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3)
제국은 난리가 났다.
새로이 탄생한 신화적 존재, 정천 경이 원대한 뜻을 선포한 것이다.
- 북방을 정벌하겠다!
정확히는 안도혁의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황자가 공고를 써붙인 것이지만.
거기까지는 대단한 반향이 없었다. 타란토스든 다프텐시아든, 북쪽을 정벌하겠다고 천명한 황제는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루어진 적은 전혀 없지만.
문제는 그 다음 선언이었다.
- 제국 내의 수인족들을 모두 모아 원정에 나서겠다.
인간의 도움 따윈 없이, 정천 경과 그의 동료들 및 수인족만으로 북쪽의 위협을 제거하겠다는 선포를 내렸던 것이다.
제국 내에서 수인족은 경원시되는 존재, 길가에 보이면 재수 없다고 린치를 가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물론 수인족이 마음 먹고 힘을 쓴다면 일반인에게 당할 리는 없다. 그러나 수인족이 인간에 대해 폭력을 가하는 경우, 초인을 동원한 군사 혹은 잘 훈련된 용병들이 그를 잡기 위해 나선다. 때문에 수인족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저 꾹 참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수인족들을 데리고 원정에 나선다는 것이다. 이는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정천 경께서 왜 그러시지?"
"저 망할 짐승 놈들에게 총알받이 역할이라도 시키려고 하시나?"
사람들은 수근댔으나, 수도에는 5백 명에 가까운 수인족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자신들의 처우 개선이 이 원정에 달렸다는 것을 알기에, 목숨을 불사하고 달려왔던 것이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지는 않았다.
"털복숭이들도 애국심이라는 것이 있나?"
"양심 비슷한 거라도 있나 보지."
목숨 걸고 싸우러 나가는 수인족들에게 비웃음과 경멸 이외의 시선은 돌아오지 않았다.
수인족을 모집할 때 레틴이 내린 칙령 중 하나가 있다.
- 전장에 나가기 위해 수도에 모인 수인족에게 돌을 던지는 등 위법적인 행위를 가하는 자에겐 엄벌을 내리겠다.
바꿔 말하면, 수도에 모이지 않은 수인족에게는 이러한 보호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인간적인 차별 대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레틴은 칙령을 통해 말하고 있었다.
자신의 불평등한 처우를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을 보여 달라고. 너희 역시 시민의 권리를 가지고 있으니, 시민의 의무 또한 져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에 따라 수많은 수인족이 수도로 모였지만, 수도 시민들은 그 모습에 회의적이었다.
"이런다고 달라지겠나?"
"털복숭이 놈들 따위가 설치는 세상이라니."
"정천 경께선 왜 저런 놈들을 데리고 전장에 가시려는 걸까?"
물론 황제나 다름없는 현 황자의 말을 어길 만큼 간이 큰 인간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레틴보다는 안도혁을 보고 조용히 숙이는 것이다.
귀족이 아닌 평범한 시민들도 알고 있었다. 현 차기 황제인 아레스틴 그라티아 타란토스는 마치 폭군이라도 된 것처럼 나라의 대소사를 자기 마음대로 처리하고 있다는 점 정도는 말이다.
모를 수가 없었다. 소작농도 지주 등이 불평하는 소리 정도는 귀에 들어왔으니까.
"이번에도 한 사람의 목이 날아갔군. 다음은 누가 될까."
"무서워서 잠을 잘 수가 없구만!"
후대에 레틴이 어떤 존재로 기록될지는 모를 일이나, 적어도 그 방향이 긍정적이지 않다는 점은 모두가 동의하고 있었다. 레틴은 그만큼 무자비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그 뒤에 있는, 황자의 의형제이자 대륙 최강의 무력을 가진 사람은 경외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정천 경께서 나라를 지켜 주시니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어."
"그 솎아내기에서 군사들을 한 명도 잃지 않으시지 않았는가."
전시 상황이면 생필품의 가격은 폭등한다. 만고불변의 진리 같은 일이지만, 안도혁이 시초의 의식을 마치고 복귀한 후로 타란토스의 물가는 상당 부분 안정에 들어갔다.
