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보무령先天寶巫鈴
영보무령靈寶巫鈴
선천영보 무령은
호운초우呼雲招雨
구름을 부르고 비를 부른다
운사와 우사는 각자 제단에 편하게 앉아 법력을 공급했다. 수신 공공이 법력을 빠르게 회복해주는 심해수深海水를 가득 줬기에 법력 고갈로 주화입마에 들 걱정이 전혀 없었다.
심해수는 만 장 깊이의 바다 바닥에 있는 해저빙海底氷을 녹인 물이다. 바다와 같은 색을 띤 푸른 심해수는 소금기가 전혀 없고 오히려 뒷맛이 달았다.
"잘하면 경지 두 개 오를 것 같지?"
처음에 청제가 북부로 가서 공공을 도우라고 할 때 거부감이 강하게 들었다.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비를 내려주고 왕의 아부와 백성의 추앙을 받는 기분은 해마다 느끼지만 늘 짜릿했다.
결국 청제의 설득이 먹혀 북부로 와서 공공의 의뢰를 받을 때만 해도 썩 내키지 않았는데, 한 달이 넘은 기간 제단에 편하게 앉아서 법력을 회복하는 심해수를 마시니 오길 잘했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깨달음만 받쳐주면 다섯 개도 될 것 같아."
한 달이 넘은 기간 전혀 쉬지 않고 법력을 제단에 공급했다. 이건 청제도 불가능한 일이다. 술사로 명성이 드높은 청제도 불가능한 일을 경험하는 건 경지 상승에 큰 도움이 된다.
지금까지 해온 일에 비해 경지가 낮은 둘은 이런 일이 자주 있었으면 싶었다.
[조심. 뭔가 침입했다.]
그때, 무령운우파라는 이름에서 두 글자를 차지하는 법보인 무령이 둘에게 경고를 건넸다.
무령은 운사와 우사한테 애증의 존재다. 경지와 법력이 부족한 둘은 무령 덕분에 구름을 모으고 비를 내리는 어려운 법술을 쉽게 해냈다.
그러나 무령의 도움을 받는 바람에 법력이 잘 늘지 않고 경지도 쉽게 오르지 않았다.
운사는 그나마 괜찮지만, 일 년의 절반을 무령과 함께 보내는 우사는 얻은 명성에 비해 경지가 너무 낮았다.
"누구야!"
참을성이 약한 우사가 버럭 소리 질렀다. 공격력이라도 강하면 모른척하며 역습하겠지만, 운사나 우사나 수비도 약하고 공격도 평범하여 암습에 약하다.
차라리 소리를 질러 공공의 수하들 주의를 끄는 게 나은 대책이다.
"아니면 어쩌려고 그래."
무령이 기척을 잘못 느꼈을 수도 있다. 운사는 괜히 소란을 피웠는데 별일 없으면 공공의 수하들이 비웃을까 봐 걱정되었다.
"아님 말면 되지."
우사는 소매에서 삼지창을 꺼내 휘휘 저었다. 무공을 제대로 익힌 적 없어서 말 그대로 젓는 수준이었다.
운사도 소환술로 하얀 독수리 한 마리 불러 자신을 지키게 했다.
[법술을 중단하고 어서 도망쳐라.]
무령은 치우와 오작 둘 다 감지했다. 오작은 아직 조화가 부족하여 이질감이 있고 치우는 타고난 은신술로 모습도 기척도 자연스럽게 잘 숨겼으나 존재감을 완전히 없애지 못했다.
둘의 수준이 높아 웬만하면 들킬 염려가 없는데, 상대가 하필이면 구름과 비를 다스리는 무령이었다. 구름과 비처럼 쉽게 흩어지면서도 잘 뭉치는 특별한 기운을 다루다 보니 작은 이질감과 존재감을 놓치지 않았다.
"침입자가 있다!"
운사와 우사는 무령의 권고를 무시했다.
청제한테서 공공이 하는 일을 전력으로 도우라는 지시를 받기도 했고 공공이 이번 일을 성사하면 후하게 사례하겠다고 약속했다.
