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살십절진必殺什絶陣
십봉절진什封絶陣
천지와 팔방을 막는 절진은
상무인파尙無人破
지금까지 깨진 적 없다
치우는 물러나는 자들을 쫓지 않았다.
수적 열세로 함부로 흩어지면 안 된다. 게다가 금령성모를 상대한 오작은 물론이고 십수 명 술사의 법술 공격을 막아낸 구망 역시 꽤 지친 상태다.
치우 본인은 전혀 안 지치고 멀쩡하지만, 태극보인을 잃으며 귀기에 잠식당하기 전보다 약하다. 더구나 마환도가 손에 완전히 익지 않아서 함부로 날뛸 수 없었다.
'며칠만 더 여유가 있었다면.'
오작 역시 치우와 비슷한 생각이었다. 며칠 기간에 치우나 오작의 무공이 엄청난 발전을 보일 가능성은 없다. 그러나 무기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하면 무기의 위력과 특성을 훨씬 잘 발휘할 수 있다.
구망 역시 갑자기 강해진 육체와 법력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인식이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법술을 펼치는 데 있어 막힘이 없지만, 자신이 현재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인식이 부족하다.
셋의 상상을 뛰어넘은 무력이 금령성모를 놀라게 했지만, 사실상 셋 모두 최대의 위력을 못 내고 있다.
십천군으로 추정하는 열 명의 술사는 말없이 셋을 둘러쌌다. 포위한 채 한참 서로 눈치만 주고받던 자들이 갑자기 동시에 법술을 펼쳤다.
"천절진天絶陣!"
십천군의 우두머리를 자처하는 진완이라는 자가 하늘에 진을 쳤다. 서부의 능소궁에서 봤던 순수한 진법이 아닌 법술과 진법의 조합이었다.
누런 안개가 하늘을 덮으며 우레를 방불케 하는 굉음이 연신 울렸다.
형체가 없는 우레로 공격하여 육신은 물론 혼백까지 박살 내는 진법이다.
"지열진地烈陣!"
조강이라는 자의 외침과 함께 바닥에 지열진이 펼쳐졌다. 구망이 황급히 소양궁을 소환해 보호 결계를 쳤다.
지열진이 불러온 용암이 제멋대로 넘실대며 땅을 시커멓게 그슬었다.
용암이 없는 곳을 밟았다고 방심하다간 뜨거운 열기에 몸이 녹는 진법이다.
"풍후진風吼陣!"
동전이라는 자가 풍후진을 펼쳤다. 북쪽 방위를 차지한 풍후진은 엄청난 강풍이 몰아쳤다.
바람에 물과 불의 기운이 제멋대로 섞여 대응이 어려운 진법이다.
"한빙진寒氷陣!"
원각이 한빙진을 펼쳤다. 동북 방위를 차지한 한빙진은 예리한 칼로 쌓은 산이었다. 칼로 이뤄진 산은 오작 일행을 향해 차가운 칼날을 연신 쏘아냈다.
전체적으로 한기가 돌긴 하지만, 적을 살상하는 건 번개와 바람을 머금은 칼날이다.
"금광진金光陣!"
금광성모가 금광진을 펼쳤다. 금광진은 수백 개 거울로 해와 달의 빛을 섞어 쏘아내는 진법으로 서북쪽 방위를 차지했다.
벽력문 출신인 금광성모는 다음 장문인 자리를 뇌공한테 빼앗긴 후 문파를 나와 절교에 투신했다. 금령성모는 금광성모의 뛰어난 실력이 마음에 들어 자신의 금광진 법술을 양도했다.
금광진을 얻으며 이름을 금광성모로 바꿨고, 자신의 자리를 뺏은 뇌공한테 복수하려고 이를 악물고 실력을 닦는 중이었다.
"화혈진化血陣!"
손양이 펼친 화혈진은 뻘건 안개가 자욱한 조용한 진법이었다. 서쪽 방위를 차지한 화혈진은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러나 기회만 보이면 시커먼 모래로 적의 피를 말리는 아주 악랄한 진법이다.
"열염진烈焰陣!"
