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과 여명(2부 시작)
“······.”
무음(無音)의 교향곡이 하늘을 울리고 끝없는 침묵이 대지를 가른다. 혼란에 빠진 소년의 귓가에 들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보이는 것은 방금 전까지 살아서 숨을 쉬던 인간의 육체에 깃들어 있던, 사방에 아무렇게나 번진 진홍빛의 혈액뿐이다. 대지가 미처 소화하지 못한 그 시뻘건 색은 소년의 눈에 침투하여 온 세상을 붉게 만드는 필터가 되었다.
아직 어린, 고작 아홉 살인 소년은 풀린 눈으로 그의 세상을 직시했다.
꿈이다. 꿈이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잔혹한 현실이 그의 눈앞에 펼쳐져 있음을 부정할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른쪽 눈 옆에 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상흔에서 피가 흘러나와 턱선을 타고 뚝뚝 흘러내렸다.
참혹한 광경 앞에서도 소년은 결코 무릎을 꿇지 않았다. 어리지만 굳건했다.
더 이상 울지도 않았다. 울 만큼 울었기 때문에 나올 눈물도 이제 없다.
온몸에 뒤집어써서 서서히 말라붙어가는 피 가운데 빛나는 예리한 눈동자만이 서늘하게 빛나고 있었다.
소년의 옆에는 백발의 노인이 있었다. 주름이 가득한 얼굴에는 슬픔이 가득하여, 애처로운 심상을 대변하고 있었다.
노인의 표정은 소년과 상반되어 있었다. 의지로 불타오르는 소년과 달리, 노인의 눈에는 희망이라는 등불이 꺼져 있었던 것이다.
아무 감정도 없는, 고저 없는 목소리로 소년이 말했다.
“할아버지.”
한참을 침묵하던 노인이 답했다.
“······그래.”
“힘이 필요해요.”
노인은 나올 답을 뻔히 알면서도 물었다.
“무엇을 하기 위해서냐?”
“그 사람을 죽여 버릴 거예요. 평생 동안 속죄하게 만들면서, 그러면서 천천히 죽여 버릴 거예요.”
“······.”
어린 소년의 입에서 나오긴 어려운 말이었다. 그러나 노인은 소년을 나무라지 않았다.
노인의 눈은 슬픔에 젖어 있었고, 소년의 눈은 복수로 불타고 있었다.
“그러려면 힘이 필요해요. 할아버지.”
“······.”
“제게 힘을 주세요.”
쌀쌀한 가을의 정취 속에서 피로 물든 폐허가 된 고려족 마을. 그곳에서 한 인물이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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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말
1부까지는 설정집에 가까웠습니다.
이제 좀 본편으로 넘어가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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