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의난감악螻蟻難撼岳
법술만변法術萬變
법술은 변화가 다양하여
선변자강善變者强
변화에 능한 자가 강하다
매미는 미련하다. 자기보다 소리가 큰 동족을 용납 못 하는 매미는 하나가 울기 시작하면 모두 따라 운다.
매미마다 낼 수 있는 소리가 뻔하기에 사실 승자는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매미는 소리를 꾸준히 크게 내어 자기 귀를 먹먹하게 만든다. 그래서 자기 소리밖에 안 들리면 승자를 자처한다.
"제길, 한풍자골寒風刺骨!"
눈이 뻘겋게 충혈되고 이마와 목의 핏줄이 곤두선 풍백이 뼈 시린 찬바람을 소환하여 귀 아프게 우는 매미들을 재웠다.
자기 소리로 자기 귀를 마비하고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매미 때문에 기분이 더러웠다. 마치 청제의 지낭 자리를 위태롭게 지키는 자신의 신세 같아서.
아예 미련한 놈이라면 평생 자신을 속이며 살았을 테지만, 풍백은 자신이 머리를 힘들게 굴려서 아득바득 오늘의 자리까지 올라왔음을 잘 안다.
강한 실력과 강한 운으로 제멋대로 굴면서도 재상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뇌공, 필요한 정보를 쏙쏙 빼낼 수 있어서 청제한테 꼭 필요한 운사, 비를 내려주는 법술 덕분에 어디에 가도 떠받들리는 우사.
청제와 가까운 네 신하 중에서 자신이 가장 쓸모가 적고 대체자가 많다는 생각에 풍백은 늘 노심초사하며 살았다.
그런데 뇌공보다 더 재능이 뛰어나고 여러모로 훌륭한 오작을 보자 질투의 불길을 누르기 힘들었다.
괜히 참다가는 화병으로 드러누울 것 같아서 어떻게든 죽이려고 태산 주변의 요괴 영지들을 들쑤시고 다녔다.
"청제 휘하의 태사 풍백이 방문을 요청한다. 대답하지 않으면 허락한 거로 알고 들어가겠다."
풍백은 채 반 각도 안 기다리고 요괴의 영지로 들어갔다. 검은 바위가 뾰족한 이곳은 바로 흑석림. 공교롭게도 태산노도와 풍운십삼기가 혈편복의 영지로 가기 전에 들렀던 대망사의 영지였다.
누런 안개가 피어오르며 시야를 제한했다. 풍백은 마음만 먹으면 안개를 순식간에 날릴 수 있기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풍백이라. 소문은 꽤 들었다. 무슨 일로 내 잠을 방해했는가?"
"키가 일 장 정도 되는 자색 옷을 입은 소년과 십이 척 되는 청년을 본 적이 있는가?"
대망사는 혈편복 다음으로 도행이 높은 요괴다. 풍백도 태산노도와 마찬가지로 흑석림을 마지막에 방문했다.
"얼마 전에 똑같은 질문을 한 자들이 있는데, 답은 그때와 같다. 여길 온 적이 없다."
"혹시 소문을 들은 건 없어?"
대망사를 끝으로 태산 주변의 요괴 영지는 모두 돌아본 셈이다. 여기에서 범위를 더 넓히는 건 풍백에게도 무리다.
자리를 오래 비울 수 없기에 대망사까지 모르면 이대로 돌아가야 한다.
오작을 못 죽인 게 속에 응어리로 남을 것 같고, 오작이 벽력문으로 돌아가서 자신이 뇌공의 이름을 캐물은 걸 말할까 봐 겁나기도 했다. 그래서 처음 보는 요괴한테 매달릴 정도로 절박했다.
"다신 귀찮게 안 한다고 약속하면 아는 바를 말해주지."
"그래. 암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대망사는 비록 암유가 뭔지 모르지만, 말투에서 오는 묵직한 느낌에 만족했다.
"일전에 찾아온 자들이 내 영지를 떠난 후 나누는 대화를 들었다. 마지막으로 찾아갈 곳은 혈편복의 영지라고 하더구나."
풍백은 머리에 얼음물을 부은 느낌을 받았다.
