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우탄귀단蚩尤呑鬼丹
오작어이吾作魚餌
내가 미끼를 할 테니
여조귀어汝釣鬼魚
넌 귀어를 낚아라
천일도의 푸름을 질투한 바다가 파도를 선봉장으로 세워 침범했다. 그러다 검은 바위로 된 절벽에 막혀서 분통을 터뜨린다.
그러나 곧 천일도 서쪽의 백사장을 적시는 데 성공했다는 아군의 첩보에 하얀 거품을 물며 기뻐한다.
물론, 썰물이 지면 백사장이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을 오랜 세월로 터득한 바위 절벽은 바다의 환호에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그러나 절벽이 미처 모르고 바다만 아는 비밀이 있었다. 수만 년 전 서쪽 백사장도 사실 바위투성이였는데, 세월에 조금씩 마모되어 결국 백사장이 되었다는 사실.
"치우, 너 똑바로 안 해!"
타의로 절벽이 얼마나 단단한지 체험한 오작이 파도 사이에서 외쳤다. 센 파도가 올 땐 밧줄을 당겨 허공에 뜨게 하는 게 사전 약속인데, 장난꾸러기 치우는 단 한 번도 지키지 않았다.
"치우는 머리가 둔한걸."
멸천칠절공의 한 구결을 오작 딴에는 아주 쉽게 풀어서 설명했는데 치우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머리가 둔하다고 타박 한 번 했더니 보름이 지난 인제야 복수의 칼날이 돌아왔다.
'부유술浮遊術은 왜 이렇게 어려울까?'
거창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그저 몸을 허공에 띄우는 법술이다.
현무루와 주작란에 이어 청룡주까지 복용한 오작은 기운의 제어가 예전보다 쉽다. 하지만 법술을 펼치는 건 여전히 어려웠다. 열 번 시도하여 한 번이라도 성공하면 하루 내내 기뻐할 정도다.
그때, 뭔가 거대한 것이 오작의 발을 툭 건드렸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인 오작 눈에 거북처럼 등딱지가 붙은 열 장(17m) 길이의 물고기가 보였다.
등의 단단한 껍데기에 말라 죽은 거머리를 연상케 하는 문양이 빼곡해서 귀갑어鬼匣魚 또는 귀면갑鬼面匣이라고 부르는 바닷물고기다.
오작의 분위기가 달라진 걸 확인한 치우 역시 장난기를 싹 거두고 진지한 얼굴로 바뀌었다. 오작의 몸에 묶은 세 개의 밧줄을 각각 양손과 입으로 하나씩 잡은 채 집중했다.
오작이 왼눈을 깜빡이자 치우는 왼손 밧줄을 휙 당겼다. 오작이 입술을 내밀면 머리를 흔들어 입에 문 밧줄이 떨리게 했다.
가끔은 양손 밧줄을 함께 당겨 오작의 몸을 몇 장씩 움직이기도 했다.
처음엔 조심스럽게 툭툭 건드리기만 하던 귀갑어는 짧은 거리를 도망치며 도발하는 오작에게 화가 치밀었다.
상대는 귀갑어가 반응을 보려고 건드릴 땐 가만히 있다가 정작 삼키려고 할 땐 귀신같이 알아채고 도망갔다.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조심스럽기로 유명한 귀갑어지만, 오작과 치우가 힘을 합친 농락에 화가 나서 점점 경계심이 옅어졌다.
귀갑어의 심적 변화는 곧 달라진 행동 양상으로 표현되었다.
슝 소리와 함께 귀갑어가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오작을 덮쳤다. 밀물의 힘을 등에 업고 백사장과 바위 절벽을 덮치는 파도보다 더한 위세였다.
하나, 경신술로 몸을 가볍게 한 오작을 힘이 장사인 치우가 밧줄로 당기는 것보단 약간 늦었다. 귀갑어의 커다란 주둥이는 고작 다리만 스쳤다.
찌익, 쩌저적.
살이 찢기는 소리와 함께 민둥민둥하던 귀갑어 입안에 열 줄이 넘은 이빨이 자랐다. 꺼내는 과정이 무척이나 고통스럽기에 웬만한 위기 상황이 아니면 귀갑어는 이빨을 뽑지 않는다.
'됐다.'
