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곳적마수太古的魔獸
천생마수天生魔獸
타고난 것은 마수요
능학즉요能學卽妖
배울 수 있으면 요괴니라
적호 쪽은 요괴가 오십 정도 남았다. 죽은 요괴는 없지만, 법력을 소진한 요괴가 꽤 많았다. 다행히 북부 군대는 사망자가 열도 안 되어 진법을 펼치는 데 지장이 없었다.
북부 군대가 방패가 되고 요괴들이 창이 되면 해볼 만한 싸움이라고 다들 느꼈다.
"일전에 큰 도움 받은 고마움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대협께서는 이번 일에 빠지는 게 어떻습니까?"
희운이 오작에게 진심을 담아 말했다. 오작이 껄끄러운 점도 있지만, 기련산에서 매정하게 떠난 마음의 빚이 꽤 컸다.
"여긴 북부의 땅입니다. 만약 중부의 국가가 차지하면 북부 입장에선 매우 경계될 겁니다."
오작은 희운 무리가 여길 차지하면 북부 국가들이 그냥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을 말했다.
"시위가 당겨지면 살을 쏘지 않을 수 없고, 검을 꺼내면 최소 휘두르기라도 해야죠."
희운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임을 암시했다.
"그렇다면 각자 자신이 이루려는 바를 위해 최선을 다합시다."
오작의 대답에 희운은 작게 한숨을 쉬며 소매에서 부적을 꺼냈다. 손가락에서 피를 내 부적에 바르자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오작은 희운을 향해 희미하게 웃었다. 자세히 봐야 알아차릴 옅은 미소를 본 희운은 가슴이 철렁했다.
'뭐지?'
배에서는 오작이 일부러 요괴를 도발한 면이 있다. 소소를 구할 때 희운이 제멋대로 약속을 어겼지만, 결과는 좋았다. 기련산에서는 약속을 지켜 자단의 행방을 알려주고 작별했다.
오작은 합리적인 사고로 희운에 대해 악감정을 품지 않았다. 그러나 대립이 확실해진 이제부턴 적으로 간주하기로 했다.
오작이 웃은 건 차라리 일찍 싹을 잘라버릴 걸 하는 후회 때문이었다. 기련산에서 자단의 행방을 말하고 떠날 때, 오작은 천리추흉으로 희운을 죽이고 싶은 충동을 잠깐 느꼈었다.
당시 의롭지 못한 일이라고 여겼고, 천리추흉을 한 번 더 펼치면 몸이 완전히 엉망이 될 걸 알기에 꾹 참았다.
이렇게 자신을 방해할 줄 알았으면 차라리 그때 죽여버리는 게 낫지 않았을지 생각하며 애매한 웃음을 지은 것이다.
오작의 심경에 변화가 생기는 사이, 어느새 연기가 사라진 자리엔 양인지 염소인지 구분이 어려운 요괴가 나타났다.
오작은 가빠지는 호흡을 조용히 가다듬었다. 예전보다 모든 면에서 강해졌지만, 구왕의 몸에 강신한 천구를 마주할 때처럼 몸이 떨리고 사지에 힘이 빠졌다.
"대단한 기운이 느껴져."
어느새 오작 곁으로 온 설영이 말했다. 설영 뒤에는 예의 호위가 따랐다.
"태곳적 마수인 것 같습니다."
오작의 대답에 설영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질문했다.
"환수는 알겠는데, 요괴랑 마수는 어떻게 구분하는 거야?"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면 기운으로 환수인지 판단할 수 있다. 생명력보다 자연의 기운이 훨씬 많이 느껴지는 게 환수의 특징이다.
그러나 마수와 요괴는 외관이나 기운으로 쉽게 구분하기 어렵다.
"마수는 타고납니다. 대신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없습니다. 마수가 원래 못 쓰던 법술을 펼친다면 그건 새로 배운 게 아니라 타고난 걸 뒤늦게 깨달은 겁니다. 반면, 요괴는 태어날 때부터 요괴인 자가 드뭅니다. 그리고 인간과 마찬가지로 노력을 통해 법술을 익힐 수 있습니다."
