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력소모전法力消耗戰
법력대전法力對戰
법력을 겨루니
보인현위寶印現威
보인이 위력을 드러내다
숲은 상쾌하고 햇볕은 따사롭다. 그런데 풍운십삼기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결승법 푸는 법은 나도 모릅니다. 수인씨 다음으론 펼치는 사람이 없어서 누구도 해법을 연구하지 않았거든요. 그러나 작심하면 못 풀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경고합니다."
오작이 태산노도를 매섭게 쏘아봤다.
"이걸 풀고 떠나면 추궁하지 않겠습니다. 사람 죽이는 게 기분 좋은 일은 아니거든요. 그러나 내 경고를 무시하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밧줄을 풀고 당신들 모두 죽이겠습니다."
풍운십삼기는 저도 모르게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진작 이렇게 나오지. 그럼 괜히 일이 커지지 않았을 텐데.'
심지어 갈우는 거래를 제시한 자신을 따끔하게 혼내지 않은 오작과 치우를 원망했다. 청제의 추격을 걱정하여 최대한 조용히 지내려는 둘의 사정을 알 길이 없기에 딴에는 아주 당당했다.
"흐하하."
태산노도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풍운십삼기는 태산노도의 돌변한 태도에서 희망의 불씨를 보았다.
"출신이 좋아서 그런가? 허세가 대단해 깜빡 속을 뻔했어."
"그럼 이젠 싸우는 겁니까? 모든 걸 걸고 말입니다."
안타깝게도 태산노도는 가문이나 문파는 물론 가족도 없고, 풍운십삼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오작의 협박은 아무 효과도 없었다.
"그래. 나 솔직히 이 법술밖에 못 익혔어. 네놈들과 다르게 재능이 일천하여 딴 데 눈 돌릴 틈도 없었거든."
태산노도가 느긋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단을 이룬 요괴는 웬만하면 칼이 안 들어가. 내가 왜 흑호를 타일러서 놔줬는지 알아? 죽일 수 없어서야. 그리고 요괴란 놈은 몸을 열 개로 토막 내도 멀쩡하게 살아. 그러니까 난 요괴들을 제압할 뿐 죽이지 못해. 근데 너흰 사람이잖아."
태산노도의 말에 풍운십삼기도 자신감이 생겼다.
"우릴 죽여서 어떤 이득이 있습니까?"
오작은 여전히 태연한 얼굴이었다.
"그깟 재물은 다 돌려준다고 했잖습니까. 그럼 그쪽은 손해 본 거 없습니다. 그런데 굳이 우리 둘을 죽인다? 뭔가 이상한데요."
태산노도는 아까 한 놈만 필요하다며 오작을 죽이자고 한 갈우를 갈기갈기 찢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자신도 결승법만 이백 년 익혔다고 주저리주저리 했던 건 미처 떠올리지 못하고.
"우리 질문에 고분고분 대답하고 시키는 대로 하면 목숨은 부지할 거야."
"더는 협상하지 않습니다."
대화만 들으면 오작이 태산노도와 풍운심삽기를 묶은 줄 알 것이다.
오작의 신호를 받은 치우는 결승법의 속박을 풀기 위해 법력을 동원했다. 오작 역시 법력으로 결승법을 공략하며 해법을 고민했다.
"공격해. 죽이지만 않으면 되니까 팔다리 정도는 부러뜨려."
태산노도는 둘의 반항으로 법력 소모가 빨라지자 풍운심삽기에게 공격을 지시했다. 풍운십삼기는 각자 무기를 들고 치우와 오작의 팔다리를 힘껏 내리쳤다.
"뭐야? 너희 아침 안 먹었어? 간지럽잖아."
치우를 향한 공격은 확실히 먹혔다. 그러나 아무 상해도 입히지 못했다. 오작을 공격한 무기들은 자색 옷에 닿은 후 미끄러져 바닥을 때렸다.
"도사님. 공격이 안 먹힙니다."
"계속 때려. 공격 막는 데 법력이 소모돼. 법력이 사라지면 법보도 힘을 잃을 거야."
