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도금령金鰲島金靈
금령성모金靈聖母
금령성모는
검법무쌍劍法無雙
검법에 적수가 없다
동쪽 하늘이 노랗게 물들었다. 붉게 타는 서쪽의 노을과 서로 대조되며 장관을 연출했다.
오작과 치우는 쉬지 않고 휘두르던 창과 칼을 멈추고 하늘을 쳐다봤다. 황금빛으로 물든 동쪽 하늘에서 마차 한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차를 끄는 건 두 마리 소였다. 머리에 자란 뿔은 자르기라도 한 것처럼 짧고 뭉툭하고 눈빛이 엄청 순한 얼룩소였다.
어마어마한 크기에 비해 바퀴는 달랑 두 개인데, 하나는 해처럼 붉게 타오르고 하나는 달처럼 차가운 빛을 뿌렸다.
"금령성모의 칠향여柒香輿로구나."
이름 그대로 일곱 가지 향을 풍기며 다가왔다. 아직 마차가 주먹보다도 작게 보이는 거린데 향기가 먼저 천일도에 도착했다.
"통천교주의 두 번째 제자라고 들었습니다."
"나도 자단한테서 들었다. 개인 무력은 열에 들기 힘들지만, 세력은 가장 강하다고 하더구나. 그리고 특이하게 검법 고수라고 한다."
통천교주의 직전제자들 대부분은 법술만 익혔다. 다보도 그렇고 무당도 그렇다.
그러나 금령성모는 통천교주가 승천한 후 교주 자리를 차지하려는 욕심에 검법에 공을 엄청나게 들였다.
교주의 신물인 청평검靑萍劍의 다음 주인이 되기 위한 노력이었다.
칠향여가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향을 풍기며 천일도에 안착했다. 소양궁만큼 큰 마차에서 수십 명이 내렸다. 일부는 경지 높은 술사고 일부는 시중을 드는 시종으로 보였다.
'조공명이 웬일이지?'
칠향여에서 내려 오작과 치우의 얼굴을 확인한 금령성모가 이마를 찌푸렸다.
금령성모는 교주 자리의 유력한 경쟁자를 조공명으로 여겼다. 규모만 보면 금령성모보다 더한 세력을 모았고 검과 비슷한 형태의 무기인 금편을 능숙하게 다룬다.
이미 죽은 귀령성모야 원래부터 멍청해서 염두에도 두지 않았고, 다보도인은 교주 자리에 관심이 없고 승천하려는 생각뿐이다.
무당성모는 도무지 속을 알 수 없지만, 세력에 속하지 않은 혼자이기에 큰 걱정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조공명이 편익조를 날려 사부가 애타게 찾는 무극과 관련한 자의 행방을 알려왔다. 금령성모로서는 도무지 조공명의 처사가 이해 가지 않았다.
"너희가 조공명이 말한 무극을 깨달은 자로 향하는 단서냐?"
금령성모의 말에 오작을 계속 괴롭히던 찝찝함이 깨끗이 사라졌다.
'치우가 보낸 편익조를 받은 게 조공명 일당이구나.'
치우가 편익조를 보내며 천일도에 갈 거니까 답장을 여기로 보내라고 했다. 소소와 형천을 놓친 조공명이 둘의 기운을 흉내 내 편익조의 말을 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아닙니다."
무극을 깨달은 자로 향하는 단서가 아니라 오작이 바로 무극을 깨달은 자다. 그러니 오작은 거짓말하지 않은 셈이다.
금령성모 역시 오작의 말이 진실임을 알고 의심이 무럭무럭 커졌다.
안타깝게도, 금령성모는 그다지 합리적인 사람이 아니다. 조공명이 거짓말로 자신을 속인 게 아닌지 확인하는 대신 오작 등을 생포하기로 했다.
상대를 잡아서 신문하면서 조공명에게 확인해도 늦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아니라면 저항하지 말고 곱게 오라를 져라. 조공명과 대질하여 확실히 아니라면 풀어주고 보상도 하겠다."
금령성모 딴에는 아주 관대하고 자비로운 처사다. 그러나 당하는 입장에선 진짜 무극과 관련이 없더라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였다.
