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7)
콰과광
폭탄이 터지는 소리, 화살이 퍼부어지는 소리, 몬스터들의 괴성과 부상당한 병사들의 신음 소리.
전장의 소리.
아비규환이나 다름없는 전쟁터에서 오베르트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병사들을 지휘했다.
지휘관이 본디 전선에 나와선 안 된다. 오베르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눈먼 공격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오베르트가 이토록 동분서주하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요새 들어 더욱 공세가 강해진 것 같다.'
지금은 전선을 뛰어다니고만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직접 검을 뽑을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때야말로 정말 북방의 위기가 심화되는 일이다.
"화살을 있는 대로 퍼부아라. 놈들이 방벽을 기어오르게 해선 안 된다!"
오베르트는 호령을 치며 병사들의 사기를 도모했다.
"힘을 내라, 전사들이여. 이제 거의 다 왔다! 시대는, 역사는 너희들을 영웅으로 기억할 것이다!"
병사들은 사령관의 말을 상당히 비관적으로 듣고 있었다.
'글쎄요.'
'알아 주기나 할까요?'
사람은 본디 자신의 일이 아닌 것에는 공감을 하지 못한다. 이해 능력이 딸려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역지사지가 잘 되지 않는 생물인 것이다.
어부는 하루 종일 땡볕 아래에서 허리를 혹사시키며 밭을 매는 농부의 노고를 알지 못하고, 농부는 언제든 바다에 휩쓸려 한 줌 포말로 화할 가능성이 있는 어부의 위험을 이해할 수 없다.
군인들이 죽던 말던 시민들은 살아갈 것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추모? 기억이나 하면 다행이다. 전선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군인의 노력 따위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 군 경험이 있거나 군인의 가족 정도가 아니라면.
인간이 원래 그렇다.
한참 동안 돌아다니고 있는 오베르트에게 전령이 뛰어왔다.
"장군님, 급보입니다! 제 13 용병대가 지금 고립 위기에 처해, 지원군을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젠장, 되는 일이 없군. 부관에게 가라. 놈에게 일시적으로 통수권을 맡긴다고 전해라!"
"알겠습니다!"
현재 여유 있는 부대가 있었나를 생각해보던 호베르트는 픽 웃고 말았다.
'지원군을 차출할 수 있기나 하면 다행일 텐데.'
조금만 더 상황이 심각해지면 행정 업무를 보는 군인까지 총칼을 잡아야 할 처지다. 역대의 어느 전쟁과 비교해도 이번 침공은 확실히 막강했다.
'내 대에서 전선이 뚫리는 꼴을 볼 수는 없지. 여차하면 목숨까지 바칠 각오는 되어 있다.'
평생을 군문에서 살아왔다. 기를 쓰고 바득바득 기어올라 초인이, 또한 장군이 되었다.
대장의 직함을 달 수 있는 자는 두 부류다. 전쟁 중에 뛰어난 무공을 세웠거나, 정치질을 어마어마하게 잘 하거나.
오베르트는 전형적인 전자였다. 그렇기에 그는 중앙 정계 쪽에는 아예 연줄이 없었으며, 군인으로써의 실력만 인정받아 장군이 된 몸이다. 이런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큰 돈을 만지거나 권력을 잡기는 불가능하다.
허나, 그렇기에 필요불가결한 사람이기도 하다. 이러한 '제대로 된 군인'은 어느 국가에나 있어야 하는 법이다.
한참 동안 오베르트가 고군분투하고 있던 와중, 전령이 다시금 달려왔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인가? 전선이 돌파되기라도 한 게냐?"
중년 군인의 말에 전령은 화급히 경례를 올려붙였다.
"그, 그게 아니오라. 오셨습니다!"
"무슨 말인가?"
"정천 경이 출전하십니다!"
본디 아무런 직함도 없는 상대를 올려 붙이는 것은 압존법에 위반된다. 그러나 안도혁은 그 모든 사실로부터 논외라는 점을 전령도, 오베르트도 알고 있었다.
"정천 경께서?"
"그리고 그 분의 반려께서 오셨습니다."
"엥?"
전령의 옆에, 눈부신 은발이 인상적인 미인이 서 있었다. 루나리스 템페스트라 불리는 이국인이며, 현재는 정천 경의 여자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
루나가 살짝 고개를 숙여 목례했다.
"바쁘신 와중에 시간을 할애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오베르트 장군님."
"아아, 괜찮습니다. 여기까진 어인 일로 오셨는지?"
오베르트의 입장에서는 대체 전장에 왜 자기 여자를 데려오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감히 정천 경이 행하는 일에 트집을 잡을 수는 없었다. 그러려니 하고 넘겨야 할 뿐.
"이제 곧 공격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 전에,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말씀해 보십시오."
