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대별산作別大別山
두관소녀豆冠少女
열네 살 소녀는
수무가의愁無嫁衣
혼복 걱정이 크네
일행은 세 무리로 나뉘어 걸었다. 희운과 강제명, 오작과 치우, 그리고 소소.
가장 뒤에서 걷는 소소는 앞의 넷을 보며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치우는 얼굴 불합격. 머리도 둔해.'
아주 못생기고 멍청한 정도는 아니지만, 소소의 마음에 차지 않았다. 게다가 그간 서로 골내며 쌓인 악감정의 골도 꽤 깊다.
'오작은 다 마음에 드는데 너무 늙었어. 그리고 사람이 차가워.'
소소는 오작이 서른넷인 걸 안다. 대부분 사람은 할아버지가 되는 나이다. 게다가 사람이 너무 인정이 없다.
'희운도 마찬가지. 차라리 오작이 낫지.'
희운은 심계가 깊고 인내심이 강하다. 장점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간의 관찰로 소소는 부정적인 평가를 했다.
'반 시진이나 지나서 우리 둘을 구하러 왔어. 혹시 산사태가 또 일까 봐 걱정해 몸 사린 거야. 모든 일에서 자신이 우선인 사람은 진짜 별로야.'
남은 건 강제명밖에 없었다.
'얼굴은 세 번째지만, 그래도 괜찮아. 저만하면 잘생겼지. 오작과 희운이 유별나게 잘생긴 거지 강제명이 못난 건 아니야.'
커다린 바위를 들고 일각 이상 버틸 정도로 강하다. 결단을 칼같이 내리긴 하지만, 오작이나 희운처럼 인정미가 없지는 않다.
'말투도 배운 티가 나고. 게다가 날 구하려고 목숨까지 걸었고.'
강제명으로 정하려니 뭔가가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뭔지 알 수 없었다.
'언니들이 그랬지. 여자는 시집가기 전에 원래 마음이 복잡해지는 거라고.'
소소는 강제명한테 시집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 형. 진짜 나 때문에 소소가 시집 못 가는 거야?
치우는 지금도 소소한테 미운 감정이 더 크다. 그러나 미운 건 미운 거고, 자기 때문에 소소에게 피해가 가는 건 싫었다.
- 우리가 소문 안 내면 돼. 그럼 누구도 그날 일을 모를 테고, 소소에게 흠집이 되지 않을 거야.
치우는 앞에서 걷는 강제명과 희운을 힐끗 바라봤다. 마침 고개를 돌린 강제명과 눈을 마주친 치우는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어차피 가면에 가려 상대는 모를 텐데, 저들이 입을 가볍게 놀리는 게 아닌지 의심했던 게 괜히 찔렸다.
- 다행이네.
치우는 어젯밤 드물게 꿈을 꿨다. 산발하고 입가에 피를 잔뜩 묻힌 소소가 너 때문에 처녀 귀신이 되었다고 고함을 지르며 목을 졸랐다.
덕분에 새벽 일찍 깨어 자기 목을 조르는 뱀을 잡아 몰래 구워 먹었다.
그때 가장 뒤에서 걷던 소소가 성큼성큼 속도를 높였다. 소소가 가까이 오자 치우는 커다란 어깨를 한껏 움츠렸다.
미안한 마음과 밤에 귀신으로 나타난 것이 겹쳐 소소가 무섭게 느껴졌다.
다행히 소소는 치우를 그냥 지나쳐서 강제명 곁으로 갔다. 허리가 잘록하고 어깨가 넓은 강제명과 늘씬한 소소가 함께 걸으니 꽤 보기 좋았다.
- 둘이 잘 될까?
치우의 질문에 오작은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 어려워.
강제명은 남부 출신이다. 소소가 치우 알몸을 본 걸 아니까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거다. 더구나 강제명은 염환국의 왕이어서 소소처럼 신분이 불분명한 여자랑 혼인하는 게 쉽지 않다.
- 그래도 잘됐으면 좋겠다.
대별산은 몇몇 요괴가 나눠서 영지로 삼았다. 하나같이 성격이 더럽고 악명이 자자한 놈들이어서 웬만해선 멀리 돌아간다.
