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괴화첨창不壞火尖槍
오작탈의烏鵲脫衣
오작이 옷을 벗으니
북창부활北槍復活
북창이 부활하다
- 치우와 헌원이 탁록에서 큰 싸움을 벌인다고 소문이 자자합니다. 구천현녀와 강제명을 설득하여 치우 편으로 참전할 계획입니다.
편지를 다 읽은 오작은 편지 더미 곁에 놓인 창을 잡았다. 형천이 적표노를 죽이고 얻은 불괴화첨창이었다.
길이는 홍영창보다 조금 길고 창대는 반 정도로 얇았다. 그러나 이름에 불괴 두 글자가 들어간 데서 쉽게 알 수 있듯이, 단단하기로는 유명한 창이다.
법력을 한 바퀴 돌려 점검한 오작은 바로 경공을 펼쳐 축융봉을 떠났다. 다행히 그간 주작란의 소화가 끝났는지 꽤 멀리 달리고도 노양궁으로 소환되지 않았다.
천잠지용공 첫 단계를 완성한 덕분에 달리는 속도가 예전보다 몇 배 빨랐다. 오작은 채 하루도 안 걸려 금계산에 도착했다.
자단을 찾던 절교 무리가 사라진 덕분에 금계산은 고요했다. 오작은 허공에서 삼매진화의 부적을 꺼낸 후 피를 묻혔다. 총 세 개의 부적이 있었는데 하나는 이미 썼고 남은 둘은 오작과 치우가 하나씩 지니고 다녔다.
"생각보다 일찍 왔구나."
채 사 년이 걸리지 않았다. 천일도에 구 년이나 갇힌 경험이 있어 어느 정도 각오했는데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렸다.
"어떻게 거래할 작정입니까?"
"내가 원하는 건 팔괘자수선의다. 그걸 얻으면 난 여자와 말을 너한테 줄 것이고, 여길 떠나는 즉시 죽을 수밖에 없는 자단의 목숨도 구해줄 테다."
"다른 조건은 일절 없는 것이지요?"
"그럼."
오작은 팔괘자수선의를 벗었다. 알몸이 된 오작에게 탁일계가 날개로 옷을 던져줬다.
"자단의 짐에서 나온 옷이다. 크기를 보니 널 주려고 장만한 것 같구나."
법보는 아니지만, 질긴 천으로 지은 꽤 훌륭한 옷이었다. 어떻게 알고 준비했는지 오작의 몸에 딱 알맞았다.
딱 소리가 두 번 나더니 오행마와 소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행마는 반갑게 달려와 오작의 머리를 혀로 핥았다.
"오작, 나 무서웠어."
소소가 훌쩍거렸다. 오작은 자신보다 스무 살이나 어린 이모를 보며 진실을 말할지 말지 고민했다.
'조카라고 하면 분명히 날 함부로 부려먹을 것이다. 최대한 비밀로 하자.'
"얘기가 잘 됐습니다. 곧 여길 나갈 겁니다."
소소를 가볍게 위로한 오작은 탁일계를 바라봤다. 탁일계는 눈을 지그시 감고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는 중이었다.
처음 듣는 언어여서 오작은 무슨 주문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건곤음양전乾坤陰陽顚."
주문이 끝나자 자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형님?"
오작을 본 자단이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물었다.
"숙부, 오작입니다."
자단은 실망과 기쁨이 섞인 오묘한 표정으로 다가와 오작을 힘껏 그러안았다.
"잠시만 조용히 해줄래?"
회포를 푸는 중에 갑자기 탁일계가 정숙을 요구했다. 오작 등은 숨소리마저 죽이고 탁일계를 살폈다.
석상이라도 된 듯 미동도 하지 않던 탁일계가 갑자기 팔괘자수선의를 탁 쪼았다.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든 탁일계의 부리에 투명한 책장 하나가 물려 있었다.
탁일계는 부리로 책장에 뭔가 글씨를 쓴 후 꿀꺽 삼켜버렸다.
