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를 삶는다
허겁지겁 도망치던 운사와 우사는 추적자가 계속 보이지 않자 급히 부적을 태워 은성진을 펼쳤다. 법력은 넉넉히 남았지만, 몸이 너무 지쳐 휴식이 필요했다.
"이제 어떡하지?"
풍백은 안타깝게도 황제한테 잡혀 죽임을 당했고, 뇌공은 평생 발설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고 벽력문으로 갔다.
풍백과 마찬가지로 문파가 망해 의지할 곳이 없는 운사와 우사는 무령의 도움으로 미리 위험을 알고 피한 덕분에 아직 숨이 붙어있다.
"차라리 그때 구려국에 투항할 걸 그랬어. 구려국의 왕자와 왕비를 죽인 건 풍백과 뇌공이잖아. 우리 둘은 그러한 사실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고."
치우의 부모를 기습으로 죽인 자는 다름 아닌 풍백과 뇌공이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청제까지 셋만 알았다. 청제가 죽은 후 운사와 우사는 구려국에 몸을 기탁하자고 주장했고 풍백과 뇌공은 희운한테 가자고 했다.
무력이나 여러 면에서 부족한 운사와 우사는 어쩔 수 없이 둘의 의견을 따랐으나 결국엔 황제한테 토사구팽당했다.
"다 그 소소라는 년 때문이야."
탁록대전에서 치우의 목을 베긴 했지만, 세세하게 따지면 황제의 패배나 다름없다. 가뜩이나 커다란 땅덩이를 다스리기 힘든데 치우 한 명한테 패배 직전까지 몰렸다는 사실을 들키면 어렵게 통합한 국가가 사분오열될 것이다.
그래서 탁록대전에 관해 거짓을 꾸미게 되었다. 어차피 결과는 치우가 지고 황제가 승리한 것이기에 과정을 바꾸는 데 주력했다.
소소의 모습을 한 요괴는 그날 전투에 참여한 만 명이 넘은 병사를 법술로 미혹하여 조작된 과정을 주입했다. 그러나 술사나 요괴들까지 속이는 건 어려워서 그대로 뒀다.
아무리 천호天狐라도 만 명이 넘은 자들한테 완전한 거짓을 주입할 순 없다. 그래서 기억을 왜곡하여 적군과 아군을 바꾸는 방식을 사용했다.
우선 치우의 부하인 풍백과 뇌공이 풍뇌신을 불렀으나 황제가 일검으로 물리쳤다. 이어서 운사와 우사가 치우를 위해 비와 구름을 부르고 안개를 불러 시야를 가렸다.
치우의 군대가 배를 타고 황제 군대를 기습하려고 했는데, 이때 한발이 나타나서 물을 없애고 응룡이 나타나서 안개를 없앴다.
그리고 치우의 군대와 정면 대결을 펼쳤는데, 치우가 법술로 악한 존재들을 불렀다. 그에 황제의 동맹인 구천현녀가 오행진으로 악귀들을 물리쳤고, 어려운 싸움 끝에 황제가 치우의 목을 벴다.
일방적으로 당하는 과정을 왜곡하는 바람에 뇌공 등은 치우의 수하가 되었고, 한발과 응룡은 황제의 동맹이 되었다.
여기서 괴리감이 생겼다. 황제를 비롯해 요괴나 술사들은 진실을 알지만, 병사들은 주입된 거짓말을 진실로 믿었다.
이들은 자신이 아는 바를 널리 퍼뜨렸고 어느새 청제한테서 넘어온 넷은 적이 되었다.
처음에는 괜찮았으나 소문이 널리 퍼지며 넷을 죽여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황제는 결국 여론을 못 이겨 이들을 죽이기로 했다.
뇌공은 협약을 맺고 벽력문으로 보낸 후 가짜를 참수했다. 제자가 둘뿐인 암유문의 풍백은 저항도 못 하고 잡혀서 참수당했다.
운사와 우사는 무령이 경고한 덕분에 미리 알고 도망쳤으나 반나절도 안 되어 추적자가 따라붙었다.
폭우를 소환하여 시야를 가리고 흔적을 지운 덕분에 떨쳐내긴 했지만, 냄새를 숨기는 방법을 제대로 몰라 언제 따라잡힐지 모른다.
"나랑 손잡는 건 어때?"
갑자기 누군가가 은성진을 비집고 들어왔다. 깜짝 놀란 운사와 우사는 손으로 법력을 끌어모으며 수비 태세를 취했다.