얼마나 대단한 부탁이기에 반려를 직접 보냈는지는 모를 일이다.
루나의 말은 뜬금없었다.
"공격이 끝난 후, 병사들에게 물건을 회수할 것을 명령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갑자기 물건이라니요?"
"이제 곧 보시게 될 겁니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오베르트가 납득할 수 없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지금부터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짐작할 수 없었으니까.
둥 둥 둥
거센 북소리가 들려온다.
토성이라고 불러도 좋을 법한 방벽 위에 올라선 안도혁은 담배를 물었다.
"생각보다 많군."
저 아래로 수백, 수천의 몬스터 무리가 보인다. 화살이 박히고, 창칼을 맞아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오는 공포의 군세가. 자신의 목숨을 초개처럼 바치는 광전사의 모습이었다.
그의 옆에는 베르시엘라와 에스턴이 자리했다. 남은 인원은 아직 전선에 투입되지 않은 상태였다.
"방진을 짜서 몬스터와 싸우는 병사들도 있는데, 퇴각 명령도 부탁할 걸 그랬나?"
"피해 없이 퇴각할 수 있다면 네 말이 맞지만, 저처럼 전투에 휘말려 있어서야 답이 없다. 퇴각 명령이 제대로 전달될지나 의문이다."
"그러려나."
이제 전투의 시간이다. 에스턴은 자신이 직접 싸우는 것도 아닌데 가슴이 세차게 고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잠시 장비를 만지작거리던 그는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일단 나도 활과 화살을 가져오긴 했는데, 지원사격 필요해?"
"혹여나 밀리게 되면 부탁한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저 확고한 태도로 보아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에스턴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임무에만 충실하기로 결정했다.
북벌을 하기 위해서 가장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일단 전선에 모인 무리들을 격퇴하는 것이다. 그들을 어떻게든 처리하지 않고선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갈 수 없다.
시초의 의식 때엔 어떻게든 숨어 들어갈 수 있었다. 인원이 그때보다 적은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몬스터 무리의 규모가 확연하게 차이났기 때문이다.
'지금 보니, 그때보다 지금의 병력이 훨씬 많군. 무슨 기준으로 가장 치열한 전장에 황자들을 보낸다고 한 거지?'
이는 레틴이 안도혁에게 잘못 전달한 사실이었다.
시초의 의식이 행해지는 장소는, 의외로 정해져 있었다. 2대 황제가 의식을 치른 곳, 그곳이 가장 몬스터의 공세가 격심했다고 여겨지는 관례가 있다. 레틴은 그곳으로 멸마군을 인도한 것뿐이었다.
현실과 다르더라도 상관 없다. 그것이 관례였고, 역대 황자들은 그걸 따를 뿐이었다. 즉, 실제로는 아주 적은 피해만 입고도 의식을 마무리한 황자가 있을 법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을 알 리 없는 안도혁은 그저 담배를 한 대 더 태울 뿐이었다.
"씌운 것을 모두 걷어라. 뚫어 버리겠다."
"알았어."
방벽 위에 있는 사람은 셋뿐이었지만, 실제로 그곳은 꽉 찬 것처럼 느껴졌다. 사람이 더 있는 게 아니라, 그만큼의 물건이 토성 위를 뒤덮고 있었던 것이다.
수십 대의 수레들이었다. 그것은 모두 두꺼운 덮개로 감추어져 있었다. 습기를 막기 위한 임시방편적 조치였다.
에스턴은 수레 앞으로 다가가 덮개를 확 잡아당겼다.
파라락
거대하고 묵직한 덮개가 하늘을 날고, 수레 안의 내용물이 세상에 공개되었다.
베르시엘라는 잠잠히 수레를 바라보았다.
'목창······.'
창이라기보다는 말뚝에 가까운 생김새를 가진 목창이 수십, 수백, 수천 개가 쌓여 있었다.
무기로 쓸 만한 용도의 물건이 아니었다.
본디 대인 병기라 함은 손으로 잡고 이용할 수 있어야 그 가치를 발휘한다. 검 같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아무리 긴 장창이라도 그 두께는 인간의 손아귀 정도로 한정되어 있다. 총기에 이르러도 마찬가지이며, 이 법칙에 따르지 않는 것은 기껏해야 공성 병기 정도일 것이다.
아무리 봐도 창보다는 울타리로 쓰일 법한 목창들을 보며 베르시엘라는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의심이 안도혁에게까지 가는 것은 아니었다.
"은인이시여. 부탁드립니다."
"맡겨 주십시오."
안도혁은 담배를 비벼 껐다.
'언제였지?'
아직 덜 여물었을 시절, 그에게도 무기를 필요로 하는 시점이 있었다.
바닷속 몬스터들은 거칠고 난폭하며 또한 거대하다. 인간의 크기 정도는 한입에 삼키고도 남을 괴수들이었다.
