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천칠절공滅天柒絶功
총각총명總角聰明
어린 소년은 유독 총명하여
능릉칠기能凌柒氣
일곱 기운을 다스릴 수 있구나
해가 서쪽으로 기울며 바위산 그림자를 길게 늘였다. 마적들의 소굴을 차지하고 수련한 지 보름 되는 날. 바람마저 잦아들어 고요한 공터에서 오작의 손이 현란하게 움직인다.
"심기합일心氣閤壹!"
자단의 호통에 오작은 움찔하며 수련을 멈추고 들끓는 뱃속의 기운을 안정시켰다.
기운을 수습한 오작은 자신이 뭘 실수했는지 고민하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이어지는 훈계를 기다렸다. 평소엔 누구보다 자상한 숙부지만, 무공 수련에 관해선 세상 엄격했다.
"수련은 언제나 진지하게! 내 당부를 벌써 잊었더냐!"
"부끄럽습니다. 불시에 흥이 차올라서 주체하지 못했습니다."
멸천칠절공을 수련하던 오작은 등골을 타고 오르는 상쾌하고 짜릿한 기운을 느꼈다. 이는 자신도 모르는 깨달음을 얻었거나 경지가 조금이라도 오른 신호다.
자단과 같은 고수는 수련이나 실전에서 깨달음을 얻고 경지가 올라도 명경지수明鏡止水와 같은 평정을 유지할 수 있지만, 경험이 형편없이 적은 오작에겐 몹시 어려웠다.
그래서 배운 적도 없는 방식으로 내공을 움직였고, 무공 구결과 미세하게 다른 흐름을 감지한 자단이 야단을 부렸다.
"수련에선 초식과 기의 흐름을 정확히 맞추는 데 집중해라. 평소 기가 제멋대로 날뛰게 놔두면 실전에서도 통제를 벗어나려고 한다. 기는 너의 것이지만, 너의 것이 아니기도 하다. 수련은 기를 어르고 달래서 친구가 되고 주인이 되는 과정이다."
기가 통제를 벗어날 때마다 들었던 훈계지만, 오작은 처음 듣는 사람처럼 집중했다. 머리로 아는 말이어도 귀 기울여 들으면 가끔 의외의 수확이 생길 때가 있다.
"방금은 기가 흐르고 싶은 방향으로 가게 했습니다.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것보다는 가끔 이렇게 놔주는 게 친해지는 비결이 아닐까요?"
자단은 총명한 조카의 되물음에 마음이 대단히 흡족했으나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걸음마도 못 뗀 놈이 하늘부터 날려고?"
사부 밑에서 십 년 동안 찌르기 하나만 수련했던 자단은 기초가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꼈다.
자질이 평범하고 뚝심밖에 내놓을 게 없었던 자단이 북부 제일의 고수는 물론 천하제일로도 가끔 거론되는 건 모두 십 년 동안 꾸준히 했던 기초 수련 덕분이다.
"우선은 가르친 대로 익혀라. 네 몸에 맞게 바꾸는 건 저주가 풀린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오작은 육체가 성장하지 않는 저주에 걸렸다. 저주의 기운이 방해하는 바람에 기의 흐름이 다른 수련자보다 훨씬 제멋대로다.
태어날 적 모습 그대로 살다가 현무루玄武淚를 복용하여 삼 척까지 자랐고, 이번에 주작란을 삼키고 육 척(1m)이 되었다.
저주의 기운이 꽤 사라졌지만, 자단은 하나밖에 없는 혈육의 안위를 두고 작은 방심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지켜볼 때만 멸천칠절공을 수련케 했으며, 조금이라도 기의 흐름이 흐트러지면 바로 멈추게 했다.
"명심하겠습니다."
영리한 조카는 꾀를 부려 속에 없는 말을 뱉는 성격이 아니다. 명심하겠다는 건 자단의 훈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흡족한 자단은 얼굴에 옅게 피어오르는 웃음을 결국 숨기지 못했다. 자단에게 있어 오작은 그저 조카가 아니라 친자식이나 매한가지다.
"좋아. 내친김에 멸천공이 어느 정도 경지를 이뤘는지 확인해 보자꾸나."
말을 마친 자단은 준비할 여유도 안 주고 바로 주먹을 내질렀다. 오작 역시 가끔 있던 일이어서 허둥대지 않고 대응했다.