백예가 펼친 열염진은 서남 방위를 차지했다. 불꽃 튀는 소리도 없이 조용히 타오르는 불은 언뜻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실질적으론 삼매화參昧火와 공중화空中火에 석중화石中火의 성질을 섞은 불이다. 삼매화는 꺼지지 않는 성질이 있고, 공중화는 전조도 없이 타오르는 성질이 있으며, 석중화는 열기를 감춰 경각심을 없애는 교활함을 갖췄다.
"낙혼진落魂陣!"
요빈이 펼친 낙혼진은 남쪽 방위를 차지했다. 불의 기운을 담은 낙혼진은 삼혼 중에서 불의 성질을 띤 상령을 파괴한다.
태광과 유정만 남은 적은 미치광이가 되어 보이는 족족 공격하다 원기까지 소진한 후 탈진으로 죽는다.
"홍수진紅水陣!"
왕혁이 펼친 홍수진은 동남 방위를 차지했다. 홍수진은 다른 진법과 달리 무척 간단했다. 진법 중앙에 커다란 조롱박이 셋 있을 뿐이다.
사람이 진법에 들어가면 첫 번째 조롱박이 붉은 물을 쏟아낸다. 요괴나 환수나 마수가 들어가면 두 번째 조롱박이 움직이고 천계의 존재면 세 번째 조롱박이 물을 쏟아낸다.
물에 닿은 자는 사람이고 요괴고 신선이고 할 것 없이 녹아서 사라진다.
"홍사진紅沙陣!"
동쪽 방위를 차지한 홍사진은 붉은 모래가 파도치며 바다처럼 넘실댔다. 진법을 펼친 장소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뒤로 물러났다.
작은 모래 알갱이 하나마다 천근 거력을 품었다. 크기가 작다고 무시하다간 순식간에 눌리고 찢긴다.
"지금이라도 법력을 얼리고 고분고분 투항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
천절진과 지열진으로 하늘과 땅을 막고 남은 진법들로 여덟 방위를 막았다. 하나하나도 위력이 어마어마한 진법인데 열이 연결되니 천계의 대라신선이 와도 목숨을 부지할지 의문인 십절진이다.
"내가 나이를 먹어 무릎이 잘 안 굽혀져."
치우의 조롱에 금령성모는 화를 참지 못했다.
"공격해!"
금령성모의 명령에 십절진이 본격적인 공격을 펼쳤다.
"허. 청룡께서 남기고 간 기운 아니면 우린 벌써 죽었을 것이다."
힘 자체는 십천군 하나하나가 구망보다 강하지만, 열이 힘을 합쳐도 구망의 결계는 뚫리지 않았다.
소양궁으로 펼친 결계에 천룡의 신성이 조금이나마 깃든 덕분이었다. 천절진의 귀가 떨어질 것 같은 우레도 지열진의 바위를 녹이는 용암도 결계를 뚫지 못했다.
"그런데 이대로는 사흘 이상 버티기 힘들 것 같구나."
"진법을 헤치고 나가도 문젭니다. 밖에 있는 자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고작 셋을 상대하기엔 소 잡는 칼 격이다. 처음에 자신만만하게 나섰다가 망신당하고 아끼는 제자가 치우의 칼에 죽은 바람에 금령성모가 충동적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금오도에도 똑똑한 자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금령성모에게 원래 목적을 생각하라고 조언할 담 큰 자는 없었다. 화가 잔뜩 난 금령성모 손에 죽을지도 모르고, 운 좋게 목숨을 부지해도 눈 밖에 나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길이 닫힌다.
그때. 새로운 무리가 천일도에 등장했다.
"제가 천기를 제대로 읽지 않았습니까?"
우쭐거리는 자는 오작과 치우와 함께 귀령성모를 죽인 접인이었다. 귀령성모가 봉래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무시해도 될 정도지만, 어쨌든 통천교주의 네 번째 제자다.
덕분에 접인은 천교에서 강한 발언권을 얻었다.
"봉래도의 무리가 수십 명 규모로 움직인 걸 보면 확실히 대단한 음모를 꾸미는 게 틀림없다."
