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안무주요有眼無珠妖
한발현위旱魃顯威
한발이 위세를 뽐내어
수요패퇴水妖敗退
물 요괴를 물리치다
희운과 그 일행이 배에 오르면서 자리가 좁아졌지만, 가까운 곳에서 내리는 사람이 있어 다시 널찍해졌다.
- 우리 당했다.
치우가 손가락으로 오작에게 말했다.
- 사람이 요괴보다 무서워.
오작도 손가락으로 대답했다.
호객꾼은 오작과 치우의 덩치를 빌미로 뱃삯을 두 배로 받았다. 그러나 뱃사공들은 희운과 그 일행에게 한 사람 몫만 받았다. 그리고 배가 출발한 지 사흘 되는 날, 배엔 오작 일행과 희운 일행만 남았다.
팔다리 쭉 뻗고 누워도 자리가 남아돌았다. 말투나 옷차림 등으로 외지인임을 확신한 호객꾼이 수작을 부려 둘의 돈을 뜯어먹은 거였다.
"이제부턴 멈추지 않고 대별산까지 갑니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여기서 구매해야 합니다."
뱃사공의 말에 움직이는 사람은 없었다.
뱃사공들은 무거운 돌멩이 몇 개를 배에 실은 후 출발했다. 물살이 조금씩 세졌지만, 돌멩이 덕분에 배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반복되는 풍경에 싫증 난 치우가 오작을 졸라서 손으로 하는 대화에 단어를 추가하며 시간을 보낼 때.
"멈춰라!"
마치 귓가에 대고 외치는 듯한 쩌렁쩌렁한 소리와 함께 배가 서서히 느려졌다.
"호걸豪傑. 중부의 강에선 배에 탄 인간을 공격하지 않기로 서로 협약을 맺었습니다."
이런 일이 꽤 있었는지 뱃사공은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안다. 나도 인간을 공격할 생각이 없다. 대신 저기 요괴 셋은 죽여도 되겠지?"
배를 세운 요괴는 물고기가 분명했다. 그러나 견문이 꽤 넓은 오작도 무슨 물고긴지 구분하지 못했다.
"우린 인간인데."
치우는 요괴 취급받기 싫었다.
"너희 둘은 잘 모르겠는데, 저 여자는 요괴가 분명해."
"자신 있습니까?"
오작의 질문에 물고기 요괴는 워낙 큰 눈을 더 크게 떴다.
"무슨 말이야?"
"우리 손에 죽은 요괴가 한둘이 아니어서 말입니다. 솔직히 당신처럼 내단 만든 지 백 년도 안 되는 요괴는 우리 눈에 차지 않습니다."
오작의 협박에 물고기 요괴는 콧김을 씩씩 뿜으며 화냈다.
"감히 내 영지에서 날 협박해? 네놈이 인간이어도 이건 용서하지 못한다."
- 형, 뭐야?
- 숙부 따라 해 봤는데, 난 안 되네.
오작은 자단이 했던 말을 토씨 조금만 바꿔서 써먹었다. 주작란을 찾아 중부와 남부를 돌아다니며 자단이 요괴를 만날 때마다 늘 하던 말이었다.
처음엔 당연히 씨알도 안 먹혔지만, 자단의 악명이 퍼지면서 저 말을 들은 요괴들은 알아서 물러났다.
오작과 치우는 싸울 준비를 하면서 희운과 그 일행을 살폈다. 둘은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사람처럼 지금 벌어진 일에 아무 관심도 없었다.
"백 살도 안 되는 어린놈이 눈깔만 컸지 보는 눈이 없구나."
한발이 호기롭게 나섰다. 어린 나이에 납치되어 요괴 영지에만 있다가 다른 요괴한테 팔렸다. 다행히 홍영창이 살려줘서 목숨을 부지했지만, 중부와 동부의 변경부터 요수촌까지 가며 인간에게 엄청나게 속고 고생했다.
그래서 첫 만남에 인간을 불신하는 모습을 보였고 성격도 괴팍한 듯했다.
그러나 법술을 얻은 후부터는 새로 태어난 게 아닌지 싶을 정도로 달라졌다. 나이가 백 살이 넘은 지금에야 사춘기를 겪는 듯한 모습이다.