"나다. 공공."
운사와 우사는 공공을 도와 축융을 춘우산에 묶은 적 있다.
"저희를 구해주십시오."
운사와 우사는 바로 넙죽 엎드려 절을 올리며 애원했다.
"이미 망한 내가 무슨 힘이 있어 너희를 구하겠느냐. 다만, 예전에 도움을 받았던 정을 생각해 방법을 알려주겠다."
운사와 우사는 갈망의 눈빛으로 공공을 쳐다보며 몸을 일으켰다.
"황제를 죽이거나, 황제가 너희를 잊게 만들면 된다."
"자세히 가르쳐 주십시오."
"노산盧山에 커다란 폭포가 있는 건 알지?"
"네. 몇 번 방문한 적도 있습니다."
"그 폭포의 뿌리가 하늘에 있다. 거기에 기우제 제단을 만들어 비를 내리면 황제의 땅에 홍수가 질 것이다."
운사와 우사는 겁에 질려 대답하지 못했다. 청제나 황제 밑에 있으면서도 주로 비를 내려 땅을 비옥하게 하는 일을 했다.
나쁜 궁리는 많이 냈지만, 실행하는 건 보통 뇌공과 풍백이었다.
직접 수만 혹은 수십만이 죽을지도 모르는 짓을 하라고 하니 속이 떨려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면 그냥 죽든가."
죽는 것보다는 나쁜 놈이 되는 게 낫다는 생각에 운사와 우사는 이를 꽉 악물었다.
"조언을 따르겠습니다."
운사가 입을 열자 우사도 고개를 끄덕여 같은 생각임을 밝혔다.
"그럼 가자."
공공은 작은 홍수를 불러 운사와 우사를 태웠다. 셋을 태운 홍수는 순한 망아지처럼 공공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분고분 달렸다.
"이 자리와 저 자리에 제단을 지어라. 나도 도울 테니 날 위한 제단은 저곳에 쌓아라."
운사와 우사는 법술로 제단을 쌓았다. 그러다 문득 드는 의문이 있어 공공한테 질문했다.
"그런데 공공께선 왜 우릴 돕는 것입니까? 황제와 직접적인 원한은 없는 줄 압니다."
"이대로는 황제가 천하를 통일할 것이다. 그러면 난 영원히 기회가 없겠지. 황제가 큰 타격을 받아 작은 나라들이 난립해야 내가 재기할 수 있다."
공공의 말에 운사와 우사는 의심을 깨끗이 지우고 제단을 쌓는 일에 열중했다. 공공이 제공하는 심해수 덕분에 법력이 마를 걱정이 없고, 좋은 음식과 따뜻한 잠자리에서 쉰 덕분에 몸의 피로도 빠르게 풀렸다.
거기에 추적자가 언제 나타날지 걱정되어 서두른 덕분에 보름도 안 되어 커다란 제단 세 개를 완성했다.
운사와 우사의 것은 칠 층의 간단한 제단이었고 법력이 넘치고 경지도 높은 공공의 제단은 무려 사십구 층으로 지었다.
"나는 비를 내리는 일을 잘 모르니 법력만 보태겠다."
운사와 우사는 해저빙을 입에 물고 법술을 펼쳤다. 선천영보인 무령의 도움으로 구름이 순식간에 모였다.
그러나 구름을 모은다고 끝이 아니다. 구름에서 내리는 비가 정확히 원하는 곳에 떨어지게 해야 한다.
그냥 마른 땅을 적실 생각이라면 그럴 필요 없지만, 지금은 비를 모아 홍수를 만들려는 것이다.
운사는 구름을 모으는 데 집중하고 우사는 비를 내리는 것과 비가 떨어질 곳을 제어하는 데 집중했다. 공공은 자신의 법력을 제단으로 보내 둘이 마음껏 가져다 쓰게 했다.
"됐다!"
공공이 기쁘게 외쳤다. 반나절의 노력으로 우사가 비를 폭포와 겹치게 했다.
빗줄기와 폭포 줄기가 겹치고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섞이고 엮이기 시작했다. 결국엔 빗줄기와 폭포 줄기는 잘 꼰 새끼처럼 하나로 엉켰다.
"당겨라."
공공의 지시에 우사는 공공의 제단은 물론 운사의 제단에 깃든 법력까지 끌어다 빗줄기를 강화했다. 강해진 빗줄기는 폭포가 떨어지는 것보다 더 빠르게 흘렀다.