일행의 인솔자인 운중자雲中子가 입을 열었다. 운중자는 원시천존의 둘째 제자로 천교에서 덕망이 무척 높다.
"저기 본문의 반역자가 보이는군요."
벽력문의 제자 뇌진자雷震子가 입을 열었다. 환수 출신인 뇌진자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입 대신 새의 부리가 달렸다. 그리고 등에 벼락이 뭉쳐 이뤄진 날개 한 쌍을 달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천교의 무리에 금령성모는 급히 편익조를 날렸다. 운중자와 뇌진자 등 알 만한 자들이 등장하자 조공명과 짜고 함정을 판 게 아닌지 덜컥 겁이 났다.
"근데 누굴 해치려고 십절진을 펼쳤지?"
운중자는 나이만 따지면 사숙인 통천교주와 비슷하다. 보고 듣고 겪은 게 많아 신중한 성격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정확히 판단하는 현자로 유명하다.
그러나 동시대에 익혀내는 자 열 명을 모으기 힘들어 만 년 동안 몇 번 펼쳐진 적 없는 십절진을 보자 오판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의 눈길이 접인에게 모였다. 그러나 접인도 대답이 궁했다. 천기는 반드시 정확하지만, 해석이 어렵고 친절하지도 않다.
"아무래도 통천교주가 애타게 찾는 자단이 아닐까 예상합니다."
십절진의 대접을 받을 만한 천교나 인도의 제자는 천일도에 없다. 삼존에 비견하는 서왕모는 곤륜산에서 일정 거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백제나 청제가 대단한 술사긴 하지만, 십절진을 꺼낼 정도는 아니다. 천일도의 주인인 구망은 역대 오방신 중에서 가장 약한 것으로 유명하다.
남은 건 봉래도밖에 없는데, 다보도인이나 무당성모는 물론이고 조공명도 현재 육지에 있다. 통천교주 역시 벽유궁에 칩거했고, 애초에 십절진에 갇힐 위인도 아니기에 남은 건 자단밖에 없었다.
통천교주의 총애와 다른 제자들의 질투를 듬뿍 받는 자단이 분명하다고 접인은 내심 결론을 내렸다.
"자단이 저 정도 대접을 받을 정돈가?"
북부제일의 고수로 인정받고 천하제일로도 추앙받는 자단이지만, 자신들을 천외천天外天의 존재로 여기는 천교의 술사들한텐 그저 허명만 가득한 애송이일 뿐이다.
실제로 천하를 논할 때 천교와 절교와 인도는 예외로 한다.
"자단이 무극을 깨달았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제자의 말에 운중자가 이마를 찌푸렸다.
"소문? 정신 수양이 부족하구나. 확실한 정보가 아니면 언급하지도 말아야지."
"일단 저들을 물리치는 게 급선무인 것 같습니다."
일행 중 가장 호전적인 건 뇌조雷鳥 출신인 뇌진자다. 벽력문의 제자로 지내다가 태변으로 인간 형상을 얻었다. 부리와 날개는 여전하지만, 결국엔 천교의 인정을 받고 운중자의 제자가 되었다.
인도처럼 인간만 받는 건 아니지만, 천교는 요괴 출신을 꽤 꺼린다. 뇌진자는 어떻게든 사부와 원시천존의 눈에 들어 좋은 영약을 받으려고 모든 싸움에 앞장섰다.
"그래. 십절진과 무관하게 저들과 우린 싸울 수밖에 없는 관계지."
의문을 뒤로 집어 던진 운중자가 통천신화주通天神火柱를 꺼냈다.
하늘를 찌를 듯이 솟은 불타는 기둥은 전혀 뜨겁지 않았다.
"신화진神火陣!"
신화주를 중심으로 진법이 생겼다. 따사로운 불빛이 운중자를 비롯한 천교 무리를 쓰다듬었다. 불빛을 쬔 천교 술사들은 잡념이 사라지고 법력이 부드럽게 변했다.
직접적인 공격력은 없지만, 술사들에겐 정말 큰 도움이 되는 법보였다.
"사상탑, 사상진!"
