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과 만남(7)
베르시엘라는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분명히 인간이다. 덩치가 좀 많이 크긴 하지만, 그저 인간일 뿐이었다.
그렇다. 일단 눈으로 보이는 사실 자체는 그렇다.
"흐압!"
우두둑
기합과 함께 남자는 샐러맨더 하나의 꼬리를 뽑아냈다. 비늘과 살과 뼈가 동시에 끊겨버린 샐러맨더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고, 남자는 뽑아낸 꼬리를 무기 삼아 휘둘렀다.
꼬리의 원래 주인이 휘두르는 것보다 몇 배나 위력적인 공격이 펼쳐졌다. 꼬리에 가격당한 샐러맨더들은 머리에 느껴지는 육중한 충격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피보라가 몰아치는 가운데, 어느 용기 있는 도마뱀 하나가 남자에게 돌진해 몸통을 무는 데에 성공했다.
우직
남자는 얼굴을 찡그렸다. 샐러맨더의 이빨이 온 몸을 파고들어, 피부가 터져나갔다.
그러나 이빨은 피부를 뚫었을지언정, 그 안에서 흉폭하게 맥동하는 근육의 벽엔 상처 하나 입힐 수 없었다.
안도혁은 그저 대흉근과 양팔에 힘을 주는 것으로 샐러맨더의 아귀에서 벗어났다. 이어, 그는 자신을 물어뜯은 샐러맨더의 아가리 자체를 한계점 이상으로 벌리기 시작했다.
난생 처음 겪는 고통에 샐러맨더가 눈동자를 까뒤집기 시작했다. 턱이 빠지는 데엔 얼마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닭 무리 안에 들어간 늑대가 저러할까. 분명 체급은 그 반대일 텐데, 늑대는 온갖 닭들을 물어뜯고 찢어발기는 데에 어떠한 문제도 없다는 듯 흉폭하게 날뛰었다.
부수고, 뜯고, 찢는다. 강철 같은 근육이 그 위력을 여지없이 뽐내었다.
학살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그 모습을 보며 베르시엘라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현실에서 일어날 리가 없는 일이다.
현실과 환상의 조화일까. 아니면 이 모든 것은 꿈일 뿐일까.
그럼에도 이것은 현실이다. 한계를 넘은 혹사에 지끈거리는 온몸의 통증이 그것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었다.
하늘을 뚫을 듯한 고함과 함께, 안도혁은 마지막 샐러맨더에게 주먹을 날렸다.
"이야아아압!"
뻐억
격한 타격음과 함께, 마지막 적이 땅으로 쓰러졌다. 온몸에 있는 모든 구멍이란 구멍에서 피와 체액을 쏟아내면서.
학살이란 이런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듯 안도혁은 오연하게 시체들 가운데 서 있었다.
아무리 안도혁이라고 해도 부상은 피할 수 없었다. 발톱과 꼬리, 이빨에 긁히고 찢긴 상처가 그의 몸을 군데군데 덮었다.
물론 그 정도의 상처로 이 모든 몬스터들을 섬멸했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초인이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나마 상처가 나고, 피가 흐르는 인간이라는 점 하나가 이 비현실적인 광경에 현실 한 스푼을 더할 뿐이었다.
안도혁은 자신이 벌인 참극을 바라보며 담배를 물었다.
'많이도 죽였군.'
혀를 빼물고 죽은 시체, 목이 뽑힌 시체, 주둥이가 찢긴 시체······시산혈해라는 말이 이보다 더 적합할 수 없다.
이미 죽은 샐러맨더들이었지만, 한때 그들도 생명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시신에선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체적이 큰 만큼 그 혈액의 양도 엄청나서, 꿀렁꿀렁 토해내는 그들의 생(生)의 증거를 대지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땅은 온통 피로 물들었지만, 피웅덩이가 곳곳에 생겨날 정도였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속에서, 한 줄기 담배 연기가 씁쓸한 감정을 품고 피어났다.
"쳇."
안도혁은 기본적으로 살생에 어떠한 거리낌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 대상이 동물이 되었든, 사람이 되었든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도덕성이라는 게 있는 사람이기에 폭력을 그나마 자제하고 다니는 것일 뿐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필요 없는 살생은 어떠한 경우에도 하지 않았다. 재미로 사냥을 하는 등의 행위는 안도혁의 입장에서 어이없는 짓 이상의 것이 되지 못했다.
'이런 적은 처음인가?'
은혜를 갚았다고 하면 변명은 된다. 그러나 그건 비겁한 자기위안에 불과했다.
어쩌면 싸우지 않고 해결할 방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굳이 이렇게 몰살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딱 담배 한 대를 다 피울 동안만 생각에 잠겨 있던 안도혁은 침을 거칠게 뱉었다.
'흥, 이제 와서 무슨.'
이미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죽인 몬스터의 숫자가 네 자리는 될 것이다. 양심 찾자고 궁상 떨기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한참 전에 건넜다.