청제의 위엄과 보상에 대한 욕심 때문에 운사와 우사는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우사의 외침을 들은 공공의 수하들이 달려왔다.
조력자가 축융이 숨은 동굴로 통하는 굴을 팔까 봐 춘우산 전체를 봉쇄하고 엄중하게 감시했다. 특히 축융이 있는 동굴 주변엔 백 명도 넘은 사람이 깔렸기에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이 모였다.
[떠났다.]
무령의 말에도 운사와 우사는 시름을 놓지 못했다.
"놈들이 잠시 물러났다. 강우술降雨術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놈들의 흔적을 찾아내라."
하늘샘의 물을 소환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공공이 법력을 희생하여 만든 두 제단이 있고 무령의 도움이 있어 성공했다.
그러나 근처에서 큰 법술을 펼치거나 하여 법력 흐름을 방해하면 어찌 될지 모른다.
[멍청한 놈. 약점을 자기 주둥이로 나불대?]
무령은 운사나 우사가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지만, 계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도왔다. 그러나 둘이 벌이는 멍청한 짓에 이미 진절머리가 난 지 오래다.
특히 우사라는 놈은 머리가 굳이 왜 필요한지 궁금할 정도였다.
"일부러 없는 말 꾸며서 우릴 골리는 건 아니지?"
무령은 멍청하고 재능도 부족한 둘이 답답해 일부러 거짓으로 위기인 것처럼 꾸며 둘을 자극했다. 덕분에 둘이 갖춘 자질보다 빠른 발전을 보였지만, 우연히 거짓말이 들키는 바람에 서로 불신하게 되었다.
[내가 위험한 상황을 더 위험한 것처럼 얘기해 너희를 긴장케 한 적은 있어도 없는 걸 꾸며낸 적은 없었다.]
"있어."
[멍청한 놈. 내가 알려줘도 네가 발견 못 한 적은 있어도 거짓으로 위기를 꾸민 적은 없다니까. 네 멍청함을 탓해야지 왜 내 거짓말로 자꾸 모는 거야.]
천계 출신인 무령은 삼계로 쫓겨나며 선천영보가 되었다. 그러다 인연을 만나 계약했는데, 실수로 개인이 아닌 문파와 했다.
이미 계약자와 인연이 끝났는데도 계약 때문에 관계를 정리하지 못했다.
처음엔 운사와 우사를 잘 키워볼 마음도 있었지만, 이젠 아예 정떨어진 상태다.
"그건 네 일방적인 주장이잖아."
셋의 관계는 시작부터 심하게 삐걱댔다. 무령이 그나마 마음에 들어 하던 제자가 있었는데 문주는 혈통이 고귀한 운사와 우사한테 무령을 줬다.
무령은 문주의 일 처리도 마음에 안 들고 운사와 우사도 마음에 안 들었지만, 계약을 어길 수 없었다.
그래서 불만을 누르고 둘을 어떻게든 훌륭하게 키워보려 했으나 자질이 너무 부족했다. 어쩔 수 없이 거짓말까지 동원해서 겨우 이 정도로 키웠는데, 우연히 거짓말이 들킨 후 둘의 불신을 받게 되었다.
그나마 운사는 언행에 조심하기라도 하지만, 우사는 속에 있는 말을 참지 않았다.
[어휴. 계약만 아니면 그냥 확.]
한편.
- 저놈들 수준으로 우릴 어떻게 찾아냈지?
오작과 치우는 둘한테 들킨 게 너무 놀라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서왕모한테 안 들킨 데는 다 말라가는 복숭아나무의 도움도 있었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서왕모의 눈을 피한 건 대단한 일이다.
그러니 오작이 보기엔 전체적인 경지가 자신보다도 낮은 듯한 우사와 운사가 둘의 은신술을 알아챘다는 건 쉽게 이해 가지 않았다.
- 확실히 발견한 건 아니니까 번갈아 가서 둘을 놀래줄까?
치우는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 반에 심술 반으로 한 말이었다.
- 훌륭한 생각이야.
그런데 오작이 바로 훌륭하다고 칭찬하자 기분이 째질 것 같았다.