홍수 혹은 눈사태와 같은 기운이 오작을 덮쳤다. 숙부가 자신을 해치지 않을 거라고 머리론 알지만, 흉흉한 기세에 오작은 오금이 저렸다.
"도홍류堵洪流 기단현수氣斷玄水."
오작이 멸천칠절공의 핵심 구결을 소리 내어 읊으며 자단이 쏜 기운을 공격했다. 손날로 날카롭게 벼린 기가 자신을 공격하는 거센 기운을 여러 토막으로 잘랐다. 월아인月牙刃으로 성난 파도처럼 끊임없이 덮칠 것 같던 기운에 고삐를 채우고, 저홍패抵洪壩로 장벽을 만들어 힘 빠진 자단의 기운을 멈춰 세웠다.
'천성인가? 아니면 내 거친 성정에 영향을 받은 건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기운에 저항할 때 방법은 여러 가지다. 오작이 선택한 건 도단류堵斷流의 수법으로, 흐름을 잘라 위력을 줄이는 아주 적극적인 대처 방식이다.
소홍류疏洪流 기도현수氣導玄水.
소도류疏導流는 거센 흐름을 작은 힘으로 비껴가게 하는 방식이다. 아주 적은 힘으로 강한 공격을 흘리는 수법으로, 도단류보다 더 섬세한 운기가 필요하다.
저주로 기운 통제에 어려움을 겪는 오작이긴 하지만, 자질이 하도 출중하여 정신만 제대로 집중하면 어렵지 않게 펼칠 수 있다.
그런데도 도단류를 선택했다는 건, 흉신악살로 불리는 자단의 영향을 받았거나 천성이 거칠다는 뜻이다.
"이것도 받아봐라."
자단은 오작에게 쉴 틈을 안 주고 두 번째 공격을 이어갔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덩이가 자단의 주먹에서 튀어 나가 오작의 얼굴을 노렸다.
"식왕열熄旺熱 기멸적화氣滅赤火."
오작은 침착하게 저홍패의 장벽을 우그려서 불덩이를 감쌌다. 바깥 기운과의 접촉을 철저히 차단한 후 힘으로 불을 꺼뜨렸다.
식멸류熄滅流 역시 도단류처럼 매우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대응 방법이다.
최왕열催旺熱 기소적화氣消赤火.
최소류催消流는 불길을 오히려 키우는 방식이다. 자단이 쏜 기운은 외부 기운과 충돌하는 거로 큰 위력을 내기에 수명 제한이 있다.
최소류는 그러한 충돌을 도와 기운이 빠르게 사라지게 하는 방식이다. 기운이 훨씬 강해져서 위험 부담이 있긴 하지만, 소도류처럼 적은 힘으로 큰 기운을 해결하기에 대부분 수련자가 선택하는 방식이다.
"또 간다. 그리고 다음부턴 경고 없이 공격한다."
죽은 별이 떨어지며 생긴다는 운석隕石처럼 단단히 뭉친 기운이 오작의 하체를 노렸다. 앞선 두 공격과 달리 머리나 몸을 목표로 했다간 자칫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 그나마 덜 위험한 다리를 골랐다.
"용견침鎔堅沈 기화백금氣化白金."
오작은 양손을 앞으로 뻗고 땀을 뻘뻘 흘리며 조금씩 물러났다. 제대로 던진 돌팔매처럼 빠르게 날아가던 기운이 저홍패의 저지에 달팽이 걸음처럼 느려졌다. 그래도 완전히 멈추지는 않았기에 오작은 저홍패의 장벽이 깨지지 않게 조심하며 조금씩 뒤로 물러나야 했다.
오작이 선택한 용화류鎔化流의 수법이 자단의 단단하게 뭉친 기운을 천천히 녹였다. 비록 앞의 두 공격과 비슷한 양의 기운이지만, 뭉친 수준이 달라 오작도 빠르게 해결하지 못했다.
쇄견침碎堅沈 기전백금氣剪白金.
강한 기운을 정면에서 맞서며 힘으로 녹이는 용화류와 달리, 쇄전류碎剪流는 약한 틈을 공략하여 단단한 것을 쪼개는 방식이다.
