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호이산계調虎離山計
장계취계將計就計
엎드린 김에 절이라고
일거양득壹擧兩得
꿩 먹고 알 먹자
절교 제자 입장에서 무극을 깨달은 자는 중요치 않다. 사실 자단을 찾는 게 훨씬 중요한 일이다.
무극을 깨달은 자는 조공명을 비롯해 몇 명의 중요 제자만 지시를 받았고 자단을 찾는 건 모든 제자가 받은 명령이다.
둘 중 어느 게 더 중요한지 멍청이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다.
더구나 자단의 행방을 찾아낸 조공명이 정식 제자가 되었고 장보각 출입까지 허락받은 일 때문에 다들 안달이 난 상태였다.
당연히 도망가는 오작 일행보단 천교의 무리가 더 중요했다.
그리고 오작 일행이 무극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천교 역시 가장 큰 적인 절교의 무리를 하나라도 줄이려고 노력했다.
정예만 온 천교와 달리 절교는 어중이떠중이가 꽤 섞였다. 특히 편익조를 받고 지원 온 자 중 실력이 부족한 자가 많았다.
절교가 머릿수로 압도하며 약한 자들로 준제를 묶은 바람에 천교가 열세에 처하긴 했지만, 구망이 부른 수호룡 청배의 도움으로 전열을 다시 가다듬고 준제 곁에 약한 자들을 처리하라고 우익선羽翼仙을 붙여줬다. 우익선은 금시조金翅雕 출신의 마수로, 마수 대붕의 피가 흐르는 황금 독수리다.
전세가 엎치락뒤치락하며 절교도 천교도 오작 일행에게 관심을 끊었다. 물론, 금령성모는 어렵게 점한 우위를 한순간 뒤집은 구망에게 이를 갈았고, 접인은 함께 귀령성모를 해치운 동지인 오작의 편익조를 받고 크게 기뻐했다.
"어르신. 천일도 근처에 부려먹을 만한 요괴가 있습니까?"
"삼수녹은 정이 많아 내가 부탁하면 들어줄 거다."
"우리 우선 구려국으로 갑시다."
방향을 정한 셋은 구려국을 향해 직진했다. 바다도 밟고 달리는 둔각에게 강이나 산 따위는 장애가 아니었다. 나무가 밀집한 숲은 둔각도 어쩔 수 없지만, 동부는 평야가 많았다.
"천교와 절교 무리에 안 들키고 삼수녹에게 편익조를 보낼 수 있으시죠?"
"지금은 가능하다."
예전이면 엄두도 못 냈을 일이다. 경지만 높고 법력이 적어 법술 위력이 하찮다고 평가해도 될 정도였다. 지금은 거꾸로 보유한 법력에 비교해 경지가 부끄럽다.
"절교와 천교의 싸움 결과를 알려달라고 하세요. 그리고 천교가 천일도를 떠날 때 어느 방향으로 움직였는지도요."
구망은 구려국에 거의 도착했을 때 편익조를 날렸다. 괜히 일찍 날리면 삼수녹의 편익조가 구망을 못 찾을지도 모른다.
편익조를 날린 구망은 오작과 치우를 따라 왕궁으로 갔다. 군기가 바짝 든 문지기들은 치우를 보자마자 허리를 크게 꺾어 인사를 올렸다.
"왕세손께서 오셨습니다."
치우의 주먹에 기절했던 문지기들 우두머리가 목이 터지는 게 아닐지 걱정될 정도로 크게 외쳤다. 그리고 왕궁 대문을 더 크게 열 수 없을 정도로 활짝 열어젖혔다.
처음 왔을 때와 달리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입궁했다. 목진액으로 건강을 회복한 왕은 꽤 늦은 저녁에도 대청에 대신과 장수들을 모아 놓고 회의하고 있었다.
"아니, 구망 어르신 아닙니까. 못 알아볼 뻔했습니다."
구망도 꽤 젊어졌지만, 왕은 구망이 구망 되기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여서 첫눈에 알아봤다. 대신과 장수들은 듣던 것과 완전 딴판인 구망의 젊은 모습을 확인하고 왕에게 몇 방울 남은 목진액에 대한 욕심이 더 커졌다.