함께 묶인 빗줄기가 빨라지자 폭포도 함께 끌렸다. 뿌리를 하늘에 둔 폭포는 평소보다 훨씬 큰 힘으로 물줄기를 요구했다.
"됐구나."
운사와 우사의 경지와 능력으론 아무리 많은 법력을 줘도 홍수를 일으킬 순 없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폭포와 빗줄기를 하나로 역은 후, 빗줄기를 강한 힘으로 당겨 폭포를 크게 만드는 것이었다.
"만족하지 말고 더 크게 가자."
공공의 격려에 운사는 다시 법력을 움직여 구름을 모았다. 그렇게 모은 구름을 우사가 비로 바꾼 후 커진 폭포와 합쳤다. 그리고 공공의 도움을 받아 강한 힘으로 빗줄기를 당겨 폭포를 키웠다.
이 과정을 수십 번 반복하니 진짜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물이 쏟아졌다. 흩날리는 빗방울과 달리 폭포는 크게 뭉쳐서 떨어졌고, 땅에 닿은 후에도 흩어지지 않고 뭉친 채 낮은 곳으로 흘렀다.
기진맥진한 운사와 우사는 제단 위에 쓰러졌다. 몸은 멀쩡하고 법력도 넘치는데 정신력이 고갈되어 손가락 까딱할 힘도 없었다.
"이젠 된 겁니까?"
가까스로 힘을 낸 운사가 질문했다.
"첫 단계는 완성했지. 이제 두 번째 단계가 남았다."
두 번째 단계가 뭔지 묻고 싶었지만, 운사는 꾹 참았다. 먼 곳을 바라보는 공공의 눈빛이 너무 진지해 질문한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때. 무령이 밝은 빛을 냈다.
[너희 악행이 하늘에 닿았다. 계약을 해지한다.]
"왜?"
[너희가 부른 홍수로 수많은 생명이 죽었다.]
운사와 우사는 어안이 벙벙해 서로 쳐다봤다.
[멍청한 것들. 마지막 가르침을 내린다. 인간만 생명이 아니다.]
운사와 우사가 불린 폭포가 산과 벌판을 휩쓸며 수많은 벌레와 동물을 죽였다. 그 모든 것이 둘의 악행으로 쌓였다. 무령은 원래 운사와 우사와 인연이 전혀 없었기에 악행이 일정 수준으로 차자 계약을 해지할 수 있었다.
그간 비를 내려 농사를 도우며 선행을 꽤 했지만, 원래 선은 잘 쌓이지 않고 악의 구렁텅이는 쉽게 빠지는 법이다.
둘과 계약을 해지한 무령은 공공한테로 날아갔다. 그러더니 방금보다 훨씬 밝은 빛을 뿜었다. 공공과 무령이 계약을 맺어버린 것이었다.
"처음부터 이게 목적이었습니까?"
운사가 덜덜 떨리는 몸을 주체하며 질타했다.
"겸사겸사라고 하지."
말을 마친 공공은 심해수를 벌컥벌컥 마시며 자신의 법력을 모조리 제단으로 보냈다.
"잘 봐라. 이게 진짜 홍수다."
말을 마친 공공은 중얼중얼 주문을 길게 외웠다. 주문에 따라 무령이 밝은 빛을 뿜고 제단이 흔들거렸다.
"천격홍류!"
공공의 외침에 노산이 떨었다. 그리고 우사와 운사가 키운 어마어마한 규모의 폭포가 부끄러울 정도로 크고 강한 물줄기가 하늘에서 쏟아졌다.
천격홍류의 법술로 뒤늦게 온 홍수는 먼저 출발한 홍수를 따라잡아 한입에 먹어 치워 자신의 덩치를 불렸다.
"저자도 악행을 쌓았는데 왜 계약을 유지합니까?"
공공이 불러온 홍수는 강이나 호수는 물론, 작은 샘과 우물까지 삼키며 덩치를 불렸다. 이대로는 세상을 모두 삼킬지도 모를 상황이다.
그런데 무령은 계약을 해지하려는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난 공공이다. 현무의 화신으로 세상에 해악을 끼쳐도 악행이 쌓이지 않아."
그때 무령이 입을 열었다.
[악행은 쌓이지 않지. 그러나 너도 모르는 게 있다.]
무령의 말은 운사와 우사한테 들리지 않았다. 원래 인연이 없던 상대여서 계약을 해지한 후에는 소리가 닿지 않는다.
"그게 뭐지?"
[네 경지보다 큰 힘을 휘두르면 반동이 온다는 사실이다.]