다행히 오작의 추측처럼 희운은 요괴들 영지 사이로 빠져나가는 안전한 길을 알고 있었다. 유일한 걱정이었던 소소마저도 얌전하게 지낸 덕분에 대별산을 아무 탈 없이 넘었다.
"우리는 유웅국까지 동행할 겁니다. 두 분은 행방이 어떻게 됩니까?"
희운의 질문에 오작은 예사롭게 대답했다.
"모산으로 갈까 합니다."
풍괴의 진짜 영지가 있는 무산은 모산으로 가는 길에 있다.
"그러면 여기서 서남쪽으로 가겠군요."
서북쪽으로 가는 희운 일행과는 길이 다르다.
"다시 만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희운은 오작과 치우에게 공손히 작별 인사를 했다.
"웃는 얼굴로 다시 만나는 날을 기대하오."
강제명 역시 오작과 치우에게 포권으로 작별을 고했다. 그간 대화를 많이 나누진 않았지만, 둘이 품은 바른 기운을 감지하고 호감이 조금 생겼다.
"다음에도 좋은 만남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작도 포권으로 둘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잘 가."
치우는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나도 유웅국에 갈 거야."
소소의 인사를 끝으로 일행은 헤어졌다. 오작과 치우는 경공을 펼쳐 남쪽으로 달렸다. 무산을 지나는 강이 있는데, 남쪽으로 가서 그 강을 찾아낸 다음 강변을 따라 거스르면 길을 헷갈릴 염려가 없다.
"형, 이대로 소소를 보내도 괜찮을까?"
걱정이 남는지 치우가 보폭을 줄였다.
"왜? 희운이나 강제명이나 나쁜 사람은 아니잖아."
"사실 나 어제 희운과 강제명이 대화하는 걸 엿들었어."
치우는 밤에 오줌 싸러 숲에 들어갔다. 오줌을 다 누고 돌아서는데 기척이 들려 황급히 은신술을 펼쳤다.
그러나 요괴인 줄 알았던 기척은 희운과 강제명이 낸 것이었다. 치우는 괜히 들키면 서로 뻘쭘할 것을 걱정해 은신술을 펼친 채 가만히 있었다.
통합절대감을 얻은 오작마저 치우가 은신술을 펼친 채 가만히 있으면 못 찾는다. 움직여도 가끔은 놓칠 때가 있을 정도로 치우의 은신술은 뛰어났다.
그래서 주변을 두리번거린 희운과 강제명은 치우의 존재를 전혀 몰랐다.
"희운, 넌 소소를 어떻게 생각해?"
"뭘? 너 설마 그 여자한테 마음이 있는 거야?"
강제명의 거뭇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지금까지 본 여자 중에 가장 총명해. 재주도 뛰어나고 성격도 밝고. 난 마음에 들어."
"제명아. 너 왕이야. 네 아버지가 작고하고 염환국을 노리는 늑대와 범 같은 나라가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한가한 소리를 해."
"나라는 내 힘으로 지킬 거야."
희운은 숨을 길게 들이쉬었다 천천히 뱉었다.
"인황의 후광이 아직 사라지지 않아 널 따르는 인재가 많아. 그자들이 등 돌리기 전에 강한 국가나 세력과 인척姻戚을 맺어야 해. 인재가 다 떠나면 늦었어. 그러니 네 작은 감정은 깊이 묻어. 난 황제가 되고 넌 적제가 되는 게 우리 꿈이잖아. 그리고 너와 나 중에 다음 황皇이 나와야지."
희운의 말에 강제명은 가타부타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네가 아무리 마음에 든다고 해도 할머니를 설득할 자신 있어? 저 여자의 정체가 불분명한 건 제치고, 정체가 확실하다고 해도 웬만한 집안이 아니면 너랑 맺어지는 걸 허락하지 않으실 거야."
강제명의 아버지 신농은 늦장가를 갔다. 강제명의 할머니, 즉 신농의 어머니가 웬만한 상대는 눈에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제명의 어머니는 형제자매가 모두 죽은 나라의 여왕이었다. 나라째로 염환국에 바치는 조건으로 신농과 혼인했다.