아무리 대단한 고수여도 자신의 기운을 균일하게 뭉치는 건 어렵다. 기운의 미세한 밀도 차이를 감지하여 공격하는 게 몹시 어렵긴 하지만, 평소 봐온 오작의 총명함이라면 무식하게 힘으로 해결하는 용화류보단 쇄전류가 더 성미에 맞아야 한다.
'내 탓인가? 빛나는 별이 될지도 모르는 아이를 내가 망친 건가?'
속으로 자책하면서도 자단은 손속을 늦추지 않았다. 자신이 쏘아낸 기운이 사라지자마자 미리 언질 줬던 것처럼 경고 없이 공격했다.
자단이 방출한 기운은 봄비를 한껏 머금은 대나무처럼 생기가 넘치고 탄성이 강했다. 기운이 여러 토막으로 잘려도 약해지지 않고, 강한 힘으로 없애거나 녹이기도 어렵다.
"진무록盡茂綠 기열청목氣裂靑木."
손날과 손바닥으로만 대응하던 오작이 처음으로 주먹을 쥐었다. 자단의 기운을 향해 뻗는 오작의 주먹에서 여러 가닥의 내공이 뽑혀 나왔다.
'벽암권劈岩拳은 경지에 이르렀구나.'
진열류盡裂流는 여러 가닥의 힘으로 상대 기운을 잡아 둔 다음 한 가닥의 강한 힘으로 때려서 쪼개는 방식이다.
월아인이나 저홍패와 달리 벽암권은 경지에 이르렀다. 덕분에 이번 공격이 앞선 셋보다 위력은 약해도 대처가 훨씬 어려운데, 오작은 쉽게 처리했다.
황무록荒茂綠 기고청목氣枯靑木.
황고류荒枯流는 무공보단 법술에 훨씬 가까운 방식이다. 상대 기운이 활력을 잃게 만드는 악랄한 수법으로, 펼치기가 무척 어렵다.
총명하고 자질이 출중한 오작도 황고류는 어려울 거라는 게 자단의 판단이다.
'아니다. 어쩌면 저주 때문에 법술을 제대로 못 펼치는 몸이어서 이런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문득 드는 생각을 잠시 뒤로 하고 자단은 다음 공격을 날렸다.
운석처럼 단단하게 뭉치진 않았지만, 겹겹이 쌓이고 엉켜서 훨씬 타격에 강한 기운이 허공에 생겨났다.
공격보다는 수비에 많이 쓰이는 기운이기에 오작은 여유롭게 숨을 고르며 날뛰는 기를 가다듬었다.
"해고응解固凝 기산황토氣散黃土."
오작은 해산류解散流의 수법으로 단단히 뭉친 기운을 바깥부터 한 층씩 깎아냈다. 이번에 사용한 수법은 기를 날리는 월아인이 아닌 기를 뭉쳐서 무기처럼 쓰는 월영인月盈刃이다.
월영인으로 만든 월부月斧의 모습이 흐릿한 걸 보니 이건 경지라고 할 것도 없었다. 그나마 뛰어난 오성과 강한 집중력으로 수련이 부족한 무공을 억지로 펼친 것이다.
'내가 너무 무심했구나.'
정작 자단은 오작의 성취를 평가하기보다 자신을 책망하는 데 정신이 팔렸다.
'아비 노릇을 해본 적 있어야지.'
자단은 저주를 푸는 데만 몰두하고 정작 어린 몸으로 사는 조카의 마음은 생각해 보지 못했다.
착고응鑿固凝 기침황토氣侵黃土.
기운을 송곳처럼 날카롭게 가다듬은 후 빠르게 회전하는 방식. 착침류鑿侵流 역시 오작이 선택한 해산류보다 기의 움직임이 훨씬 섬세하다.
자단은 차오르는 슬픔을 속으로 혼자 삼켰다.
'법술을 익히기 힘든 몸이어서 기교가 적은 수법을 고른 것이었어.'
혼자서 구결을 되뇌며 얼마나 고뇌했을지 생각하니 가슴이 아리고 숨이 턱 막혔다.
'겨우 두 개를 찾는데도 시간을 이토록 허비했으니. 기의 흐름이 복잡한 수법은 감히 익힐 엄두도 안 났겠지.'
법술과 무공은 같은 기운을 사용한다. 법술은 적은 기운으로 큰 효과를 볼 수 있고, 무공은 사용한 기운만큼의 효과만 볼 수 있다.