물론, 오작은 절대감 덕분에 상대가 마수임을 알았다. 오작이 말한 방법으로 마수인지 요괴인지 구분하려면 꽤 오랜 기간 지켜봐야 확신할 수 있다.
"내 아이를 죽인 자는 안 보이는데?"
모습을 드러낸 마수가 말했다. 오작은 잠깐 고민하고 마수의 정체를 알아챘다. 치우의 귀곡멸살에 죽은 괴력양의 선조가 틀림없다.
천구의 후손은 대부분 요괴다. 마수로 태어나는 개나 여우는 많지 않다.
마찬가지로 이름을 모르는 저 마수의 후손도 대부분 요괴일 것이다. 마수로 태어난 괴력양은 귀한 존재다.
"저기 창을 든 대협에게 물어보면 행방을 알 수 있습니다."
"내 아이를 죽인 놈은 어딨느냐? 난 그놈만 죽이면 되니까 같이 화를 입을 걱정하지 말고 어서 말하여라."
상대의 강함이 온몸으로 느껴져 웬만하면 타협하고 싶었다. 그러나 치우의 행적은 알지 못할뿐더러, 알아도 말할 수 없다.
"도와주시겠습니까?"
오작은 고개를 돌려 설영에게 질문했다.
"응. 그런데 어떻게 하려고?"
"당신은 공격, 저분은 수비. 나는 공격과 수비를 도우며 전체적으로 조율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오작은 앞으로 성큼성큼 걸으며 창으로 마수를 가리켰다. 마수는 오작의 단호한 표정에서 상대가 웬만한 고집이 아님을 깨닫고 이빨을 뿌드득 갈았다.
"너희는 멀리 가서 싸워라."
희운은 고개를 끄덕인 후 요괴와 병사를 데리고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북부 군대와 요수촌의 요괴도 희운 무리를 따라 발걸음을 뗐다.
요수촌 밖으로 나간 두 무리는 얼마 안 지나 충돌했다. 그러나 정작 먼저 싸울 것 같던 오작과 마수는 조용했다.
"네 몸에서 약속의 아이 냄새가 나는구나."
"그게 뭡니까?"
"구체적으론 나도 모른다. 그저 약속의 아이가 나타나면 세상이 크게 변한다는 것만 안다."
오작은 혹시 형천이 반고의 도끼를 뽑은 게 약속의 이행이 아닐지 고민했다. 그러나 치우도 무리하면 도끼를 뽑았을 수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 바로 부정했다. 게다가 약속의 아이로 생기는 변화가 개천부를 뽑아서 생기는 것보다 훨씬 격렬할 것 같다는 느낌을 은연중에 받았다.
'나, 소소, 치우, 형천, 한발. 도대체 누굴까?'
"내 알 바가 아니지. 어차피 난 천계로 돌아갈 생각도 없으니 말이다."
천계에서 쫓겨난 마수는 평범한 경로로는 돌아가기 어렵다. 큰 변화가 생기면 천계로 복귀하는 길이 쉬워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양을 닮은 마수는 하계의 삶이 꽤 만족스러운지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마수가 고개를 털자 머리에서 곧은 뿔이 쑥쑥 자라다가 덜컥 뽑혔다. 마수는 뽑힌 뿔을 한 손으로 잡고 대충 휘둘렀다.
'고수다.'
마수는 손에 든 뿔을 정말 자유롭게 휘둘렀다. 무공은 살상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술로, 무기의 특징에 따라 하지 말아야 할 금기들이 있다.
그런데 마수의 뿔은 그런 금기를 개나 주라는 듯이 너무 자유로웠다.
"얏!"
상대의 수준에 흥분한 설영이 갑자기 튀어 나갔다. 긴 창을 든 무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바로 따랐다.
오작 역시 설영의 기세에 합류하여 달리며 창을 힘껏 뻗었다.
마수의 손에 들린 뿔이 다시 휘둘러지며 무지개 같은 호선을 그렸다. 그 한 번의 휘두름에 오작의 창과 설영의 두 칼이 모두 튕겼다.
