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조욕유영飛鳥欲遊泳
비조생익飛鳥生翼
나는 새는 날개가 자라고
유어생린遊魚生鱗
헤엄치는 물고기는 비늘이 달린다
청룡은 봄, 주작은 여름, 백호는 가을, 현무는 겨울. 청룡의 화신인 구망이 사는 천일도는 사계절이 봄이다.
육지에서 꽃이 여섯 번 피고 지는 사이에도 천일도는 큰 변화가 없었다. 화무십일홍花無什日紅이라는 말처럼 지지 않는 꽃은 없지만, 지는 꽃에 이어 피는 꽃이 있으니 늘 백화가 만발했다.
육 년째 소식이 없는 자단의 행방을 알아보려고 육지로 갔던 구망은 열흘 만에 천일도로 복귀했다. 늘 그렇듯이 별다른 수확이 없었다.
오장국을 손에 넣어 위세가 등등해진 청제는 구망을 만나주지도 않았고, 어떻게든 정보를 알아내려고 해도 헛수고였다. 청제와 자단 사이에 이뤄진 거래의 내용을 아는 세 번째 사람은 아무리 찾아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무 소득도 없이 돌아온 구망은 답답한 마음을 주보가 빚은 술을 홀짝이는 것으로 달래며 소양궁少陽宮으로 향했다.
"난리를 피우거나 장난을 치진 않았지?"
소양궁을 지키는 문지기가 공손히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철이 드신 것 같습니다. 들여다볼 때마다 열심히 수련하고 계셨습니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 친우에 대한 걱정으로 답답했던 가슴이 조금은 풀어졌다. 술동이를 소매에 감추고 입을 가셔 술 냄새도 없앤 구망은 소양궁의 연무장으로 갔다.
연무장에는 키가 십이 척(2m)이나 되는 건장한 사내가 있었다. 입으로 나직이 중얼거리며 손가락을 현란하게 움직이는데, 주문과 손가락 움직임에 따라 삼 장(5m) 길이의 천이 허공에서 다양한 무늬를 그리며 춤췄다.
'법력만 충분히 얻으면 날 능가하겠구나.'
연무장에서 법술을 수련하는 십이 척의 거구는 다름 아닌 치우였다. 법력을 다루는 감각은 타고나서 청룡주를 먹고 청룡의 화신이 된 구망도 치우한테는 두손 두발 다 들어야 했다.
'키도 안 자라는 거 같아서 다행이다.'
구 척(1.53m)이 평균보다 조금 큰 키라는 걸 생각하면 십이 척은 좀 징그럽게 크다. 덩치가 크면 몸싸움에는 유리하겠지만, 술사는 빠르고 정확한 손놀림과 주문이 핵심이다.
덩치가 클수록 손발이 느려지는 건 상식이나 다름없기에 구망은 제발 더 자라지 않게 해달라고 청룡에게 제사까지 지냈었다.
구망은 가까이 다가가서 흡족한 마음으로 치우의 수련을 지켜봤다. 얼마나 집중했는지 자신이 온 것도 모르고 수련에 계속 매진했다.
가끔은 법력 제어가 풀려선지 천이 허공에서 흐트러지기도 했지만, 부족한 법력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수습도 엄청 빨랐다.
'잠깐. 뭔가 이상한데?'
계속 보다 보니 치우치고는 너무 성실하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그렇게 의심이 생기니 어색한 부분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구망은 의심으로 그치지 않고 중얼중얼 주문을 외웠다.
"귀안투시술."
치우가 네 살 때 주문도 없이 펼쳤던 법술이다. 구망 역시 감각이 날카롭게 설 때는 주문 생략이 가능하지만, 지금은 기분도 가라앉고 술도 마셨기에 주문을 외워야 했다.
시동어로 주문을 완성하자 구망의 눈이 파랗게 빛났다. 그리고 사랑하는 외손주가 순식간에 부적 두 장을 붙인 대나무 빗자루로 변했다.
"이놈이 또 귀종술鬼從術로 날 속였구나."