오작과 치우 머리에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조심성이 이만저만이 아닌 귀갑어를 낚으려면 보통은 이 각(30분) 정도 화를 돋우는 과정이 필수다.
그런데 이 귀갑어는 안 좋은 일이 있었는지 쉽게 화내며 이빨을 꺼냈다.
꺼내는 과정에서 받은 고통으로 조심성을 완전히 버린 귀갑어는 천장은 물론 바닥까지 날카로운 이빨이 가득한 입으로 오작을 덥석 물었다.
천 개는 몰라도 수백은 되는 비수처럼 날카로운 이빨에 오작이 물렸는데도 치우는 걱정은커녕 실실 즐거운 웃음을 흘렸다.
귀갑어는 오작을 당장 삼키지 않고 이빨로 잘근잘근 씹었다. 이빨까지 꺼내게 한 먹이에게 최대한 고통을 줘서 화난 마음을 다스리려는 속셈이었다.
화가 어느 정도 풀릴 때까지 무자비하게 씹은 귀갑어는 그제야 꿀꺽 목구멍으로 넘기려 했다.
그런데 잘근잘근 씹혀서 갯벌의 흙처럼 흐물흐물해져야 할 먹이가 목구멍을 안 넘고 단단하게 버텼다. 몇 번이나 입과 아가미를 꿈틀댔으나 먹이가 그대로 입에 남아있자 겨우 가라앉았던 귀갑어의 화는 다시 등 지느러미까지 치솟았다.
분노가 귀갑어의 작은 뇌로 침습했다. 커다란 덩치와 힘에도 불구하고 알에서 태어날 때부터 각인된 조심성이 완전히 날아가고, 바다의 포식자다운 흉포함이 모습을 드러냈다.
귀갑어는 머리 전체가 깨질 것 같은 고통을 감수하며 이빨을 키웠다. 입안의 이빨이 더 크고 굵게, 더 날카롭고 단단하게 변했다.
전혀 당황하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던 오작은 치우가 입에 문 밧줄을 세게 흔들었다. 때가 되었다는 신호를 받은 치우는 입에 문 밧줄을 뱉어버린 후 끙 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섰다.
더 단단하고 날카로운 이빨로 입안까지 와서 귀찮게 구는 먹이를 처리하려던 귀갑어는, 갑자기 자신의 몸을 절벽으로 당기는 어마어마한 괴력에 눈이 뒤집혔다.
평소라면 뒤도 안 돌아보고 지느러미 빳빳이 도망쳤겠지만, 이빨을 꺼내고 투쟁심을 세운 지금은 대처가 달랐다.
이성을 완전히 잃은 귀갑어는 누가 이기나 보자는 마음으로 절벽에 다가갔다. 뒤로 헤엄치는 힘이 약하기에 절벽에서 머리를 돌리려는 생각이었다.
안타깝게도 귀갑어는 상대가 이미 동족을 수십 마리 포획한 노련한 낚시꾼이자 사냥꾼이라는 걸 몰랐다.
그리고 입안의 미끼가 일반 미끼완 달리, 단순히 유인만 목적이 아니었다.
절벽 위에 치우도 빠르게 뒤로 물러났지만, 귀갑어의 속도가 훨씬 빠르기에 원래대로라면 절벽 가까이 간 다음 몸을 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귀갑어 입 안에 있는 오작 역시 밧줄을 잡아당겼다면 얘기가 다르다. 오작 역시 밧줄을 최대한 빳빳하게 당기면서 귀갑어가 머리를 돌리는 걸 방해했다.
상대가 당기는 대로 끌려간 다음 대가리를 돌리려던 귀갑어의 계획은 절벽을 덮친 파도처럼 물거품이 되었다.
차라리 절벽으로 접근하지 않고 그대로 잠수해서 도망갔으면 치우와 오작이 힘을 합쳐도 귀갑어를 놓쳤을 것이다. 그만큼 귀갑어의 힘은 강하니까.
그러나 이성을 잃은 귀갑어는 오작과 치우의 예상을 한 치도 빗나가지 않고 절벽에 몸을 찰싹 붙인 채 속수무책으로 발버둥 쳤다.
