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절대감統閤絶對感
신회일기身懷壹技
확실히 품은 재주 하나가
능압수단能壓數短
여러 단점을 덮어준다
둔각이 사지를 뻗고 뒹굴뒹굴해도 될 정도로 큰 의자가 있었다. 팔걸이를 비롯해 의자라는 정체성을 증명하는 여러 증거가 있으니 망정이지, 그냥 크기만 보면 누구나 침상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또 불청객이네?"
칼칼한 목소리의 요괴는 의자보다 너무 작았다. 외관으론 족제비가 분명한 작은 요괴가 바로 이 영지의 주인인 풍괴風怪였다.
"거래, 가능합니까?"
오작의 질문에 요괴는 새까만 눈동자를 반짝였다. 눈에 가득한 장난기를 보니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혈편복이나 투쟁심밖에 없던 흑곰보다는 말이 좀 통할 듯했다.
"원하는 게 있어서 온 건가? 그래도 배첩마저 생략하는 건 아니지 싶은데."
"도행이 낮아서 배첩을 보내는 방법을 모릅니다."
뭐든 알 것 같은 오작이건만, 요괴한테 배첩을 보내는 법은 모른다. 자단은 강한 요괴의 영지는 돌아가고 약한 요괴의 영지는 그냥 들어갔다. 배첩 보내는 걸 배운 적도 본 적도 없으니 방법을 알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뭐. 그래, 어떤 거래를 제안할 건가?"
오작은 느낌이 팍 왔다. 저 요괴는 거래할 마음이 전혀 없고, 그저 재미를 찾는 중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아챘다.
"혹시 청익혈편복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오작의 말에 풍괴는 고개를 끄덕였다. 영지에만 처박힌 대부분 요괴와 달리 풍괴는 도둑질하러 천하를 종횡했다. 강한 요괴나 특이한 요괴에 관해 꽤 많이 아는 편이다.
"그 혈편복을 우리 둘이 죽였습니다."
갑자기 사방에서 세찬 바람이 몰려왔다. 바람은 빈손 대신 오는 내내 오작과 치우를 괴롭혔던 누런 안개를 몰고 왔다.
안개는 일부 요괴의 몸에 빨려 들어가고 일부는 바람과 섞여 갑옷이 되어 요괴를 보호했다.
"협박하는 거야?"
요괴가 뾰족하게 외쳤다. 오작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혈편복을 죽인 법술이 궁금하지 않습니까? 난 그 법술이랑 당신이 보유한 법보 하나랑 교환하려는 겁니다."
방금 유난을 떨었던 게 무안했는지 요괴가 흠흠 거렸다.
'혈편복이라면 그저 천 년이라는 시간을 채운 자들과 달리 그 세월에 어울리는 강함을 보유한 자다. 그런 자를 죽인 법술이라니. 그걸 익힌다면 지금처럼 숨어 지내지 않아도 돼.'
풍괴는 오작과 치우가 풍기는 기운을 분석하며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둘 다 나보다 법력이 적다. 그런데도 혈편복을 죽였다면 법술이 대단한 거다. 법술을 익히기만 하면 도둑질 한 번 할 때마다 몇 년씩 나돌 필요가 없다.'
풍괴는 도둑질할 때 진짜 영지가 아닌 곳에서 몇 년씩 지낸다. 도둑질하기 전에 굴을 파서 미궁을 만들고, 도둑질한 다음엔 미궁에 숨어 일정 기간을 보낸다. 추적자를 완전히 따돌려야 자기 소굴로 법보를 옮긴다.
법력을 낭비해 가면서 이렇게 하는 이유는 무력의 부재 때문이다. 간혹 상대에게 뒤를 밟히기도 하고, 훔친 법보가 신호를 보내 주인을 부르기도 한다. 그런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여 진짜 영지가 아닌 곳에서 지내는 것이다.