귀종술은 귀신을 소환해 시종처럼 부려 먹는 법술이다. 치우는 빗자루에 변신부 두 장을 붙인 다음 귀신을 소환해 깃들게 했다.
치우의 모습으로 변한 빗자루는 치우가 시킨 대로 법술을 펼치며 연무장에서 열흘 내내 수련만 했다.
'화내고 싶은데.'
구망마저 속일 정도로 감쪽같은 변신술과 귀종술. 게다가 소환한 귀신에게 청소나 빨래와 같은 잡일이 아닌 법술 수련을 시켰다.
'너무 기쁘구나.'
이는 아직 성인도 아닌 치우가 법술 능력으론 구망을 능가했다는 뜻이다. 법력만 충분하면 지금이라도 청제와 대결할 수 있는 재능이다.
한편.
"소홍류疏洪流 기도현수氣導玄水는 말이야."
먹물을 듬뿍 찍어 그린 듯한 진한 눈썹 밑엔 하늘에서 가장 밝은 별보다 더 찬란한 눈동자다. 곧고 높은 코 밑에 부드러운 입술. 사내답게 능각이 분명한 얼굴형과 부드러운 오관 윤곽이 맞물려 이루 말할 수 없는 신비롭고 편한 느낌을 준다.
키는 일 장(1.7m)인데 팔다리가 길쭉길쭉하여 날렵한 느낌이다. 키가 크면 우둔해 보인다는 말도 이 청년에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여기서 소疏는 방식이야. 홍류洪流는 네가 처리해야 할 상대의 성질이고. 도導는 이 방식의 본질을 가리키는 말이야."
말을 마친 소년은 덮쳐오는 파도를 향해 손을 휘저었다. 청년의 머리를 덮치던 파도가 방향을 바꿔 자기 꽁무니를 바싹 쫓던 뒷물결과 충돌하고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형. 난 도단류가 좋아."
화폭에서 걸어 나온 것 같은 청년이 바로 청룡주 덕분에 키가 한 번 더 자란 오작이고, 소도류보다 도단류가 좋다는 거한이 바로 소양궁을 몰래 빠져나온 치우였다.
"넌 법술 재능이 뛰어나니 소도류가 더 어울려."
"싫어. 난 도단류 익히고 싶단 말이야."
오작은 생떼를 쓰는 치우를 바라보며 한숨이 나왔다. 분명히 만리창공萬里蒼空을 누빌 든든한 날개가 있는데, 치우는 바다에서 헤엄치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누군 꿈에도 바라지 않는 기운 제어 재능을 타고난 주제에 열심히 수련하지 않고 천재성을 낭비하는 치우에게 화도 조금 났다.
"날 설득해 봐."
"내가 그러고 싶으니까."
치우가 득의양양한 웃음을 지었다.
"그게 다야?"
치우의 자신만만한 표정에 뭔가 대단한 이유를 준비했으려니 기대했던 오작은 힘이 탁 풀렸다.
"형, 난 천재야. 내가 이토록 하고 싶다면 분명히 이유가 있어."
"그런데 넌 정작 도단류를 잘 못 하잖아."
오작의 말에 치우는 풀이 살짝 죽었다.
"그게 참 이상하단 말이야. 왜 쉬운 게 더 어렵지?"
"네 몸이 거부하니까. 천재적인 네 몸은 소도류가 더 적합하다고 판단한 거야."
결국, 오작과 치우의 논쟁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치우가 오작이 가르친 글자를 다 익혔기에 약속대로 멸천칠절공을 가르치기로 했는데, 여태껏 같은 문제로 옥신각신 다퉜다.
평소 오작의 말을 잘 따르던 치우가 유별나게 고집을 부렸고, 오작 역시 자신한테 잘 맞는 소도류를 거부하고 도단류를 익히겠다는 치우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뭔가 분명히 이유가 있을 텐데. 알 것 같기도 하면서 안 떠오르니 짜증이 나는구나.'
