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6)
약 4주 전.
"저 인간 또 왔네."
타란토스 제국 3군 사령관, 오베르트 대장은 멀리서 보이는 자그마한 군세의 모습에 혀를 찼다.
온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미 파발마를 통해 정보를 전해 들었다.
오베르트는 지금 천천히 이쪽을 향해 이동하고 있는 저 남자의 존재가 그리 달갑지 않았다.
처음 그를 봤을 땐 살짝 놀랐으며, 그가 저 먼 전장에서 믿을 수 없는 전공을 홀로 세우고 돌아왔을 때는 이게 사람이 맞긴 한가 의심했다.
오베르트는 초인이다. 일신의 무력은 결코 약하지 않으며, 여느 초인과 견주어도 충분히 맞붙어 싸울 수 있는 수준의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령관의 위에 있는 이상 그의 최우선 임무는 어디까지나 백병전이 아닌 지휘이며, 전장에 직접 나가 싸우는 것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당연하다. 사령관이 직접 칼을 휘두를 상황까지 간다면 그 전쟁은 이미 글러먹은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까.
그렇기에 안도혁은 여러모로 골치 아픈 존재였다.
지휘관의 입장인 만큼, 오베르트는 언제나 적재적소에 병사들을 배치하고, 최소한의 피해로 적에게 효율적인 피해를 입히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그것이 병법의 기본이니까.
즉, 지휘자 입장에서 안도혁은 여러모로 난감했다.
'전략이니 전술이니 하는 것이 의미가 없지. 가서 그냥 다 때려 부수고 오는 인간인데.'
몬스터 수천 마리를 홀로 격퇴해?
다프텐시아의 초인 오십 기를 두들겨 패?
용족까지도 무릎 꿇려?
이런 인간을 전술의 범위 안에서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굶주린 사자가 새끼 양 떼 안에 뛰어들어도 그것보다는 더 현실감이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안도혁을 보고 있자면 평생 동안 전장에서 쌓아 온 경험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정확하게는 자괴감이 들었다.
'초인으로서 나보다 강한 것은 부럽긴 하지만 괜찮다. 하지만 저런 인간이 나타나면 전술가로서 살아온 내 인생은 대체 뭐가 되는 거냐.'
듣자 하니 수도엔 요즘 난리가 났다 한다. 저 정천 경을 앞세워 혁혁한 무공을 세우고 온 4황자가, 그 정천 경을 등에 업고 온갖 횡포를 부리고 있단다. 정확히는 정적들을 하나하나 제거하는 것이었지만.
소식을 듣자마자 오베르트는 안도혁이 타란토스 제국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 단숨에 깨달았다.
'전략 병기.'
전술 병기가 아니다. 전략 병기다. 분명 인간의 탈을 쓰고 있지만 인간이 아니며, 다른 차원에서 노는 존재다. 자연재해라는 말이 자꾸 머릿속에 맴돌았다.
생각을 계속하던 중, 어느새 자연재해가 눈 앞까지 당도했다.
안도혁은 머리를 꾸벅 숙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 어서 오십시오. 정천 경."
자신보다 한참은 어린 상대지만 오베르트는 자연스럽게 공대했다.
공대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제국의 영웅이자, 신화적 존재로까지 격상될 법한 인간이니.
안도혁의 뒤로 수백의 군세가 보인다. 안도혁의 옆에서 걷고 있는 일남일녀를 제외한다면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수인족이었다.
오베르트는 그들을 스윽 훑어보더니 말했다.
"말씀은 들었지만, 정말 저 자들만을 데리고 전장에 나가실 생각이십니까?"
털복숭이라고 하지 않은 것은 오베르트의 배려였다.
평생 동안 타란토스 제국에서 살아온 그에게 수인족은 혐오의 대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고개를 돌려 버리고 싶은 것이 현재의 기분이다.
"그렇습니다. 혹여나 여유가 된다면 하룻밤만 이곳에 묵게 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당연하지요. 허나 죄송한 일이지만, 수인족들의 숙소는 병사들과 거리를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괜히 수인족들이 어슬렁거려서 군인과 접촉이 생기면 어떤 식으로든 시비가 붙을 것임이 분명했다. 오베르트는 그러한 일련의 사태로 인해 이 전략 병기에게 원한을 사는 것만은 무조건 피하고 싶었다.
안도혁은 그의 마음을 이해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별 말씀을. 숙소는 이 지도에 표기된 곳을 쓰시면 됩니다. 자, 안으로 드시지요."
지도를 건네며 오베르트는 한 막사를 가리켰다.