'놈들은 혈편복의 영지를 뚫고 왔다고 했다. 당연히 거길 제일 먼저 떠올렸어야 하는데.'
그러나 곧 걱정으로 이마가 찌푸려졌다. 혈편복이라면 밖에서 싸워도 풍백이 이기기 힘든 대단한 요괴다.
"내가 아는 건 다 얘기했으니 다신 내 영지로 오지 말아라."
대망사는 탈피의 중요한 시기에 있다. 탈피하는 과정에 힘을 소모하여 크게 약해지기에 찾는 손님이 반갑지 않았다.
"그래. 약속은 꼭 지키겠다."
흑석림을 떠난 풍백은 머리가 복잡했다. 오작과 치우가 혈편복을 죽이고 영지를 떠난 거든 혈편복과 잘 아는 사이든 모두 문제가 된다.
'아니다. 혈편복을 죽일 정도의 실력은 절대 아니었어. 최악으론 혈편복까지 셋을 상대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거기에 둘이 없다고 해도 혈편복과 한바탕 드잡이해야 할 가능성이 크고.'
오작과 치우는 진짜 혈편복의 영지에 숨었다. 치우가 은신술로 오작과 둔각까지 숨겨서 요괴들 영지로 움직여 돌아간 것이다.
"며칠 안에 풍백이 찾아오지 않으면 돌아갔다고 여겨도 될 것 같다."
태산노도와 풍운십삼기는 오작과 치우의 행방을 찾는 데 한 달 좀 더 걸렸다. 풍백이라면 태산노도보다는 빠르면 빨랐지 느리진 않을 것 같았다.
"여기에서 못 찾으면 북부의 땅으로 가지 않을까?"
치우는 풍백이 이제쯤이면 자신들의 정체를 알았을 거라고 여겼다. 오작의 거짓말에 속아 여전히 둘을 벽력문의 제자로 생각한다는 사실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일단 너까지 결승법을 익혀내면 우린 출발할 수 있어. 따라잡히더라도 결승법 한 번 더 쓰면 되니까."
풍백이 힘으로 결승법을 강제로 푸는 바람에 오작은 한동안 결승법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며칠 전에 다행히도 회복했지만, 다시 풍백을 만난다면 도망칠 자신이 없다. 오작이 결승법을 더 높은 경지로 익혔어도 풍백 역시 한 번 상대한 경험이 있어서 쉽게 풀어낼 수 있다.
오작보다 법력이 몇 배 많은 치우가 펼친다면 풍백을 더 오래 그리고 확실하게 잡아둘 것이다. 게다가 풍백의 추적을 피해 요괴 영지로 다닐 때, 치우가 결승법으로 묶고 오작이 오뢰굉으로 공격하면 요괴를 쉽게 처리할 수 있다. 괜히 은신술을 펼치고 달팽이처럼 느리게 움직일 필요가 없다.
오작은 법력이 부족하여 결승법과 오뢰굉을 연이어 펼칠 수준이 되지 않는다. 그게 아니면 굳이 혈편복의 영지로 돌아오지 않고 북부로 도망갔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 어려운걸."
결승법은 수백 년 전에 수인씨가 만든 법술이다. 기존의 법술과도 궤를 달리하고, 현재의 법술과도 다른 부분이 많다.
오작은 타고난 총명과 어려운 환경에서 멸천칠절공과 혼원벽력수를 익히려 했던 경험으로 말미암아 무난히 성공했지만, 아직은 타고난 재능뿐인 치우한텐 무리였다.
정작 익히면 오작보다 더 강한 위력으로 펼칠 수 있지만, 여태껏 결승법을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때, 음산한 소리가 치우 귓가에 울렸다. 귀종술로 영지 곳곳에 풀어 놓은 귀신들이었다.
"형, 풍백이 찾아왔어."
"계획대로 하자."
혈편복이 죽은 지 꽤 시일이 지났기에 영지 안에서 방향을 헷갈리는 일은 없다. 그리고 혈편복의 소굴 역시 출구가 고정되었다. 오작과 치우는 출구 근처에서 풍백이 오기를 기다렸다.
보름 전에 태산에서 봤던 그 모습 그대로의 풍백이 오작과 치우를 보며 흉악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치우나 오작은 풍백의 기세에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결승법."
