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수청동랑魔獸靑銅狼
마수난훈魔獸難訓
마수는 길들이기 힘들지만
종유능인終有能人
가능한 사람은 끝내 있다
오작은 북부로 가는 길을 안다. 덕분에 굳이 치우나 소소의 흔적을 살피지 않고 곧게 목적지로 달렸다.
약 일각 정도 달린 후, 인면홍지주의 영지가 있던 곳에서 우레와 같은 굉음이 터졌다.
족제비나 쥐 요괴는 도둑질에 능하다. 원숭이 요괴는 남의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다.
원숭이 요괴는 인면홍지주의 영지를 부수고 법력을 흡수해도 되냐고 오작한테 허락을 구했고, 오작은 자신이 떠나고 반 시진 뒤에 그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상대는 원숭이답게 일각을 더 못 기다리고 영지를 폭파했다. 지금쯤 영지가 사라지는 과정에 흩어지고 모이는 법력을 흡수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혹시 추적자가 있다면 저쪽으로 끌려갔으면 좋겠는데.'
오작은 멀리서 휘몰아치는 법력의 소용돌이를 느끼며 느리게 달렸다. 가끔 보이는 흔적을 지우기도 하고, 혹시 있는지 모를 추적자를 헷갈리게 하려고 엉뚱한 흔적을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저녁이 다 되어서야 일행을 따라잡았다.
"너 뭐야!"
오작은 이마를 찌푸렸다. 쫓기는 마당에 언성을 높이는 소소도 한심하고, 그걸 지적하지 않는 일행도 마뜩잖았다.
"소리 낮추십시오."
오작의 말에 소소는 흥 콧방귀를 뀌고 고개를 홱 돌렸다.
"무슨 일입니까?"
"오해가 좀 있었습니다."
희운이 검을 검집에 넣으며 말했다. 오작은 주변을 살피고 바로 문제점을 알아챘다.
마차는 이미 부서졌고, 마차를 끌던 네 필의 말은 여러 토막이 되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밤새워 달릴 작정입니까?"
오작의 질문에 희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헌원검으로 자른 상대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저절로 합쳐집니다. 제가 부친의 몸을 상자에 나눠서 담은 것도 그 때문입니다. 특별히 제작한 상자에 넣어야 합치려고 하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소소는 당신이 말들을 죽이는 줄 알고 소리를 지른 거군요."
"미리 얘기하지 못한 제 과실입니다. 중부엔 헌원검의 능력이 널리 알려져서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착각했습니다."
소소는 여전히 화가 안 풀리는지 흥흥거리며 말들의 토막을 모아놓고 진법을 펼쳤다. 토막이 난 말들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고 통증도 못 느끼는 듯했다.
소소는 은성진隱星陣을 펼쳐 토막들을 숨겼다.
"말이 주인의 냄새를 따르며 추적자들에게 단서를 줄까 봐 그런 걸 겁니다."
오작의 말에 소소는 눈을 매섭게 치켜떴다.
"계속 데리고 다녀도 되잖아."
"평범한 말은 어두운 밤에 무서워서 걷지 못합니다. 우린 경공을 펼쳐 달릴 작정이고요."
오작과 소소가 대화하는 사이, 희운은 어느새 수십 개 상자를 곱게 쌓은 후 밧줄로 꼭꼭 묶었다. 밧줄에 강화 법술을 건 희운은 상자들을 등에 멨다.
"난 여기 남아서 말들 데리고 갈게. 냉혈한들은 먼저 출발해."
오작은 잠깐 고민하고 품에서 내단과 가면을 꺼냈다. 인면홍지주의 껍데기에서 챙긴 인면이었다.
"제물로 바치면 은신술이 더 은밀해진다고 합니다. 법술에 제물 바치는 방법은 알죠?"
가면을 받은 소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치우야, 가자."
희운은 벌써 출발했고 오작도 곧 뒤를 따랐다. 치우는 발길이 잘 안 떨어지는지 한참 망설였다.
"위험한 상황이면 말 버리고 도망쳐."