태산노도는 편한 자세로 앉아서 법력을 회복하는 수련에 매진했다. 치우와 오작은 결승법 때문에 법술이나 무공을 못 펼치는 신세고, 태산노도는 공격용 법술을 모른다.
그래서 누구의 법력이 먼저 사라지는지 겨루는 이상한 양상이 되었다.
새들이 즐겁게 지저귀고 작은 동물들이 평화롭게 뛰노는 숲. 늙고 작은 도사가 맨땅에 앉아 법력을 수련한다. 거기에서 채 오 장도 안 되는 거리에선 얼굴에 상처 몇 개씩 새긴 사내들이 무기를 들고 밧줄에 묶인 채 누워있는 청년과 소년을 공격했다.
그리고 또 이 장 정도 거리엔 고르게 숨 쉬며 잠에 빠진 수비군 병사가 있었고, 훨씬 먼 곳엔 오작의 지시대로 도망친 둔각이 상황을 전혀 이해 못 한 눈으로 이 모든 광경을 의문스럽게 지켜봤다.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가 천천히 뱉은 태산노도가 눈을 뜨고 외쳤다.
"덩치 큰 놈을 죽여. 저놈이 법력이 더 많다. 작은놈은 내가 몇 년이고 묶어둘 수 있어."
풍운십삼기는 원래 약탈과 살인을 밥 먹듯 하던 놈들이다. 그러나 상상도 못 해본 기상천외한 싸움에 말려 두려운 마음이 가득했고 먹히지 않는 공격에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그래서 태산노도의 말을 듣자마자 서로 경쟁하듯이 치우의 머리를 공격했다.
"마침 잘 됐다. 머리가 가려웠는데 말이야."
치우는 삼태극을 만드는 과정에 깨달음을 얻어 동주철갑을 몸에 동화했다. 동주나 철갑 모두 눈에 보이지 않아서 풍운십삼기는 두려움이 부쩍 늘었다.
"무슨 수작을 부렸어? 왜 너희 법력은 안 줄어드는 거야!"
법력이 절반 이상 소모된 태산노도는 겁에 질려 이성을 잃었다. 자신이 뱉은 말이 풍운십삼기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고민도 안 했다.
"오래 산다고 반드시 현명해지는 건 아니군요. 무슨 욕심 때문인지 몰라도 협상을 거부할 때부터 별로 현명한 분은 아니라는 걸 느꼈지만 말입니다."
오작의 자극에 태산노도의 법력 소모는 빨라졌고 회복은 느려졌다.
반면, 치우는 삼태극을 기반으로 한 태극보인이 귀령성모의 내단에서 계속 법력을 뽑아 보충했고, 오작은 무극보인이 결승법의 영향을 안 받고 외부로부터 기운을 끌어들여 회복했다.
"죽여. 다 죽여. 이대로는 우리가 죽는다."
태산노도의 말에 풍운십삼기는 오작의 머리를 공격했다. 그러나 머리를 공격한 무기 역시 미끄러져 애꿎은 바닥만 때렸다.
"독을 먹이자."
풍운십삼기는 몸에 지닌 독을 전부 꺼내 둘의 얼굴에 부었다. 공격이 아니기에 동주와 자색 옷 모두 막아내지 못했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오작은 무극을 깨달아 약한 독에 해를 입지 않는다. 치우는 한술 더 떠서 독의 기운을 삼태극의 하나를 이룬 귀단의 기운으로 빨아들였다.
"불. 불을 지르자."
풍운십삼기는 마른 가지를 주워 둘 곁에 쌓았다. 그러고는 다급히 불을 붙였다.
그러나 불은 타오르기 바쁘게 꺼졌다. 떨리는 손으로 부싯돌을 두드려 겨우 불길을 피워올리면 커다란 손으로 문지르기라도 하듯이 짓눌려 사라졌다.
"뭐, 뭐야? 어떻게 결승법에 묶이고도 법술을 펼칠 수 있지?"
태산노도는 법력을 회복하는 걸 포기하고 벌떡 일어서서 오작에게 질문했다.
"당신이 그랬잖습니까. 노력으로 재능을 초월할 수 있고, 열심히 수련하면 예기치 못한 성과를 이룩한다고 말입니다."
