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망포수조壹罔捕數鳥
불입호혈不入虎穴
범 굴에 안 들어가고서
언득호자焉得虎子
어찌 범 새끼를 잡으랴
창의 회전에 따라 바람이 불었다. 처음엔 그저 소매가 날릴 정도였지만, 점점 커져서 옷깃을 여며야 했다. 시간이 흐르며 세찬 바람이 여럿 생겨 새된 소리로 서로 부딪쳤다.
그러다 갑자기 언제 그랬나시피 고요해졌다. 창과 마찰을 빚으며 소리를 낳던 기운들이 전부 굴복한 것이다.
"어, 어."
이어진 광경에 왕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오장국의 넓은 땅 곳곳에서 형형색색의 연기가 떠올라 은색 원 안의 붉은 원으로 가차 없이 빨려갔다.
연못에 웅크리던 푸른 독도 있고 나무에 숨어 지내는 갈색 독도 있다. 허공을 떠다니는 회색 독은 물론 깊은 땅속에서 느리게 움직이는 검은 독도 있었다.
그 외에도 빨갛고 노랗고 하얀 독들이 오랜만에 보는 친인에게 달려가는 사람처럼 홍영창에 몸을 던졌다.
"진짜네?"
마음에서 우러러 나온 진실한 웃음이 얼빠진 왕의 얼굴을 빠르게 점령했다. 아들과 신하들의 죽음은 어느새 왕의 머리에서 말끔히 사라지고, 오장국을 강하게 키워 청제의 자리에 도전할 황홀한 꿈만 남았다.
과연, 나라치고는 작은 오장국이어도 오랜 기간 쌓인 독을 뿌리 뽑는 일은 쉽지 않았다. 홍영창은 이튿날 점심이 다 되어서야 회전을 멈추고 자단 손으로 돌아왔다.
"협객의 은혜는 이 뜨거운 가슴에 평생 간직하겠소. 훗날 웃는 얼굴로 다시 만나는 그날을 기대하며 이만 작별하겠소."
자단 일행과 작별하고 홀로 궁전으로 돌아가는 왕의 마음은 날 듯이 기뻤다. 길을 따라 시야에 들어오는 칙칙하고 음침하던 오장국의 숲과 벌에 활력이 넘쳤다.
생명을 시기하고 생명에 기생하며 생명을 해치는 것으로 존재를 이어가던 독이 모조리 사라진 덕분에 온 나라가 생기로 가득했다.
비록 나무는 앙상하고 풀은 말라비틀어진 한겨울이지만, 생명들이 봄의 약동을 기다리며 부르는 승리의 노래가 귓가를 맴돌았다.
한편.
왕이 떠나고 모습을 드러낸 구망이 오작에게 질문했다.
"둘이 나 몰래 미리 상의했어?"
"아닙니다. 숙부께서 출발할 때 청제한테 청룡주와 바꿀 만한 향만 좋은 떡을 선물하자고 하셨습니다. 계속 고민하다가 이렇게 기회가 되어 임기응변한 겁니다."
자단과 오작이 한 일이 미리 계획되었던 게 아니라는 말에 구망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빠르게 대책을 세운 오작도 대단하고, 오작을 믿고 장단을 맞춘 자단도 대단하구나. 아니지. 자단은 원래 단순한 놈이니까 오작만 대단한 건가?'
통천교주의 눈에 들어 제자가 된 것만으로도 자단이 평범하지 않음을 증명한다. 비록 십 년에 하나 나오는 기재나 백 년에 겨우 하나 본다는 천재는 아니지만, 다른 사람보다 월등히 비범한 면이 반드시 있다.
단, 구망은 그 비범함이 머리 쓰는 쪽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머리가 둔한 건 아니지만, 타고난 성정 자체가 머리를 복잡하게 굴리는 걸 질색한다. 어찌 보면 치우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우매한 자는 황금을 돌처럼 쓰고, 현명한 자는 돌을 황금처럼 쓸 수 있다더니. 그나저나 오작 네가 어디까지 생각했는지 알고 싶구나."
"큰 것만 말하겠습니다."