그때 우사가 공공을 삿대질했다.
"물이 됐다."
공공은 급히 고개를 숙여 자신의 하체를 바라봤다. 과연, 공공의 다리는 물처럼 변해서 출렁였다.
"가르침을 바랍니다. 우리 인연이 아직 남았다면 말입니다."
[법보가 되면 존재할 수 있다. 그게 아니면 넌 물이 된 후 제멋대로 흘러서 흩어질 것이다. 소멸은 아니지만, 소멸이나 다름이 없지.]
"법보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무령은 잠깐 고민하고 대답했다.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나와 합치는 것이다. 운이 좋으면 봉신책으로 하늘의 문이 열릴 때 함께 천계로 갈 수 있다. 하나는 네가 직접 법보로 변하는 건데, 동그란 물건에 깃든 후 법보가 되는 주문을 외우면 된다. 실패하면 그대로 소멸이고, 성공해도 자아를 갖춘다는 보장은 없다.]
공공은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합치겠습니다."
공공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무령이 공공의 심장에 깃들었다. 물로 변했던 다리가 다시 뼈와 고기로 이뤄진 평범한 육신이 되었다.
그러더니 공공의 몸이 조금씩 변화했다. 무엇으로 변했는지는 모르지만, 인간이 아닌 것만은 확실했다.
[동해로 가자. 거기에서 수련하여 용이 되면 승천할 수 있다. 승천에 실패하더라도 용왕이 되면 마찬가지로 신성을 얻어 영생할 수 있다.]
괴이한 형태로 변한 공공의 모습이 사라졌다. 공공이 제단을 비우자마자 하늘에서 쏟아지던 홍수가 제멋대로 날뛰었다.
가장 먼저 봉변을 당한 건 운사와 우사였다. 평생 구름과 비를 다스리며 살아온 둘은 홍수에 쓸려 채 일각도 버티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누가 저 괴이한 홍수를 다스리겠느냐?"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그러나 노산에서 시작한 홍수는 아니었다. 지세가 낮은 곳으로 흘러 바다로 향하던 홍수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탁록으로 전진했다.
"신이 해보겠습니다."
앞으로 나선 자는 우禹였다. 황제는 자신이 점령한 땅들을 새로 편제한 후 믿을 만한 수하들을 후侯로 임명하여 다스리게 할 작정이다.
가장 중요한 땅을 맡길 자로 우를 점쳤는데, 국가가 위태로운 상황에 선뜻 나서는 걸 보고 마음이 흐뭇했다.
"우에게 치수후治水侯의 직위를 내리고 나와 재상을 제외한 누구보다 높은 권리를 부여한다."
허리를 숙여 인사한 우는 바로 궁전을 떠나 홍수가 몰려오는 곳으로 달렸다.
"치수후, 굴을 파는 건 소용없다."
두더지 요괴가 말했다.
"높은 곳으로 흐르는 물이다. 굴을 판다고 힘을 잃지 않는다."
"그럼 벽을 쌓는 건?"
"벽을 쌓아 힘을 줄이는 건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힘의 원천을 끊지 못하면 소용없다. 장강의 물결은 힘을 잃어도 계속 강변을 덮친다. 그건 뒷물결이 앞 물결을 밀기 때문이지."
수달 요괴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럼 일단 벽을 쌓자. 새 요괴들은 이 홍수의 시작이 어딘지 정찰해라."
우의 명령에 요괴와 술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벽을 몇 개 쌓아야 하는가? 그리고 홍수가 돌아가면 어떡하지?"
"탁록을 비롯해 백성이 많거나 곡창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길을 우선하여 막는다. 나머지는 상황을 보며 임기응변한다."
요괴와 술사는 물론 건장한 병사들도 동원하여 벽을 쌓았다. 홍수의 힘을 뺄 예정이기에 높이에 집착하지 않고 단단하고 두껍게 지었다.
그런데 보름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홍수가 오지 않았다.
"내가 직접 확인하러 가겠다. 너희는 여기 남아서 계속 벽을 쌓아라."
우는 무기를 들고 경공을 펼쳐 홍수로 난리가 난 방향으로 달렸다. 반나절 달리니 그냥 바다가 덮쳐오는 게 아닌지 의심할 정도로 큰 홍수를 보았다.
그리고 홍수 앞에는 창을 든 키가 아주 큰 사내가 서 있었다.
"감히 존성대명을 여쭙겠습니다."