오작은 무극을 깨달아 기운을 다른 수련자들과 다르게 인식한다. 산이 관찰자의 위치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처럼, 기운도 수련자의 인식에 따라 다른 성질을 드러낸다.
술사들이 무작정 수련만 하지 않고 정신 수양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이유고, 통천교주가 귀령성모를 싫어하는 이유다. 귀령성모는 살아온 세월에 비해 정신 수양이 너무 얕았다.
오작은 무극을 갓 깨달아 그 효용을 제대로 모른다. 그러나 몸만 묶는 게 아니라 법술 사용까지 제한하는 결승법 덕분에 새로운 걸 깨닫게 되었다.
법력을 동결하는 방식이 아니라면 법술을 방해하는 효과를 지닌 법보나 법술은 오작에게 제대로 먹히지 않는다. 수련의 깊이에 따라 아예 안 먹힐 수도 있다.
그리고 법력을 동결하는 방식도 잘 연구하면 대응 방법이 떠오를 것 같았다.
전혀 뒤집을 방법이 없어 보이자 풍운십삼기는 무기조차 버리고 몸을 돌려 도망쳤다. 태산노도는 잠깐 고민하고 풍운십삼기와 다른 방향으로 도망갔다.
"치우야, 저 늙은이는 네가 죽여. 대화도 하지 말고 그냥 죽이면 돼."
"알았어. 나 잘할 수 있어."
치우나 오작이나 직접 죽인 건 귀령성모가 처음이었다. 독구의 죽음을 오작이 한 것으로 치더라도, 치우나 오작이 살인에 익숙지 않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그나마 오작은 무수한 살인을 목격했고 독구의 일로 마음도 단단히 먹었기에 자신이 있지만, 치우는 어떨지 모른다.
"대화하지 말고, 어떤 말을 해도 꼭 죽여야 해."
"잔소리 그만하고 밧줄이나 풀어."
드디어 태산노도의 법력이 소진되어 둘을 묶은 밧줄이 사라졌다. 치우는 갈우의 몽둥이를 집어 들고 멀찍이 보이는 태산노도의 등을 향해 달려갔다.
오작은 길이가 팔 척 정도 되는 짧은 창을 들고 풍운십삼기가 도망친 방향으로 뛰었다.
'어리석구나.'
일방적으로 공격하기만 했기에 풍운십삼기는 오작의 힘을 실감하지 못했다. 머리로는 강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으론 요행을 바랐다. 그래서 하나라도 목숨을 구하겠다고 흩어지는 대신 뭉쳐서 도망갔다.
'살인은 나쁜 게 아니다. 그렇다고 옳은 일도 아니다. 살인은 그저 살인이다.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말자.'
자단의 등에 업혀 주작란을 찾아다니던 이십 년 동안, 오작이 목격한 죽음은 만 개가 훌쩍 넘는다. 자단은 자신을 속이거나 이용한 자를 절대 살려두지 않았다.
오작은 그 모든 죽음에 자기 책임도 있다고 여겼고, 줄곧 마음에 담아뒀다.
'직접 죽여보면 알겠지. 숙부가 날 위해 살인하면서 어떤 기분이었는지를.'
오작은 실종한 자단을 찾으려고 움직이는 중이고, 청제의 수하가 분명한 풍운십삼기를 죽여야 할 명분이 있다. 조금 억지스럽긴 하지만, 오작은 자단을 찾기 위해 이들을 죽이는 셈이다.
슉 소리와 함께 관일홍 초식이 펼쳐졌다. 직선보다 빠르고 강한 곡선. 얼마나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지에 따라 속도와 힘이 달라지는 게 관일홍 초식이다. 찌르기뿐인 단순한 초식이지만, 제대로 익히려면 무수한 피와 땀이 필요한 대단한 무공.
부드러우면서도 조금 질긴 느낌이 창을 타고 손으로 넘어왔다. 왼쪽 가슴이 찌르르 울렸다.
오작은 숨을 짧게 끊어 쉬면서 다시 창을 내질렀다.