상념을 마친 안도혁이 숲 쪽에 대고 소리쳤다.
"이걸로 상황은 끝난 겁니까?"
레이나는 이미 한참 전에 숲 밖으로 나왔다. 나무 하나에 기대 안도혁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엔 약간의 공포가 서려 있었다.
'아마 용이라고 해도 이런 짓을 할 수는 없어.'
눈앞의 저 인간은 대체 무엇인가. 정말 인간이 맞긴 한 건가?
혼자 샐러맨더들을 처리하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엔 귀를 의심했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도, 솔직히 레이나는 안도혁을 전혀 믿지 못했다.
누구인들 믿을 수 있을까. 나쁘게 보면 허세, 좋게 봐도 만용 정도밖에 보이지 않을 헛소리에 불과한데.
그럼에도 굳이 숲의 길까지 써서 인도했다. 그래도 시간 벌이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서였다.
결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적어도 레이나의 머릿속 그림에, 눈앞에 펼쳐진 시산혈해의 광경은 전혀 그려진 적이 없었다.
혼란했다. 머리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끙끙거리는 레이나를 보며 안도혁은 몇 마디를 더 던졌으나, 들리지 않는지 그녀는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뭔가 그녀의 심리상태가 짐작이 간 안도혁은 담배를 한 대 더 물었다. 저러다 보면 알아서 정신을 차리겠지.
"그럼······."
안도혁의 시선이 옮겨갔다.
피웅덩이가 즐비한 곳에서 살짝 떨어진 곳, 호랑이 한 마리가 안도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황금빛 눈동자가 인상적인, 크지도 작지도 않은 호랑이였다.
'도와준 것을 알고 있는 건가?'
동물이 사람에 비해 지능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도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사는 생물이다. 본능 외에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곤충과는 다르다.
가만히 그녀와 눈을 마주치던 안도혁은 이내 고개를 돌렸다.
'구해줬으니 알아서 살겠지.'
밥이라도 먹여 보낼 수도 있지만, 알지도 못하는 호랑이를 주머니 털어 구제해줄 만큼 안도혁은 착한 사람이 아니었다.
'늑대나 개였으면 구해줬을 텐데.'
고양이파보단 개파인 안도혁이었다.
담배를 한 대 더 피우고 레이나 쪽으로 걸어가려던 찰나, 등 뒤에서 자그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 도와 주세요."
안도혁은 귀를 후볐다. 내가 뭘 잘못 들었나.
그러나 잘못 들은 것은 아니었다.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기 때문이다.
"제, 바알······."
등을 돌리자, 그곳에 있어야 할 호랑이는 간 데 없고, 대신 묘령의 여자 한 명이 자리하고 있었다.
곳곳이 멍투성이에다 상처도 드문드문 있는, 나체에 가까운 여인이었다. 다만, 안도혁은 그녀가 인간으로 보이진 않았다.
'재미있게 생겼네.'
머리엔 고양이처럼 생긴 귀가 솟아 있고, 엉덩이엔 꼬리가 자라나 있다. 몸의 대부분이 황금빛의 털로 덮여 있었으며, 털에는 검은 줄무늬가 문신처럼 새겨져 있었다. 인간의 그것과 비교하면 너무나 크고 굵은 송곳니가 입 밖으로 삐죽 튀어나와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안도혁은 한 가지 결론을 내놓았다.
'수인족이잖아.'
생각해 보니 아스란 왕국에서도 몇몇 수인족을 본 것 같긴 했다. 그 당시엔 요정 찾기에 경황이 없어서 그다지 신경을 쓰진 않았지만.
'그러고 보니 도와달라고 했던 것 같은데.'
여자는 이미 의식이 없었다. 가슴이 오르내리는 것을 보니 숨은 쉬고 있었지만, 눈은 퀭하고 배는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홀쭉했다. 딱 봐도 영양실조 상태 혹은 그 직전일 것이다.
몬스터로 분류되는 것들을 제외하면 호랑이는 상위 포식자다. 그러나 저대로 놔두면 호랑이가 아니라 호랑이 할아버지라도 얼마 가지 못해 아사할 것이 분명했다.
물에 빠진 사람을 보면 돕는 게 인간의 도리라지만, 그런 상황이 실제로 오면 안도혁은 근처에 있는 나무 판자 하나를 던져주고 다시 제 갈 길을 갈 위인이었다. 애초에 아무 상관없는 남에게는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관심이 없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나무 판자 하나 던져줄 정도의 인성은 있다.
툭
안도혁은 마침 가지고 있던 건량과 물을 베르시엘라의 발치에 던졌다. 기절한 그녀는 그것을 인식하지도 못했다.
운이 좋으면 살겠지. 할 일은 다 했다.
기절한 호랑이 수인에게 그 이상의 관심은 없었다. 안도혁은 미련없이 돌아섰다.
"레이나 씨! 돌아가는 길은 어느 방향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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