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점 사냥(3)
눈앞에 들이닥치는 생물 중, 거대하고 강력하지 않은 것이 없다. 도검 같은 이빨과 튼튼한 앞발, 육중한 꼬리. 어느 것이든 훌륭한 무기다. 적어도 외적으로만 봤을 때는 그러했다.
신장 10미터를 가볍게 넘는 용들이 고작 인간 하나를 상대하겠다고 몰려드는 광경은 실로 아이러니하기 그지없었으나, 그들 중 방심하는 자는 어느 하나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몰려드는 용족에 맞서 안도혁이 맨 처음 추진한 전술은 주먹질이 아니었다.
정면으로 맞붙기에 앞서, 그는 땅을 거세게 걷어찼다.
흙바닥이 거칠게 뒤집어지며 사방에 먼지가 쏟아졌다. 먼지의 폭풍이 일었다.
시야에서 상대를 놓쳤다. 그러나 용들은 당황치 않고 한 지점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멈춘 곳에는 천룡 하나가 목이 졸리고 있었다.
- 끄르륵.
"손속에 사정을 둘 여유는 없다. 죽어라."
뿌지직
천룡의 목이 뽑혀 나갔다. 용 하나를 가볍게 처리한 안도혁은 희생자의 몸을 발판 삼아, 다른 용에게 잽싸게 도약했다.
용은 불꽃을 뿜으려 했으나, 턱을 거칠게 후려치는 주먹에 맞아 불꽃 대신 이빨을 뿜으며 추락했다. 죽지는 않았지만, 한 번의 주먹질에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이후에도 안도혁은 계속 도약했다. 오로지 하늘, 하늘, 하늘로만!
그의 목표는 땅을 점거하는 지룡들이 아니었다. 철저하게 하늘에서 활공하는 천룡들에게만 집요하게 달려들었다.
무적에 가까운 행보를 보이고, 실제로도 물리적으로 무적이나 다름없는 안도혁이었지만 그에겐 분명한 단점이 있다. 그리고 안도혁은 자신의 단점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하늘을 날 수 없다.'
누가 듣는다면 그것도 단점이냐고 물을 만큼 어처구니없는 소리였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인간끼리 겨룬다면 모르되, 인외(人外)를 상대함에 있어 이것은 크나큰 단점으로 작용한다. 그것도 상대가 제공권을 가지고 있는 종류의 생물임에야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안도혁이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하늘에 있는 것들부터 모조리 치워 버린 후 땅을 공략한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렇게 다섯 명의 천룡을 땅으로 추락시킨 안도혁이었다. 이대로 계속 가면 승승장구하겠다 싶은 광경이었지만, 일이 그렇게까지 잘 풀리진 않았다.
우지직
'큭.'
수십 미터 창공에서 도약하던 안도혁의 어깨에 육중한 중량이 실렸다. 반사적으로 좌우상하를 둘러보았으나, 직접적으로 그에게 닿아 있는 물체 및 생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답은 명확하다.
'이능?'
초인이 가지고 있는 축복의 능력. 상식적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기현상을 자아내는 능력이다.
물론 초인만 쓸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안도혁은 머리가 안 돌아가지 않았다. 아르키피라나 셀리테라를 상대한 경험에서 용족도 이능의 활용이 가능하다는 건 이미 파악했다.
그럼에도 이 상황이 좋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었다.
'선공에서 승기를 잡지 못했다.'
적은 피해를 입힌 것은 아니지만 적의 전체 숫자에 비교하면 조족지혈이나 다름없는 수준. 수영장에 물 한 방울 떨어뜨린 것 같은 피해만을 입혔을 뿐이다.
제공권의 장악은 실패다. 그렇게 땅에 떨어진 그를 반기는 것은 수백의 지룡이 토해내는 용암의 파도였다.
촤아아악
지룡은 용암을 뿜는다. 뜨겁고 끈적끈적한 그 액체는 피용(避鎔)의 능력을 가진 자들을 제외한 모두에게 끔찍한 고통과 죽음을 안겨준다.
안도혁이 그것을 회피하는 방법은 단순했다.
- 크아악!
땅에 떨어져 있던 천룡 중 하나의 몸을 잡아 방패로 쓰며 안도혁은 용암을 헤치고 돌진했다. 또다시 용암에 살가죽이 타들어가는 일은 사양이었다.
지룡과 달리 천룡은 용암에 대한 저항력이 없다. 가죽과 살이 통째로 녹아내리는 '방패'를 내던진 안도혁은 지룡들에게 돌진했다.