오작은 치우가 고집을 피우는 이유가 어렴풋이 느껴져서 더 화가 났다. 아예 모른다면 괜찮겠으나, 알 듯 말 듯 한 이런 감각은 사람을 반쯤 미치게 한다.
"이렇게 하자. 소도류랑 도단류 다 연습하는 거야."
오작이 겨우 내민 해결책에 치우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래. 왜 난 이런 훌륭한 생각을 못 했을까?"
"그래. 둘 다 익히는 거로 하고 다음으로 넘어가자. 불처럼 강한 기운을 상대할 때는 식멸류와 최소류가 대표적인데."
귀를 쫑긋 세우고 오작의 말을 듣던 치우가 갑자기 바닥에 바싹 엎드렸다.
"형, 나 고양이 한다."
말을 마친 치우가 그대로 사라졌다. 그리고 늘 그랬듯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작아. 치우 어디로 숨었어?"
수련이 싫어서 치우가 도망칠 때마다 늘 듣던 소리다. 어차피 오작도 숨은 치우를 찾아내는 건 무리기에 구망도 딱히 대답을 바라고 던진 질문은 아니었다.
"다녀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가셨던 일은 잘 보셨습니까?"
"청제는 여전히 안 만나주고. 구려국에서도 백방으로 알아보곤 있는데 능력이 부족한 것 같구나."
"청제는 무슨 움직임이 없었고요? 사 년만 지나면 치우가 성인이 됩니다. 성인이 된 치우가 구려국의 후계자로 정해지면 청제의 설 자리가 훨씬 좁아질 텐데요."
구망이 난처한 얼굴로 대답했다.
"내가 그런 쪽으론 전혀 재능이 없는 걸 알잖느냐. 네 말대로 특이한 점이 있는지 살폈는데 딱히 눈에 거슬리는 건 없었어."
"제가 함께 다녀와야 했는데."
오작은 육 년 전에 청룡주를 먹고 천일도로 올랐다. 자단이 청제의 의뢰를 끝낼 때까지 안전한 천일도에서 지내기로 했는데, 청룡주가 문제 되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오작은 천일도를 벗어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구망 역시 천룡주를 처음 먹었을 때 천일도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그 기간이 고작 보름이었다. 오작은 육 년 동안이나 천일도에서 일정 거리만 벗어나면 소양궁으로 이동했다.
"바깥일은 내게 맡기고 수련에나 열중하거라. 너도 그렇고 치우도 그렇고 한창 실력이 늘 나이가 아니더냐."
솔직히 오작은 그 나이가 이미 지났다. 그러나 실제 나이보단 육체의 나이가 중요한지 육 년 동안 실력이 느는 속도가 줄지 않았다.
그때. 어떤 생각이 오작 머리를 툭 치고 도망갔다. 그러나 짧은 순간만으로도 충분했다. 오작은 치우의 문제점은 물론, 최근 조금씩 막히는 수련을 해결할 방법까지 떠올렸다.
"안 그래도 치우의 수련에 관해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오작의 말에 구망은 귀가 번쩍 띄었다. 외관과 달리 오작은 나이가 서른이나 되며, 그중 이십 년은 자단과 함께 대륙 곳곳을 돌아다녔다.
주로 중부와 남부를 돌아다니긴 했는데, 그 정도만 해도 대단한 견문이다. 대부분 사람은 평생 자신의 부족을 못 벗어나는 삶을 산다.
"그래. 기탄없이 말하거라. 내 귀담아들으마."
"치우는 기초 수련부터 다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유는?"
"타고난 재능이 치우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습니다. 작은 힘은 기가 막히게 다루지만, 기초가 부실하여 큰 기운을 다스릴 때는 어려움을 느낍니다. 실패를 거듭하며 성장한 아이는 이런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지만, 치우는 아닙니다. 기초 수련을 단단히 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오래지 않아 치우에게 큰 벽이 닥쳐올 겁니다. 옆에서 아무리 극복할 방법을 말해줘도 작은 실패를 겪지 않아서 큰 실패를 이기는 법을 쉽게 깨닫지 못할 겁니다."