"왕께서 정정한 모습을 보니 참으로 기껍습니다. 이게 다 동부에 정기正氣를 세우라는 하늘의 뜻 아니겠습니까."
구망은 법술 빼고는 큰 관심이 없는 담백한 사람이다. 지금 한 말은 오작이 미리 부탁한 거였다.
그리고 그 효과는 어마어마했다.
청룡의 화신이며 동부의 수호자인 구망이 공개적으로 왕을 지지하자 대신과 장수들의 사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어차피 입이 가벼운 자가 없지 않을 테니 곧 동부 전역에 구망이 구려국 편을 들어준다는 소문이 퍼질 것이다.
"영위앙이 감히 구망 어르신께 칼을 휘둘렀다고 들었습니다."
"청룡이 강신하여 이 하찮은 목숨을 부지케 해줬습니다. 아무래도 할 일이 아직 남은 것이겠죠. 짧지 않은 기간 감히 상상하기도 벅찬 가르침을 받아 부족함을 많이 메꿨습니다."
구망의 위인이 담백하고 겸손한 건 동부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구망 입에서 부족함을 많이 메꿨다는 말이 나오자 사람들 눈이 반짝였다.
법력만 부족할 뿐 모자람이 없던 사람인데 청룡의 가르침으로 얼마나 대단하게 변했을지 너무 기대되었다.
왕은 즉시 연회를 열어 구망을 환영했고 겸사겸사 치우의 왕세손 즉위식도 치렀다. 오작은 칠봉의 이름을 얻는 둘째 왕자와 풍수라는 이름을 얻은 셋째 왕자가 다정하게 술잔을 나누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예상이 맞았음을 알았다.
두 왕자가 왕의 자리가 간절했던 건 자리 욕심보다는 정식 이름을 받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왕의 권위를 살리려고 세웠던 규정이 세월이 흐르면서 오히려 발목을 잡는 올가미로 변했다.
구려국은 짧은 기간에 칠봉 외에도 풍수국을 함락했다. 남은 국가들은 연합하여 구려국의 침략을 방비하는 동시에 은밀히 사람을 보내 고개를 조아리며 선처를 빌었다.
왕은 직접 나서지 않고 재상인 마협을 내세워 상대케 하며 확답을 주지 않는 거로 상대 애간장을 태워 작은 이득을 수없이 얻어냈다.
힘만 믿고 우쭐렁대다가 영위앙에게 청제 자리를 빼앗겼던 왕이 세월의 지혜가 쌓이며 현명해졌다. 육체도 전성기 시절로 돌아갔으니 말 그대로 지용을 겸비한 왕이 되었다.
그때, 삼수녹이 보낸 편익조가 날아와 구망의 귀에 앉았다. 구망은 편익조가 한 말을 오작에게 그대로 전했다.
천교와 절교의 싸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금령성모는 어중이떠중이들을 버리고 칠향여를 타고 도망갔다.
천교는 우위를 점했지만, 숫자가 적어 채 스무 명도 못 죽였다. 뿔뿔이 흩어져 도망가는 절교의 무리를 끝까지 쫓아 죽이고 싶어도 봉래도가 떠다니는 동해에서 감히 오래 추격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승리는 승리여서 천교의 사기는 무척 대단했다. 거기에 접인이 좋은 소식까지 알려서 모두 지체하지 않고 서부의 진일곡으로 빠르게 달렸다.
구체적인 사정은 모르지만, 삼수녹이 말한 천교의 이동 방향을 들은 오작은 접인이 자신의 말을 믿어줬음을 확신했다.
"치우야. 소소한테 편익조를 보내."
눈을 동그랗게 떴던 치우는 오작의 설명을 듣고 기쁘게 웃었다.
"그러니까 소소랑 형천 모두 무사하다는 말이네?"
편익조를 날린 후, 오작과 치우는 둔각을 타고 떠났다. 구망은 동부를 떠나면 심리적 불안을 느끼고 실력도 크게 깎인다. 이는 공공이나 축융 그리고 욕수도 마찬가진데, 유독 후토만큼은 그런 걱정이 없었다.