"내려와 나랑 싸우자. 너희 셋이 안 내려오면 이 배는 내 영지를 지날 수 없다."
"네가 올라와. 여긴 바닥이 평평해서 싸우기 좋아."
한발은 중부에서 요괴가 배와 마차를 공격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래서 물고기 요괴한테 배에 오르라고 당당하게 외쳤다.
"봤지. 이건 내 탓이 아니다. 너희 배에 탄 요괴가 억지를 부리는 거라고."
배는 물고기 요괴의 영지에 있다. 물고기 요괴의 허락이 없으면 아무리 애써도 벗어날 수 없다.
"세 분은 배에서 내렸으면 하오."
유웅국의 왕자라는 희운이 나섰다.
"우린 정당하게 뱃삯을 내고 탔어. 네가 뭔데 내리라 마라야."
치우 역시 물에서 싸우긴 싫었다. 섬에서 자랐지만, 수영 실력이 오작보다도 못하다.
"뱃삯을 돌려드리겠습니다. 배에서 내리세요."
셋이 배에서 안 내리면 물고기 요괴는 배를 지나 보내지 않는다. 사람 나르는 거로 돈을 버는 뱃사공들에겐 큰 손해다.
"우린 뱃삯을 많이 내고 앉았습니다. 덩치가 커서 자리도 넓게 차지하고 밥도 많이 먹는다며 세 배를 내라고 하더군요."
오작의 반격에 뱃사공은 말문이 막혔다. 호객꾼이 외지인을 상대로 가끔 장난치는 걸 알지만, 어차피 나루터 마을의 절반은 같은 성을 쓰는 친척이다. 그래서 눈감아 줬는데, 이 중요한 시각에 문제가 될 줄은 몰랐다.
대별산까지 가는 뱃삯은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그 뱃삯은 내가 대신 주겠소. 우리가 낸 뱃삯의 세 배면 되는 거 아니오."
희운의 일행이 품에서 붉은 돌멩이를 꺼내 오작에게 던졌다. 색깔이 엄청나게 고른 상급 마노였다. 뱃삯의 여섯 배가 아니라 서른 배도 넘은 물건이었다.
그렇게 오작과 치우 그리고 한발은 배에서 쫓겨났다.
"봤지. 인간이 요괴보다 훨씬 야박하다니까."
한발은 오작이 가르친 방법으로 물 위에 서서 말했다. 비록 오랜 기간 법력을 착취당했지만, 덕분에 법력 모으는 재주가 늘었다. 거기에 자신과 궁합이 맞는 법술을 얻으며 경지까지 폭발적으로 상승한 덕분에 한발의 법력은 무척 많았다.
풍백과 견줄 수 있는 치우도 못 펼치는 재주를 쉽게 해냈다.
"잘생겼다고 소리 지를 땐 언제고."
치우가 툴툴댔다. 그러나 속으론 무료하게 배를 타고 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조금 흥분했다.
그때 물고기 요괴가 날이 꼬불꼬불한 이상한 창을 들고 일행을 덮쳤다.
"죽어!"
치우는 소매에서 칼을 꺼냈다. 목을 찌르는 상대의 창을 무시하며 커다란 칼을 힘껏 내리쳤다. 물고기 요괴 역시 자신의 단단하고 미끄러운 비늘을 믿고 치우의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퍽 소리와 함께 물고기 요괴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목을 찌른 창은 상대의 법보에 막혀 아무런 상해도 주지 못했다. 그리고 물의 저항을 받아 위력이 준 게 분명한 상대의 공격에 물고기 요괴의 몸이 저릴 정도로 아팠다.
꼬리를 분주하게 흔들어 일행에게 멀어진 요괴는 대상을 바꿔 오작을 노렸다.
오작은 몸을 살짝 비틀어 요괴의 창을 겨드랑이로 사이로 흘렸다. 그리고 저홍패로 물고기 요괴를 감쌌다.
치우의 거력으로도 물고기 요괴한테 제대로 된 타격을 주지 못했다. 그래서 오작은 불을 상대할 때의 식멸류처럼 요괴를 가둬두려고 했다.