"천천히 남은 여덟 장을 마저 뽑아내면 난 천계로 돌아갈 수 있다."
격동이 심했는지 탁일계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천계에서 추방된 마수는 봉신책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오작의 말에 탁일계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약속의 아이는 법칙을 비틀지. 덕분에 난 아홉 장만 모으면 천계로 돌아갈 수 있다."
"한 사람이 한 장씩 갖는 거 아니었습니까?"
"아니. 최대 아홉 장까지 같은 이름을 쓸 수 있다."
"많이 쓰면 좋은 겁니까?"
"응. 많이 쓸수록 강해져. 책장의 힘이 몸으로 흡수되거든. 너도 팔괘자수선의의 말도 안 되는 방어력을 체감했으니 알 거 아니냐."
"그럼 꼭 성공하여 천계로 돌아가길 바랍니다."
"그래. 너도 꼭 천명을 이루거라. 거대한 운명의 아이야."
셋은 오행마를 끌고 금계동을 나갔다. 밖으로 나간 후 자단은 오행마를 타고 오작과 소소는 경공으로 달렸다. 오작은 그간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얘기했다.
"홍영창이 그리되었단 말이지."
그간 든 정이 깊어 자단은 홍영창이 사라진 것을 무척이나 애석해했다.
"어쨌든 결과는 좋습니다. 홍영창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끊지 않았다면 소멸할 때 그 피해가 숙부한테도 일부 옮겨갔을 겁니다."
"어쩌면 자신이 소멸할 줄 알고 계약을 끊었는지도 모르지."
홍영창이 소멸하었기에 누구도 알 수 없는 비밀이다.
"홍영창 대신 이걸 쓰십시오."
오작은 화첨창을 꺼내 자단에게 건넸다. 몇 번 휘두른 자단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홍영창보다 가볍고 단단하구나. 길이도 더 길고. 내 창법에 훨씬 어울리는 창이다. 고맙구나."
자단은 창법의 고수답게 몇 번 휘두르는 거로 화첨창에 빠르게 적응했다.
"나 이만 서부로 돌아갈래."
오작의 말을 듣기만 하던 소소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왜요?"
"백제한테 가서 따져야겠어. 내 옷이랑 다른 법보도 얻어내야 하고. 백제랑 희운 사이에 무슨 거래가 오갔는지 알 필요도 있고."
공식적으로 소소는 희운의 부인이다. 서부 출신인 소소는 어떻게든 세상에 진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평생 시집가지 못한다는 두려움이 무척이나 컸다.
"혼자 괜찮겠습니까?"
"형천한테 못 들었어? 서왕모도 날 어쩌지 못해. 백제는 서왕모의 꼭두각시니까 나한테 함부로 하지 못할 거야."
오작은 만류하지 않았다. 어차피 싸우러 가는 길이기에 소소는 짐이다. 어떻게 탈 없이 뗄지 고민하던 차에 소소가 먼저 입을 열자 잘됐다 싶었다.
소소가 떠나자 오작은 잠깐 쉬자고 제안했다.
"그래. 배고 좀 고프구나."
오작은 빠르게 사냥하고 모닥불을 지폈다. 고기가 노릇노릇 구워지자 자단이 게걸스럽게 먹었다.
자단이 식사를 마치기를 기다려 오작은 여상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까 말하지 않은 일도 있습니다. 즙선기의 몸을 차지한 즙무혼을 제가 죽였습니다."
오작의 말에 자단은 주먹을 꽉 부르잡고 눈물을 흘렸다. 처음 보는 숙부의 눈물에 놀란 오작도 말을 멈추고 가만히 있었다.
"가문의 일은 두 형이 알아서 했다. 그래서 난 잘 모른다. 네게 저주를 건 사람은 서왕모이고 가문의 원수는 흑제인 줄로만 알았다."
오작은 그간 보고 들었던 일들을 자단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오작의 아버지인 견우가 가주 자리에서 물러나며 둘째인 정무가 가주로 취임했다. 그러나 가문에선 여전히 견우를 가주로 여겼고, 대가주와 이가주 그리고 삼가주로 셋을 불렀다.
