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4)
아베나 마왕국에 대해 인간 세상에 알려진 바는 전혀 없었다.
비단 인간뿐만이 아니다. 수인족, 요정, 인어 등도 그들의 생태, 서식, 문화 등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 그야말로 바깥 세상엔 미지에 가까운 나라인 것이다.
타란토스 제국과 다프텐시아 제국에서는 마왕국에 몇 번 사절을 보낸 적이 있었다. 10년에 한 번 주기로 열리는 피튀기는 전쟁이 종식될 때, 어김없이 그들 제국에서 사자가 왔던 것이다.
세부 사항은 조금 차이가 있지만, 보통 말하는 바는 하나였다.
- 그만 좀 싸우자.
타란토스와 다프텐시아의 군비 지출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 두 나라의 군비를 합치면 어지간한 국가를 일 년 동안 먹여살리고도 남을 만큼 높다.
그나마 군사 국가인 다프텐시아는 상황이 조금 낫다. 하지만 타란토스는 아니었다.
타란토스는 근본이 용병 국가다. 전쟁 때마다 용병으로 각지에서 활동하는 인원을 징병하여 전선에 투입할 수밖에 없다.
자연히 이는 전시 상황의 국력의 감소를 뜻한다. 그나마 평시에 군비 지출을 아낄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지만, 전쟁 때마다 돈을 물쓰듯 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반길 사람이라곤 군 관련 사업을 벌이는 사람밖에 없다. 아니면 먹고 살기 힘든 용병이라던가.
마왕국은 이 제안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저 사신을 잘 먹이고 돌려보내는 행위 이외엔 어떤 자세도 취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10년 주기로 다시 전쟁을 벌인다. 마치 사절단이 온 건 알 바 아니라는 것처럼.
선물도 줘 보고, 회유도 해 보고, 어느 때는 협박도 동원했다.
전부 소용없었다. 마왕국에선 그저 꾸준히 전쟁을 벌일 뿐이었다.
"그런데, 왜 그런 거지?"
아베나 마왕국 제 1군단장, 카푸트 프루덴스가 말했다.
항상 의문이었다. 도대체 왜 10년 주기로 공격을 하는 걸까.
인간을 멸망시키고자 하면 더 많은 병력을 충원해서 공격하면 될 일이다. 아무리 인간의 병기가 좋다고 한들, 파도처럼 밀어닥치는 물량을 당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마족의 수명은 길다. 일곱 군단장 역시 백 년은 기본으로 살아온 존재들이다. 그들에게 20년 정도 기다리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굳이 멸망시키고자 하면 물량을 최대한 끌어모은 후 공격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3군단장, 베르곤이 퉁명스레 내뱉었다.
"이젠 여섯이잖아?"
"그건 그렇지만."
일곱 군단장 중 으뜸의 무력을 가진 스피나 스트리스가 교전 중에 죽었다.
아무도 믿고 싶지 않아했다. 정확히는 믿을 수가 없었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하위 용족 정도는 그녀의 상대가 되지 못하는 수준이었으니.
"뭘 그리 신경 써? 어차피 마왕께서 어련히 뜻이 있으시지 않았을까."
"그 마왕께서 부재중이시잖아."
"······."
그 날, 이 나라의 최고 통수권자이자 가장 무력이 강한 여자는 홀로 그곳으로 떠났다. 단 한 명의 호위부대도 없이.
군단장들은 처음엔 불안했으나, 곧 쓸데없는 걱정임을 깨달았다.
당대 마왕은 그야말로 괴물이었다. 사실 7군단장 전부가 그녀에게 덤벼도 승산을 장담할 수 없을 정도의 강자, 용족조차 그녀의 힘을 따라올 수 없으리라 여겨졌던 자다.
그런데, 그 날부터 소식이 끊겼다.
"생각하긴 싫지만,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야 해."
"어쩌라는 거야, 카푸트?"
"마왕께선 당했다."
카푸트의 말에 마왕성에 정적이 일었다.
그러나 그 정적도 잠시, 아우성이 그 공백을 점차 메워갔다.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1군단장 새끼님아?"
"너 계급장 떼! 계급장 떼고 내 가랑이 밑부터 시작해!"
"어이가 없어도 정도껏 없는 소리로 주둥이를 털어야지."
듣다 못한 카푸트가 들고 있던 지팡이로 바닥을 탁탁 쳤다.