요괴는 저홍패가 채 감싸기 전에 몸을 펄떡이며 빠져나갔다. 그러나 빠져나가는 경로가 너무 뻔해 노리고 있던 치우한테 걸렸다. 치우의 칼이 다시 물고기 요괴의 몸통을 세게 두드렸다.
"흥. 내 허락이 없으면 너흰 영지에서 못 나간다. 너희가 굶어 죽을 때까지 영지에 가두겠다."
치우의 칼에 두 대를 맞은 요괴는 싸움을 포기하고 숨어버렸다. 오작과 치우는 미처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원래 물고기 요괴들이 좀 멍청해. 새 요괴는 그래도 똑똑한 놈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물고기는 그런 얘기가 없어."
싸움을 구경하기만 하던 한발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대책이 있습니까?"
오작의 질문에 한발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준 법술이 이럴 때 참 유용하지."
오작과 치우는 물고기 요괴의 기습에 대비했다. 치우는 감각이 뛰어난 편이고, 오작은 성감을 얻은 덕분에 은신술도 쉽게 간파한다. 둘은 주문을 외우는 한발을 철통같이 보호했다.
"적지천리赤地仟里!"
처음으로 법술을 제대로 펼치는 한발은 흥분했는지 뾰족하게 소리 질렀다.
"황고류가 이렇게 강한 무공이었어?"
치우와 오작은 한발의 법술이 야기한 결과에 깜짝 놀랐다.
황고류는 송곳을 통해 한발에게 가면서 변형되었다. 원래는 나무의 기운을 상대하는 기술이었는데 지금은 물의 기운을 상대하는 법술로 바뀌었다.
한발이 펼친 적지천리는 물고기 요괴의 영지를 없애버렸다. 강의 한 단락을 자기 영지로 삼았는데, 한발이 적지천리로 부른 가뭄의 기운이 영지를 구성한 법력을 깡그리 지워버렸다.
결과, 물고기 요괴의 영지가 서서히 사라졌다.
"어푸, 너희 뭐야!"
법력이 지워지며 영지는 오히려 원래 주인에게 적대적으로 변했다. 영지가 완전히 사라지면 그냥 강물이나 다름없게 변한다. 그러나 사라지는 과정엔 물고기 요괴한테 오히려 그냥 물보다 못했다.
치우와 오작은 물고기가 물에서 허둥대는 희귀한 광경을 흥미롭게 구경했다. 물고기 요괴의 질문엔 대답해줄 의무가 없을뿐더러, 알려주고 싶어도 그 이유를 몰랐다.
"형. 나 강에서 사는 물고기 맛보고 싶어."
치우의 말에 물고기 요괴는 꼬리와 지느러미를 세차게 펄떡였다.
강의 한 단락을 영지로 만드느라 수십 년 세월을 노력했다. 겨우 성공하여 오가는 배들 상대로 재물을 얻어내고 있는데 이대로 죽긴 싫었다.
"그만 끝내자."
오작은 수영으로 물에서 허우적대는 요괴한테 접근했다. 요괴가 어떻게든 멀어지려고 애썼지만, 오작의 마수를 피하지 못했다.
오작은 부적을 붙인 밧줄로 물고기를 꼭꼭 묶어 치우에게 건넸다. 치우는 물고기를 등에 메고 강변으로 헤엄쳤다.
"형, 왜 배에서 내리자고 한 거야?"
오작이 강변에 오르기를 기다려 치우가 질문했다.
"희운이라는 작자랑 함께 온 놈이 염환국炎桓國의 국왕 강제명姜帝明이야. 바로 신농의 아들이지."
치우는 오작의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숙부가 청제의 의뢰를 받고 떠난 후 약 석 달 뒤에 신농이 죽었어. 그때 청제는 목숨 하나를 의뢰하겠다고 했고. 강제명이랑 엮이는 게 께름칙해서 배에서 내린 거야."
백 년도 안 된 물고기 요괴를 해치우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자기 영지라고 기고만장한 요괴를 기습으로 죽이는 건 더 쉽다.
그러나 오작은 강제명과 같은 배를 타는 게 찝찝하여 요괴를 자극하여 배에서 내렸다.
'이 만남이 운명이라면, 운명에 대한 작은 반항이라고 할까.'