자단은 비록 삼가주로 불렸지만, 가문의 일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직 강해지는 것과 오작의 저주를 풀 현무루를 찾는 것에만 몰두하다 보니 진정한 원수가 누군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래서 아는 게 오작보다 훨씬 적었다.
"구마소와 계약했기에 제가 가주입니다. 치우를 도와 천하를 통일한 다음 북부에서 가문을 재건할 것입니다. 숙부도 당분간 수련을 접고 저를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그래. 네가 하자는 대로 할게."
가문을 멸문한 원수는 오작이 손수 갚았고, 영예주는 오작을 보호하려고 내린 저주임을 알고 나니 더는 바랄 게 없었다.
적당히 휴식한 후 오작과 자단은 중부로 향했다.
"그런데 설영이라는 아이는 마음에 들더냐?"
"네."
오작의 얼굴이 붉게 물든 걸 확인한 자단은 고개를 젖히고 호탕하게 웃었다. 주작란을 찾아 이십 년 동안 헤맬 때는 이런 날이 진짜 오리라고 감히 상상도 못 했다. 어느새 듬직하게 큰 조카가 짝을 맞아 가정을 꾸릴 거란 생각에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기분이 매우 좋았다.
두 숙질은 쉬는 시간에 창을 섞기도 하면서 적당한 속도로 움직였다. 오작의 창은 여러 창법의 장점을 섞어 안정적이었고, 자단의 창법은 하나를 제대로 익히면 어떤 위력인지 확실히 보여줬다.
오작은 예전에 미처 몰랐던 것들을 자단의 창을 통해 배웠고, 자단은 오작의 다양한 대처를 보며 더 강하고 빠른 공격을 고민했다.
한편.
"진짜 남부의 겁쟁이들은 사람 미치게 하네? 내가 그냥 홍수를 불러서 저 잡종들을 확 쓸어버릴까?"
공공은 지지부진한 담판에 화병이 돋을 지경이었다.
"제가 반고개천부를 뽑은 탓에 오행의 기운이 뒤섞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다만 세상이 품은 기운뿐이 아니라 인간도 섞여야 합니다. 큰 홍수를 불러 남부 사람을 다 죽이면 오행 중에 불의 기운이 부족하여 인간은 쇠락합니다."
공공의 기세가 심상치 않자 형천이 간절한 말투로 설득했다.
"그건 아는데.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것들이 기고만장하는 꼴을 봐주기 어렵구나."
공공은 산적 집안에서 자랐다. 본인이 직접 노략질을 하진 않았지만, 남의 걸 빼앗고 사람 죽이는 걸 주저하는 성격이 아니다.
북부를 통합하고 북부 백성이 허기를 안 느끼는 풍족한 삶을 살게 하려고 성질을 꾹 참고 있었는데, 이미 북부대통합은 물 건너간 마당이어서 거칠 게 없었다.
"이렇게 합시다. 한 번만 더 제안하여 저들이 거절하면 우리 그만 돌아가서 치우를 도웁시다."
형천 역시 참을성이 바닥을 보이기 직전이다. 사실상 남부를 대표하는 염환국의 지지를 얻으면 황제를 이긴 후 천하를 다스리는 데 명분도 서고 실리도 있다.
그러나 더 높은 몸값을 받아내려고 확답을 안 주는 강제명과 구천현녀한테 질릴 대로 질린 상황이다.
그런데.
"좋습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오후의 담판에서 강제명이 통쾌하게 대답했다.
"아시다시피 남화국은 십만에 달하는 병사를 보유했습니다. 오합지졸이라고 해도 모두 광신도여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두 분이 남화국을 막아주면 정예를 마련해 치우 천황을 돕겠습니다."
한편.
소소는 능소궁으로 부지런히 달렸다. 배가 조금만 고파도 성질부리고 몸이 고단하면 풀썩 드러눕던 그 철부지가 아니었다.