절벽에 바싹 붙은 귀갑어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몸부림으로 후회의 심정을 적나라하게 표출했으나 절벽에서 밧줄이 직각으로 꺾인 바람에 귀갑어의 발버둥은 채 일 할도 치우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천생 장사인 치우는 밧줄을 통해 전해오는 귀갑어의 버둥질에 능숙하게 대처했다.
난동이 약 반 시진 지속한 후, 치우는 밧줄을 당겨 귀갑어를 절벽 위로 끌어올렸다. 수직 절벽에 붙어 익숙지 않은 자세로 반 시진 내내 발광한 귀갑어는 기진맥진하여 전혀 저항하지 못했다.
귀갑어를 절벽과 약 삼십 장(50m) 떨어진 곳까지 끌고 간 치우는 밧줄을 나무에 묶었다. 밧줄을 단단히 묶은 후 귀갑어에게 다가가서 발로 아가미를 걷어찼다.
아가미로 큰 충격이 오자 귀갑어는 습관적으로 입을 커다랗게 벌렸다. 그 틈을 타 몸에 밧줄 세 개를 묶은 오작이 귀갑어 주둥이에서 탈출했다.
"운이 좋았어."
귀갑어 낚시는 힘들다. 열 마리에서 일곱 마리 정도는 이빨을 꺼내는 대신 포기하고 물러난다. 그리고 이빨을 꺼내 오작을 삼킨 셋 중에서도 하나 정도는 도망간다.
다행히 오작은 천일도에서 일정 거리를 벗어나면 소양궁으로 소환된다. 아니었으면 귀갑어한테 물려 바다 어디로 갔을지 모를 일이다.
어쩌면 귀갑어 덕분에 바다의 끝을 봤을 수도 있다.
그때, 기절한 듯 축 늘어져 있던 귀갑어가 몸을 펄떡이며 치우의 팔을 물었다.
"귀갑어는 생각하는 게 다 똑같나 봐."
치우는 힘 줘서 귀갑어 주둥이에 물린 팔을 쑥 뽑았다. 오장국의 보물이었던 동주철갑은 치우를 주인으로 맞은 후 그 진가를 남김없이 발휘했다.
바위도 씹어 부수는 귀갑어의 이빨에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장난치지 마. 위험을 즐기는 건 사내다운 게 아니야. 꼭 해야 할 일이어서 위험을 감수하는 게 사내다운 일이지."
오작의 핀잔에 장난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치우는 자기 키보다 조금 작은 칼을 들었다.
훌쩍 뛰어 귀갑어 등으로 간 치우는 칼을 목으로 짐작되는 부위에 능숙하게 꽂았다.
머리와 몸통이 이어지는 부위는 꼬리와 더불어 방향 전환에 큰 공헌을 한다. 꼬리와 마찬가지로 뼈가 가늘고 살도 연하다.
그래서 날카로운 칼에 전혀 저항하지 못하고 심장까지 가는 길을 고스란히 내줬다.
끽 소리를 내며 귀갑어의 몸이 축 늘어졌다. 오작 역시 몸에 묶은 밧줄을 다 풀고 머리를 샘물에 헹군 다음 길이가 육 척 정도 되는 칼을 들고 해체를 도왔다.
"귀단鬼丹이 제법 커. 지금까지 본 것 중에 제일."
귀갑어 고기는 독이 있고 맛이 없다. 귀갑어 낚시의 목적은 딱 두 가지다. 귀단과 이빨.
귀단을 찾은 후 치우와 오작은 귀갑어의 이빨을 뽑았다. 뽑은 이빨은 샘물로 깨끗이 씻어 자루에 모두 담았다.
이빨은 총 네 포대 나왔다. 오작과 치우는 두 포대씩 들고 소양궁으로 갔다.
소양궁에 도착하자 치우는 귀단을 삼켰다. 오작은 작은 비수를 들고 귀갑어의 이빨에 주문을 새겼다. 오작이 주문을 새긴 이빨을 정확한 위치에 배치한 후, 치우는 가운데 비워 둔 자리로 가서 법술을 수련했다.
"하하. 뭐가 자꾸 법술을 방해 해. 신난다."
오작이 구망과 대화한 후, 치우는 무공 수련과 법술 수련을 번갈아 하기로 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남았다. 법술 수련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지만, 천성은 극복하기 힘들다.