다행히 무사의 창이 마수의 추가 공격을 막아 오작과 설영은 떨리는 손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이얏!"
손의 떨림이 진정되자 설영이 또 덤볐다. 오작은 함께 공격하지 않고 마수가 대응하기를 기다렸다. 대응으로 틈이 나면 좋고, 안 나더라도 방금처럼 둘이 동시에 물러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마수가 뿔로 찌르기를 펼치자 설영이 훌쩍 물러났다. 아까 오작이 한 번의 찌르기로 설영과 호위를 동시에 위협한 적 있다. 마수의 찌르기 역시 접촉하기도 전에 설영의 두 칼 모두 함부로 못 움직이게 옭아맸다.
일대일 싸움이라면 설영은 방금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다행히 오작과 호위를 믿고 과감하게 뒤로 물러났고, 마수도 꺼려지는 바가 있는지 추가로 공격하지 않았다.
"전술을 바꿉니다. 제가 주공을 하겠습니다."
오작은 물러난 설영의 자리를 차지하며 창을 뻗었다. 오작의 창과 마수의 뿔이 부딪치는 순간, 오작은 창을 놔버렸다.
뿔에 맞은 화첨창이 멀리 날아갔지만, 반려 법보이기에 아주 적은 법력만 소모하고 오작의 손에 돌아왔다.
마수는 흥 콧방귀를 뀌며 오작의 손에 들린 창을 또 두드렸다. 이번엔 오작의 반응이 느려 미처 창을 놓지 못했다.
그러나 오작은 바로 반대편 손으로 창을 바꿔 잡고 공격했다. 의외의 상황에 마수는 바로 반응하지 못했고, 설영과 호위도 잠깐 멈칫한 마수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마수의 몸에 적중한 셋의 공격은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했다. 괴력양과 마찬가지로 마수의 털은 아주 훌륭한 갑옷이었다.
오작은 손을 바꿔가며 마수와 대치했고 설영과 호위는 그런 오작을 보조했다. 마수는 초식이 절묘하고 위력도 강한데 셋에게 제대로 된 피해를 주지 못했다. 왠지 일부러 살초를 펼치지 않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우열이 분명한데도 마수가 살초를 자제한 덕분에 싸움이 길어졌다.
"빙설천지!"
설영은 무기로 아무리 공격해도 소용없어 보이자 첫 대결에서 오작에게 펼쳤던 법술을 마수한테 쏟아부었다. 마수는 법술을 피하지도 파훼하지도 않고 그저 맞아줬다.
안타깝게도 냉기를 가득 품은 법술은 아무 효과가 없었다. 오작은 오히려 마수의 기운이 강해진 느낌을 받았다.
"법술을 그대로 흡수하는 것 같습니다."
확실치 않지만, 오작이 생각해낼 수 있는 가장 근접한 해석이었다. 그리고 법술을 펼친 장본인인 설영은 오작의 말이 진실이라고 확신했다.
그때, 뿔을 강하게 휘둘러 셋을 물린 마수가 차가운 눈으로 오작을 보며 말했다.
"실력 차이를 알겠지? 마지막으로 묻는다. 내 아이를 죽인 놈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알아도 안 알려주겠지만, 모릅니다."
마수는 오작의 말이 진실임을 알아챘다.
"그래? 그럼 그냥 죽어라."
마수의 손에 잡힌 뿔에 새까만 구가 생겼다. 측량이 힘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힘이 구에 빠르게 주입됨을 느낀 셋은 목덜미에 소름이 쫙 돋았다.
머리통만큼 커진 구는 곧 터질 듯 꿈틀댔다. 오작은 창으로 구를 터뜨리고 싶었으나 선뜻 시도하지 못하고 법력을 운용해 법술을 준비했다.
"천계도 삼계도 아닌 곳에서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거라."
마수가 저주 담긴 말을 뱉으며 뿔을 휘둘렀다.