'놈들이 우릴 어떻게 찾아냈는지 확인해보자.'
오작은 절대감으로 치우의 움직임을 느낀다. 특히 은신술을 펼치기 전부터 치우를 주시하면 더 쉽다. 즉, 치우의 은신술이라고 누구한테도 안 들킬 정도로 대단한 건 아니다.
그러나 쉽게 들킬 은신술도 아니기에 뭔가 이유가 있다고 짐작했고 그걸 알아내는 게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때부터 사흘 내내 오작과 치우는 쉬지도 않고 비가 내리는 구역으로 출입을 반복했다.
"운사. 그냥 무시하자."
아무 흔적도 없고 기척도 없는데 무령은 사흘 내내 침입자 타령을 불렀다. 운사나 우사가 심적으로 지친 건 물론이고, 공공의 수하들도 눈초리가 곱지 않다.
"목숨 걸린 일이야. 어떻게 무시해."
"그럼 계속 이대로 지내자고?"
"저들이 노리는 건 우리 목숨이야. 축융이 목적이라면 벌써 손 썼겠지."
아쉽게도 운사의 추측은 틀렸다. 오작과 치우는 강제명을 찾는 게 목적이다. 축융을 방해하는 공공이 강제명과 반드시 연관이 있다고 추리했고, 그런 공공한테 자신들의 존재를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강한 법술로 비를 못 내리게 방해하면 들켜서 상대가 경계할지도 모른다. 오작은 운사와 우사를 노리는 거로 위장하여 공공의 의심을 피하려고 했다.
게다가 둘에게 중상을 입혀 비를 못 내리게 하면 청제의 위신이 깎인다. 우사의 빈자리를 구망이 채워주기까지 하면 구려국과 청제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자들을 확실히 끌어올 수 있다.
[왔다.]
"안 믿어."
우사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운사 역시 고민이 깊었다. 사흘 내내 무령은 누군가가 왔고 사라졌다는 말만 계속 반복했다.
[나도 좋아서 이러는 거 아니다. 계약을 성실히 이행하는 것뿐이야.]
"안 믿어."
운사는 눈이 퀭한 공공의 부하들을 보며 차마 입이 떼 지지 않았다. 대부분이 인간이긴 하지만, 후각이나 청각이 출중한 요괴도 있었다. 그런 자들조차 작은 흔적이나 실마리 하나 발견하지 못한 채 사흘 내내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멍청이들. 삼 장 안에 왔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우사와 운사는 수호계 법술을 펼쳤다. 그러나 강우술에 영향을 줄까 봐 두껍게 치진 않았다.
빛이 번쩍였다. 하나의 창이 둘을 동시에 노렸다.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할 겨를도 없었다. 하늘을 가르며 땅을 때리는 벼락처럼 순식간에 발생하고 찰나에 사라졌다.
"뭐야!"
우사와 운사가 갑자기 피를 토하며 쓰러지자 공공의 수하들이 외쳤다. 천지일선으로 둘의 오른쪽 가슴에 구멍을 뚫은 오작은 은신술을 펼친 채 천천히 물러났다.
"빨리, 대왕大王한테 편익조부터 날려."
우사와 운사가 쓰러지면서 고르게 내리던 비가 갑자기 거세졌다. 그러다 언제 비가 내렸나시피 불시에 멈췄다.
이미 내린 비도 빠르게 땅으로 흡수되어 사라졌기에 한 달 이상 비가 끊이지 않고 내리던 곳이라고 상상하기 힘든 모습을 보였다.
확.
웅혼雄渾한 기세가 넓게 퍼졌다. 비를 피해 동굴에 숨었던 축융이 모습을 드러냈다.
백발이 반쯤 섞인 머리와 수염은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평범한 사람 같았다. 그러나 숯을 품은 듯한 빨간 눈동자와 팔 길이에 비해 너무 크고 긴 손이 절대 평범하지 않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간 받은 수모를 그대로 돌려주지."
말을 하는 축융의 입에서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 나왔다. 가벼운 듯 보이는 연기는 흩어지지 않고 뭉쳐서 형상을 만들었다.
