의 개울에 가서 시원하게 몸을 씻었다. 이미 완연한 겨울이지만, 남부와 가까워서 그런지 그렇게 춥지 않았다.
"꺅!"
익숙한 소리에 오작과 치우는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로 대충 짐작했듯이, 대별산에서 헤어진 소소의 모습이 둘의 시야에 들어왔다.
치우는 황급히 주저앉으면서 손가락에 틈을 만든 소소를 손가락질했다.
"빨리 안 돌아서? 네가 안 돌아서면 내가 확 돌아선다?"
"해 봐. 겁쟁이."
치우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오작이 홱 돌아섰다. 당황한 소소는 황급히 고개를 돌리다가 휘청 넘어졌다.
팔괘자수선의는 오작의 의지에 따라 물을 통과한다. 덕분에 오작은 목욕할 때도 당연히 알몸이 아니다. 소소도 분명히 오작이 옷을 입은 걸 봤지만, 당황한 나머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치우는 황급히 일어나서 몸도 못 닦고 옷을 주워 입었다.
"너 왜 여깄어? 희운이랑 강제명은?"
치우의 물음에 소소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노출광. 너 나보다 이쁜 여자 본 적 있어?"
귀령성모가 소소보다 좀 더 이쁘긴 한데, 요괴에다 이미 죽었다. 게다가 치우는 있다고 하면 안 될 것 같은 강한 직감을 받고 고개를 부드럽게 저었다.
"근데 강제명 할머니는 왜 내가 싫다고 하면서 내쫓을까?"
소소는 치우의 알몸을 본 이후로 시집 못 갈까 봐 걱정이 태산이었다. 다행히 바로 곁에 괜찮은 조건의 네 남자가 있었고, 이모 저모 따지다가 강제명으로 정했다.
강제명 역시 소소를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래서 소소는 강제명을 따라 염환국까지 갔다.
그러나 강제명의 할머니가 극렬히 반대하는 바람에 결국 쫓겨났다.
"강제명은? 네가 가는 걸 그냥 지켜봤어?"
"왕이잖아. 중요한 일도 아닌데 백성을 버리고 떠날 순 없지."
소소의 대답에 치우는 버럭 화냈다.
"뭐 그런 놈이 다 있어? 고작 할머니가 반대한다고 포기해?"
"고마워."
치우가 자기편을 들어주자 소소는 코를 훌쩍였다.
"이제 어쩔 생각입니까?"
오작의 무덤덤한 말투가 애절하던 분위기를 박살 냈다.
"어쩌긴. 너희랑 같이 다녀야지. 왜? 너도 날 쫓아낼 거야?"
"아닙니다. 대신 쓸데없는 질문은 삼가기를 바랍니다."
오작이 순순히 동행을 허락하자 치우와 소소 모두 의심 가득한 눈을 하고 오작을 뚫어지라 바라봤다.
"뭐야? 설마 나한테 반했어? 난 나보다 스무 살 많은 할아버지한테 시집갈 생각 없으니까 미련 있으면 빨리 버려."
"동행을 허락하지 않으면 몰래 따라와서 훼방 놓을까 봐 걱정해서입니다. 우린 사람을 찾는 중이거든요. 매우 중요한 사람이고 최대한 빨리 찾아야 해서 누구든 방해하면 죽여버릴지도 모릅니다."
"흥!"
소소는 오작이 자신을 떼 놓으면 따라다니며 괴롭힐 생각이었다. 자신의 속을 속속들이 읽은 오작이 두렵기도 하고 밉기도 했다.
"형, 너무 겁주지 마. 아직 애잖아."
"뭐야! 나 열네 살이야. 생일은 이월 이일. 너도 열네 살이라고 했지? 너 생일 언젠데?"
"형. 말이 배부른 거 같은데 출발할까?"
그제야 오행마를 발견한 소소가 입을 커다랗게 벌렸다.
"저 말이 네 거야?"
"음. 그건 아닌데 우리 친해."
"저 말은 아무나 안 태웁니다. 괜히 몰래 타려다가 말에게 차여서 마음 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렇게 예상치 못한 일행이 늘었다.
- 작가의말
예상치 못하기는 개뿔. 예언 댓글이 이미 올라왔는데.
그렇다고 마지막 문장 지운다면 글쟁이 체면이 말이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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