창대가 아주 곧지는 않아 생각대로 초식이 펼쳐지지 않았다. 그러나 조금 빗나간다고 창날에 터진 혈관이 바로 아무는 건 아니었다.
'이런 거구나.'
어느새 열세 구의 시체가 약 오 장(8.5m) 거리에 쭉 널렸다.
'뭔지 알 것 같은데 모르겠다.'
오작은 꼼꼼하게 풍운십삼기의 죽음을 확인한 후 창을 버렸다.
조금은 갑갑하면서도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가니 치우가 멍한 얼굴로 도랑 곁에 쭈그리고 있었다.
"괜찮지?"
오작은 애써 담담한 말투를 꾸몄다.
"괜찮진 않아. 양부가 오장국의 불충한 신하들을 죽이는 걸 보면서 아주 통쾌했는데, 직접 죽이니까 기분이 이상해."
"어떻게 이상한데?"
"나쁜 놈인 걸 아는데 죽이고 나니까 조금 허무하달까? 근데 살인에 대한 죄책감은 아니야."
"그럼?"
"반항도 못 하고 죽으니까 내가 나쁜 놈 같았어."
법력을 소진한 태산노도는 아무 반항도 못 하고 몽둥이에 머리가 깨져 죽었다.
"형은?"
"괜찮아."
오작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어차피 너나 나나 더 많은 사람을 죽여야 해. 어쩌면 상황에 휩쓸려 나쁘지 않은 사람을 죽여야 할지도 몰라. 치우 넌 혹시 살인이 나쁜다고 생각해?"
"아니. 형이 그랬잖아. 먹을 물과 음식보다 입이 많으면 살인 욕구가 강해진다고. 그건 인간의 본성이라고."
"인간은 좋은 요괴 나쁜 요괴 구분하고, 좋은 땅 나쁜 땅 구분하고, 좋은 사람 나쁜 사람 구분해. 그 모든 기준이 인간이야. 나한테 좋으면 좋고 나한테 나쁘면 나빠. 그러니까 우린 다른 인간의 기준에 흔들리지 말자. 괜히 죽일 놈을 마음이 약해서 살려두지 말고, 살려둘 사람 귀찮다고 죽이지 않으면 돼."
"제발, 제발 살려주십시오. 저는 집에 오십 넘은 노모가 있고 두 살 된 아들도 있습니다."
갑자기 중독되었던 병사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저씨 몇 살이야?"
치우의 물음에 병사는 고분고분 대답했다.
"스물여섯입니다."
"그럼 형보다 동생이네. 우리 형은 서른셋이야."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약간 무거웠던 분위기가 병사 덕분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몇 가지 물을 게 있습니다. 왜 여기로 온 겁니까?"
"북부에서 큰 전쟁이 일었습니다. 빨리 알려야 한다고 여길 지나라고 했습니다. 가고 싶은 방향 반대로 가면 동굴이 나오고, 그 동굴로 들어가서 뛰지 않고 남쪽으로 걸으면 금방 반대편에 도착한다고 그랬습니다."
"누가 시켰습니까?"
"대장님이요."
"전쟁은 언제 일었습니까?"
"며칠 전이라고 합니다. 다른 병사들이 알면 안 되니까 혼자 알고 빨리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수비대는 원래 도망치는 병사가 많아서 나쁜 소문을 내면 곤장도 때리고 그럽니다."
오작은 순식간에 영문을 알아챘다. 혈편복과 수비대 대장 사이에 뭔가 거래가 오간 게 틀림없다.
"혹시 수비대에서 말을 끌고 북부로 가는 사람을 잡아두고 그럽니까?"
"네. 얼마 전에 참장이 편익조를 보내 말이 있는 사람은 건네 보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형, 어쩔까?"
"아이고. 죽이지 말아 주십시오. 집에 육십 된 노모랑 세 살짜리 딸이 있습니다."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하면 돈도 드리죠."
- 작가의말
서로 엘리전 갔는데 오작과 치우는 몰래 섬멀티 해서 자원을 캐고 있었습니다. 저글링 13마리 믿고 러시한 태산노도는 GG를 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선호작 300 기념으로 한 편 더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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