딱 보기에도 뭔가 화려하고 커다란 막사가 입구를 드러내고 있었다. 안에는 산해진미까지는 아니라도 음식이 한 상 잘 차려져 있을 것임이 분명했지만, 안도혁은 고개를 저었다.
"바쁘신 와중일 텐데, 마음만 받겠습니다. 원래대로라면 현장에서 지휘하고 계실 만큼 바쁘시다 들었습니다만."
오베르트는 살짝 놀랐으나, 레틴을 통해 어느 정도 상황을 전해 들은 안도혁이었다.
안도혁의 말대로였다.
아직 전쟁 중이다. 사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정천 경이 온다고 하여 업무를 아주 잠깐 미루고 빠르게 후방으로 달려왔던 것이다. 그마저도 정말 얼마 있지 못할 것이다만.
타란토스 제국에서의 입지 싸움 때문에 안도혁을 대접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그저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이 자연재해에게 안 좋은 인상을 비추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저는 직무를 보러 떠나도 되겠습니까?"
"바쁘신데 어서 가 보십시오. 저 역시 출전을 대비해서 해야 할 일이 있으니."
"감사드립니다, 정천 경."
"무운을 빌겠습니다."
오베르트는 초인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빠르게 뛰어갔다. 말처럼 빠른 속도로 전방의 지휘 막사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상당히 급해 보였다.
멀어져가는 오베르트의 등을 보며 안도혁이 중얼거렸다.
"굳이 저 바쁜 사람이 오지 않아도 될 텐데."
루나가 고개를 붕붕 저었다.
"아냐. 그래도 사람이 체면이라는 게 있는 거야. 무려 정천 경이 온다는데 사령관이 아니라 부사령관 혹은 다른 간부가 와서 맞이한다면 여러 문제가 생겨."
"내 위신 말인가? 그런 건 아무 의미도 없다."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망할 의동생 놈 때문에 괴상한 칭호를 얻게 됐지만, 그걸 딱히 지켜나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루 빨리 이 멍에 같은 감투를 벗어던지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것도 그렇지만, 3군 사령관의 위신도 깎여. 자신이 바쁘다고 다른 사람을 시켜 정천 경을 대접한다고? 아마 민심이든, 군사들의 시선이든 안 좋은 쪽으로 바뀔 거야."
"······나는 공식적으론 어딜 가도 구설수에 휘말릴 수밖에 없는 거냐?"
"타란토스 제국에서는, 응."
"······."
울적해지는 기분이었다. 어쩌다가 자유롭게 살던 자신이 이런 처지까지 됐는지.
안도혁은 숙소에서 수인족들을 쉬게 놔두었다. 딱히 시킬 일도 없고, 피로도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병력을 모으고 전력을 점검한 순간, 안도혁은 자신이 이들에게 전투술을 가르칠 능력이 없음을 깨달았다.
수인족들은 거의 예외 없이 모두가 강하다. 짐승의 특성을 이용한 움직임은 그조차 놀라게 할 정도였으며, 기본적인 전투능력은 이미 증명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따라서 기초 군사 훈련은 의미가 없다. 그리고 안도혁은 그 이상을 가르칠 능력이 없었다.
또한 그럴 필요도 없다.
안도혁이 나가고, 숙소에 남은 수인족들은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전쟁이라니······."
"우리 과연 얼마나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다. 그리고 싸움에는 다들 자신이 있는 몸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있는 것과 목숨을 지키는 것은 판이하게 다른 일이다.
어느 누구도 전장에 나가서 생환할 수 있다고 당당히 말할 수는 없다. 언제 어디에서 눈먼 공격이 들어올 지 모르는 일이고, 하물며 이곳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전쟁터로 꼽히는 제 1마경의 접선지다.
원래대로라면 쉴 시간 따윈 없이 전선에 바로 투입되는 것이 일반적이리라. 마경을 정벌한다는 원대한 뜻과 정천 경의 이름 값으로 하루를 쉬게 된 것 뿐이다.
"그냥 숨어 사는 게 낫지 않았을까."
누군가의 말에, 수인족들의 상태를 살피던 베르시엘라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방금 말한 사람이 누구죠?"
정적이 일었다. 화자는 필사적으로 입을 다물었으나, 분위기가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기 시작했다.
베르시엘라가 성큼성큼 다가와 그의 멱살을 잡았다.
"너, 왕국 출신 아니지?"
"······."
"대답 안 해?!"
"네, 네! 맞습니다!"
개 수인족이다. 호랑이 앞에서 제대로 기를 펼 수 있을 리가 없다.
"네 부모, 혹은 다른 동족에게 왕국에 대한 말을 들어본 적이 없냐?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이, 있습니다!"
"아는 새끼가 그딴 소리를 해?!"