"일단 허락을 구해보고,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강제명의 말에 희운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시도 자체만으로도 네 위신이 깎일 거야. 사내가 큰 뜻을 품었으면 다른 데로 눈을 돌리지 말아야지. 너 그러다 적표노 손에 죽을 수도 있다."
"그래서 넌 뭐가 걱정인 거야? 강제명한테 시집 못 간 소소가 자결이라도 할까 봐?"
치우는 오작의 냉정한 말투가 너무 섭섭했다.
"소소 걔 철부지잖아. 진짜 자결할지도 몰라."
꿈에 처녀 귀신이 나타난 것 때문에 치우는 자꾸 나쁜 쪽으로 생각이 흘렀다.
"겁 없이 혼자 가출한 애가 고작 그런 일로 자결할 것 같아?"
"가출?"
"언행이나 차림이나 여염집은 아니잖아. 그런 주제에 혼자 돌아다니면 가출이지 뭐야. 원수에게 쫓긴다고 보기엔 너무 여유가 넘쳐. 열넷이면 어린 나이도 아닌데 철부지로 지내는 걸 보면 꽤 괜찮은 집안일 거야."
"그럼 강제명이랑 잘될 수 있겠네?"
치우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건 모르지. 가출한 주제에 집안 출신을 솔직히 얘기할까?"
치우는 신형을 멈추고 버럭 화냈다.
"그럼 도대체 어떻다는 거야?"
마찬가지로 신형을 멈춘 오작이 피식 웃었다.
"너 소소 좋아해?"
치우는 한참 골몰히 생각하고 고개를 저었다.
"아닌 거 같아. 형이나 형천이 더 좋아."
"자단 숙부를 찾기 전까진 마음을 나누지 마. 서로 인연이라면 어떻게든 재회할 거야."
대화를 일단락한 치우와 오작은 다시 경공으로 몸을 가볍게 하고 달렸다. 둘만 남았기에 굳이 밤에도 오래 자지 않고 달리는 데 몰두했다.
그렇게 며칠 꼬박 달려서 첫 목적지인 빈하에 도착했다. 새와 쥐를 잡고 물고기도 잡아 포식한 오작과 치우는 반나절 푹 쉰 다음 빈하를 거슬러 무산으로 향했다.
"풍령? 그런 이름은 여기 없는데."
무산에 도착하고서야 오작과 치우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걸 알아챘다.
무산 사람들은 무산을 무함산巫咸山으로 불렀고 각 봉우리도 제멋대로 이름을 지었다. 심지어 동쪽의 마을과 서쪽의 마을이 같은 봉우리를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다.
풍령은 풍괴가 지은 이름이거나 오래돼서 고작 수십 년 사는 인간은 알기 힘든 옛 이름일 가능성이 크다.
"형, 바람이 많이 부는 봉우리 찾으면 되는 거 아닐까?"
치우의 말에 오작은 고개를 저었다.
"너 토끼가 자기 굴 주변의 풀을 안 뜯는 거 알지?"
"응, 형이 예전에 얘기해 줬잖아. 굴이 들킬까 봐 멀리 가서 풀 먹는다고. 근데 여기도 토끼가 살아?"
치우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지만, 토끼 고기에 집착했다. 뱀이 많이 사는 동부에는 토끼를 보기 힘들다. 그래서 치우는 지금까지 토끼 고기를 맛보지 못했다.
"헛소리 말고. 풍령은 아마 바람이랑 상관이 없을 거야. 풍괴가 바람이 많이 부는 곳에 자기 영지를 만들 리는 없잖아."
"그럼 여길 포기하고 바로 모산으로 갈까?"
둘의 근본 목적은 자단을 찾는 것이다. 그러니 북망산으로 갈 수 있는 도하주 얻으러 모산으로 바로 출발해도 된다.
"우리 돈 없잖아."
일이 이렇게 될 줄 모르고 황금을 모두 형천에게 줬다. 둘은 모산파의 황금충들에게 도하주를 의뢰할 돈이 없다. 반드시 풍괴의 영지를 털어서 법보를 확보해야 한다.
"방법은 있는 거지?"