구망은 남아서 강해진 자신에게 적응하는 시간을 갖고, 동시에 구려국을 도와 청제의 도발 내지는 공격을 막아주기로 했다.
한편.
오작과 치우가 구려국을 떠나고 며칠 지나서 편익조가 금계산에 도착했다. 익숙한 법력을 감지한 조공명은 자신의 기운을 소소와 비슷하게 꾸몄다.
조공명 역시 서부 출신이기에 형천보다는 소소의 기운으로 꾸미는 게 훨씬 편했고, 왠지 소소가 형천보다 중요한 인물로 보인 이유도 컸다.
"천일도에서 금령성모를 만나 겨우 도망쳤다. 금령성모의 말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금계산이 들킨 것 같구나. 그래서 절교가 감히 발을 못 들이는 서부의 진일곡에 가서 소환진을 만들 작정이다. 약 열흘 후에 소환진으로 자단 양부를 진일곡으로 소환할 예정이니 위험한 곳에 있지 말고 어서 서부로 넘어가라. 우린 곧장 그곳으로 향할 것이다."
조공명은 선 자리에서 발을 연신 굴렀다. 편익조가 금계산까지 오는 데 벌써 이레나 걸렸다. 편익조가 한 말이 사실이라면 고작 사흘 뒤면 자단을 소환하는 소환진이 가동된다.
게다가 절교가 감히 발을 못 들이는 서부라는 말이 자존심을 크게 건드렸다. 서부의 아미산 출신인 조공명은 서왕모 때문에 백제 자리에 도전할 엄두도 못 냈었다. 통천교주의 제자가 되기 전에도 백초거보다 강했던 조공명이다. 지금은 통천교주의 애제자이자 절교의 주축 세력이 되었기에 억울함이 더 커졌다.
'금령은 멍청하다.'
금령은 세상 똑똑한 척하지만, 임기응변에도 약하고 형세 분석도 형편없다.
'어쩔 수 없군. 확실치도 않은 일에 사부를 부를 순 없지. 무당과 다보한테 도움을 요청한다. 둘이 뭐라고 하는지 들어보자.'
자단을 혼자 찾으면 좋으련만, 금계산에는 금계동이 없었다. 그러나 얘기를 들어보면 금계동은 허구로 꾸며낸 게 아니었다.
'둘 다 교주 자리엔 관심이 없으니까 이 기회에 호감을 얻는 것도 나쁘진 않지.'
생각을 정한 조공명은 둘에게 편익조를 날렸다. 위치를 알아야 보낼 수 있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다보나 무당은 어디에 있는지 몰라도 편익조를 받을 수 있다. 자신을 찾는 편익조를 감지하고 불러들일 경지에 이른 두 사람이다.
과연, 채 반 각도 안 되어 다보와 무당의 답신이 왔다. 다보는 북부에 있던 차여서 바로 서부로 넘어간다고 했고, 무당 역시 이틀이면 진일곡에 도착할 수 있다고 답변을 보냈다.
"진구공과 요소사. 너희 둘은 계속 금계동을 찾아라. 그리고 혹시 수상쩍은 사람이 보이면 바로 나한테 편익조를 보내도록 해라."
둘은 사부의 신임을 얻었다는 생각에 헤벌쭉 웃으며 기뻐했다. 오작과 치우의 얼굴을 본 사람이 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걸 미처 떠올리지 못한 탓이다.
욕수의 진일곡은 서부에서도 북쪽에 있다. 조공명 혼자라면 몰라도 수십 명 수하를 이끌고 도착하려면 밤에도 쉬지 않고 꼬박 사흘을 달려야 하는 거리다. 시간이 촉박하여 조공명은 깊이 생각지 않고 바로 출발했다.
조공명이 쉽게 계책에 걸려든 건 오작이 시간 계산을 잘한 이유도 있지만, 금령성모가 천교와 싸운 사실을 비밀로 한 탓이다.