당시 안도혁은 무기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도 맨손으로 덤비는 것은 상당한 모험이었으니까.
그리고 오늘 다시 무기를 잡는다.
터억
보통 사람보다 훨씬 거대한 안도혁의 손아귀가 창을 잡았다. 그 손에 잡히자 그것은 이제 울타리가 아닌 창으로 보였으나, 아직도 무기의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고 짐작되는 수준은 아니었다.
"계속 갈 것이다. 무기가 끊기는 일이 없도록 해라."
에스턴은 싱글싱글 웃으며 엄지를 척 들어 보였다.
"나만 믿으라고."
"좋다."
안도혁은 허리를 살짝 뒤튼 후, 체중을 실어 창을 거세게 집어던졌다.
공기를 찢어 발기는 파공성이 일었다.
패애액
분명 그것은 하나의 창에 불과했다. 두께와 무게가 있으니 위력이 어느 정도 나오기는 하겠지만, 거대 몬스터의 피륙을 뚫기에는 너무나 연약해 보이는 물건이다.
실제로 벌어진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뻐어억
"끼익."
어딘가에서 날아온 나무에 머리통이 완벽하게 꿰뚫린 드레이크 한 마리가 피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신장이 무려 10미터가 넘는 거대 몬스터가 그 일격으로 침몰했다.
이는 이변이긴 했으나, 몬스터들은 굳이 그런 사실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뭐라도 맞았나 보지 하는 생각일 것이다. 그들이 생각이라는 걸 할 줄 안다는 가정을 한다면.
그러나 공격은 단발로 끝나지 않았다.
패액 패애액
파공성은 계속되었다.
나무 주사위를 집어던져도 그보다 가벼울 순 없겠다 싶은 동작으로 안도혁은 창을 계속 집어던졌다. 분명 한 번의 움직임 같았는데 날아가는 투창의 숫자는 네다섯 개를 넘어서고 있었으며, 그 한 번의 동작도 일반인의 눈에는 보기 힘들 정도로 빨랐다.
거기까지라면 기인열전에 이름을 실을 정도의 일이지만, 문제는 행위의 결과가 단순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하나의 창에 몬스터 다섯 마리는 족히 꿰뚫려 사망한다. 운이 좋게 빗겨 맞은 놈들도 팔다리 중 하나는 그대로 결손될 정도의 위력이었으며, 이는 대형종과 소형종의 차이를 가리지 않았다.
일격일살(一擊一殺)이 아니다. 그런 단순한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다.
일방적인 학살이 시작되었다.
"끄륵!"
"아르르······."
창에 맞은 몬스터들에게서 거대한 비명이 터져나오는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놈들이 한 번으로 절명했고, 단말마는 비명이 아닌 신음으로 끝났다.
전장에서 저 미친 자연재해가 일어난 지 고작 3분이 지났을 무렵, 몬스터의 시체는 천 단위로 쌓여가고 있었다.
처음에 병사들은 이해를 하지 못했다. 갑자기 자꾸 몬스터들이 픽픽 쓰러져 죽어나가는데, 도통 이유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놈들이 왜 자꾸 쓰러지는 거야?"
"복통이라도 났나?"
물론 그럴 리는 없다.
병사 중 한 명이 소리를 질렀다.
"저 위에서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어!"
시선은 한 토성으로 이동했다.
전체 전장에 비교하면 너무나도 작은 그 지점. 그곳에서 무언가가 휙휙 날아 몬스터들에게 쏘아지는 것이 어렴풋하게나마 보였다.
얼마 후 병사들은 깨달았다.
"정천 경이시다!"
"정천 경께서 전장에 오셨다!"
타란토스 제국의 영웅. 살아 있는 신화가 이곳에 강림했다.
이 사실에 병사들의 사기가 충천하여 하늘을 뚫을 듯 했으나, 그들은 고무된 감정을 토해낼 수도 없었다.
병장기를 고쳐 잡는 순간에도, 숨을 한 번 들이킬 순간에도 몬스터들이 죽어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털썩
오크 열 마리가 한 번의 투창에 명을 달리했다.
쿠웅
눈알과 함께 머리가 꿰뚫린 사이클롭스가 혀를 빼문 채 땅바닥에 쓰러진다.
공격은 계속되었다. 아무도 그것을 막을 수 없었다.
수천의 아군이 사라지자 몬스터들은 자연스럽게 학살의 주범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나의 커다란 방벽 위로 말이다.
흉수는 그곳에 있다.
크아아아
누가 명령한 것도 아닌데 몬스터들은 일제히 방벽으로 달려들었다. 지금까지 자신과 맞서 싸우던 병사들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무작정 돌진해왔다.
다음 창을 잡아들던 안도혁이 중얼거렸다.
"좋다. 다 몰려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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