우는 창으로 홍수와 싸우는 사내한테 극도의 존경을 담아 질문했다.
"누군지 알 필요는 없다. 홍수가 힘을 잃은 뒤는 대비했느냐?"
"네?"
"홍수가 높은 곳으로 가는 건 자연스럽지 못한 힘을 품었기 때문이다. 그 힘이 소진되면 그냥 물이 되겠지. 그때 이 많은 물을 어떻게 할 작정이냐고."
그제야 우는 자기 생각이 너무 단순했음을 알았다.
"이 정도 물이 산에 배면 산이 허물어진다. 이 정도 물이 바다로 가면 바다와 가까운 땅이 잠긴다. 이 정도 물이 세상으로 흩어지면 들짐승은 물론 쉴 곳을 잃은 날짐승들도 죽는다. 어리고 약한 짐승이 많이 죽으면 인간의 사냥감이 사라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인간도 굶어 죽는다."
"도와주십시오."
우는 무릎을 꿇고 흐느꼈다. 이 홍수를 제대로 막지 못하면 얼마나 많은 백성이 죽을지 모른다.
"봐라. 이건 도단류라고 한다."
창을 든 사내는 성질을 부리며 덮치는 홍수를 강하게 때렸다. 홍수는 산산이 부서져서 흩어지다 다시 합쳤다.
"벽을 쌓아 막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그럼 소도류를 보아라."
사내는 창을 휘둘러 홍수를 끌어당겼다. 창에 끌려 원을 그린 홍수가 고개를 돌려 뒤따라오는 물결과 부딪혀 사라졌다.
"큰 힘을 여럿으로 갈라 약하게 한 후 처리한다. 경지가 높으면 방금처럼 상대의 힘을 그대로 돌려 두 배로 소모할 수 있지."
"그렇게 힘을 잃어도 물이 남으면 소용없는 것 아닙니까?"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알아야지. 남은 물이 바다로 흘러가도록 미리 물길을 내야 할 것 아니냐."
우는 자기 머리를 쾅 때렸다.
"그래서 물길을 낼 누군가가 오길 기다리며 홍수를 잡아두고 있었다."
"미련한 놈입니다. 자세히 가르쳐 주십시오."
"사람을 시켜 바다로 가는 물길을 최소 세 개 내라. 물길을 다 내면 하늘에 난 구멍을 틀어막는다. 그다음 홍수를 힘 잃게 하면 물이 물길을 따라 바다로 갈 것이다. 피해가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이게 최선이다."
"구멍은 어떻게 막습니까?"
"이미 대기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아라. 넌 물길을 내면 된다."
우는 창을 든 사내의 분부대로 물길을 내도록 지시했다. 푸석푸석한 땅은 병사들이 파고 높은 산이 나타나면 요괴들이 길을 냈다. 단단한 바위를 만나면 술사들이 법술로 깨면서 동해까지 가는 길을 세 개 냈다.
사내가 분부한 바를 다 마치고 찾아가니 홍수는 그새 덩치를 키워 더 흉포해졌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됩니까?"
"이건 태상노군이 만든 치수봉이다. 정식 이름은 정해신침定海神針이지. 이걸 들고 노산으로 가거라. 거기에 도끼를 든 남자와 녹색 옷을 입은 여자 그리고 날개가 달린 용이 있을 것이다. 물줄기를 끊은 다음 그 몽둥이로 구멍을 막아라."
대우는 정해신침을 받아서 소매에 넣은 다음 노산 방향으로 달렸다. 홍수를 피하느라 꽤 시간이 걸렸지만, 쉬지 않고 달린 덕분에 그리 늦지도 않았다.
"네가 구멍을 틀어막을 아이냐?"
도끼를 든 사내가 맑은 목소리로 질문했다. 녹색 옷을 입은 여인은 아름답기 그지없었고, 투명한 날개를 단 황금빛 용은 기운이 무척 온화했다.
"그렇습니다."
"설명은 한 번만 하니까 새겨들어. 내가 먼저 도끼로 물줄기를 자를 거야. 그다음 저분이 법술을 펼친다. 그리고 이분이 구멍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다음에 네가 정해신침으로 구멍을 막으면 끝이다."
우는 정해신침을 꽉 잡고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그럼 바로 시작하자."
말을 마친 사내는 우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틈도 안 주고 도끼를 휘둘렀다. 놀랍게도 사내의 도끼에 베인 물줄기가 그대로 잘렸다.
"적지천리."