자단은 늘 오작에게 운명에 저항하라고 말했다. 태어나자마자 저주에 걸린 조카가 절망할까 봐 걱정한 것이었다.
그리고 봉래도에서 대단한 재능을 타고난 사형들 상대로 경쟁심을 불태우며 노력한 결과, 타고난 투쟁심이 더욱 강하게 표출되었다.
오랜 기간 숙부의 언행을 보고 자란 오작이기에 운명 혹은 천명이라는 것에 대한 반감이 대부분 사람보다 훨씬 컸다. 그리고 자단처럼 격렬하진 않지만, 뿌리 깊어 가뭄도 잘 버티는 나무처럼 끈질긴 투쟁심을 갖췄다.
"나는 솥을 만들어 물을 끓일게. 넌 물고기 손질해. 아가미 떼고 내장 뽑고 비늘 벗기고 지느러미 자르면 돼."
오작은 모닥불을 크게 지핀 후 강변의 흙을 손으로 빚어 솥을 만들었다. 대충 빚은 솥을 불에 구운 후 강물을 부어 팔팔 끓였다.
눈에 보이는 과일이나 풀들을 함께 넣어 끓이다가 손질이 끝난 물고기를 솥에 넣었다.
"이 잔인한 놈들. 요괴 고기를 먹을 생각을 하다니."
"요괴이기 전에 물고깁니다."
물고기가 어느 정도 익자 오작은 소매에서 술병을 꺼냈다.
"고기가 어느 정도 익은 다음에 술을 부으면 비린내를 없앨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넣으면 효과가 별로니까 꼭 고기가 어느 정도 익은 다음에 넣어야 합니다."
물고기가 스물이 먹어도 남을 정도로 컸지만, 민물고기를 처음 맛보는 치우의 입맛에 맞은 탓에 뼈만 남았다. 한발은 평소에 음식을 입에 대지도 않았지만, 이번엔 예외를 두고 부지런히 먹었다.
"오늘은 마른 땅을 찾아 자고 내일 출발하겠습니다."
오작은 솥에서 물고기 뼈를 건져 소매에 넣었다. 솥에 남은 국을 강물에 쏟은 후 마른 풀로 물기를 닦았다. 그리고 솥에 숯을 담아 마른 땅으로 옮겼다.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잔 한발은 꽤 늦게 깼다. 잠에서 깨니 오작과 치우가 강변에서 뭔가 하고 있었다. 기지개를 켜며 다가가니 신중하게 고른 나무들도 뗏목을 만들고 있었다.
"너희는 못 하는 게 없어?"
의욕이 없는 듯 대충하는데 어느새 그럴듯한 뗏목이 뚝딱 만들어졌다. 손으로 뗏목을 들어 균형이 잘 맞는지 확인한 치우가 오작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솥도 챙겨."
오작은 뗏목 중심에 솥을 고정한 후, 마른 장작을 가득 넣었다. 장작들이 솥 안에서 빠르게 타서 숯이 되었다.
"귀린어鬼鱗魚 불러."
오작은 소매에서 물고기 뼈를 꺼내며 말했다. 치우는 귀종술로 귀린어를 불렀다.
물고기 뼈에 깃든 귀린어는 뼈다귀 주제에 무척 활발했다. 오작과 치우는 밧줄로 귀린어에게 굴레를 씌웠다. 귀린어가 고분고분 굴레를 쓰고 뗏목을 끄는 걸 본 한발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너희 진짜 인간 맞아?"
"당신은 법력이 많은 편입니다. 법술을 못 익히더라도 법력 자체에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고 시도하십시오. 우린 그저 자기 힘을 정확히 이용할 뿐입니다."
"너, 내 사부 할래? 나 정도 요괴면 꽤 큰 전력이 될 텐데."
오작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번 일만 끝나면 우린 작별할 겁니다. 그러니 필요 이상의 관계는 만들지 맙시다."
- 작가의말
유안무주요 - 눈이 있어도 망울이 없는 요괴.
웬만큼 연식이 되는 요괴라면 한발의 강함을 알아보고 물러났을 텐데. 참 안타깝습니다. 비록 이렇게 쉽게 갔지만, 그는 맛있는 물고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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