그러나 익히면서부터 쓸 수 있는 무공과 달리, 법술은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러야 비로소 펼칠 수 있다. 입문부터 어려워서 무공처럼 익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멸천칠절공은 무공과 법술을 결합한 기술로, 자단은 생각 없이 가르쳤다. 속 깊은 조카가 어떤 마음으로 수련했는지 지금껏 진지하게 헤아리지 않았다.
"이것도 해결해 보아라."
마적들이 소굴로 쓰던 바위산 사이의 공터에 작은 해가 떠올랐다. 극양에 가까운 성질의 덩어리여서 해라고 부르긴 했지만, 모래바람에 가려져 늘 흐릿하게만 보이는 진짜 해보다도 훨씬 어두웠다.
"격원공擊遠空 기충청양氣衝淸陽."
오작이 깊은숨으로 정신을 모은 후, 양손으로 기운을 허공에 널리 뿌렸다.
앞서 오행을 흉내 낸 다섯 기운과 달리, 극양의 기운은 실체를 가늠하기 힘든 더 고차원의 힘이다.
오작은 구결대로 기를 널리 퍼뜨려 공간을 장악하는 거로 자단이 쏜 기운을 '배제'했다.
공간에서 배제당한 힘은 서서히 사라졌다.
"좋구나."
조카한테 무심했던 죄책감 때문에 자단은 드물게 칭찬의 말을 던졌다. 그러곤 곧 무안함을 못 이겨 마지막 공격을 펼쳤다.
해가 사라진 자리에 달이 떴다. 역시 밤하늘을 밝게 비추는 달은커녕 검은 물웅덩이에 비친 달보다도 더 초라한 작은 덩어리였다.
"고후실敲厚實 기진탁음氣震濁陰."
선택 여지가 있는 오행의 기운과 달리, 음양의 기운을 상대하는 구결은 하나씩밖에 없다.
게다가 의미가 어느 정도 명확하고 효과도 확실한 오행 구결과 달리, 음양의 기운을 상대하는 구결은 의미도 효과도 모호하다.
기운을 넓게 퍼뜨렸던 방금과 달리, 오작은 자신의 기운을 한 점으로 모았다. 그 모은 점을 자단이 펼친 차갑고 탁한 기운 가운데로 보낸 후, 기의 공명을 통해 점을 진동시켰다.
동종의 힘이 더 단단히 뭉쳐 진동하자 자단의 기운은 별 효과적인 저항을 못 하고 그대로 허공에 흩어지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지막 둘은 나보다 낫구나."
진심이 듬뿍 담긴 칭찬에 오작은 얼굴만 붉혔다.
"역시 힘은 오래 수련한 내가 낫지만, 오성悟性은 네가 훨씬 뛰어나구나. 어서 저주를 풀고 이 숙부를 능가하는 무사가 되어야 한다."
"숙부는 용맹함과 지혜를 골고루 갖춘 분입니다. 저주를 다 풀었다고 해도 숙부를 따라잡으려면 어느 세월이 걸릴지 모르겠습니다."
"겸손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너만 한 자질을 갖췄다면 벽유궁에서 자기 잘났다고 까부는 사형들을 모조리 짓밟고 조롱했을 거다."
어느새 해가 지고 싸늘한 기운이 몰려왔다. 자단이 낸 시험으로 기진맥진한 오작은 저녁도 마다하고 모닥불 곁에서 깊은 잠에 빠졌다.
자단은 마적들이 빚은 역한 술을 마시며 하늘의 반쪽짜리 달을 쳐다봤다. 처참하게 죽은 형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웠고, 조카에게 빌어먹을 저주를 내린 흉수 생각에 가슴이 답답했다.
- 작가의말
총각 - 머리카락을 좌우로 갈라 두 개의 똥머리(올림머리)를 한 8세에서 14세 사이의 남자아이를 이르던 말. 현재는 미혼 남성을 뜻하는 말로 진화함.
즉 총각은 약관이나 이립 그리고 불혹처럼 연령대를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총각과 총각김치는 한문이 같고 어원도 같습니다. 땋은 올림머리가 뿔 같다고 하여 총각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결코, 남성 생식기와 닮아서가 아닌 점을 확실히 고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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