뱀인지 용인지 구분이 힘든 모습을 갖춘 연기가 운사와 우사가 앉은 제단을 덮쳤다.
단단한 껍질을 씹는 듯한 와작거리는 소리와 함께 제단이 조금씩 허물어졌다. 운사와 우사는 다행히 약삭빠른 공공의 수하 덕분에 목숨을 부지했다.
"걱정하지 마라. 죽이지는 않을 테니."
제단을 먹어 치운 검은 연기는 흩어져서 공공의 수하들을 덮쳤다. 연기에 닿은 자들은 팔이나 다리 하나씩 부지깽이처럼 타서 말라버렸다.
"도망쳐라."
연기에 어렵게 저항한 자들이 운사와 우사를 업고 북쪽으로 뛰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팔이나 다리 하나씩 잃고 기력이 진하여 바닥에 쓰러졌다.
- 법력을 태워버렸어.
축융의 연기는 법력을 태워버렸다. 소모하거나 빼앗긴 법력은 수련으로 회복할 수 있지만, 축융이 태운 법력은 영영 안 돌아온다.
공공의 수하들에겐 팔이나 다리 하나 잃은 것보다 법력이 전소되어 사라진 게 더 큰 문제다.
"의리도 없는 놈들. 동료를 두고 도망치다니."
말을 마친 축융은 제단 가까이 가서 심해수를 마셨다. 동굴에 갇힌 채 한 달 이상 적대적인 기운에 둘러싸여 생활한 바람에 법력이 크게 위축되었다.
"자네들도 와서 한 모금 마시게. 의도했는지는 몰라도 날 도운 건 사실이니까 어떻게든 보답해야지."
오작과 치우는 모습을 드러내고 축융 곁으로 가서 권하는 심해수를 받아 마셨다. 오작에겐 별 효과가 없었지만, '전성기'의 삼 할 법력밖에 보유하지 못한 치우한텐 큰 도움이 되었다.
태극보인을 잃은 후부터 법력이 모이는 속도가 느려 터졌는데, 심해수를 마셔서 꽤 많은 양의 법력을 회복했다. 물론, 원래 치우가 보유했던 귀기에 비교하면 일 푼도 안 되는 기운이었다.
"급히 나오느라 몸에 지닌 것도 없군. 시간 나면 내 집에 놀러 오게. 그럼 오늘 받은 도움에 대한 보답을 확실하게 하지."
"가면서 얘기하죠."
오작의 반응에 뭔가 있음을 직감한 축융은 군소리 없이 움직였다. 오작과 치우는 축융의 몸에서 무질서하게 뛰어다니는 불의 기운을 느끼며 같은 의문을 떠올렸다.
'기운을 통제 안 하는 걸까? 못 하는 걸까?'
춘우산을 벗어난 셋은 서로 대화도 없이 동시에 북쪽을 선택했다.
"구천현녀의 부탁으로 왔습니다. 강제명과도 일면식이 있고요."
"그래서 날 구한 거군."
"저 둘한테도 원한이 있습니다. 겸사겸사였던 거죠."
축융은 고개를 끄덕이며 오작이 말을 이어가길 기다렸다.
"단도직입으로 묻겠습니다. 강제명이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우린 강제명의 삼매화가 필요합니다."
"왜 필요한지 물어도 될까?"
오작은 잠깐 고민하고 솔직히 털어놨다.
"금계동을 열려고요. 자단 협객이 제 숙부이고 이 아이 양부입니다."
"다행이군. 공공과 같은 목적이 아니라서."
"강제명의 행방을 아십니까?"
"어딘지는 나도 모르네. 그러나 공공의 목적과 지역 이름은 알아."
"거기가 어딥니까?"
"북해 빙령도의 흑수해. 공공의 목적은 거기에 숨은 흑제거나 흑제의 주검이야."
- 작가의말
무령은 문파와 계약했습니다. 그래서 운사와 우사 둘 다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문파의 모든 제자가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정식으로 권한을 이양받아야 무령을 부릴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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