저주의 방해로 기운을 제대로 못 다루는 오작은 도단류가 편하다. 그러나 치우는 기운의 제어가 훨씬 복잡한 소도류보다 강한 힘을 단순하게 다루는 도단류를 어려워했다.
치우는 기운을 섬세하게 다루는 법을 타고났으나 다뤄야 하는 기운이 강할 때는 그 섬세함이 되레 방해가 되었다. 법력을 다룰 때 가끔은 자잘한 건 무시하고 확 질러야 할 때가 있는데, 치우는 타고난 재능 때문에 그걸 어려워했다.
치우는 타고난 천재성으로 자신의 상황을 깨닫고 도단류를 익히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기운을 다스리는 거로 오래 고민한 오작의 경험과 치우의 천재성이 맞물려 아주 정확한 결론과 해결책이 만들어졌다.
"치우 그놈이 고분고분 말 들을까? 수련이 싫어서 맨날 도망치는 놈이 말이다."
"그건 어르신이 치우더러 법술만 익히게 하셔서 그렇습니다. 치우는 법술보다 무공에 더 흥미를 느낍니다."
"그건 나이가 어려서 그래. 몸에 힘이 붙는 시기여서 무공이 더 익히고 싶을 거야. 그러나 육체의 성장은 금방 끝나고, 서른 이후는 하락세가 된다. 게다가 법술의 위력과 쓰임새도 무공보다 훨씬 낫고."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치우는 힘이 세서 무공이 재밌는 것도 있지만, 법술이 너무 쉬워서 재미없는 겁니다. 쉬운 것보다 어려운 것에 도전하려는 천성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작의 말을 들은 구망은 깊은 생각에 빠졌다. 법술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구망은 법술 수련에 매우 큰 심혈을 기울였다. 운 좋게 청룡주를 얻어 구망이 되었지만, 청제가 대놓고 무시할 정도로 힘이 약하다.
그게 한이 되어 치우를 강력한 술사로 키우려고 법술 수련만 시켰다. 그런데 오작의 말을 듣고 보니 무공을 익히게 하여 다른 사람들이 수련에서 으레 겪는 어려움을 체험하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저도 최근 성장세가 둔화한 느낌이 들어 기초 수련을 다시 할까 합니다. 제게 맡겨주시면 치우를 데리고 무공과 법술 기초 수련을 엄하게 하겠습니다."
오작의 논리정연한 말에 구망은 마음이 조금씩 기울었다.
평생 법술에만 매진했던 자신보다는 공부도 많이 하고 견문도 넓은 오작의 생각이 더 정확할 거라는 판단에 당분간 치우의 수련을 오작에게 맡겨보기로 했다.
"그래. 소양궁 연무장을 둘만 쓰게 해줄게."
"마음만 받겠습니다. 장소를 바꿔 수련자한테 지속하여 새로운 자극을 줘야 하기에 가끔 이용하겠습니다."
권위에 집착하는 성격이라면 오작의 말이 건방지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구망은 그렇지 않았다. 성격이 까다로운 자단과 친구가 된 것만 봐도 얼마나 마음이 열린 사람인지 알 수 있다.
"그래. 근데 네 총명은 타고난 거겠지? 자단의 가르침으론 어림도 없을 것 같은데."
"마음속으로 스승처럼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다. 길지 않은 동행이지만, 글자를 비롯해 많은 걸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작은 자신에게 많은 걸 가르쳐 준 도사를 생각하자 입가에 미소가 절로 떠올랐다.
꽤 재주가 있는 편이지만, 재주보다 허풍이 훨씬 뛰어난 도사였다.
- 작가의말
비조욕유영 - 날개 달린 새가 굳이 헤엄치려 한다. 재능을 낭비하는 사람들 책망할 때 쓰는 말이죠.
그나저나 우리 귀염둥이 치우가 열두 짤이 되면서 키가 2m로 자랐습니다. 그리고 귀신 굼꼬또 대신 귀신 불러서 막 부려 먹습니다. 속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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