오작은 말없이 창을 들어 금령성모를 겨눴다. 금령성모는 콧방귀를 뀌며 허공에서 검 한 자루를 꺼냈다. 황금 칠천 근을 주고 모산에서 구한 비금검飛金劍이었다.
금령성모는 검지와 중지를 세우고 남은 세 손가락은 손바닥에 모았다. 그리고 검지와 중지로 오작을 가리키며 검결을 외쳤다.
"착着!"
비금검이 날아서 오작을 덮쳤다. 오작은 태만하지 못하고 멸천창으로 비금검을 막았다.
"오호. 예사 실력이 아니구나."
무기는 길수록 공격에 유리하고 수비에 불리한 게 상식이다. 검이나 도는 짧은 길이로 움직임이 영활하여 빠른 수비가 되지만, 창은 어렵다.
그런데 오작은 창끝으로 금령성모의 검면을 두드려 뒤로 밀어냈다.
"당신의 어검술御劍術도 대단합니다."
홍영창이나 화접검이 자의로 움직이던 것과 달리 비금검은 철저히 금령성모의 지휘에 따랐다. 법보의 출신을 알아내면 쉽게 막아낼 수 있는 요마화보들과 달리 비금검의 검로는 예측이 어렵다.
"흥. 감히 너 따위가 날 평가해?"
화가 치민 금령성모는 비금검을 더욱 공격적으로 운용했다. 그러나 오작의 창은 물샐틈없는 수비를 보여주며 금령성모의 화를 더욱 거세게 돋웠다.
"분分!"
금령성모가 검결을 외치자 비금검이 둘로 나뉘었다. 둘이 된 비금검은 다른 방식으로 오작을 노렸다. 그러나 검이 둘로 늘어도 오작의 수비는 여전히 철통같았다.
"분!"
둘이 넷이 되고, 곧 여덟이 되었다. 그러나 오작은 여전히 서두르는 기색 없이 느긋하게 막아냈다.
"분!"
검이 열여섯이 되자 오작의 손발이 분주해졌다. 원래는 창끝으로만 검을 막았는데 이젠 창 자루로 후리기도 하고 자루 끝으로 찍기도 했다.
그러나 분주한 건 금령성모도 마찬가지였다. 열여섯 개나 되는 검을 따로 제어하려니 머리에 김이 솟을 지경이었다. 더구나 오작의 도발에 화가 치밀어 마음의 평정을 지키지 못한 탓에 오히려 여덟 때보다도 위협적이지 않았다.
"분!"
오작은 가끔 금령성모와 눈을 마주치며 비웃음을 보여줬다. 결국 화를 못 참은 금령성모는 검을 서른둘로 나눴다. 열여섯도 버겁던 금령성모는 일부 검을 자신의 통제에 두고 일부에는 알아서 공격하도록 자유를 줬다.
그리고.
치우가 끼어들었다.
치우는 마환도를 강하게 휘둘러 금령성모의 비금검을 공격했다. 일곱 자루나 되는 비금검이 치우의 마환도에 맞아 동강 났다.
미처 금령성모가 반응할 겨를도 없이 치우는 마환도를 한 번 더 휘둘렀다. 금령성모가 뒤늦게 검을 회수했지만, 금령성모의 통제를 받지 않던 검들은 미처 물러가지 못하고 치우의 칼질에 박살 났다.
다시 하나로 합친 비금검은 금이 얼기설기 가고 이가 잔뜩 떨어진 모습이었다. 황금을 비롯한 귀한 금속을 제물로 바치고 법력 집적진까지 치면 하루 만에 회복할 수 있지만, 금령성모의 다친 자존심은 오작과 치우를 죽이기 전엔 낫지 않을 듯했다.
"사상탑肆象塔!"
허공에서 돌을 쌓아 만든 탑이 생겨나서 오작의 정수리를 노렸다. 사상탑에 정수리를 맞으면 아무리 대단한 자도 정신을 잃고 만다.
피하기 무척 어려운 공격이지만, 안타깝게도 사상탑의 공격을 막아낼 존재가 너무 많아 약한 자들을 상대할 때나 유용하다.