당부할 말이 가득했지만, 치우는 겨우 한 마디만 뱉고 돌아섰다.
일행이 떠나고 소소는 은성진에 몸을 숨긴 채 고민했다. 주인에게 충성하여 요괴와 마수가 득실대는 변경까지 온 말들을 이대로 버리는 게 옳은 일인지. 아니면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말을 지키는 게 옳은지.
'짜증 나. 왜 다들 결정을 이렇게 쉽게 내리는 거야? 난 아무리 고민해도 모르겠는데.'
저들이 틀리지도 않고, 자신도 틀린 게 아니다. 그런데 왜 두 결정 다 마음에 안 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편. 오작은 달리다 길가에 쓰러진 대나무 하나를 주워 쪼갰다. 빠르게 달리면서 쪼갠 대나무로 광주리를 틀었다.
"상자를 여기에 담으십시오."
희운은 오작이 준 광주리에 강화 법술을 건 다음 등에 멘 상자들을 안에 넣었다. 마치 자로 잰 듯이 상자들이 광주리 안에 쏙 들어갔다.
상자와 광주리 사이의 작은 틈을 마른 낙엽을 쑤셔 메꾸니 흔들림도 없어 달리는 데 참 편했다.
"고맙습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각자의 목적으로 서로 돕는 거니깐요."
희운은 가까워질 틈을 안 주는 오작을 보며 속으로 아주 궁금했다.
'같은 편이라곤 부친밖에 없는 나보다 더 험난한 상황인 걸까?'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왜 갑자기 마차를 버리기로 한 겁니까?"
희운은 잠깐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제 모친은 마수를 길들이는 재주를 타고났습니다. 마수는 요괴가 아니기에 마차를 타도 공격합니다. 유웅국과 가까운 곳에서야 감히 마수를 보이지 못하겠지만, 여긴 변경지대입니다. 아침에 큰 소리가 나는 걸 듣고 마차를 버리기로 했습니다."
"형, 뭐가 와."
가장 앞에서 달리던 치우가 코를 킁킁거리며 말했다.
"당신이 이대로 도망치고 나랑 동생이 함께 막으면, 마수는 당신을 쫓습니까 우릴 상대합니까?"
"절 쫓을 겁니다. 길든 마수라면 말이죠."
"약점은 압니까?"
"저도 모친이 마수를 길들였다는 사실만 압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마수를 얼마나 길들였는지는 전혀 모릅니다."
희운의 모친인 공손부보는 서부를 손에 쥔 서왕모나 남부에서 입김이 가장 강한 현빈씨처럼 되는 게 목표다. 그래서 자신이 어떤 마수를 길들였는지는 자식들한테까지 비밀로 했다.
아버지의 성을 따른 희운에겐 더구나 꼭꼭 감췄다.
"형, 어떻게 할 거야?"
"놈들을 치우고 간다."
오작도 뒤를 쫓는 한 무리의 마수를 감지했다.
"저는 상자를 지키겠습니다. 놈들도 헌원검의 무서움을 알 테니 함부로 덤비진 못할 겁니다."
희운은 어느새 광주리를 바닥에 내려놓은 후 부적을 여럿 붙였다. 그러곤 광주리 위에 올라서서 헌원검을 뽑아 들고 마수의 출현을 기다렸다.
"치우. 약점을 찾아."
오작의 절대감은 법력과 경지의 제약으로 강한 적에게 큰 효과를 보지 못한다. 치우의 직감은 타고난 거여서 법력이나 경지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다.
"이거 짐승 맞아?"
마수 다섯 마리가 등장했다. 놀랍게도 몸이 청동으로 되어 움직일 때마다 엄청나게 거슬리는 마찰음을 냈다.
"아는 마숩니까?"
오작의 질문에 희운이 탄식했다.
"청동랑입니다. 이름 빼곤 아는 게 없습니다."
"치우. 상자 지키는 게 최우선이다. 잊지 마."
치우는 태극구의 도움으로 귀기를 제압하긴 했지만, 여전히 귀기가 가장 강하여 쉽게 흥분한다. 지금까지야 강한 정신력으로 잘 억제해 왔지만, 싸우다 흥이 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알았어. 조심할게."