오장국에서 볼일을 끝냈기에 말머리를 돌렸다. 보폭이 큰 오행마의 느긋한 또각또각 소리와 오행마에 맞추려고 조금 분주한 둔각의 딸깍딸깍 소리를 반주 삼아 오작이 설명을 늘어놓았다.
"세상에 나쁘기만 한 존재는 없습니다. 오장국의 독이 바로 유력한 증명이죠. 독 때문에 오장국은 크게 발전할 수 없었지만, 반대로 독 때문에 주변 국가들이 풍요로운 땅을 감히 노리지 못했습니다."
언제 죽을지 몰라서 그렇지, 오장국의 삶은 꽤 풍족하다.
"독은 상대적입니다. 통제할 수 없어서 나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모든 게 독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위험해도 통제에 놓인 건 독이 아닙니다. 독을 없애면서 오장국은 자신을 지키던 가장 든든한 울타리를 잃었습니다. 거기에 백 명이나 되는 신하도 잃었지요."
"오장국이 독을 공부하여 통제했다면 참 좋았겠구나."
"그렇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두려워하는 풍조로 독에 관한 공부가 활발히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한계는 넘을 수 있는 자한테만 훌륭한 영약입니다. 왕은 그걸 넘을 능력이 없기에 그저 독이었겠죠. 그래서 독이라는 울타리가 사라진 이 풍요한 땅에 어떤 참사가 닥쳐올지 미처 모르고 기뻐만 했습니다."
"신하들 죽인 거나 독 없앤 거나 왕의 허락을 구한 일이니 명분도 우리한테 있구나. 참으로 잘한 일이다만, 이게 청제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아직도 궁금하구나."
"왕은 멍청하지 않습니다. 아마 궁전에 돌아가서 여러 가지로 준비하다 보면 독이 사라지고 부하 백 명이 죽은 게 얼마나 큰일인지 깨닫게 될 겁니다. 주변 국가들이 어떻게 나올지 떠올리는 순간 당황할 겁니다."
"짧은 대면이지만, 제가 본 왕은 멀리 내다 볼 안목이 없는 자입니다. 대책이 없어서 헤맬 때 청제가 손을 내밀면 덥석 잡을 겁니다. 독을 없애주겠다는 제안을 깊이 고민하지 않고 받았던 것처럼 말이죠."
"향만 좋은 떡이라는 건 무슨 의미지?"
"왕은 백성을 다스리고, 제는 왕을 다스리고, 황은 천하를 다스립니다. 국가의 기반을 못 갖춘 청제는 개인과 수하들의 무력으로 청제 자리를 유지한다고 들었습니다."
"그 주보한테서 들은 거냐?"
"아닙니다. 현제賢弟(동생을 높여 부르는 호칭)한테 들었습니다."
현제가 누군지 고민하던 구망은 우쭐거리는 치우를 확인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리 덩치가 크다고 해도 고작 네 살짜리를 현제라고 부르는 오작의 진지한 표정이 너무 웃겼다.
"오장국의 사정을 청제한테 알려서 청제와 경석이라는 왕이 손잡게 한다는 뜻이냐?"
"그렇습니다. 왕은 아마 기꺼이 손잡을 것이고, 청제 역시 도약할 이 훌륭한 기회를 놓치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부하도 대부분 죽은 힘 없는 왕을 손바닥에 올려서 갖고 노는 건 청제한테 일도 아니니깐요."
"다른 국가들의 반발도 심할 테고, 오장국 놈들 음흉한 걸 청제도 모르지 않을 텐데?"
"범 새끼 잡으려면 높은 산 깊은 굴로 가야겠죠. 왕 출신이 아닌 자로서 처음으로 제의 칭호를 받은 사람입니다. 신농 다음으로 황의 자리를 노린다는 소문도 있고요. 우리가 함정이라고 알려줘도 서슴지 않고 뛰어들 겁니다."
구망은 오작의 뛰어난 머리는 물론 거칠 것 없는 자신감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치우가 오작처럼 자라면 참 좋겠는데, 타고난 성정은 쉽게 고칠 수 있는 게 아니다.