녹색 옷의 아름다운 여인이 펼친 법술에 물줄기가 말랐다. 그때 황금색 용이 날개를 움직여 몸을 솟구쳤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모습이 사라졌다.
"방금 용이 사라진 곳이 하늘에 난 구멍이다. 빨리 몽둥이를 넣어."
우는 훌쩍 몸을 날려 용이 사라진 곳에 몽둥이를 쑤셔 넣었다. 어느새 덩치 큰 사내도 법술로 날아 우를 도와 몽둥이가 빠지지 않도록 받쳤다.
"용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막대기를 감아 고정해서 구멍을 막을 거야. 구멍이 완전히 막히면 그땐 승천하여 천계로 갈 거고. 그러니까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말고 힘이나 보태."
우는 덩치 큰 사내와 함께 꼬박 사흘 동안 몽둥이를 받치고 버텼다.
"됐다. 용이 정해신침을 고정했으니 손을 떼도 된다."
우와 사내는 손을 떼고도 한참 지켜보다가 몽둥이가 밀려나지 않음을 확신하고 땅에 내려왔다.
"이제 어떻게 합니까?"
"어떻게 하긴. 형님한테 합류해야지."
우는 둘과 함께 창을 든 사내와 만났던 곳으로 갔다. 도끼를 든 사내는 경공이 평범했지만, 녹색 옷을 입은 여인은 제멋대로 날뛰는 홍수를 밟고 평지처럼 달렸다.
"형님, 구멍을 막았습니다."
도끼를 든 사내가 창을 든 사내한테 공손하게 말했다.
"거기 이름이 우라고 했지? 내가 소도류를 가르쳐주마."
우는 사내가 가르친 구결을 따라 소도류를 익혔다.
"내 아우가 도끼로 홍수를 자를 거야. 그리고 난 소도류로 홍수의 힘을 잃게 할 거고. 넌 힘을 잃은 물을 세 물길로 인도하는 역할이다. 어디도 물이 넘치지 않도록 골고루 보내라."
말이 끝나자마자 도끼를 든 사내가 홍수를 잘랐다. 하늘의 구멍을 막아서인지 잘린 홍수는 쉽게 붙지 못했다. 그리고 창을 든 사내가 연신 잘린 토막들끼리 충돌케 하여 힘을 소모했다.
그렇게 힘을 잃어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은 우가 소도류로 세 곳의 물길로 분배했다. 물길을 파는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기에 어느 물길로 얼마큼의 물을 보내야 하는지 환했기에 우의 손속에는 거침이 없었다.
꼬박 십삼 일을 잠도 안 자고 노력한 덕분에 홍수를 완전히 잠재웠다. 일부 제멋대로 날뛰며 작은 피해를 준 홍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도끼에 잘린 다음 힘을 잃고 우가 판 물길을 따라 동해로 흘러갔다.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랑 함께 가시면 황제한테 사실대로 아뢰고 큰 상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똑똑한 것 같은데 모자라구나."
창을 든 사내가 탄식했다.
"하나 묻겠다. 황제의 자리가 그렇게 든든하더냐?"
우는 황제를 함부로 품평하는 게 불충이라는 생각에 입을 열지 않았다.
"황제의 나라가 아니라 천하가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고작 석 달도 안 되는 사이에 네가 훌륭하게 막았다. 이대로 돌아가면 백성의 칭송이 자자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헌원의 자리가 위태롭지 않겠느냐."
우는 아니라고 말하지 못했다. 비록 탁록대전 이후에 황제의 수하가 되어 직접 보진 못했지만, 뇌공을 비롯한 자들이 어떤 결말이 되었는지는 소문으로 들어서 안다.
"사냥감이 사라지면 사냥개는 삶는 법이다. 쓸모는 없고 밥은 축내니까. 살고 싶으면 돌아가지 말아라."
"평생 숨어서 살라는 말씀입니까?"
"북부에서 동쪽으로 가면 나라가 하나 있다. 거기에 가서 이 편지를 보여주면 중히 써줄 것이다."
우는 잠깐 망설이다가 결국엔 편지를 받아 소매에 넣었다. 편익조를 보내도 되는데 굳이 편지까지 써준 상대의 성의를 무시할 수 없었고, 황제를 존경하나 창을 든 사내의 말대로 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대신 하나만 묻자. 지금 낙일궁은 누구 손에 있느냐? 예전에 역목이 쓰던 활 말이다."
- 작가의말
대우치수를 각색했습니다. 그리고 탁록대전의 기록이 반대로 된 이유도 과학적으로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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