늑대들은 헌원검이 두려운지 함부로 접근하지 못했다. 그러나 뒤에 더 많은 마수가 있을 수도 있고, 소전을 해치려는 공손부보 무리가 쫓아올 수도 있기에 오작 일행도 마냥 대치하고 있을 수 없었다.
오작은 화첨창을 슬쩍 휘둘러 늑대의 머리를 노렸다. 공격받은 늑대는 몸을 움츠리더니 입으로 오작의 창을 물려 했다.
상대 반응을 보려고 힘을 뺀 공격이기에 오작은 늦지 않게 창을 회수했다. 허공을 문 늑대의 입에서 듣기 싫은 딱 소리가 났다.
화첨창이 회수되자 공격받은 늑대를 도우려던 옆의 두 늑대가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마수 주제에 늑대의 협동 사냥 습성을 그대로 갖추고 있었다.
"상자를 지킬 자신 있습니까? 아무래도 제가 공격 역할을 맡아야 할 것 같습니다."
희운이 속삭이듯 말했다. 마수들이 아무 반응 없는 걸 보니 오작과 치우한테만 들리게 말한 것 같았다.
"그게 좋겠습니다."
오작이 대답하기 바쁘게 희운의 몸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화첨창을 상대할 때와는 달리 늑대는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동시에 남은 네 늑대는 상자를 노리고 덤벼들었다.
치우는 허공에서 꺼낸 칼을 휘둘러 늑대 두 마리를 동시에 벴다. 그러나 어마어마한 힘이 담긴 치우의 천강도는 늑대에게 큰 타격을 주지 못했다.
둘 다 뒤로 튕기긴 했지만, 딱히 불편한 데는 없어 보였다.
오작의 대응은 조금 달랐다. 찌르거나 휘두르는 대신 창끝을 늑대의 목에 댔다. 늑대가 앞으로 뛰는 힘까지 더해 두 놈을 멀리 던져버렸다.
그 과정이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늑대들이 전혀 반응이 없었다.
그때 희운이 상자 옆으로 돌아왔다. 왼손에는 자른 늑대 대가리가 있었고, 남은 몸통도 세 조각으로 나뉘어 제멋대로 흩어져 있었다.
"머리를 처리하겠습니다. 대신 막아주십시오."
희운은 소매에서 부적 세 개를 꺼내 늑대 대가리에 붙인 후 중얼중얼 주문을 외웠다. 주문이 끝나자 세 부적 중 두 개는 불타 사라졌고, 하나는 늑대 대가리에 스며들었다.
"봉인."
시동어로 주문을 마친 희운은 늑대 머리를 멀찍이 던졌다.
"하나 더 잡겠습니다."
말을 마친 희운은 헌원검을 휘두르며 둘씩 붙어있는 늑대 중 한 무리를 덮쳤다.
"치우. 상자 지켜."
오작은 희운보다 조금 늦게 출발했지만, 먼저 도착했다. 화첨창이 산 뱀처럼 꿈들거리며 두 늑대를 동시에 공격했다.
창이 하나여서 결국엔 둘 중 하나를 노리겠지만, 창끝의 변화가 하도 다양하여 누가 목표인지 맞히기 힘들었다.
희운은 뒤에서 강하게 울리는 깡 소리 두 개를 확인하며 집중력을 높였다. 오작의 현란한 공격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몸이 잠깐 굳은 두 늑대 중 하나를 골라 헌원검으로 머리를 잘랐다.
경쾌한 서걱 소리와 함께 늑대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희운은 머리를 다시 붙이려고 숙이는 늑대의 몸통을 발로 힘껏 걷어찼다.
희운의 발에 차인 늑대 몸통이 비칠거렸다. 희운은 발로 늑대 머리를 꾹 밟아 바닥에 반쯤 박아 넣었다.