치우한테 생각이 미친 구망은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에 머리털이 쭈뼛했다.
"설마. 치우의 사정도 알고 이번 일을 꾸민 것이냐?"
"네. 현제의 선부先父(먼저 떠난 부친)가 구려국九黎國 왕자라는 걸 들었습니다. 청제가 오장국을 손에 넣으려고 하면 다른 국가들이 동부에서 가장 강한 구려국을 중심으로 뭉칠 겁니다."
'오장국의 왕이 순순히 물러나지 않을 테고, 구려국을 비롯한 강국들이 청제를 견제하겠지. 그러나 청제 또한 쉬운 자가 아니니 언젠간 오장국을 완전히 손에 넣을 것이다.'
"청제가 오장국이 아닌 다른 국가를 노려 기반을 다진다면 훨씬 빠르게 힘을 키울 겁니다. 그러나 오장국이라면 온전히 손에 넣는 데 어려움이 많을 거고, 성공한다고 쳐도 청제의 원래 계획과는 상당히 다를 겁니다."
"그 뒤까지 생각해 둔 것이냐?"
"치우가 성인이 되기만 하면 힘 싸움 아니겠습니까?"
남자는 열네 살부터 성인으로 쳐주고 여자는 초경을 치른 날부터 성인으로 인정한다. 십 년이 지나 치우가 열네 살만 되면 구려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의 힘을 등에 업고 청제의 자리를 노릴 수 있다.
자단의 무력과 구망의 인망, 거기에 오작의 뛰어난 두뇌까지 합치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청제가 과연 걸려들까?"
"사실 오장국 외에도 미끼 하나 더 있습니다. 송구하지만, 일이 끝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삼수녹이 몸을 회복하는 동안 구망과 자단은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청룡주를 얻어낼지 고민을 많이 했다.
뾰족한 수는 못 떠올리고, 자단이 협상해서 실패하면 훔쳐내려는 계획만 세웠다. 구려국에 부탁하여 군대를 움직이고, 자단이 홀로 쳐들어가서 난동을 부리는 거로 시선을 빼앗은 다음 구망이 혼란을 타서 은신술로 잠입해 훔치기로 했다.
그런데 오작의 자신만만한 모습에 이미 청룡주가 손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그래. 덕분에 내 속이 훨씬 든든하구나."
대화하는 사이 숲을 벗어났다. 넓게 펼쳐진 벌판을 본 둔각이 먼저 흥분하여 네 발굽을 놓아 달렸고, 누가 앞서는 걸 싫어하는 오행마 역시 갈기를 날리며 뛰었다.
오행마의 생각을 모르는 둔각은 그저 같이 뛰려고 속도를 줄이지 않았고, 오행마는 둔각의 '도전'에 승부심이 불타 질주를 늦추지 않았다.
덕분에 이틀 만에 청제의 궁전이 있는 목수木壽에 도착했다.
"구망 어르신은 현제와 함께 여기서 기다려 주세요. 담판은 저와 숙부가 짓겠습니다."
"그래. 좋은 소식 기다리겠다."
"형, 잘해."
한편.
청제는 불쑥 찾아온 손님 때문에 적잖이 당황했다.
"흉신악살 자단이면 벽유궁 통천교주의 애제자잖아. 만인참萬人斬으로도 유명하고."
"몰래 저지른 살행까지 합치면 십만도 될 거라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현무루 찾으려고 천하를 뒤집는다던데 왜 여길 온 거지? 혹시 누가 벽유궁 물건 훔쳤어?"
신하들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겉으로 껄렁껄렁한 척해도 속은 얼마나 치밀한 사람인지 알기에, 조금 머리를 늦게 흔들었다가 의심받을까 봐 걱정되어서였다.
물론, 풍백과 운사 그리고 우사 같은 두터운 신임을 받는 신하들은 가만히 있었다.
"왜 하필 뇌공도 없는 때를 골라서 찾아왔지? 이기든 지든 사람 많이 죽을 거 같은데."
청제의 지낭으로 불리는 풍백이 나섰다.