짜악
따귀라 불리기엔 너무나 무거운 폭력이 개 수인의 머리를 휙 돌렸다. 뇌진탕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그를 보며 베르시엘라가 쏘아붙였다.
"자유를 되찾기 위해 도와주시는 분이 계시는데, 그 분에게 걸리적거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할지언정 제 목숨만 챙기려고 해? 네가 그러고도 동족이냐?"
같은 수인족이라고는 하지만, 왕국 출신과 외부 출신은 살아온 방식이 판이하게 다르다.
수인족은 용병 종족이다. 게다가 그들의 대지는 마경과 아주 밀접해 있다.
살려면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비록 그 삶의 끝에 노예가 되는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일단 삶을 유지하기 위해선 전투에 몸을 담는 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렇기에 두 부류는 판이하게 달랐다. 비록 가진 신체 능력은 비슷하지만, 전투에 임하는 각오가 다른 것이다.
"싸우기도 전에 죽을 생각부터 하고 있는 놈에게 내줄 자리는 없어. 당장 마음을 고쳐먹지 않겠다면 지금이라도 네 고향으로 돌아가! 돌아가서 평생 패배자로 살아가라고. 개처럼 꼬리를 말고서!"
개 수인족에게 개라는 소리를 하는 게 과연 욕일까?
아이러니한 말이지만 베르시엘라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는 분명했다.
개 수인은 고개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다시는 허언을 하지 않겠습니다!"
"쯧."
베르시엘라는 개 수인을 거칠게 내팽개쳤다.
"당신들도 모두 명심하세요. 우리는 지금 전장으로 내몰린 게 아니라, 우리의 권익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것을."
타란토스 제국에서 살던 수인족들은 어느 정도 그녀의 말에 동감했다. 어차피 지금도 사람다운 삶을 살기는 그른 처지이니, 최소한 자식 세대에까진 이 천형을 물려주지 말아야겠다는 마음가짐이었으니까.
다만 왕국 출신은 조금 생각이 달랐다.
'어차피 주인만 바뀐 것 아닌가.'
명목상 안도혁은 그들을 용족에게서 뺏어 왔다고 표현했으니, 그리 틀린 말도 아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인도 연도 없는 곳에서, 무슨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용족이 다시 우리를 찾아오진 않을까.'
옛 주인에 대한 불안감.
복합적인 생각이 그들의 머리에 휘몰아쳤다. 그것은 방금 전까지 일갈하던 베르시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분이 우리를 지켜 주실 수 있을까.'
직접 무위를 견식했기에, 힘에 대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힘이 센 것과 사람을 지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불안감에 젖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안도혁은 들고 온 '장비'를 점검중이었다.
달그락 달그락
물건의 상태를 보고, 양호하다 싶으면 골라 놓고 조금 부실하다 싶은 것은 옆으로 빼 놓았다.
'물건'은 말 그대로 산처럼 쌓여 있었다. 힘 좋은 짐말이 끄는 마차가 서른 대 분량이나 필요할 정도의 양이었다.
같이 물건을 점검하던 루나가 물었다.
"오빠도 무기를 쓰긴 하는구나?"
"원래는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대부분 다 일회용으로 그쳐 버려서 말이다."
그의 힘을 담을 수 있는 무기는 많지 않다. 아니, 정확히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강철을 벼려 만들든, 몬스터의 부산물을 이용하든 마찬가지였다. 너무나 강한 힘에 무기 자체가 버티지 못하고 주인보다 먼저 쓰러져 버렸으니까. 서너 번 휘두르면 부러져 나가는 무기에 가치가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뜻밖이야. 이런 걸 사용하려 하다니."
"어차피 일회용으로 쓰일 수밖에 없다면, 일회용인 물건을 만들면 그만이다."
단가는 비싸지 않았다. 레틴이 적극 지원해줘서 그런 것도 있지만, 애초에 그리 비싼 재료도 아니었으며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물품도 아니다. 두 팔 달린 성인이라면 하루에 몇 개라도 만들어낼 수 있는 물건에 불과했다.
아주 단순한 물건, 그러나 사용자가 누구냐에 따라 그 위력은 판이하게 달라진다.
에스턴이 질린 표정으로 물건들을 바라보았다.
"내 입장에서 보면 정말 끔찍한 광경인데."
"너희도 무기를 쓰지 않나?"
"그건 그렇지만, 이렇듯 닥치는 대로 뽑아오진 않는다고."
"무리라면 미안하게 됐다. 너는 가서 쉬어도 좋다."
"그냥 해 본 소리야. 어차피 지금 당장 할 일도 없으니까."
세 명은 무기를 점검하느라 반나절 가량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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