미리 주문을 외워둔 덕분에 오작은 풍백을 발견하자마자 결승법을 펼쳤다. 풍백이 풍도술風跳術로 허공을 연속 세 번 도약하며 밧줄을 피하려고 했지만, 눈이 아닌 감각으로 풍백의 기운을 느끼는 오작의 결승법을 벗어나지 못했다.
"또 도망치려고? 너희가 어딜 갈 수 있을 것 같으냐. 차라리 날 풀어주고 순순히 항복해라. 그럼 내가 자비를 베풀어 살려줄지도 모른다."
"꿈이나 깨."
치우는 혀를 쑥 내밀어 풍백을 골려준 후 오작 뒤를 따라 혈편복의 진정한 영지인 동굴로 들어갔다. 안에는 이미 잘 싸놓은 짐을 등에 멘 둔각이 대기하고 있었다.
오작과 치우는 북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빨리 벗어나고 싶지만, 걸음걸이가 빠르면 계속 동굴 안에서만 움직인다. 적당히 느려야 영역의 북부로 이동된다.
그때 바위가 쪼개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오작은 자신의 결승법이 묶인 걸 느꼈다. 지난번보다 훨씬 빠르게 풍백이 오작의 결승법을 파훼했다.
"탁목조啄木鳥 점화點火."
탁목조는 수인씨의 법보다. 태산노도의 시체를 수습하면서 결승법 주문이 적힌 책과 법보 탁목조가 나왔다.
탁목조는 부리로 나무를 두드려 불을 내는 법보로, 부싯돌이 집집이 있는 요새엔 정말 쓸모가 없다. 탁목조로 피운 불은 그냥 불과 똑같아서 굳이 법력을 소모하면서까지 사용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오작은 탁목조를 잘 이용했다. 풍백이 결승법을 풀자마자 탁목조에게 미리 쌓아둔 장작에 불을 붙이도록 했다. 장작더미에 생나무와 물에 젖힌 잎들이 많이 섞여서 불이 붙자마자 짙은 연기를 가득 뿜어냈다.
설령 결승법이 빨리 풀리더라도 혈편복의 동굴을 이용해 추격을 지연시키려는 오작의 계책이었다.
탁목조가 열심히 불을 피운 덕분에 매캐한 연기가 오작과 치우를 곧 쫓아왔다. 치우와 오작은 숨을 참으며 계속 천천히 걸었다.
풍백한테 따라잡히는 게 아닌지 조금씩 걱정될 때, 공기가 바뀌고 주변 풍경도 바뀌었다.
"저기로 가자. 요괴가 힘이 약해서 우리 협박이 먹힐 거야."
풍백의 추적을 피하려면 어떻게든 요괴 영지에서 영지로 통과해야 한다. 영지와 영지 사이는 은신술로 느리게 움직여야 하고.
"하하하."
그때, 놀랍게도 가장 듣기 싫은 풍백의 웃음소리가 귀를 울렸다.
"당했구나."
풍백의 얼굴을 확인한 오작은 바로 영문을 알아차렸다. 아까 멀쩡한 얼굴의 풍백은 분신술로 만든 가짜였다. 지금 뻘건 눈에 흉측한 표정을 지은 저 풍백이 진짜였다.
그리고 기세가 태산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흉흉했다. 아까 풍백은 태산에서 봤던 것과 한 치의 차이도 없었는데, 저 풍백은 비슷하게 생긴 쌍둥이가 아닌지 의심할 정도로 매우 달랐다.
"누의가 감히 태산을 흔들려고."
오작의 빛나는 재능을 질투한 풍백은 자신을 태산으로 칭하고 오작과 치우를 누의에 비교했다.
"혈편복 동굴의 비밀을 알고 계셨군요. 그런데 우리가 북쪽으로 올 건 어찌 아셨습니까?"
아까 결승법을 해결한 건 분명히 분신 폭발술이다. 그러니 풍백은 당분간 분신술을 펼칠 수 없다. 미리 분신을 여러 개 만들어 여러 방향에 두었다고 쳐도, 결승법에 걸린 분신이 폭발할 때 다른 분신들도 사라졌다.
그러니 미리 이쪽으로 올 걸 알고 여기서 대기했다는 뜻이다.