머리가 흙에 묻히며 시각과 청각 모두 약해졌고, 늑대 몸통은 희운의 이어지는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늑대 몸통을 몇 조각으로 벤 희운은 바닥에 박힌 늑대 머리를 손으로 뽑아 들고 뒤로 물러났다.
오작 역시 상대하던 늑대를 내버려 두고 뒤로 물러났다. 오작의 창에 반쯤 잘리다시피 했던 늑대 다리는 채 숨을 세 번 쉬기도 전에 정상으로 회복했다.
희운은 또 늑대 머리에 부적 세 개를 붙이고 주문을 외웠다. 봉인을 끝낸 희운은 머리를 손이 가는 방향으로 힘껏 던진 후 오작에게 질문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남은 늑대 셋은 한데 뭉쳐서 멀찍이 서 있었다.
"치우가 상자를 메고 앞장서. 앞에서 오는 공격에만 집중하고 옆과 뒤에서 오는 공격은 무시해. 할 수 있지?"
치우는 살짝 충혈된 눈을 껌뻑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수가 드러낸 살기에 귀기가 날뛰는 바람에 억제가 쉽지 않았다.
"두 측면과 뒤쪽 방어는 내가 맡겠습니다. 희운 당신은 공격에 집중하면 됩니다."
희운은 오작의 방법이 최선이라는 생각에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 치우가 상자를 등에 메고 앞장서고 희운과 오작이 뒤를 바싹 따랐다.
눈치를 보던 세 늑대는 꽤 큰 간격을 두고 일행의 뒤를 쫓았다.
"혹시, 그 헌원검을 우리도 다룰 수 있습니까?"
오작의 질문에 희운은 고개를 저었다.
"부계의 핏줄로 이어지는 법보입니다. 절 빼면 다룰 수 있는 사람은 제 부친밖에 없습니다."
'가정사가 복잡하구나.'
희운의 다섯 형은 물론 동생들도 소전의 자식이 아니었다. 유웅국의 국보로 알려진 헌원검이 사라졌는데 고작 희운 혼자 나섰던 게 이제야 이해됐다.
"아까 벤 두 청동랑은 언제쯤 회복합니까?"
"자연적으론 회복하지 못합니다. 봉인을 푼 다음 머리와 몸통을 한데 모아둬야 합칩니다."
"혼자서 늑대 셋 감당할 수 있습니까?"
희운은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반 각 정도 버틸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지금부터 속도를 높여 앞에 매복하십시오. 늑대들이 발견하고 속도를 늦추면 좋은 거고, 못 발견하고 지나치려 한다면 급습하십시오. 그러면 제가 반전하여 돕겠습니다. 한 마리만 더 줄이면 저들도 감히 못 따라올 겁니다."
늑대에게 발각되어도 상관없는 계책이다. 희운은 속으로 크게 감탄하며 치우를 추월했다.
시간을 넉넉히 주면 희운도 오작과 비슷한 생각을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짧은 기간에 최선이나 다름없는 답을 찾아내는 건 희운도 힘들다.
발각되어도 퇴로가 있는 적당한 곳을 찾은 희운은 은잠술隱潛術을 펼쳤다. 미리 뽑은 헌원검은 손으로 잡은 채 소매에 넣었다. 숨소리까지 죽이고 치우와 오작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늑대 세 마리는 일행과 꽤 먼 거리를 두고 따랐다. 희운은 늑대 세 마리가 자신이 있는 곳을 지난 후, 살짝 뒤처진 늑대를 뒤에서 공격했다.
서걱 소리와 함께 늑대 뒷다리 하나가 떨어졌다. 그러나 희운은 성공을 자축할 시간도 없었다. 늑대 세 마리는 예측했다는 듯이 동시에 몸을 반전하여 희운의 팔다리로 이빨을 들이댔다.
그때, 멀리 간 줄 알았던 오작이 어느새 가까이 나타났다. 손에 든 창이 허공에 화려한 문양을 수 놓으며 세 마리 늑대를 몰아붙였다.
- 작가의말
마수의 첫 정식 등장입니다. 마수와 환수와 요괴의 구분은 차차 설명하겠습니다.
Commen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