강한 자가 찾아왔을 땐 갓 훔친 법보를 포기하고 도망치면 된다. 법보를 찾은 상대는 웬만해서 풍괴를 쫓지 않는다. 도주와 은닉의 재주를 타고났기에 엔간히 귀찮은 일이 아니다. 수백 번도 넘게 도둑질에 성공한 풍괴건만, 이러한 이유로 실제 보유한 법보는 수십 개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강한 법술이 있어 쫓아온 상대를 죽일 수 있다면 얘기가 다르다. 추적자를 해치울 무력이 있다면 훨씬 자주 도둑질할 수 있고, 훨씬 많은 법보를 모을 수 있다.
'제일 귀한 법보를 내주더라도 남는 거래다.'
도둑질로 단련된 빠른 결단력으로 풍괴는 거래에 응하기로 했다.
"좋아. 원하는 법보를 말해라."
"홍영창. 그리고 홍영창을 어디서 얻었는지도 알려주셔야 합니다."
풍괴는 고개를 끄덕이려고 했다. 그러나 의외의 사건이 풍괴의 생각을 바꿔버렸다.
"이 간악한 놈들. 둘이서 헛소리로 날 속이고 몰래 내 법보를 도둑질하려고?"
치우의 타고난 직감과 오작의 근래에 갑자기 생긴 이상한 감각으로 둘은 헤매지 않고 풍괴가 있는 곳까지 찾아왔다.
그러나 둘보다 조금 늦게 미궁에 진입한 소소와 한발은 달랐다.
한발은 요괴 말고 사람 기준으로도 무지한 축에 속하고, 소소는 아는 재주만 많고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둘은 요괴의 영지가 미궁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무작정 걸었다. 그렇게 미궁을 헤매다가 우연히 감옥에 갇힌 희운과 강제명을 발견했다.
"같은 배를 탔고 이렇게 생각지 못한 곳에서 마주치는 걸 보니 인연인가 싶습니다."
희운이 한발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강제명은 요괴의 요구에 응하여 셋을 배에서 쫓았던 일이 마음에 걸려 알은체를 하지 못했다.
"뭐야? 여기서 더위를 피하는 거야? 그렇게 더운 게 싫으면 우리 대신 배에서 내려 강물에 몸이나 담갔으면 얼마나 좋아."
한발은 깔깔거리며 감옥에 갇힌 둘을 골려줬다.
"저는 유웅국의 왕자 희운입니다. 국보가 요괴한테 도둑맞아 이 친구와 함께 찾으러 왔는데, 놈의 간계에 걸려 감옥에 갇혔습니다. 문을 열어주고 국보를 찾는 데 도움을 주시면 톡톡히 사례하겠습니다."
희운은 한발의 조롱에도 낯빛 한 번 안 변하고 정중한 태도를 지켰다.
"뭐야. 너만 나오고 싶은 거야? 저 숯검정은 벙어리야?"
소소 역시 그간 있었던 일을 한발에게 간략히 들었다. 그래서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강제명이 아니꼬웠다.
"저분과 일행이 위기에 처했을 때 급한 사정을 핑계로 나 몰라라 했소. 그러니 그대들이 우리 처지를 무시해도 난 원망하지 않소."
"나몰라라가 아니라 완전히 방조했던데?"
"유웅국의 국보가 도둑맞았소. 소문이 퍼지면 민심이 흔들리기에 둘만 출발했소. 국가의 운명과 수만 백성의 안위가 걸린 일이오. 양전기미兩全其美(둘 다 완벽)한 선택이 없을 땐 큰 것을 돌보는 게 당연한 거 아니오?"
"전혀 반성하는 태도가 아니네?"
소소는 강제명의 말을 들을수록 화가 났다.
"나는 당연한 선택을 했고, 그 선택으로 당신 일행이 피해를 보았소. 난 같은 상황에 놓이면 백이면 백 같은 선택을 할 거요. 물론, 그 선택이 옳지 않다는 자각은 있소. 그러니 그대들이 그냥 떠나도 아무 원망도 하지 않을 거요."
소소와 강제명의 대화를 듣던 한발이 툴툴거렸다.
"이거 완전 내가 나쁜 놈이 됐네. 그냥 그 요괴 손에 죽을 걸 그랬어."
"이 친구는 잘못이 없습니다. 다 제 곤란한 사정을 헤아려서 그런 것뿐이니, 저는 놔두더라도 이 친구만큼만 빼내 주십시오.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말을 마친 희운이 소소와 한발에게 무릎을 꿇었다.