희운과 혼인한 가짜 소소가 죽기 전에 자신이 진짜고 희운과 혼인한 적이 없었음을 천하에 공표해야 한다. 아니면 이번 생에 시집가기는 글렀다.
치우가 예전의 그 멍청이라면 괜찮으나, 지금 치우는 자신을 천황이라고 칭하며 천하를 하나로 묶겠다고 선포했다.
그런 치우한테 시집가려면 어떠한 하자도 있어선 안 된다.
'진법뿐이다.'
서왕모가 자식들이 함부로 외출하지 못하게 친 결계는 여전히 복구되지 않았다.
소소는 능소궁에 잠입한 후 빠르게 백초거가 기거하는 춘소궁으로 갔다. 아니나 다를까, 백초거는 춘소궁에서 자신이 모은 괴이한 형태의 돌을 감상하고 있었다.
"오빠. 나 왔어."
"그래. 잘 왔다."
백초거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희운이랑 혼인한 가짜는 누구야?"
"나도 몰라. 어머니가 어디서 구해온 요괴다."
"오빠. 그 소소가 가짜라고 빨리 세상에 알려. 나 치우랑 혼인하기로 했단 말이야. 희운보다 치우가 훨씬 낫지 않겠어?"
백초거는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한테는 치우보다 희운이 더 소중하다."
"왜?"
"치우한테는 봉신책이 없거든."
"그럼?"
백초거는 손에 들고 감상하던 돌을 탁자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몸을 돌렸다. 소소 역시 백초거의 눈길을 따라 탁록이 있는 동남부로 시선을 보냈다.
"몸을 잘 숨기고 도둑질도 잘하는 널 희운한테 보내서 봉신책을 훔치게 하려고 했지. 그런데 네가 사라지는 바람에 요괴를 구해 널 대신했다. 그런데 희운 이 간사한 놈이 아무도 못 훔치게 봉신책을 숨긴 바람에 군사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한 장씩 얻어내는 중이지. 이번 전쟁은 희운이 이길 거다. 아직 필요한 만큼 봉신책 책장을 얻어내지 못했거든."
소소는 예전의 철부지가 아니다. 아무리 떼를 써도 백초거를 설득할 수 없다는 걸 잘 알았다.
"어머니한테 들은 거 있지? 난 약속의 아이랑 연관되었기에 함부로 잡아두지 말라고."
백초거는 손으로 이마를 탁 쳤다.
"그래서였구나."
소소가 자세히 말하지 않았지만, 총명한 백초거는 단박에 상황을 짐작했다. 그리고 몇 년 동안 서왕모가 전혀 간섭하지 않은 이유도 알아챘다.
"소소야. 세상은 힘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다. 난 널 잡아둘 수 있다."
"어떻게?"
몸을 돌려 떠나려던 소소는 궁금을 참지 못하고 발걸음을 멈췄다.
"오작이 네 조카라는 사실을 알아?"
"나보다 스무 살 많은데?"
"칠선녀에 원래 소의선녀는 없었다. 대신 자의선녀가 있었지. 서화국 백성들은 자의선녀를 직선녀라고 불렀다. 네 소수선의도 직선녀가 만든 거지."
소소는 오작의 팔괘자수선의를 떠올렸다.
"어머니는 칠선녀를 유지하려고 널 낳았다. 네가 태어나고 직선녀가 사라졌지. 그런데 말이지. 직선녀는 어찌 됐을까?"
"어머니가 죽였어?"
"그 정도로 독한 사람은 아니야. 두꺼비 요괴로 만들어 살려뒀지."
"아!"
소소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유황천이 된 요지에서 지금도 고통받고 있다. 네가 구해야 하지 않겠느냐?"
"오빠도 도우면 안 돼?"
"넌 당장 반도원에 가서 누나의 고통을 덜어줘. 난 원하는 수량의 봉신책을 얻어 어머니의 손아귀를 벗어난 다음 도울게."
- 작가의말
드디어 탁록대전이 터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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