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 변경(7)
안도혁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럼 당연히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이러고 있는 것이고.”
“······저 요정, 남잔데요?”
안도혁은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보면 저도 압니다만······?”
“남자 요정을 어디에 쓰려구요.”
요정이 노예로 나온다면, 그 값은 남성보다 여성이 10배는 더 높다.
간단하다. 남자들은 늙지 않고 아름다운 요정 여성을 원하기 때문이다.
루나는 이러한 생리를 알고 있었다. 남자가 요정 노예를 원하는 이유는 뻔하다.
물론 안도혁은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어디다 쓰다니, 그것까지 밝혀야 합니까?”
“요정을 사려는 이유는 뻔하잖아요!”
“아니, 대체 무슨 소립니까?”
순간 루나의 표정이 묘해졌다.
“어머, 설마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고 맛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뭔 소리야, 이 여자야!”
머리가 지끈거린다, 터무니없는 오해에 휩싸인 기분이 든 안도혁은 이 대화를 최대한 빨리 끝내고 싶어졌다.
“아가씨, 내 비밀 알죠?”
“······그거요?”
협박거리로 쓰기엔 너무 가슴 아픈 비밀이다.
“그걸 치료하는데 요정이 필요합니다.”
“······요정이 약 재료에요? 고아 먹는 거에요?”
이야기를 듣던 에스턴이 펄쩍 뛰었다.
‘노예 신세도 모자라서?’
다행히도 그가 안도혁의 저녁 식탁 스프 재료로 올라갈 일은 없었다.
“말하기는 조금 애매하지만, 여하튼 그런 건 아닙니다.”
에스턴은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말씀드렸다시피 무립니다.”
완고한 이 철벽을 허물 방법이 도저히 생각나지 않았다.
포기해야 하나를 고민할 무렵, 루나의 뇌리에 아주 간단하고 명확한 해결책이 떠올랐다.
‘인간이라면······.’
상대가 인간의 탈을 쓰고 있는 이상, 이 이상의 방법은 없다.
루나는 손뼉을 짝 쳤다.
“절 데려가 주시면, 저 요정을 공짜로 드릴게요!”
“······예?”
“거기다, 방금 쓴 보증금도 전부 돌려드릴게요!”
“······.”
“여행이 끝나면 수고비까지!”
“······!”
합치면 어마어마한 액수다. 안도혁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돈에 초연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인간 세상에서 돈은 곧 생활 능력이자 권력이자 신(神)이니까. 초인이라고 해도 다를 것은 없다.
서석진이 끼어들었다.
“우리 굳이 그 돈 필요하냐?”
“조용히 해. 이 현실감 없는 놈아.”
사람의 앞일에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모른다. 문제가 생겼을 때, 돈이 적어서 서러울 일은 있어도 돈이 많아서 배 터질 일은 없다.
“당신, 대체 얼마나 부자인 겁니까?”
옆에서 로우가가 으스댔다.
“하프렌 공화국의 단 두 명뿐인 집정관의 따님이시오. 그 정도 금액은 강에서 물 한 바가지 퍼내는 것과 다를 것도 없소이다.”
과장이 섞여 있긴 하지만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안도혁은 담배를 물었다.
아가씨 앞에서 어디 담배를 무냐고 말하려던 로우가는, 문득 상대가 어느 정도 무례해도 세상이 그것을 용납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덤비는 것도 상대를 봐 가면서 해야 한다. 누구든 목숨은 하나니까.
한참이나 고심하던 안도혁은 장막 안이 연기로 꽉 차갈 무렵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당분간 잘 부탁합니다.”
좌중의 반응은 시시각각이었다.
놀란 눈으로 뛸 듯이 기뻐하는 루나.
세상이 무너진 표정이 된 로우가.
입을 쩍 벌리며 다시 붕어가 된 서석진.
“꺄악! 해냈어!”
“아가씨,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야, 너 미쳤냐?”
안도혁은 여유 있게 연기를 머금었다.
“여자 한 명 데리고 다닌다고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고······.”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하프렌 공화국의 귀족에게 악감정이 없다는 데 있었다.
그 무렵, 에스턴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주인에게 팔려가면 탈출할 기회가 다시 생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악착같이 버텨왔다.
이번 주인에게 도망은 절대 무리였다. 하늘이 뒤집혀도 불가능한 일이다.
‘노예 신세냐, 남은 평생······?’
그 때, 솥뚜껑 같은 손이 내밀어졌다. 손은 에스턴의 목으로 다가오더니, 무시무시한 힘으로 그의 목을 구속하던 족쇄를 우그러뜨려 박살냈다.
갑자기 허전해진 목에 익숙해지지 않아 휘청하는 에스턴의 귀에 안도혁의 목소리가 꽂혔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
노예에게 저런 말을 쓰는 주인 따위는 세상 천지 어디에도 없다. 잠시 이 인간이 어디 아픈가 생각이 들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당분간 우리를 위해 일을 좀 도와주십시오. 그 후엔 자유롭게 풀어드리겠습니다.”
고려족 마을에도 노예는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을 사고 파는 개념이 아니라, 죄를 범한 사람에게 마을 전체가 부과하는 공노비(公奴婢) 느낌의 인력에 가까웠다.
사람이 사람을 매매하는 행태는, 아무래도 이 두 고려족 마을 인간에게는 그다지 익숙한 행위가 아니다.
서석진이 말했다.
“그래요. 우린 노예 같은 거 필요 없어. 나도 두 팔, 두 다리 다 있다고요.”
에스턴은 눈을 깜빡였다. 지금 들은 것이 현실일까.
노예로 살아온 지 수년이 지났다. 자유를 항상 갈망했지만, 갈망에 그쳤다.