금령성모 역시 사상탑을 꺼내 사상진을 펼쳤다. 절교의 무리는 사상진의 보호로 법술 피해를 덜 받게 되었다.
"전광電光 이 미친년아. 네가 감히 사문을 배신해?"
뇌진자가 등의 날개를 뜯어 무기로 변화했다. 하나는 회오리바람이 칼날을 맴도는 귀두도로 변하고 하나는 번개가 번쩍이는 장도長刀로 변했다.
뇌진자가 자신의 날개를 단련하여 만든 법보인 풍뢰쌍익風雷雙翼은 원하는 형태의 무기로 변할 수 있다.
"내 이름은 금광성모다. 날 버린 사문이 지은 이름은 잊은 지 오래다."
금광성모는 지름이 두 뼘도 안 되는 작은 방패와 길이가 일 척 정도의 뾰족한 송곳을 들고 뇌진자에 맞섰다.
남은 자들도 각자 적당한 상대를 찾아 무기를 맞대거나 법술로 싸웠다.
"오랜만이군."
운중자는 요괴를 상대할 때 진짜 위력을 보인다. 익힌 법술도 갖춘 법보도 요괴 상대로 큰 위력을 발휘한다.
그래서 금령성모를 견제하는 것으로 만족기로 했다.
"이게 하늘의 뜻인가?"
비금검이 치우의 마환도에 망가지지 않았다면 금령성모는 운중자를 몰아붙일 자신이 있다.
운중자의 조요검照妖劍은 요괴 상대로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조요감照妖監은 한 번이라도 마주친 요괴의 정보를 파악하여 기록한다. 기록이 만 년 동안 쌓여 이젠 처음 보는 요괴의 약점도 바로 알아낸다.
대신 인간 상대로는 평범한 검이나 다름없다.
운중자는 금령성모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상대가 바로 덤벼들지 않자 속으로 쾌재快哉를 불렀다.
그때, 금령성모의 편익조를 받은 봉래도 무리가 도착했다. 금오도가 천일도와 멀지 않은 곳을 표류하는 중이어서 소식도 빠르게 전달됐고 지원도 빨랐다.
"지금 도망치면 전부 목숨은 부지할 수 있을 거야."
금령성모의 말에 운중자가 태연한 웃음을 지었다.
"우리한텐 준제准提가 있다."
금령성모는 준제가 누군지 몰랐다. 준제는 접인의 사제로 서방교에서 무력이 가장 강한 자다. 법술 경지는 다소 부족하지만, 싸움을 정말 잘하는 투불鬪佛이다.
"연화신蓮化身!"
가지신저加持神杵를 휘두르며 평범하게 싸우던 준제는 금령성모의 지원군이 등장하자 연화신의 법술을 펼쳤다.
순식간에 머리가 스물네 개로 늘고 팔이 열여덟 개가 되었다. 법보 가지신저 역시 아홉 개가 되어 열여덟 손에 쥐어졌다.
"형. 저 법술 탐나는데. 근데 왜 머리도 여럿 만드는 거야?"
십절진을 펼친 십천군이 천교와 싸우는 데 집중하는 바람에 공격이 조금 뜸해졌다. 덕분에 오작과 치우는 밖의 싸움을 편하게 구경할 수 있었다.
"머리 하나로 손 두 개 움직이는 건 누구나 돼. 그런데 머리 하나로 손 네 개를 움직이라고 하면 어떨까?"
"그럼 머리 아홉이면 되지, 왜 스물네 개야?"
"서로 방해하지 말아야 하니까. 이 머리는 이 손을 이렇게 움직이고 싶고 저 머리는 저 손을 저렇게 움직이고 싶어. 그런데 다들 제멋대로 움직이면 서로 부딪치며 방해할 거야. 그러니까 머리가 훨씬 많이 필요한 거지."
치우의 눈이 반짝 빛났다.
"아. 머리가 많을수록 똑똑해지는 거구나. 내 말이 맞지?"
- 작가의말
추천해주신 zetany 님께 감사드립니다. 비록 2부를 압축하기로 했지만, 그래도 30만 자 이상 분량이 남았습니다. 끝까지 괴이한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끌어서 잘 마무리 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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