그래서 생각한 해결책이 바로 귀갑어다. 귀갑어의 귀단을 삼키고 운기를 방해하는 주문을 새긴 귀갑어 이빨로 둘러싸면 아무리 타고났다고 해도 법술이 어렵다.
"수련 끝나고 귀단을 뱉은 다음 부숴서 버려."
"잔소리 그만해. 매번 똑같은 말 하는 거 지겹지 않아?"
치우의 투덜거림에 오작은 피식 웃고 말았다.
키는 자신보다 이 척이나 더 크고 힘도 장사다. 게다가 태어나고부터 법술을 펼칠 정도로 천재다.
그런데도 늘 물가에 내놓은 자식 같아서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나이가 서른둘이니까. 십 년 정도만 있으면 노인네 소리 듣겠구나.'
자신의 엉뚱한 생각에 오작은 드물게 미소를 지었다.
'나도 열심히 하자. 스무 살이나 어린 동생한테 질 수는 없지.'
소양궁을 나선 오작은 자색 꽃이 가득 핀 꽃밭에 갔다. 자색 옷을 입은 오작은 정확한 이름을 모르는 자색 꽃들 사이에 파묻혀 수련에 열중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치우가 먼저 수련을 마치고 눈을 떴다.
주변의 귀갑어 이빨이 어느새 가루가 되었다. 치우의 운기를 방해하다가 하나씩 그 운명을 다한 것이다.
"형, 형 거기 있어?"
꾹 누른 목소리는 오작을 찾으려는 게 아니라 있는지 확인하려는 의도로 보였다.
오작의 대답이 들리지 않자 치우는 다시 바닥에 앉아 운기 했다. 오작이 뱉어서 부숴버리라고 신신당부한 귀갑어의 귀단을 자기 단전으로 억지로 밀어 넣었다.
'난 천재다. 하고 싶은 걸 해서 낭패 볼 일은 절대 없다.'
귀단은 음양과 오행으로 쉽게 정의하기 어려운 힘이 담겼다. 오작이 예전에 구망과 대화할 때 언급한 적 있듯이, 통제를 벗어난 모든 힘은 독이나 다름없다.
귀단에 담긴 힘이 어떤 성질인지 알아내기 전엔 아무리 미약하더라도 독인 셈이다. 그래서 오작은 치우에게 뱉어서 부숴버리라고 했다.
그러나 치우는 오작의 감시가 없을 땐 버리는 대신 귀단을 단전에 가뒀다. 귀단을 단전에 가두면 법술을 펼치는 데 지속하여 어려움을 느끼고, 법술이 무공처럼 재밌게 느껴진다.
사실 치우도 법술을 좋아하는데 쉽게 싫증 나는 걸 어떻게 할 수 없어서 고민이었다. 오작 덕분에 훌륭한 해결책이 생겨서 기쁜 것도 잠시, 귀갑어는 잡기 너무 어려웠다.
귀갑어가 매일 잡히는 고기라면 치우도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가끔 며칠씩 귀갑어 그림자조차 보지 못하는 일도 있기에 어렵게 얻은 귀단을 그저 버리기 너무 아까웠다.
"이번엔 좀 다른데?"
다른 때는 별 느낌이 없었는데, 이번 귀단은 크기가 커서 그런지 단전 부위가 뜨거웠다. 다행히 금세 뜨거움이 사라져서 치우의 걱정도 사라졌다.
"서명술緖命術 구묘玖猫."
귀종술과 서명술은 치우가 태어날 때부터 알던 법술이다. 가능한 일인지,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치우도 모른다.
법술에 관한 연구라면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을 구망조차 그럴듯한 해석을 내놓지 못했다. 보통 법술 하나 정도 타고나는 일은 드물게나마 있지만, 치우처럼 여러 개를 타고나는 건 소문으로조차 들어본 적 없었다.
다른 법술을 펼칠 때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과 달리, 치우는 빠르게 무아지경으로 빠졌다.
그리고 그런 치우의 머리 위에 눈동자만 노란 까만 고양이가 나타났다.
- 작가의말
치우탄귀단 - 치우가 귀단을 삼키다.
오작도 비밀이 많지만, 치우 역시 비밀 가득한 아입니다. 치우는 여러 기록을 통해 능력을 설정했고 오작은 순수 창작입니다.
두 편이나 편하게 수련했으니 슬슬 여행 준비를 다그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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