"시끄러워! 그럼 네놈들한테 묻자. 스피나는 대체 누구한테 죽은 것 같냐, 엉?"
마족들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용족 아닐까?"
"그것도 아마 용왕?"
잘들 한다. 카푸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멍청이들아. 용왕이 여기까지 와서 스피나 한 명 잡겠다고 굳이? 게다가 먼저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생각해 봐. 분명 우리 영토에 쳐들어온 건 인간 군대였다. 아니냐?"
카푸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당시, 감히 마왕국에 쳐들어온 것은 인간 군대였다. 처음엔 백 명에 가까운 부대가 들어와 병력들을 휩쓸기 시작하더니, 나중엔 오십 명쯤 되는 부대가 따로 쳐들어왔다. 왠지 모르게 50명 쪽은 얼마 후 퇴각하긴 했지만.
"게다가 용족이 우리를 적대한다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군단장들은 조용해졌다.
당대 마왕인 셀리테라의 정체는 다들 쉬쉬하고 있지만, 진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굳이 사실을 내세우려 들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숨기려 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셀리테라는 단일 개체의 무력이 군대에 준한다고 불리는 대륙 최강의 종족, 용족이다. 게다가 그녀는 그중에서도 지룡족의 왕 자리에 꼿꼿하게 군림하고 있는 여걸이었다. 그런 셀리테라가 통치하는 곳에 용족이 쳐들어온다? 미치지 않고서야 불가능하다. 그녀와 동격인 다른 두 용왕 역시 그런 일을 꾸미지는 않을 것이다.
"그놈들이 인간이든 아니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문제는 고작 50의 인원이 스피나를 죽이고, 마왕께서도 당했다는 거야! 아, 거기 또 불만이 많아 보이시는 것 같은데. 초점만 잡자고, 초점만! 내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놈은 지껄여봐!"
군단장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카푸트의 말에 틀린 점은 없었다.
"왜인진 모르지만 반년 전, 놈들은 이 땅에서 사라졌어. 인간의 나라로 이동했다는 정보가 있지. 비록 그들의 정체가 뭔지는 모르지만, 일단 지금은 마왕께서 사라졌다는 사실에만 초점을 두자."
"······그럼 이제 어떡하게?"
베르곤의 말에 카푸트는 옥좌를 가리켰다.
"마왕께서 생사불명의 상태에 놓이셨다. 그러니 군 통수권자가 필요하겠지."
그 말에 마족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굳이?"
"어차피 전선에 잡놈들을 마구잡이로 투입하는 사실 자체는 차이가 없는데?"
역설적인 말이지만, 마왕이 있으나 없으나 아베나 마왕국이 돌아가는 것에는 별반 차이가 없었다.
전쟁은 그저 10년 주기로 몬스터를 쏟아붓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그저 소모전을 10년 단위로 치르는 것 뿐이다.
"아니지. 지금까지의 전쟁은 그래 왔지만,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야지. 힘을 모아 인간들의 나라를 박살낼 것인지, 아니면 다른 통치 체계를 정립할 것인지."
이는 곧 국가의 운영 방향을 달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자가 나와야 한다는 점이다.
즉, 임시직이지만 마왕과 다를 바가 없다.
쿠구구
대전 안이 기묘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여섯 명의 군단장들은 모두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무거운 분위기가 홀을 잠식했다.
다만 시선이 가장 집중된 것은 역시나 카푸트 쪽이었다.
"새 마왕을 선출하자는 소린가, 카푸트?"
"필요불가결한 일이다. 반대하는 놈은 그 자리에 흥미가 없다는 걸로 간주해도 되겠지."
마왕의 자리는 정치력이나 통솔력, 또는 인망 등으로 결정이 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무력, 바로 힘이다. 단순한 육체적 능력이 가장 우수하다고 판단된 자가 마왕의 위를 차지할 수 있다.
인간들이 보기엔 어이가 없는 일이다. 국가의 통수권자를 팔뚝 힘만 보고 뽑는다? 나라를 말아먹으려는 작정이 아니고서야.
그러나 인간을 제외한 라벤시 대륙의 모든 종족의 수장은 힘의 논리를 따라 선출된다. 호전적인 수인족은 물론이거니와, 바닷속에 사는 인어, 심지어는 평화롭게 살아가는 요정까지도!