안도혁이 전선에 계속 머물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그의 이름 하나만으로 나라는 안정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신화 속 영웅이 현실에 강림한 것 같은 모습이다. 이를 동경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이런 추세이니, 수인족에 대한 반감에도 불구하고 안도혁을 칭송하는 목소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따라서 그의 휘하로 들어오는 수인족을 건드리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쾅
"음식 나왔수다."
직원의 불친절한 말투와 함께 맥주와 음식이 테이블 위에 떨어지듯 놓였다. 인간을 상대로 한 것이라면 싸우자는 거 아니냐는 수준의 접객이지만, 수인족인 모건은 이 상황을 상당히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수도에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 있다니.'
경멸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사람은 당연히 있다.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바닥에 가래침을 뱉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대놓고 시비를 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새삼스러운 일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모건은 식당에서 주문을 하기는 커녕, 사람들의 눈에 보이자마자 돌과 썩은 계란을 맞는 게 당연했다. 그는 이 타란토스 제국에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모건은 고기 볶음을 입 안에 털어넣고 우물우물 씹었다. 맛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정천 경이 정말 위대한 분이긴 하구나.'
고작해야 한 명의 인간. 그러나 그 위명은 전 대륙을 질타하고, 그 힘은 위명이 무색할 정도로 강하다. 모건은 문득 찾아드는 경외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땐 정말 대단했지.'
오백의 수인족 앞에서 호령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군이었다. 이 대륙의 어떤 생명이라도 그와 같은 존재감을 발휘할 수는 없으리라.
그렇게 음식을 먹던 중, 맞은편에 누군가가 앉았다.
모건은 화들짝 놀랐다.
'자리가 없는 건가? 아니면 시비를 걸러?'
모건이 앉은 테이블은 조금 넓었다. 여러 사람이 앉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자리였으나, 수인족과 같은 테이블을 쓰고 싶어 하는 인간은 아무도 없었다.
모건의 기가 죽은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는 내려깔았던 시선을 천천히 위로 올렸다.
이상하게 가게 안이 조용하다.
'대체 무슨 일······헉.'
2미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신장. 성인 남성의 허리만큼이나 굵은 팔뚝. 어딘가 이질적인 얼굴의 모양. 그리고 트레이드마크인, 모근 한 점도 없는 반질반질한 머리.
이 제국에서 황제보다 더 유명한 사람이 모건의 앞에 앉아 있었다.
안도혁은 손을 들어 주문했다.
"여기 고기 위주로 20인분 정도 가져다 주시고, 맥주 한 잔 부탁합니다."
점원은 안도혁의 말에 바들바들 떨며 허리를 다섯 번 정도 숙였다. 얼마나 동작이 빨랐는지, 마치 용수철이 튕겨나오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예, 예엣! 당장 가져오겠습니다!"
"너무 서두르진 마십시오."
안도혁은 그리 깍듯한 성격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의 지위가 높다고 해서 남을 함부로 대하는 성격의 인물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렇기에 테이블에 머리를 박듯 하며 발발 떨고 있는 이 늑대 수인족의 모습에 난감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경어를 쓸까 평대를 할까 잠시간 고민하던 안도혁이 입을 열었다.
"식사를 들게. 그렇게 긴장할 필요는 없네."
"자, 장군님."
장군이라. 한 평생 들어보지 못한 단어에 안도혁은 상당히 어색함을 느꼈다.
"나나 자네나 어차피 배고파서 식당을 찾은 사람 아닌가. 내가 사람을 체하게 만들었다는 소문을 듣고 싶진 않으니 어서 식사를 들게나."
"가, 감사합니다."
모건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들어 식기를 잡았다. 그러나 그의 입은 음식을 씹는 둥 마는 둥 했다. 사실 입안에 뭐가 들어왔는지조차도 느낄 수 없었다.
그의 머릿속은 공황 상태였다.
'어째서, 어째서? 내가 무슨 큰 실수라도 해서 엄벌하시려고 찾아오셨나?'
자신은 하잘것없는 수인족 중 하나. 반면 상대는 이 제국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라고 봐도 손색이 없는 인간이다. 공식적인 지위는 딱히 없는 인물이지만.
음식을 준비중인 요리사 정도를 제외하면, 식당 안의 모든 시선이 그들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침을 삼키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했다.
"생각이 많은 모양이로군."
"그, 그렇지 않습니다!"