한발은 순수하고 소소는 경험이 적다. 희운의 생각지도 못한 행동에 둘 다 적잖이 당황했다.
"조건이 있다."
소소는 당혹을 감추려고 최대한 차가운 목소리를 냈다.
"우린 요괴가 훔친 법보가 목적이다. 우릴 도울 수 있어?"
"유웅국의 법보는 헌원검軒轅劍입니다. 그 법보를 뺀 나머지는 모두 두 분께 소유권을 돌리겠습니다."
희운이 소소의 말을 잽싸게 받았다. 한발은 뭔가 마음에 안 들었지만, 상대가 너무 저자세로 나오니 마음을 독하게 먹을 수 없었다.
소소는 자신보다 법력이 훨씬 많은 구왕의 영지 봉인술을 부분적으로 해체한 적이 있다. 그런 소소에게 풍괴의 감옥은 활짝 열린 대문이나 마찬가지였다.
공교롭게도 소소가 희운과 강제명을 감옥에서 꺼낸 건 오작이 풍괴와 협약을 맺으려는 순간이었다.
조금만 늦게 행동으로 옮겼어도 오작은 요괴와 협상을 끝냈을 것이다. 그랬다면 소소의 훼방이 있다고 해도 요괴는 홍영창과 혈박술의 교환을 진행해야 했다.
"흥, 내가 공격 법술이 없어 너희를 죽이진 못해도 미궁에 가둬서 굶겨 죽일 순 있다."
말을 마친 풍괴 몸에서 수많은 바람이 쏟아졌다. 풍괴가 수백 번의 도둑질에서 고작 수십 번만 안 들켰음에도 지금까지 살아있게 한 법술 황음풍黃陰風이었다.
수백 개나 되는 누런 회오리바람이 오작과 치우를 덮쳤다. 치우는 충격에 대비하여 몸을 잔뜩 움츠렸다. 그러나 황음풍은 공격 법술이 아니었다.
황음풍에 둘러싸인 치우가 정신을 차렸을 땐 감옥 안이었다. 그리고 감옥 밖에는 한창 법보를 찾을 논의로 신난 소소 등이 있었다.
치우와 달리 오작은 황음풍에 당하지 않았다.
'보인다.'
회오리바람 사이에 틈이 있었다. 어떤 틈은 넓고 어떤 틈은 좁았다. 오작은 찰나에 결정을 내리고 가장 좁은 틈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틈을 지나니 또 여러 틈이 있었다. 오작은 처음 결심한 대로 가장 좁은 틈으로 몸을 욱여넣었다. 그렇게 계속 좁은 틈으로 움직이니 어느새 바람이 사라졌다.
"어떻게?"
오작은 재빨리 결승법을 외워 풍괴를 묶었다. 그런데 풍신마저 잠깐이나마 묶어뒀던 결승법을 풍괴가 빠져나갔다.
오작은 모르는 족제비의 특성이었다. 다른 요괴들과 달리 족제비는 함정 따위에 잘 걸리지 않는다. 세상에 절대라는 게 없기에 가끔 예외가 생기기는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작의 결승법은 요괴의 종족 특성을 무시할 만큼 높은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아까 협상한 내용을 인정하면 끝까지 쫓지 않겠습니다."
짐짓 태연하게 말하는 오작이지만, 머리는 여러 생각으로 복잡하고 마음에선 폭풍이 휘몰아쳤다.
'홍황개벽공 때문에 내게 변화가 생겼다. 한발의 말을 듣고 성감이라고 생각했는데, 절대 아니다.'
한발이 모시던 토끼 요괴가 성감을 타고났다. 그래서 한발은 오작의 감각을 성감이라고 여겼다. 오작 역시 성감에 관해 들은 적 있기에 쉽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방금 황음풍의 틈을 찾아낸 건 성감 따위로 해낼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다.
'통합절대감이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풍괴의 몸이 움직였다. 동시에 오작의 몸이 움직였다. 풍괴는 앞을 막은 오작을 피하려고 방향을 바꿨다. 오작이 반원을 그리며 풍괴 앞을 막았다.