셀리테라가 마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가장 강했기 때문이다. 일곱 군단장과 동시에 맞서도 밀리지 않을 무력을 지닌 그녀에게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다. 애초에 마왕이란 자리는 딱히 종족을 가리지 않는 편이기도 하고.
따라서, 다섯 명의 몸에서 투기가 뿜어져 나온 것은 그리 신기한 일도 아니었다.
쿠르르르
대기가 진동한다. 너무나도 강한 여섯 명의 보이지 않는 힘이 서로를 압박하고 있었다. 그 무형의 기운이 땅바닥에 금이 가는 물리적 행위를 동반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공기가 확실히 무거워졌다는 것은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럼 어쩔까. 여기서 바로 결판을 낼까?"
"나쁘지는 않군. 어차피 이기는 놈이 모든 걸 갖는다. 깔끔한 일이군."
마족들은 이빨을 드러내고 손톱을 세웠다.
싸움의 시간이다.
쾅
돌발 상황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바닥을 짓밟아 주의를 집중시킨 카푸트가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는 유일하게 기세 싸움에 참여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이 뇌까지 근육으로 된 멍청이들아! 생각을 좀 해 봐!"
군단장들은 입을 삐죽이며 궁시렁대기 시작했다.
"저건 갑자기 흥을 깨고 있네."
"항상 잘난 척이야. 지만 머리 좋은 줄 알아."
"헛똑똑이."
카푸트는 이 바보들을 어디까지 제어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 말을 듣기는 하려는 자세라, 그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잘 생각해 봐. 스피나가 사라진 이상, 우리 여섯의 무력은 거의 동등하다. 맞지? 상성에 따라 불리한 상대가 있고 유리한 상대도 있겠지만, 전체적인 수준을 보면 거의 엇비슷하단 소리야."
1군단장이라 해서 6군단장보다 강한 것은 아니다. 군단장의 숫자 순서는 그저 상대적으로 일찍 되었느냐 정도만을 파악할 수 있는 지표일 뿐이었다.
2군단장, 남들보다 커다란 덩치를 가지고 있는 율리우스가 말했다.
"그렇다만?"
"내 말은 이거야. 우리의 힘이 비슷한데, 누구 하나가 마왕의 자리에 있다고 해서 네놈들이 순순히 그의 말을 듣겠냐는 거지. 당장 율리우스 너, 베르곤이 네 머리 위에 있다고 하면 참을 수 있어?"
율리우스는 켁 하며 코웃음을 쳤다.
"모기 새끼가 내 머리 위에 선다고?"
베르곤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댔다.
"말 조심해라. 언제든 그 목덜미에 송곳니를 박아 넣을수도 있으니까."
"나이도 경력도 딸리는 스피나에게 밀려서 일족의 최고 자리를 빼앗긴 놈이 큰소리는."
"생긴 건 더럽게 못생겨 가지고, 군단장 직함을 달고도 여태껏 여자 한 명 못 꼬신 놈한테 듣고 싶진 않은데."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열심히 후벼 파고 있었다. 동시에 상처를 받은 둘은 이를 뿌득 갈았다.
"한번 해 볼테냐?!"
"바라던 바다. 이 새끼야!"
베르곤의 눈이 붉게 충혈되고 이빨이 더욱 뾰족해졌다. 그에 맞선 율리우스의 몸이 회색으로 변하며 몸에 기괴한 문자가 새겨지기 시작했다.
카푸트가 다시 한 번 소리쳤다.
"아, 병신들아. 제발 좀!!"
그때였다.
늙수그레한 목소리가 대전 안에 스며들었다.
"잘 놀고 있구만. 애송이 녀석들."
투지로 불타던 둘은 물론, 나머지 넷의 시선 역시 동시에 돌아갔다.
시선의 끝이 자리한 곳엔 백발의 긴 수염이 인상적인 노인 한 명이 뒷짐을 진 채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이 늙은이는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하게나."
"······."
"뭐 해? 맞서 싸워! 싸움 구경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법이지."
저런 말을 하는데, 오기로라도 전투를 할 수는 없다. 맥이 빠진 베르곤과 율리우스는 눈짓으로 휴전 협정을 맺기로 결정하고, 대신 이 불청객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이 노인은 대체 뭐지.'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온 거지?'
추천, 선작, 코멘트는 큰 힘이 됩니당
- 작가의말
오늘은 조금 짧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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