조공명은 함정이어도 고작 오작이 판 거면 걱정할 게 없다는 생각 때문에 복잡하게 생각지 않았다. 천교가 언급되었다면 다른 양상을 보였을 텐데, 오작의 예상대로 금령성모는 자신이 교주 되는 데 방해되는 소문이 퍼지지 않도록 수하들을 잘 단속했다.
그리고 오작과 치우 역시 여드레를 안 자고 말을 달렸다. 거짓말이 들키기 전에 금계동에서 자단을 찾아내 구출해야 한다. 비록 등급외로 쳐주는 무량급 법보를 얻었다곤 해도 조공명을 상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요수촌에서 조공명을 잘 막아내긴 했어도 상대가 방심한 틈을 타 겨우 도망친 거다.
치밀한 수비와 팔괘자수선의 덕분에 무공만 펼친 조공명한테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조공명이 성급하게 박룡삭을 꺼내 오작을 묶으려 하지 않았다면 결국 오작이 죽거나 잡혔다. 박룡삭으로 묶으며 방심한 틈을 타 결승법으로 조공명을 묶었기에 도망이라도 친 거였고, 지금은 결승법 법술도 없다.
"그러니까 시간이 촉박하다는 말이지?"
금계산이 보이자 둔각을 하나로 합쳐 숨게 하고 오작과 치우는 은신술을 펼쳤다.
"급하다고 모험하지는 마. 조공명이 금계산을 아예 비우고 가진 않았을 거야."
오작은 조공명이 계책에 걸려들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조공명이 욕심내는 게 뭔지는 모르지만, 자단을 찾아 열심히 돌아다니는 걸 보면 함정이라도 단서를 얻으려고 일부러 빠질 사람이다.
그리고 아무 대책도 없이 떠나진 않았을 거라는 확신도 있었다.
"죽이는 건 안 되겠지?"
"그럼. 그리고 우리 얼굴을 알고 있을 게 뻔하니 은신을 절대 풀지 마."
치우는 마환도를 마음껏 휘두르며 싸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비록 귀기는 완전히 몸에서 사라졌지만, 이제 열다섯이 된 치우의 성격 형성에 꽤 큰 영향을 끼쳤다.
복희의 평가대로 천품이 훌륭한 덕분에 어마어마한 개자식이 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일에 겸양하는 성인군자가 되지도 않았다.
"한 시진이다. 각자 흩어져서 찾고, 동굴 입구를 찾든 못 찾든 여기에서 만난다."
오작과 치우는 각자 은신술을 펼친 채 흩어졌다. 치우의 은신술이야 두말하면 입이 아프고, 오작 역시 무공과 법술을 결합하여 꽤 훌륭하게 몸을 숨겼다.
둘은 크다고 할 수 없는 금계산을 빗질하듯 샅샅이 훑었다.
"형, 호기면귀 부를까?"
그 대단한 조공명과 유능한 절교 외문제자들도 못 찾은 금계동이다. 오작의 지혜가 또래보다 출중하고 치우의 타고난 재능이 눈부시다고 해도 수백 년의 경험을 갖춘 자들보다 꼭 낫다고 할 수 없다.
그러니 고작 한 시진으로 금계동을 찾아내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다.
"그래. 우리한텐 시간이 얼마 없어."
치우는 귀종술로 호기면귀를 불렀다. 구려국을 떠날 때 재물을 꽤 챙겼기에 보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호기면귀는 부담 없이 부를 수 있다.
"여기선 부르지 마. 무서워."
소환된 호기면귀는 바로 사라졌다.
"형, 왜 이래?"
"개는 귀신을 보고 닭은 귀신을 죽여. 아무래도 금계산에 진짜 금계가 사나 봐."
아마 귀신이 두려워할 만한 마수나 환수일 가능성이 크다.
"그럼 어떻게 하지?"
"이럴 땐 아는 사람한테 물어야지. 강제명한테 가자."
- 작가의말
개는 귀신을 보고 닭은 귀신을 쪼아댄다는 말이 있더군요. 제 생각엔 백성이 개와 닭을 많이 기르게 하려는 지배층의 음모가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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