용암을 내뿜던 용들의 고개가 얻어맞아 돌아갔다. 분명히 충분한 타격을 입히고 있는 모습이었으나, 안도혁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이놈들은 골치 아프다.'
마왕성에서 상대했을 때 대강 느꼈지만, 지룡의 골격은 생각 이상으로 단단하다. 강철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튼튼해, 안도혁이라도 어지간히 힘을 집중하지 않는다면 분쇄하기가 극히 어렵다.
이는 곧 한 번의 공격으로 치명상을 입히기 힘들다는 뜻이다. 혼자서 수백의 용족을 상대하는 안도혁의 입장에선 난감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수많은 이능과 발톱, 이빨, 꼬리가 몸을 스쳐 지나간다. 무서운 반사신경으로 공격을 모두 회피하고는 있었지만, 자잘한 상처 정도는 생길 수밖에 없었다.
'어렵군.'
한숨을 내쉴 새도 없었다. 그럴 힘이라도 아껴 몸을 날려야 한다.
덩치가 그보다 수십 배는 큰 놈들이 상대다. 수백의 인간이 고양이 한 마리를 상대하는 것과 진배없는 광경다. 따라서 다수 쪽의 공격은 어떻게든 조잡해지고 거칠어질 수밖에 없는 게 정상이나, 용들에게선 그런 면모가 보이지 않았다.
수사적이자 물리적 표현으로, 안도혁은 눈을 깜빡이는 것보다도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생물의 동체시력으로 잡아내기엔 무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족들은 안도혁의 위치를 정확하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노리고 있었다.
휘리릭
어디선가 날아온 강철의 파편이 안도혁의 목을 정확히 노렸다. 잽싸게 받아냈기에 상처는 입지 않았으나, 공격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콰르릉
방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에 벼락이 떨어졌다. 조금만 더 늦게 회피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는 생각해 볼 필요도 없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마치 이 많은 용족이 하나의 시야를 공유하는 듯이 움직였다. 어떤 방위로 어떻게 이동하든 마찬가지로, 심지어는 다른 용족을 방패로 삼고 움직임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러면 기존 계획이 틀어진다. 안도혁은 쉴 틈도 없이 도약하고, 때리고, 굴렀다.
가장 큰 문제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개인이 다수를 상대할 일은 거의 없고, 있다고 해도 절대 다수는 패배로 그 끝을 장식하는 것이 보통이다.
10의 전투력을 가진 사람 한 명과 1의 전투력을 가진 사람 열 명이 싸우면 보통 동수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보통은 열 명 쪽이 승리를 가져가며 운이 좋아 봐야 동수를 이룬다.
전투력의 고하 문제가 아니다. 이유는 소수 쪽에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명을 상대하는 데에 시간을 쓴다면, 그 동안 다른 자들이 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총을 쏘든, 칼로 베든, 하다 못해 발로 차든 무언가 행동을 취하기 마련이다.
다른 곳에 시간을 쏟는 상태인 소수는 그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필연적으로 공격을 허용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곧 치명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안도혁에게 있어서도 이 법칙은 예외가 아니었다. 지룡 하나의 턱을 막 돌려 버리는 순간, 다른 용의 꼬리가 그를 거칠게 후려쳤다.
뻐억
후두부를 뒤흔드는 강렬한 충격에 안도혁은 바닥에 거칠게 엎어졌으나,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없었다.
반 초도 되지 않아 안도혁의 몸은 용암에 뒤덮였다. 정확히는 그가 반 초 전까지 엎어져 있던 자리에.
'젠장. 쉴 시간도 없군!'
안도혁은 인생에서 가장 다급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머리털 나고······아니, 머리털 빠지고 이런 급박한 상황에 처해 본 적은 없었다. 말 그대로 숨 돌릴 틈도 없었으니까.
이런 상황이니 그가 적에게 큰 타격을 주는 것은 상당히 어려웠다. 몸 하나 건사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으니.
전투가 시작된지 약 두 시간이 흘렀다.
지상에는 오십이 넘는 용족의 시체가 쌓였다. 개인이 이룩한 성과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큰 업적이었지만, 여전히 전체 적의 숫자에 비교하면 의미 없을 만큼 적다. 아직도 하늘은 천룡으로 새까맣게 뒤덮여 있고, 지상은 지룡 때문에 발 디딜 자리도 없다.
반면 안도혁의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온몸이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이전까지는 그 피가 자신의 혈액인 적이 거의 없었지만, 오늘만큼은 다르다.
후두둑
급하게 공격을 회피하는 모습 뒤로 혈액이 격하게 쏟아져 내렸다.