치우의 간절한 질문에 오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 똥 진 오소리 들어봤지? 추운 겨울 너구리 굴에 살면서 너구리가 싼 똥을 몸으로 받아 밖으로 버리잖아."
"응. 섬에서 형이 말했어."
"족제비랑 오소리가 친척인 건 몰랐지?"
치우는 하나와 둘을 듣고 다섯을 모를 뿐, 셋을 알 정도는 된다.
"족제비 요괴의 영지는 다른 요괴 영지 안에 있구나!"
그러나 치우는 언제 흥분했냐시피 곧 시무룩해졌다.
"그럼 무산에 이 많은 요괴 영지를 다 확인해야 하는 거야?"
"사람이 가까이 산다는 건 요괴 성질이 순하다는 뜻이야. 아니면 가까운 곳에 마을이 자리 잡지 못하지."
"요괴는 대부분 사람을 먹는다면서?"
"사람 대신 먹을 게 많다면 굳이 안 먹어. 우마왕도 사람 안 먹잖아."
풀을 뜯는 짐승도 요괴가 되면 육식을 한다. 그래도 원래부터 고기를 뜯는 맹수들과 달리 자제력이 강하다.
우마왕처럼 똑똑한 요괴는 사람을 함부로 해쳤다가 보복당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안 걸리게 몰래 먹거나 아예 안 먹는다.
물론, 강한 힘을 얻고 천지 분간 못 하는 요괴도 많다. 그래서 요괴가 사람을 해치는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그러나 무산 근처에 마을이 융성한 걸 보면, 이쪽 요괴들은 대별산의 요괴들처럼 흉악하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빈손으로 가는 건 아니니까 멧돼지 한 마리 잡자."
"하필 왜 멧돼지야?"
"여기 마을마다 돼지 수십 마리씩 기르잖아. 돼지는 사람이랑 비슷하게 먹어. 그런데도 기르는 걸 보면 요괴한테 제물로 바치는 용도일 거야. 다시 말해서, 여기 요괴는 돼지고기를 좋아한다는 거지. 우린 돼지 살 돈이 없으니까 멧돼지 잡아야겠지?"
그렇게 오작과 치우는 멧돼지 사냥에 나섰다. 그러나 새나 쥐와 달리 멧돼지를 잡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멧돼지 찾는 게 왜 이리 어렵지?"
가을이어서 멧돼지들이 한창 먹어야 할 때다. 그러나 오작과 치우는 며칠 돌아다니면서도 멧돼지 한 마리 못 봤다.
그때, 밭 주변에서 서성거리며 멧돼지 흔적을 찾는 둘에게 옷을 두껍게 껴입은 노인이 접근했다.
"자네들 사냥꾼인가?"
"그렇습니다. 멧돼지나 하나 잡으려는데 도통 보이질 않는군요."
"벌써 가을이잖은가. 멧돼지들은 배불리 먹어야 하니까 여기 말고 산 세 개 넘은 곳으로 갔어. 거기 꿀나무가 있거든."
견문이 넓은 오작도 처음 듣는 나무였다.
"처음 듣습니다."
"나무 한 그루에 열매가 수백 근 달리는데 어찌 단지 꿀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야. 지금쯤은 열매가 땅에 떨어질 때니까 근처의 멧돼지들이 다 몰려갔을 거야. 우리야 수확 철에 멧돼지가 안 오니 고맙기만 하지."
"가는 길을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어이쿠, 큰일 날 소리. 산 세 개나 넘어야 한다니까. 이쪽 어르신들이 성격이 순하긴 하지만, 외지인을 보면 그냥 살려두지 않아. 특히 풍령에 사는 그분은 영지 근처에 누가 오는 것도 질색해."
"거기 어딥니까?"
- 작가의말
두관소녀에서 두관은 약관이나 이립처럼 나이를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총각이 8-14로 범위가 넓다면 두관은 14세 전후를 뜻합니다.
수무가의에서 가의는 혼복을 말합니다. 시집갈 때 여자가 입는 옷으로 푸른색이었죠. 붉은색은 남자가 입는 게 옛날 전통입니다. 청나라 때부터는 여자도 붉은색 입는 것 같더라고요.보통 혼복은 평생 간직하거나 딸이 시집갈 때 물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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