"조용히 보자고 하는 걸 보면 나쁜 일은 아닙니다. 자단의 성격으로 봤을 때 싸울 일이었다면 궁문을 부수고 창을 휘두르며 왔을 겁니다."
"알아. 내가 싸우고 싶어서 그러지. 자단을 해치우면 딴마음 품은 놈들이 한동안 잠잠할 텐데 말이야. 그럼 계획 진행하기 딱 좋잖아."
무력으로 청제 자리를 얻었기에 영위앙은 무력을 선호한다. 자기가 가장 잘하는 걸 해야지 괜히 못 하는 걸 하면 망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그러나 청제와 오래 접촉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냥 하는 소리라는 걸 안다. 어마어마한 무력에 가려져서 그렇지, 청제의 심계도 보통이 아니다.
"좋아. 난향청蘭香廳에 자리를 마련해라. 술이나 음식은 평범한 거로 준비하고. 그리고 풍백은 특이한 점이 없는지 살펴라."
안배를 마친 청제는 옷 갈아입으러 방으로 돌아갔다. 여러 색의 옷 중에서 고민하다가 옅은 청색으로 정했다.
머리도 빗고 수염도 다듬은 청제는 자단이 난향청에 도착하고 일각이 지난 후에야 느릿느릿 안으로 들어갔다.
"미안하오.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손님을 홀대했군. 영위앙이오."
주인이라도 되는 듯이 편하게 있는 두 사람을 확인한 청제는 일부러 늦은 게 별 효과가 없음을 알아챘다.
"자단이오."
"오작이라고 합니다."
서로 술을 권하는 것으로 으레 주고받는 체면치레를 끝낸 자단은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무례를 무릅쓰고 찾아온 건 거래를 하려고 함이오. 좋은 정보를 드릴 테니 청룡주를 내주시오."
청제는 안주를 집어 입으로 가져가던 젓가락을 도로 내려놨다.
"청룡주가 어떤 의민지 알고 하는 소리요?"
"목의 기운을 타고난 아이가 먹으면 구망이 될 수 있는 보물이지.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를 테니 거래할 수 있는지 먼저 얘기하시오."
자단의 대답에 놀란 건 청제가 아닌 오작이었다.
'뭐지? 난 주작란도 먹고 현무루도 마셨는데. 숙부가 북부 출신이어서 나도 그러려니 했는데, 그럼 난 북부 출신도 남부 출신도 아니라는 말인가?'
자단의 대답을 들은 청제 역시 생각을 정리하려고 침묵을 지켰다.
"저희가 내놓을 건 구려국 다음으로 강한 국가입니다."
청제에게 오래 생각할 시간을 주기 싫었던 오작은 바로 준비한 것을 풀었다. 오작이 입을 떼자 자단은 몸을 뒤로 젖히는 거로 담판에서 빠지겠다는 태도를 보여줬다.
자단이 아닌 열 살 남짓의 아이가 협상을 진행하자 청제의 머리는 더 복잡하게 변했다.
"그래. 구미가 당기는 조건이구나. 그러나 거래 여부를 정하기 전에 꼭 알아야 할 게 있다. 청룡주를 어디에 쓰려는 것이냐?"
"제가 복용할 겁니다."
청제의 눈에 기광이 번쩍였다.
"내가 재주가 얕아서 네가 어디 출신인지는 모르지만, 동부가 아니라는 건 확신할 수 있구나. 넌 청룡주를 먹어도 구망이 될 순 없다."
청제의 말에 오작의 의혹은 깊어만 갔다. 그러나 풀리지 않는 의혹으로 협상을 망칠 오작이 아니었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할 일입니다. 의문이 풀렸으니 청룡주를 협상품으로 내놓을 건지 대답하시죠."
코를 찡그리고 고민하던 청제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신하들과 잠깐만 상의해 보겠다."
- 작가의말
일망포수조 - 그물 하나로 새 여러 마리를 잡다.
위기는 극복할 수 있는 자에겐 기회로 여겨지고, 기회도 잡을 수 없는 사람에겐 위기나 다름없죠. 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께 위기가 기회로 바뀌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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