말을 내뱉은 모건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감히 정천 경의 말을 정면으로 부정하다니.
약간의 웅성거림이 식당 안을 채웠다.
"아무리 긴장했어도 그렇지······."
"쯧쯧."
모두들 안도혁의 노성이 곧 이곳을 뒤덮을 것이라 예상했다.
물론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걱정이 많겠지. 안 그런가? 전장은 얼마나 치열할지, 앞으로의 처우 개선이 어떻게 될 것인지, 무엇보다 눈앞에 있는 이 인간이 뭣 때문에 굳이 여기에 앉아서 사람을 괴롭히고 있는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긍정할 용기가 모건에게는 없었다.
마침 맥주가 나왔다. 마치 맹물처럼 그것을 한 모금에 들이킨 안도혁은 다시 맥주를 주문하며, 품에 있던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루나가 있으면 식사 자리에서 무슨 담배냐고 잔소리를 했겠지만, 이런 술집에서의 흡연은 어느 정도 허용되는 편이다. 안도혁도 이제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잽싸게 재떨이를 가져온 직원에게 감사 인사를 표한 안도혁이 말했다.
"하지만 자네의 생각과는 다르게, 난 그저 밥이 먹고 싶어서 식당에 온 것 뿐이라네. 마침 가장 가까운 곳이 여기였을 뿐이지. 이 테이블을 택한 것도 별반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자리가 넓기에 음식을 많이 놓을 수 있어서야."
그의 말을 증명하듯 산더미처럼 주문한 음식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안도혁은 천천히, 그러나 세 입이면 일반인의 한 끼 정도는 중분히 되겠다 싶은 양의 음식을 입에 넣고 우걱우걱 씹었다.
"우물, 그러니, 편하게 들게나. 정 편하지 않으면 내가 자리를 옮기고."
"그, 그러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편하게 먹겠습니다!"
협박으로 들렸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모건의 움직임은 조금 자연스러워졌다.
둘은 별 말 없이 음식을 먹었다.
산더미같은 음식이 사라지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적당히 배를 채운 안도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직까지 음식을 깨작대고 있는 모건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럼 식사 맛있게 하고. 나는 먼저 가 보겠네."
"아,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뭐가 감사하다는 걸까. 안도혁은 피식 웃었다.
"전장에선 그렇게 긴장하지 말게나. 적당한 위기 의식은 정신을 날카롭게 만들어주지만, 반대로 몸이 너무 뻣뻣하게 굳어 버리면 안 되니 말일세."
안도혁은 모건의 몫까지 식대를 지불하고 가게를 나왔다.
당연히도 안도혁이 아무 생각 없이 식당에 들어갔던 건 아니었다. 애초에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소문이 퍼지는 인간인데, 함부로 여기저기를 쏘다니는 귀찮음을 감수할 만큼 그는 신경이 둔하지 못했다.
레틴의 조언이 없었더라면 움직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형님께서 수인족들을 인간적으로 대한다는 소문이 퍼지면, 사람들도 조금씩 감화될 겁니다."
"그렇게 쉽게 말인가?"
"아직 형님은 본인의 영향력이 얼마나 커다란지 모르시는 모양입니다. 제 이름과 형님 성함 중, 국민들이 무엇을 더 잘 알고 있을까요?"
"······."
"사람들은 위대한 존재를 동경함과 동시에, 그의 행동을 조금이나마 따라하려는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 물론 처음부터 잘 되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도 인식을 박아넣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천 경께서 저러시는데, 우리도 따라야 하지 않겠냐는 의식 말입니다."
탐탁지는 않았지만, 안도혁은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수인족이 있는 식당 및 술집 등에 들러 그들과 함께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이 소식은 소문에 발이 달렸다는 옛 고사를 증명하듯 순식간에 퍼졌다. 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아 수도의 모든 주민들이 안도혁의 행보를 알게 되었다.
"정천 경께선 수인족들을 보통 사람과 똑같이 대우하신다는군."
"그 털복숭이 놈들을 말이야? 놀랄 노자로구만."
"힘뿐만 아니라 인성까지 좋은 분인 게지. 타란토스의 홍복이야."
불행히도 안도혁의 의도와는 달리, 수인족들을 인간처럼 대한다는 인식보다는 안도혁의 인성 칭찬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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