"용배갑龍背鉀."
용의 심장은 등에 가깝다. 그래서 등 부분의 비늘이 가장 두껍고 단단하다. 구망은 법술로 용의 등껍질에 비견되는 견고한 방어막을 만들어 오작과 치우의 정수리를 보호했다.
용배갑과 부딪친 사상탑은 그대로 튕겼다.
"넌 누구냐?"
금령성모는 그제야 지금껏 무시하다 못해 없는 사람 취급을 했던 구망한테 눈길을 줬다.
"구망이오."
금령성모는 이마를 찌푸리고 구망을 위아래로 살폈다. 자세히 살피니 자신을 모시는 시종들처럼 하찮아 보이던 구망의 비범함이 눈에 들어왔다.
자기 기운뿐 아니라 주변의 기운까지 통제하여 강함을 꼭꼭 숨긴 음흉한 놈이었다.
"새로 된 여덟 번째 구망인가?"
"아니오. 일곱 번째요."
금령성모는 놀라서 마구 뛰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켰다.
'청룡이 언제 떠났지? 떠난 지 오래 안 됐다면 내 목숨도 위험하다.'
청룡을 담았던 몸이어서 법술 위력이 대단할 것이다. 게다가 청룡의 신성이 채 사라지지 않았다면 금령성모의 목숨조차 위험하다.
"구망이라는 놈은 죽여도 괜찮다. 남은 둘은 생포해라."
금령성모의 명령이 떨어지자 두 제자가 나섰다.
치우를 덮친 자는 이름이 여원余元으로 손에 커다란 칼 한 자루를 들었다. 칼의 이름은 화혈도化血刀로, 상대의 몸에서 피를 내는 요화마보다.
홍영창이 있었다면 화혈도가 꼬리를 말고 숨을 텐데, 안타깝게도 청룡의 오뢰에 존재가 말살되었다.
오작을 덮친 자는 문중聞仲이라고, 조공명과 마찬가지로 쌍편을 들었다. 날이 없이 둥글둥글한 검신엔 마디가 전혀 없고, 비늘 문양이 가득했다.
요마화보에 속하는 자웅교룡쌍편雌雄蛟龍雙鞭으로 구절금편 못지않은 무기다.
그리고 남은 자들은 우르르 몰려 구망을 공격했다.
"자단 숙부가 이르길 '금령성모는 재능이 부족한 주제에 교만하여 자신의 약함을 인정치 아니하고 무리를 지어 세를 과시하기 좋아한다'더니 딱 그 꼴입니다."
오작의 말에 금령성모는 화가 잔뜩 치밀었지만, 격장법에 걸려들진 않았다. 자신이 나섰다가 무기가 망가지고 사상탑의 공격도 막혔다. 이 상황에 상대 한 마디에 흔들려 수하들을 물리면 사기가 엉망이 된다.
"자단 숙부가 이르길 '금령성모는 주제를 모르고 교주의 자리를 탐하나 사부께선 다음 교주로 무당을 염두에 뒀다'라고 했습니다."
"그 입 닥치게 못 해?"
오작의 창을 막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는데 입까지 다물게 하라고 하자 문중은 울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하늘 같은 사부의 말을 감히 거역하지 못해 위험을 무릅쓰며 공격 비중을 늘렸다.
"장수가 범처럼 용맹하면 병사들도 늑대같이 악착스럽고, 장수가 곰처럼 미련하면 병사들도 나방처럼 불인줄 모르고 뛰어든다."
오작은 입을 쉬지 않고 금령성모를 자극했다. 그럴수록 마음이 다급한 문중의 쌍편이 어지러워졌고, 아주 빠르게 파탄을 드러냈다.
기회를 잡은 오작은 관일홍 초식으로 문중의 심장을 노렸다. 억지로 공격을 이어가던 문중은 미처 오작의 반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심장이 뚫렸다.
"놈!"
금령성모가 뽑은 창날로 다시 목을 노리려는 오작을 왼손으로 공격하면서 오른손으론 문중의 손에 들린 쌍편을 빼앗았다.