암흑구暗黑球는 뿔을 떠나자마자 무섭게 팽창했다. 절대 피할 수 없다는 예감에 오작은 이를 꽉 악물었다.
"천타오뢰굉!"
오작은 원래 마수를 노리려던 천타오뢰굉을 커다랗게 덮쳐오는 암흑구에 쏘았다. 다섯 가닥의 오행뢰를 맞은 암흑구가 채색으로 변하여 셋을 덮쳤다. 그러나 변화한 면적이 작아 마수가 보는 쪽은 여전히 검었다.
셋을 덮친 암흑구가 사라지고 세 사람도 온데간데없었다.
"마수도 살기 힘든 곳으로 가길 바란다."
조용히 중얼거린 마수는 다른 싸움터로 향했다.
마수는 천구 못지않게 강하지만, 모종의 이유로 직접적으로 생명을 죽일 수 없다. 그게 아니면 몇 합으로 셋을 해치웠을 것이다.
실력 차이를 보여줘 상대의 마음을 꺾은 후 다시 질문하려 했는데, 오작은 물론 설영까지 조금씩 강해지는 게 보이자 서둘렀다.
원하는 답을 얻지 못했지만, 계속 강해지는 상대에 대한 질투로 참을성이 바닥나 법술을 펼쳤다. 그냥 다른 곳으로 추방하는 거면 법술을 쓸 필요가 없지만, 천계도 삼계도 아닌 곳으로 보내려고 많은 힘을 소모해 암흑구를 소환했다.
오작 일행을 치운 마수가 합세하자 중부에서 온 요괴와 병사들의 사기가 고취되었다. 특히 상상도 못 한 싸움에 위축됐던 유웅국 병사들이 선전했다. 그러나 역목의 부족 전사들이 펼친 진법은 여전히 튼튼했다.
마수는 차가운 눈으로 요수촌 요괴들을 보며 말했다.
"내 아이를 죽인 놈의 행방을 아는 자는 특별히 살려준다."
"당신의 아이가 누굽니까?"
적호가 질문했다.
"괴력양이다. 이렇게 생긴 놈한테 죽었다고 한다."
마수는 검은 연기로 치우의 모습을 비슷하게 표현했다.
제대로 그린 그림이라면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하필 마수가 검은 연기로 표현한 바람에 최근 마을을 절반이나 허물고 수십 마리 요괴를 죽인 치우와 흡사했다.
"복희伏羲한테 잡혀갔습니다. 미천망으로 잡아서 질질 끌고 저쪽으로 갔습니다."
법력을 소진하여 모여서 쉬고 있던 요괴들이 침을 튀기며 손가락으로 같은 방향을 가리켰다. 마수는 자신에게 방향을 알려준 요괴들을 향해 손을 휙 저었다.
수십 마리 요괴가 마수의 손짓에 사라졌다. 마수가 약속을 지켜 요괴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버린 것이었다.
"노사老師. 도움 부탁드립니다."
희운의 요청에 마수는 진법을 펼친 병사들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마수의 손이 멈출 때, 백 명 정도 병사가 사라졌다.
죽은 건 아니고 자기 부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물론, 운이 나쁜 일부는 엉뚱한 데 떨어져서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타고난 만큼 위력이 강하지만, 효과를 확신할 수 없는 불안한 법술이다.
그에 비해 서른이 넘은 요괴를 자기 주변으로 소환한 괴력양의 법술은 위력이 부족해도 안정적이었다.
백 명 병사가 사라지자 진법을 유지할 수 없었다. 역목이 최대한 수습하여 다른 진법을 펼치려 했지만, 유웅국의 병사들이 희운의 지휘에 따라 난입해 방해했다.
마수는 전장에 관심을 끊고 미천망의 흔적을 찾았다. 치우의 귀기는 미천망에 갇혀 사라졌으나 미천망 자체는 단서를 남겼다.
마수는 희미한 흔적을 따라 복희의 뒤를 쫓았다. 흔적은 대륙 중부의 모처로 이어졌다.
- 작가의말
충격! 치우를 납치한 이상한 아저씨가 복희로 밝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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