이마, 팔, 다리, 복부, 등을 가리지 않고 전신이 상처투성이였다. 치명상이라 표현할 만한 상처가 없는 게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처참한 모습이었다.
붕대라도 감을 수 있으면 조금 낫겠지만, 불행히도 그에겐 지혈할 시간조차 없었다.
조금씩 몸이 차가워지는 게 느껴졌다.
'아직은 괜찮지만, 조금만 더 있으면 모른다.'
인간은 대략 체내 혈액의 30퍼센트 정도가 소실되면 과다출혈로 사망한다. 초인이라면 조금은 더 버티며, 그 수준도 넘어간 안도혁이라면 그것보다 더 움직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결국 죽음은 피할 수 없다.
아니, 과다출혈까지는 어떻게든 될지도 모른다. 문제는 거기에 이르는 과정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몸에서 혈액이 빠져나가면 운동 능력은 떨어진다. 안도혁이 아무리 상식을 넘어선 생물이라고 한들, 결국 그 근본은 피가 흐르는 생물이다.
피를 잃으면 몸이 둔해질 수밖에 없다.
지룡 한 명의 머리에 올라타 골통을 부수어 놓는 동시에, 총성과도 같은 소리와 함께 그의 몸에 하나의 물줄기가 명중했다.
푸슉
"윽!"
고압으로 쏘아진 물은 다이아몬드도 잘라낼 절삭력을 갖는다.
시대의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도 없는 방식이다. 때문에 안도혁 역시 조금은 방심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는 그의 어깨 일부가 날아가는 결과로 나타났다.
근육에 맞았으면 어떻게 되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비정상적인 반사신경으로 피했기에 피부 한 장이 터지는 수준의 피해만 입었다. 다만 이것은 그에게 더 큰 출혈을 불러왔음이 분명했다.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었다.
어디로 어떻게 회피하든 소용이 없다. 이 전장의 땅 한 평, 공기 한 줌까지도 용족의 공격 영역이었으며, 근본적으로 피할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이라고는 할 수도 없을 만큼 급박한 상황 속, 안도혁은 한 가지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
'기묘하군.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아.'
전투에 돌입한 후 지금까지 용족이 서로 나눈 대화라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육성으로 낸 소리는 비명과 신음 소리, 혹은 포효 정도밖에 없었다. 생리적인 반응 이외엔 아무런 말도 내뱉지 않았다.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수백 명이 하나가 된 것처럼 정확하게 안도혁을 노리고 움직이는데, 서로 한 마디의 대화조차 나누지 않는다니 말이다.
폭음과 타격음 같은 전투 소리 때문에 듣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 정도를 캐치하지 못할 만큼 안도혁의 귀는 나쁘지 않았다.
끝없이 의구심이 솟았으나, 그뿐이다. 진실이 어찌되었든 그런 것 따위에 할애할 시간은 없었다. 실제로 생각을 거듭하는 와중에도 안도혁의 손발은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안도혁은 인간을 초월한 힘을 가졌다. 인간뿐 아니라 요정, 용족조차 초월한 무력으로, 이젠 생물이라고 칭하기조차 민망한 힘을 가졌다.
그런 그에게도 한계는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 70명째의 용족을 쓰러뜨리는 순간 안도혁의 몸 역시 땅으로 떨어졌다.
공격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힘이 빠졌기 때문이다.
쓰러짐과 동시에 육중한 지룡의 발이 그의 등을 거세게 짓밟았다.
쿠웅
"큭."
꼼짝할 수가 없었다.
부상이 심한 것은 아니었다. 수천, 수만 회의 공격이 쏟아졌음에도 그에게 치명상 따윈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실로 기적 같은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피가 모자란다.'
시야가 흔들리고 몸이 차가워진다. 실혈사 직전에 찾아오는 증상이다.
머리 위에서 용의 떨리는 음성이 들려온다.
- 드디어, 드디어 잡았다아.
이 전투가 시작하고 처음 듣는 소리. 그리고 꽤 익숙한 목소리다.
자신감에 찬 용족의 목소리가 안도혁의 귀를 시끄럽게 울렸다.
- 어, 어어떠냐?! 이젠 네가 목숨을 구걸할 차례야!!
셀리테라의 목소리였다. 안도혁은 이를 악물었지만, 육중한 무게에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조롱 섞인 목소리가 들려오는 와중 안도혁의 머릿속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렇게 허무하게 끝낼 수는 없다.
추천, 선작, 코멘트는 큰 힘이 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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