금령성모의 손에 들린 쌍편은 넝쿨이라도 되는 듯 타래를 감았다. 서로 감기는 검날과 달리 자루는 겹쳐서 하나가 되었다.
둘이 합치면서 두께가 너비의 반이나 되는 기괴한 형태의 검으로 변했다.
금령성모가 오작을 상대하는 사이 시종들이 달려와 문중의 입에 온갖 약을 쏟아부었다.
쪼개진 심장이 아물면서 문중의 호흡이 점차 안정되었다.
'내가 왜 졌지?'
무기술은 당연히 상대가 앞선다. 금령성모의 어검술을 훌륭하게 막아내는 걸 보며 심리적으로 위축되기도 했다.
그러나 무기 자체는 문중의 교룡쌍편이 훨씬 낫다. 오작의 멸천창은 단단함과 공격력은 적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지만, 겉으로 풍기는 강함은 아직 크게 부족하다.
'법력도 내가 더 많고 힘도 내가 더 세다. 속도 역시 내가 두 배 정도 빠르게 움직였다.'
의문을 풀지 못한 채 금령성모와 오작의 싸움을 지켜보던 문중은 울컥 붉은 피를 토했다. 오작이 창을 다루는 모습을 보며 갑갑한 것이 쌓이다가 심마로 터졌다.
한편.
문중 대신 오작과 검을 맞댄 금령성모 역시 놀라움이 점점 커졌다.
'이게 바로 무극인가?'
상대의 무기술은 언뜻 평범했다. 그러나 금령성모의 경지에선 뭔가 비범함이 보였다. 무기를 움직임에 있어 상대는 늘 금령성모가 생각지 못한 선택을 했고, 그걸 자연스럽게 이뤄냈다.
마치 입을 바라보며 다음 말을 기다리는데 상대가 갑자기 무릎으로 얘기하는 느낌이었다. 예상을 벗어나는 움직임이 너무 자연스럽게 벌어지니 늘 반응이 반 박자 혹은 한 박자 느릴 수밖에 없고, 그렇게 끌려다니다 보면 어느새 상대에게 수많은 허점을 노출한다.
'이걸 내가 익히면 교주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무극이 욕심 난 금령성모는 상대의 창술에서 실마리를 찾아내려고 애썼다. 비록 정신 수양의 부족으로 못난 모습을 보였지만, 경지도 실력도 오작보다 훨씬 나은 금령성모다. 작정하면 아직은 어설픈 오작한테서 무극을 훔쳐내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러나.
오작은 최근 소오한테 태극구가 깨달은 무극을 전해 들었다. 결론은 비슷하지만, 그 과정이 너무 상반되었다.
현재 오작은 둘을 비교하며 커다란 고민에 빠졌다. 갈등이 창질에도 드러나 문중이나 금령성모도 오작의 창술에서 법칙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본인조차 헷갈리는데 그걸 창술만 보고 알아낸다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다. 하나 진실을 모르는 금령성모는 오히려 흥분했다. 과정이 어려울수록 맺힌 열매가 더 달콤한 법이다.
명확한 목표가 생긴 금령성모는 오작의 도발에도 흔들림 없었다. 문중을 말로 간접적으로 흔들어 쉽게 해치웠던 오작도 금령성모 상대로는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가장 걱정했던 구망마저 강신으로 진화한 몸과 진목액으로 얻은 법력 덕분에 잘 버텼다.
그리고 싸움의 전환점은 치우가 만들었다.
"약해!"
잔뜩 화난 외침과 함께 치우가 마환도를 커다랗게 휘둘렀다. 심장이 뚫리고도 운 좋게 목숨을 부지한 문중과 달리, 여원은 몸이 동강 났다.
한칼에 화혈도와 여원을 함께 조각낸 치우는 곧바로 몸을 돌려 구망을 에워싼 자들을 덮쳤다. 여원은 마환도에 베이면서 삼혼칠백이 깨지는 바람에 치료할 겨를도 없이 즉사했다.
"물러나라. 그리고 십천군什天君이 나서라."
금령성모가 뒤로 물러나며 외쳤다.
- 작가의말
죽이는 건 오작보다 치우가 훨씬 잘합니다. 다 천강마환도 덕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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