"너희랑 함께 온 병사를 다그쳤지. 그놈은 이미 내가 죽여서 멸구 했다. 너희가 손 안 더럽히게 도와줬으니 아주 고맙지?"
풍백도 사실 그냥 도박이었다. 만약 오작과 치우가 북부로 건너가는 데 집착하지 않고 남쪽이나 서쪽으로 도주했다면 풍백도 추격 대신 숨을 곳을 고민했을 것이다.
풍백이 오작을 여전히 벽력문 문도로 알고 혼자 힘으로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몰랐기에 오판했다. 청제가 더 많은 수하를 보내기 전에 빨리 벗어나려고 다급하다 보니 북부만 염두에 뒀다. 풍백이 혼자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오작의 기지와 둘의 재주로 도망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멍청한 놈. 풍백 손에서 벗어나는 것만 생각하자 해놓고 이후까지 고민했구나.'
오작이 풍백만 생각했다면 뻔한 북쪽 대신 다른 방향을 선택했을 거다. 그러나 구망을 죽이려 했고 구려국 왕족인 치우를 꼭 죽여야 하는 청제의 존재 때문에 머리가 복잡해지며 그릇된 결정을 했다.
- 안돼?
오작은 몰래 손으로 물었다.
- 그건 안 되는데 다른 방법이 있어.
치우의 말에 오작은 작은 위안을 얻었다. 논리적인 사고로 안 풀릴 때 번뜩이는 기지로 나서는 치우가 정말 고마웠다.
- 약속. 내게 보상해 줘.
치우의 말을 미처 이해하지 못했지만, 오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 좋아.
"야, 풍백. 아까 무슨 누의가 어쩌고 저쩌고? 누가 태산이고 누가 누의인지 내가 보여줄게."
치우는 앞으로 나서며 손을 품에 넣었다. 풍백은 안 그래도 오작과 치우가 어떤 재주를 품었는지 몰라 신중하게 접근하던 차였다. 그래서 치우가 자신 있게 나서자 손을 소매에 넣고 상대 법술에 대처할 부적 혹은 법보를 꺼낼 준비를 마쳤다.
먼저 때린 놈이 이득을 보는 무공과 달리 법술은 실력 차이가 현저하지 않으면 법력 다툼으로 가는 일이 종종 있다. 상대의 법술을 먼저 보고 적은 법력으로 대응하는 게 확실한 승리를 보장하는 전투 방식이기에 술사들은 선수에 집착하지 않는다.
말로 자극하거나 기세로 상대를 압박하여 먼저 법술을 펼치게 하는 전투법이 요즘 정석이다.
"귀종술, 무한법귀無限法鬼."
무한귀는 대력귀나 영리귀처럼 쓸모가 명확하지 않다. 대신 누굴 소환할지 고민될 때 부르기 가장 좋은, 모든 분야에서 최고는 아니어도 어떻게든 해내는 신통방통한 귀신이다.
대력귀는 만져질 것 같은 선명한 모습이고, 영리귀는 흐릿하게나마 인간의 모습을 했다. 그러나 무한귀는 회색 연기가 뭉친 형상이었다.
"무한귀야, 이거 줄 테니 저놈을 잡아둬. 죽일 수 있으면 더 좋고."
치우는 품에서 혈편복의 내단을 꺼냈다. 비록 혈편복은 고작 천삼백 년을 수련했지만, 내단에 담긴 힘은 만 년 이상 수련한 귀령성모의 것에 비해 아주 손색 하지는 않았다. 최소 절반은 되었다.
"죽이는 건 무리다. 되도록 오래 잡아둘게. 그리고 저쪽으로 가면 살길이 있다."
연기가 가리킨 곳은 대망사의 흑석림이었다.
- 작가의말
누의난감악 - 버러지가 감히.
누의에서 누는 땅강아지이고 의는 개미입니다. 합쳐서 하찮은 벌레라는 의미죠. 악은 큰 산을 말합니다. 작고 하찮은 벌레가 감히 산을 흔들려고 하냐는 훈계입니다.
오작이 머리를 써서 풍백을 떨칠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풍백 역시 분신술을 이용하여 오작의 함정을 피했습니다. 풍백이 운이 좋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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