난데없이 찾아온 자유에 에스턴은 말했다.
“얼마나······도우면 되겠소?”
“일이 잘 풀리면 한 달? 늦으면 반년 정도는 걸릴까. 빠르면 빠를수록 좋기는 한데.”
장생종인 요정에게 그 정도 시간은 찰나에 불과하다. 에스턴은 안도혁을 얼싸안을 뻔했다.
‘그 후엔 진짜 자유구나!’
저 정도 되는 초인이 굳이 요정 하나에게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다,
감격한 에스턴의 눈에서 눈물이 콸콸 쏟아졌다.
“아니, 요즘은 왜 보는 사람마다 우는데?”
오랜 세월 노예 생활을 한 사람의 심정을 안도혁이 알 리는 없었다.
루나는 로우가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아가씨는 지금 뭔가에 홀리신 겁니다.”
“저도 이제 스물이에요. 알아서 판단할 나이죠.”
“아닙니다. 스물은 어린 나이에요.”
“주인님께 제가 맞아 죽습니다. 절 생각해서라도 한 번만 다시 생각해 주십시오.”
“아버지께서 초인 기사를 홀대하실 리가 있겠어요?”
“그, 그건 그렇지만. 아가씨의 앞길은 이게 아니지 않습니까.”
“제 앞길이 뭔데요?”
느닷없이 들어온 질문에 로우가의 말문이 막혔다.
루나는 살짝 노기가 서린 말투였다.
“화려한 옷을 입고, 화장을 덕지덕지 한 채 사교계에 데뷔해서 춤이라도 추다가, 괜찮은 남자를 하나 꼬셔서 결혼한 후에, 그 남자의 아이를 낳고 사는 생활?”
“······.”
자유를 동경하는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있다면 그것은 평생 자유롭게 살아와서 자유를 숨 쉬듯 만끽하는 사람이다.
“그건 아가씨가 지금까지 풍족하게 살아오셔서 모르시는 겁니다. 세상이 얼마나 위험한데요. 집정관의 딸이라는 건 공화국 안에서뿐이지, 세상에 던져지면 어떤 풍파가 다가올지 모르는 일입니다.”
“새장 속의 새로 살 거면, 날개는 왜 달고 태어났나요?”
“······.”
“날아오르는 게 새애게는 가장 행복한 일이 아닐까요?”
그렇겠지. 이 애송이야.
로우가는 말을 삼켰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만약 식사 걱정이 없고, 어디든 편안하게 지낼 수 있으며, 천적의 위협이 없는 삶이라면 말이다.
집고양이는 야생 고양이를 동경할 것이다. 자신이 행복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 따위는 전혀 모른 채.
울타리 안의 애완동물은 밖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른다.
‘길어봤자 반년이겠지. 그 후엔 집에 돌아오고 싶다고 울 것이 틀림없어.’
그렇다면 지금 할 일은 하나다.
“그렇다면 저도 동행하겠습니다. 아가씨의 안전을 책임······.”
“안 돼!”
안도혁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한 명도 많은데, 짐을 더 늘리자고? 그냥 둘 다 집으로 돌아가!”
“아가씨는 시중이 필요하오!”
“아, 그러면 시중할 사람 데리고 따로 다니던가!”
이쪽도 설득이 안 된다. 로우가는 남정네 셋 사이에 미모의 아가씨를 던져 놓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었다.
‘덩치와는 다르게 생각보다 이성적인 사람인 것 같긴 하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법이다.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파티장이 저렇게 말하는데 별 수 없다. 루나는 싱긋 웃었다.
“절 보내 주세요. 로우가 경.”
“······하아.”
“잘 해낼 수 있어요. 저, 나름 실력 좋잖아요.”
‘맞긴 하지만······.’
루나는 다방면으로 재능이 넘친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귀족가의 여식치고라는 수식어가 붙었을 때로 한정한다.
‘사실 내가 붙는다고 해서 아가씨를 지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안 좋은 상상을 안 하는 게 그나마 지금의 최선이다.
“알겠습니다. 아가씨께서 무사히 돌아오시길 기원하겠습니다.”
“후후.”
숨 쉬는 공기가 달라진 느낌이다. 난생 처음 얻은 자유에, 루나는 구름 위로 떠오르는 기분에 휩싸였다.
천막 밖으로 나온 안도혁이 말했다.
“그러면 당장 오늘 점심 즈음에 출발하는 걸로 하고, 석진아. 저 사람 좀 씻기고 와라.
서석진은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표정을 지었다.
”내가? 다 큰 남자를?“
”······씻는 곳을 알려 주라는 소리다. 저 꼴로는 다시 노예로 잡혀 들어가게 생겼잖아. 나는 입힐 옷이나 구해봐야겠어.“
옆에서 루나가 매달려왔다.
”나는? 나는요? 나는 뭘 하면 될까요?“
”······당신은 당신 짐부터 싸는 게 우선 아닙니까.“
”아, 그렇지! 짐 싸서 어디로 가면 될까요?“
”지금 머무는 곳이······.“
얼마 지나지 않아 일행은 각자의 할 일을 위해 흩어졌다. 혼자 남은 안도혁은 폐부에 담배 연기를 깊이 흡입했다.
‘어쩌다가 네 명이 돼 버렸군.’
귀찮긴 하지만, 어차피 사소한 일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다.
아직 이른 아침의 공기가 차갑게 몸을 적셨다.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 태양의 하품을 바라보며, 안도혁은 주먹을 굳게 쥐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짧지 않은 이 여정도 곧 끝이 난다.
저 멀리 푸르른 들판이 보인다. 안도혁은 풍경을 잠시 바라보다, 자신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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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말
3장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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