풍괴는 지금까지 황음풍으로 쉽게 도망쳤다. 약한 존재는 치우처럼 미리 준비한 감옥으로 보내지고, 강한 자여도 황음풍에 막혀 도망가는 풍괴를 쫓지 못했다.
훔친 법보는 두고 도망가기에 황음풍을 벗어난 상대도 풍괴를 끝까지 쫓지 않는다.
그런데 둘 중 강한 놈이 감옥으로 이동됐고, 더 약한 놈은 황음풍을 뚫고 풍괴를 잡으려 했다.
'함정이다. 홍영창은 핑계다. 협상에 응하면 내 법보를 모두 이놈한테 뺏긴다.'
당황한 나머지 풍괴는 오판했다. 협약을 맺으면 이행해야 하고, 이행 과정에 진짜 영지가 들키면 이백 년이 넘은 세월 어렵게 모은 법보를 오작이 전부 빼앗을 것 같았다.
마음을 단단히 먹은 풍괴는 오작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도주에 전념했다. 그러나 오작은 마치 풍괴의 머리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선후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움직여 도주로를 정확히 차단했다.
'해보자.'
오작도 처음엔 도주로를 막는 데 만족하며 치우의 지원을 기다렸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치우는 나타날 기미가 없고, 풍괴의 도주를 쉽게 막으며 점점 자신감이 붙었다.
풍괴는 상대가 독심술로 마음을 읽는 걸 대비하여 머리를 비우고 본능에 몸을 맡겼다. 그러다 갑자기 자신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힘에 깜짝 놀랐다.
오작은 멸천칠절공의 수법 중에서 벽암권을 가장 높은 경지로 익혔다. 기운을 여러 갈래로 분리한 후, 약한 기운들로 상대를 잡고 강한 기운으로 두드리는 기술이다.
월영인이나 월아인 그리고 저홍패보다 훨씬 적성에 맞았는데, 우마왕의 영지에서 원본을 읽으며 경지가 더 깊어졌다.
덕분에 힘을 조절하여 타격하는 힘을 약하게 하고 잡는 힘을 강하게 바꿨다. 통합절대감으로 자신과 상대의 행동을 완전한 인지 하에 두고 펼쳤기에 지금껏 잡힌 적 없는 풍괴를 단번에 붙들었다.
벽암권이 성공하자 오작은 재빨리 저홍패를 펼쳤다. 물고기 요괴 때는 비록 실패했지만, 풍괴가 물고기 요괴보다 덩치가 작아 저홍패로 감싸는 시간이 훨씬 짧았다.
게다가 처음으로 상대의 힘에 잡힌 풍괴가 넋이 나가 반응하지 않은 덕분에 포획에 성공했다.
한편.
"한발, 우린 같은 편이잖아."
감옥에 갇힌 치우는 문을 열어달라고 한발에게 애걸했다. 인간이 만든 감옥과 다르게 요괴가 만든 감옥은 안에서 여는 게 수십 배는 어렵다.
"돕기 싫은 게 아니야. 여는 방법은 여기 소소만 안다니까."
소소는 팔짱을 끼고 발끝을 까딱거리며 거만한 눈으로 치우를 쳐다봤다. 치우는 소소의 눈길을 피해 희운과 강제명과 눈을 마주쳤다.
"우리도 여기 소소 형제가 열어준 거요."
희운은 헌원검을 찾는 과정에 소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래서 치우를 도우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여기서 미적거릴 시간이 없소. 그대들도 원하는 바가 있는 거 같은데, 저자를 그대로 버리고 가든 감옥 문을 열어주든 빨리 정하시오."
소소는 강제명의 주제넘음에 난 화를 치우한테 풀었다.
"치우. 그간 나한테 무례하게 대했던 걸 사과하고, 이후 다신 안 그런다고 맹세해. 안 그럼 두고 간다."
- 작가의말
통합절대감은 감각을 초월한 감각입니다.
풍괴는 무력이 0에 가깝습니다. 족제비 요괴이고 훌륭한 방귀를 타고났기에 도망을 잘 칠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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